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찾아줘.'
현우는 축구부 연습을 마치고 뒤늦은 귀가를 하고 있었다. 때는 춘 4월. 한참 배고프고
잠이 쏟아지는 계절이었기에 현우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였다. 얼마간이나 졸았을까, 현우는 이상한 한기에 감고 있던 두 눈꺼플을 무겁게 뗐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봤을 때, 자신의 지하철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걸 알았다. 현우는
자신이 내릴곳을 한참 지났구나 하면서 시계를 보았다.
"어? 뭐야? 11시잖아?"
현우는 자신의 시계가 이상한 듯 시계를 흔들어 보았다. 분명 자신이 지하철을 탄 시간
은 11시 정각이었는데 시계는 여전히 11시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섬짓한 느낌이 들었
다. 현우는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면
서 현우는 주위를 살펴보려 할 때였다.
"꺄아아아아악!"
신경을 째는 듯한 비명에 현우는 온 몸의 혐오감을 느끼며 비명이 난 옆 칸을 보려고 할
때였다. 자신이 앉아있는 맞은편 창가에 비명을 지르는 여인의 얼굴이 창을 타고 흐르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호소하듯이.
"유승리!"
학교에 도착한 현우가 교실에 들어와서 재일 먼저 한 말이다. 승리는 현우를 돌아 볼 새
도 없이 손목을 낙아 체여서 교실 밖으로 끌려나가 옥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승리가 현
우의 행동을 보고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현우가 거두절미를 하고는 자신의 얘기가 뭐 그리
대단한지 털어놓기 시작한다.
"...였어. 정말이야. 확실히 봤다니까!"
"그래? 영적 체험이 재밌었니?"
승리는 시큰둥한 얼굴로 현우의 이야기를 듣자 현우는 열을 올리며 다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승리는 별로 듣고싶은 마음이 없는 듯 했다. 언제 올라 왔는지 그런 그들의 사이로
진령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뭐하시는 겁니까?"
"보면 몰라? 지금..."
"헛소리하고 있어."
승리는 현우의 말을 비웃듯 기를 후비며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그런 승리의 행동에 현
우는 발끈 하여 주먹을 들어 승리를 한 대 치려다 자신의 주먹을 보는 승리를 보고는 주먹
을 내리고 다른 한 손으로 잡고는 중얼거린다.
"이걸 그냥!!! 여자라서 팰 수도 없고!"
"너야말로 괜히 친한척 굴지마. 진령 너도."
"뭐?"
"승리씨?"
"너희들과 내가 비록 어쩔 수 없이 야영 때 같은 팀이었다고 해도 너희와 나는 남이야.
너희들이 날 이렇게 찾아 오는게 싫어. 아니 불쾌해."
승리의 독설에 상처입은 표정을 짓는 현우와 놀란 얼굴의 진령을 보고는 다시 한마디를
던지고는 유유히 혼자서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 소소한 일까지 내가 알아야 할 의무는 없어. 그리고 난 음양사가 아냐. 할 말없
으면 이만 갈게."
"승리씨..."
진령이 조심스럽게 승리를 불렀지만 승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척척 걸어가더니
건물의 안으로 통하는 계단을 거침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현우는 그런 승리의 모습을 ?m다
복잡한 심정이 들어 한동안 입에 안 대었던 담배를 교복 마이의 안주머니에서 얼핏 봐도 비
싸 보이는 금색 던힐(역자 주 : 담배 케이스)과 지프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항상 피우는
말보르를 한 개피 꺼내어 입에 물고는 불을 지폈다. 진령도 그에 질세라 자신의 교복 상단
의 주머니에서 담배와 은빛 지프를 꺼내어 물고는 불을 지폈다. 그런 진령을 보고는 현우
가 의외라는 듯 입만을 살짝 올려 웃으며 말했다.
"호. 모범생인줄 알았더니.. 마일드세븐이냐?"
"그쪽은 말보르군요."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수업 시작종 소리를 들었다. 종이 울렸는데도 이렇게 태연하
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한시간을 땡땡이 칠 것만 같다.
현우는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아무말없이 묵묵히 있다 한 대를 다 피우고
다음 것을 입에 물 때 그제 서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가 담배를
피우는 지금의 표정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승리는 참 이상한 여자야."
"..."
"가까워 졌다고 생각하고 다가가면 피하고 그러면서 어느덧 가까이에 있고..."
"그렇군요."
연기를 한모금 들이키던 현우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한다.
"야, 같은 나이에 무슨 경어야? 불편하게."
"불편하신가요?"
"말놔!!!"
"그러지."
진령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우에게 반말을 했다. 현우는 한 참을 쳐다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려 할 때 진령의 입이 현우의 입보다 먼저 떨어졌다.
"승리를 좋아하지?"
"뭐?!"
현우는 진령의 말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지만 진령은 마이 패이
스로 계속 말 했다.
"나도 승리를 좋아해. 너완 좀 다르지만."
"아니야!"
현우의 부정, 진령은 긍정으로 이해한다.
"특별한 사람이야."
"나도 모르겠어..."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서 있었다. 하늘이 봄 하늘 같이
않게 가을의 하늘처럼 청명한 4월이었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구름 아래로
자신들을 살피듯 머리 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 것들 사이에 커다란 매가 포물
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맴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답배를 피우던 진령이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현우는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진령의 이상한 태도에 덩
달아 하늘을 보며 묻는다.
"왜 그래?"
"아니... 여기에 왜 매가..."
"그게 왜?"
"이상해. 여기에 매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있었던가?"
