방송길이 : 121분 원제 : Gardens of Stone 방송 : 2004년2월 21일 밤 10시 제 작 : 1987년 (미국) 감 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주 연 : 제임스 칸 / D.B. 스위니 / 안젤리카 휴스턴 / 메리 스튜어트 메터슨 / 제임스 얼 존스 / 딘 스톡웰 / 로렌스 피쉬번
줄거리 :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70년대의 워싱턴 D.C. ‘돌의 정원’이라고도 불리우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에 대한 공과 시련에 대한 얘길 담고 있다. 미정부는 이미 승산 없는 전쟁이 되어 가고 있는 베트남전에서 가능하면 빨리 발을 빼려 한다. 한국전에도 참전한 바 있는 백전노장의 노련한 군인 크렐 상사(제임스 칸 분)은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베트남전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다. 어느 날 크렐의 부대에 재키 윌로우(D.B.스위니 분) 일병이 들어오고, 크렐은 그가 한국전 동지였던 친구의 아들임을 알아본다. 재키는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미국의 애국청년이었다. 그런 재키를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크렐은 그의 그런 마음을 바꿔보려고 비공식적으로 비밀스런 군대의 비리를 알려 주며 설득한다. 그래도 재키의 참전에 대한 열망은 꺽이지 않고, 크렐 상사는 재키가 사랑했지만 헤어져야 했던 여자 친구 레이첼(메리 스튜어트 메터슨 분)과 다시 만나도록 재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사랑의 힘으로 그가 마음을 바꾸길 바란다. 그의 바람대로 재키는 레이첼과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에까지 골인한다. 그러나 재키는 비록 크렐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신부 레이첼을 남겨 둔 채 베트남을 향해 떠난다. 얼마 후 전사한 재키의 시체가 미국으로 이송되고 재키는 알링턴 국립 묘지에 묻힌다.
주 제 : <병사의 낙원>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이 담겨있는 베트남전 영화로 니콜라스 프로피트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지옥의 묵시록>으로 베트남전의 실상을 실감나게 재구성해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까지 받았던 역량 있는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또 다른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은 전작 <지옥의 묵시록>처럼 현란한 기교나 장엄한 메시지를 배제한 채 소품 전쟁 영화처럼 작은 목소리를 담아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속에서 크렐 상사가 참전하고픈 열망으로 가득차 있는 재키를 바라보는 시선은 근심과 죽은 재키의 아버지를 대신하는 부정의 시선이 담겨있다. 이는 이 작품의 제작에 들어가기 전 보트 사고로 아들을 잃은 코폴라 감독이 그의 아들에게 보냈던 시선이기도 하다. 이런 감독의 개인적인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왠지 모를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원제 '돌의 정원'은 미국의 전쟁영웅들이 묻혀있는 알링턴 국립 묘지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감 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작곡가인 카마인 코폴라의 아들로, 1935년 4월 7일에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다. 어릴 적부터 아마추어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1960년에 저명한 UCLA 영화학교에 등록하며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게 된다. 1966년에 UCLA의 석사학위 프로젝트로 코미디 영화 <이제 다 컸어 You're a Big Boy Now>를 만들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같은 해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Is Paris Burning?>의 각본 작업에 참여한다. 1970년 <패튼 대전차군단 Patton>의 시나리오를 써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코폴라 감독은 파라마운트사로부터 마리오 푸조의 베스트셀러 <대부>를 각색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연출까지 맡게 되는데, 1972년에 개봉된 이 작품은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의 상을 휩쓸며 단숨에 헐리우드 최고의 걸작대열에 올라섰고, 코폴라는 헐리우드의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코폴라 감독은 70년대를 관통하며 문제작들을 잇달아 내놓게 되는데, 1974년작 <컨버세이션>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빗댄 스릴러물로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에 만든 미국초기, 불법 이민자들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 <대부 2>는 전편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둬,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조연상(로버트 드 니로) 등 6개의 상을 수상한다. 1979년 코폴라는 조셉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을 토대로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이룬 캄보디아 정글 심장부의 이야기를 엮어, 공포와 광기, 구원, 도덕적 딜레마를 심도있게 다룬 <지옥의 묵시록>을 만든다. 코폴라 감독이 나중에 ‘우린 조금씩 미쳐가고 있었다’라고 술회했듯이, 이 영화는 마틴 신이 심장 마비를 일으킨 일로부터 시작해서, 1천 2백만불의 예산이 3천 1백만불로 초과되었고, 연이은 배우 교체와 시나리오 수정 등의 전쟁과 같은 진행 과정을 거쳐 베트남전이 종식된 해부터 촬영에 들어가서 무려 4년이 지나 완성되었다. <지옥의 묵시록>은 깐느 영화제에서 코폴라에게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겨주고, 아카데미상도 두 개나 수상한 코폴라의 최고 걸작이었지만 흥행에서는 참패를 기록하며 그에게 심한 재정적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전쟁과도 같은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 이후 코폴라 감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 1982년에 영화전체를 비디오로 작업하려는 야심으로 제작된 <원 프롬 더 허트 One From the Heart>는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 실패해서, 그에게 3천만불의 빚을 남겨주었고, 83년에는 SE 힌튼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아웃사이더 The Outsiders>와 <럼블 피쉬 Rumble Fish> 역시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이어 1984년에 공황기의 할렘 재즈 클럽을 배경으로한 뮤지컬 <코튼 클럽 The Cotton Club>을 만들었으나 코폴라 감독의 과도한 열정 탓에 역시 실패작으로 끝나고 만다. 소품 성격의 코메디 영화 <페기수 결혼하다 Peggy Sue Got Married>(1986)의 대중적인 성공을 빼면 코폴라에게 80년대는 말 그대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1910년대의 자동차업계의 신화적 인물 터커에 관한 전기영화 ‘터커 Tucker (1988)’를 만든 것은 80년대의 유일한 비평 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대중의 관심 바깥에 놓였으며, 89년에 마틴 스콜세지, 우디 알렌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뉴욕 스토리>를 만들었으나, 코폴라의 에피소드 '조가 없는 삶' 이 가장 저조한 평을 받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코폴라 감독은 할 수 없이 <대부 3>를 만들게 되지만 이 작품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예전의 코폴라다운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90년대에 들어와서도 코폴라 감독은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 근거를 둔 <드라큐라 Dracula>(1992)의 성공을 빼고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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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옥의 묵시록 보고싶은데 19세라서-_-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