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외로운 천사
내가 20대 초반인 70년대 초, 그때 나는 자살 후유증으로, 결핵 말기 진단을 받은 지 3년째 되던 해에, 고시 동문과 신도안(神都岸)이란 마을을 품고 있는, 계룡산 자락의 조그만 암자로 책 몇 권을 싸들고 가서, 여름 한철을 보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곳에 참 희한한 기인들을 많이 보거나 들은 기억이 있다. 오늘 난, 한가 하게 그런 기인들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나는, 역시 지난 날 고시 동문이, 설악산 자락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식을 하면서, 무위자연하며 살고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로부터, 이 설악산 자락에서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서, 아주 보석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듣기 힘든 미담을 들었다. 이 친구 얘긴즉, 이 땅에서 가장 정감어린 사람을 얘기하라면, 바로 '설악산 지게꾼인 임기종 씨' 라고 단정하듯 운을 뗀 그의 말이, 나는 너무도 의아해서, “임기종 그 분이 자네와 어떤 사이인데?” 하고 물어 보았다. "임기종씨는, 40년이 넘도록 설악산에서 지게질만 한 지게꾼이고, 키가 160cm도 되지 않고, 몸무게는 60kg도 나가지 않고, 머리숱은 듬성듬성하고, 이빨은 거의 빠지거나 삭아서, 발음 까지 어눌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임기종씨에 대한 친구의 얘기는 이렇다. 임기종씨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지게질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오로지 설악산에서 짐 을 져 나르고 있고, 그 삯을 받아서 정신지체 2급의 아내와 그 아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 를 가진 아들을 부양하고 사는 '산 사나이'라고 했다. 맨 몸으로 걸어도 힘든 산길을, 40kg이 넘는 짐을 지고 날마다 산을 오르내리는 임기종씨. 하루에 적게는 4번, 많게는 12번이나 설악산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설악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상인들과, 사찰에 필요한 생필품을 등짐으로 져다주고 그가 받는 삯이, 한 달 에 150만원 남짓이라고 한다. 한 달에 150만원, 누구에게는 이 돈이, 별 것 아닌 돈일지 몰라 도, 그에게는 이 돈이, 땀으로 얻은 돈이기에 금쪽같지만, 그러나 자신에겐 충분한 돈이라고 한단다. 아내가 장애인이라, 정부로부터 생활 보조비를 받기 때문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생활이 가능 하고, 술 담배를 전혀 안 하고,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으니,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낱 지게꾼에 불과한 그를, 많은 사람들이 '작은 거인'이라고 칭송하는 까닭은,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려 십 수 년이 넘도록 장애인 학교와, 장애인 요양시설에 생필품을 지원하고, 홀 로사는 노인들을 보살피고,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이 번 돈 모두를 사용 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 전부를 포를 떠서 희생하는 것이기에, 그 삶이 더욱 소중하게 보인다. 지금까지 임기종씨가 그렇게 사용한 돈이, 무려 일억원 가까이 된다고 하니, 설악산을 수백 번을 오르내리며 번 피같은 돈을 그가 치열하게 살아온 삶만큼이나, 참 값지고 보람되게 쓰 이고 있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적어도 땀 흘려서 번 돈 만큼은,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억만금보다 귀한 그의 희생적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진솔한 고백! 얼마나 감동적인 메시 지인가! 임기종씨의 이 순진무구한 삶에, 나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연봉이 수억이네 수십억이네 하는 기업가들도, 입만 열었다하면 국민 국민 하는 정치인들이 나, 이 정치인들에 부화뇌동하는 우중(愚衆)들이 결코 아닌, 우리가 사는 이 사회 공동체 내 에서 꼭 있어야 할, 이러한 작은 거인들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힘든 것이 남을 돕는 일인데, 날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오롯이 남을 위해 사용하는 그의 선한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산을 오 른다. 자신이 지게를 짊어지지 않으면, 휴게소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가스통을 4개나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100kg이 넘는 대형 냉 장고를 통째로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지게를 지는 요령을 몰라, 작대기를 짚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기 일쑤였단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시작한 일이니, 하다보면 언젠가 는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열심히 배운 덕으로, 지금은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르는 일에 달인이 되었단다. 그의 진솔한 고백을 들어 보세요. "그때는 오로지 몸뚱이 하나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때 배운 게 지게 지는 일이라, 지금까 지 설악산 지게꾼이 된 것이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악산을 오르내렸으니, 이 세상에 나 보다 설악산을 더 많이 오른 사람은 아마 없을 거란다. 매일 오르지만 지겹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철마다 설악산의 풍경은 바뀌니까요. 그러니 고맙지요.”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모두 잃고 살았단다. 열 살이 갓 넘었을 때, 부모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너무너무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남기고 간 육남매 외엔, 부모가 물려준 것이 라곤, 가난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단다. 그는 6남매의 셋째였단다. 그렇게 남겨진 6남매는, 제 각기 자기 입을 해결해야 했단다.
초등학교 5학년도 못 마친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부터 시작했다 고한다. 그러다가 돌고 돌 아 설악산 지게꾼이 되었단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지게꾼 선배로부터, 정신지체 2급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여성을 소개 받았단다. 그 선배는, “이런 여자는 자네와 살림을 살아도 결코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게 배필 로 소개를 했다고 한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의 아내는, 일곱 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단다. “이런 여자를 내게 소개해준 것은, 내가 별 볼일 없어서도 그랬겠지만, 어쨌든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에 어찌나 애처롭던지요. 저런 몸이니 그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홀 대와 구박을 받았을까 싶어서, 따지지 않고 내가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이해 타산을 초월한 이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심성을 닮고 싶어진다. 아내와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으니, 많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의 팔자로 받아들이고 산단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그의 아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 각하니, 자신이 끝까지 그녀를 돌볼 수밖에 없단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아들은 말을 못했고, 아내보다 더 심각 한 정신장애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아내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으니, 그 아이의 뒤치다꺼리 를 하려면, 자신이 일을 그만 둬야 했는데, 도저히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단다. 결국, 아이를 강릉에 있는 어느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다 주 고 떠나오는데, 그는 ‘나만 편 하려고 그랬다’는 죄책감이 들었단다. 그래서 용달차에 과자 2 0만원 어치를 싣고서 다시 발길을 돌려, 시설로 되돌아갔었다고 한다. 그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기뻤었다고 한다. 그 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사람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도 기쁠 수 있 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깨달음 얼마나 진솔한 깨달음인가! 그때부터 임기종씨는, 지게일로 번 돈 모두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고 말한다. 무려 40년 동안, 설악산을 오르락내리락 하였 지만, 설악산 말고 다른 산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임기종씨. 옛날 '나무꾼과 선녀'라는 전설에, 하늘에서 천사가, 설악산에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미처 올 라가지 못한 천사 한 명이 있었다던데 그 사람이 바로 임기종씨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서, 언제나 부족하다며, 늘 더 가지 려고 바둥거리며 사는 우리네. 집에 있는 것 손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입에 있는 것까지도 뺏어 먹으려고 하는 우리. 배고픈 것은 참아도 시새워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우리. 이고 지고 갈 것도 아닌데, 우리는 너무 많이 욕심내고, 너무 많이 놀고먹고, 너무 많이 소유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글 / 김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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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가슴 찡한 글입니다..
작은 거인 임기종씨
응원 합니다..
귀한글 주신 망실봉님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