진령은 두서없이 현우의 말에 대답하자 현우는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대면서도 뭔가 문제가
있는가 하며 하늘 위의 수상한 새를 올려다본다. 진령은 감이 잡혔는지 이마위의 두 검은
눈썹을 찌그리고는 윗도리의 안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고는 주력을 읊었다. 그러자 부적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르더니 역시 매가 되어 하늘을 날고있는 매를 향했다.
"호오?"
멀리서 이들을 지켜보던 한 사내가 시계탑에서 그 광경을 보고 미소짓는다. 마치 이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는 검은 뿔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눌러 올렸다. 푸른 빛
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만 아니라며 모두 승리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흡사하게 생긴 이 남자
의 두 눈은 승리의 눈빛을 하며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흘린다.
"이런 이런.."
자신의 식신1)을 공격하려는 진령을 보고 그는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표정
은 오히려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찾은듯한 어린아이의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는 주술를 행
하고 있는 오른손을 보고 다시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아.. 아쉽군. 더 놀아주고 싶지만 식신을 소환하는데 에너지를 쓰는것도 낭비라고 생
각하지 않아? 게다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식신이 쫓기고 있는 것을 보며 그는 구부리고 있던 오른손가락들을 하
나씩 떼며 들어주는 사람도 없?f데도 말을 이었다.
"난 종이라서 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지... 후후.."
진령은 하늘에서 전투를 벌이고있는 자신의 식신을 무표정하게 보며 누가 보낸것일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식신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주술사
는 아니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식신을 왜 공격하지 않는지는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식신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주력을 사용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속상한건 어쩔 수 없단 말씀이야."
그는 울것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얼굴은 아까와 같이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
다.
"어쨌든 다음에 보자. 김 진 령.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니니까..."
그는 순간 손가락을 모두 피고는 그 곳으로부터 들을 돌렸다. 그러자 하늘을 날던 새 중
의 한 마리가 팟하고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진령은 주살 목표를 잃은 자신의 식신을 다시
부적으로 돌리며 하늘에서 너울너울 떨어지는 두 개의 종이를 양손에 하나씩 잡아 보고는
두 눈이 나올 정도로 크게 눈뜨고는 종이를 쥐고 있던 두 손을 미미하게 떨었다.
'종이?! 종이... 따위로 그런 식신을 불러냈단 말인가?'
그렇게 그들은 내기를 하듯 가져왔던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서야 옥상에서 내려갔다. 두
사람이 의기 투합을 하면서 친해진 것도 이 다음의 일 이였고 그런 그들을 승리는 '바보에
멍청이가 가세했다.'며 비웃었지만 그런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승리씨, 같이 먹어도 될까요?"
점심시간, 정화와 단 둘이서 먹는 승리에게 다가와서는 현우와 진령이 도시락을 들고 자
리에 앉았다. 승리는 묵묵히 자신의 도시락에 젓가락질을 부지런히 할 뿐 어떤 행동도 하
지 않았고 정화는 자신의 반찬을 권하며 친절하게 두 사람을 맏이 했다.
한참을 그렇게 침묵 속에서 보내던 네 사람 중 진령이 먼저 입을 열며 말을 꺼냈다.
"승리씨, 저희 오늘 현우가 귀신을 목격한 귀신 열차를 조사하러 갑니다."
"...."
"오실꺼라 믿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진령은 승리의 눈치를 살피며 젓가락질을 했지만 승리는 그의 이
야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전히 묵묵히 밥을 먹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침묵이
흐른 어느 순간 승리가 밥을 다 먹었는지 도시락을 정리하는 듯 젓가락을 통에 넣고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그런 승리의 모습을 보며 현우는 그래도 역시 여자라고 생각하며 입가에
잔잔하게 미소를 띄웠다. 진령도 밥을 다 먹었는지 도시락을 덮으며 아까 이야기의 후반전
을 했다.
"장소는 신탄진역입니다. 저녁 11시에 개찰구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당신은 그곳에 옵니다. 현우와 저는 믿습니다."
"웃기는군. 언제 현우씨에서 현우로 바뀐 거지?"
"오늘부터입니다."
승리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일관하며 보온 물병을 꺼내었다. 분명 아침에 팔팔 끓는 물을
보온병에 담았을 것이 분명했다. 보온이 잘 되는 물병인지 승리가 물을 따르는 순간에도
금방 끓인 물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승리는 단추를 누르고 컵에 물을 따르고
는 뜨거운 물을 후후 불지도 않고 찬물을 마시듯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에 놀란 현우가
말을 꺼내었다.
"뜨 뜨겁지 않아?"
"전혀."
현우는 그 모습에 질렸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그런 일로 미동을 하면 승리가 아니다. 이
미 사람들의 그런 특이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것이었다.
승리는 컵 주위를 휴지로 잘 닦아서 다시 물을 따르고는 옆에서 조용히 느릿하게 밥을 먹
고 있는 정화에게 밀어 주었다. 정화는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여서 밥을 먹는
다. 그런 그들의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착각하고 이를 갈며 보
는 이가 있었다. 한때 현우와 연인 관계로 있던 이지는 뒷문에 서서 기둥을 붙잡고 분노를
억제하며 네 사람 중 승리와 현우를 조용히 주시했다.
"이지야, 저대로 놔둘 거야?"
"송이지!"
이지의 친구들이 이지의 어깨를 잡으며 뒤에서 말하고 있었지만 이지의 귀에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현우에게 집중되어 어떻게 다시 현우와 사귈수 있을까 하
는 궁리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이지를 뒤에 서있던 절친한 친구 선영이 어깨를 잡고는 자신의 쪽으로 돌려 세웠다.
이지는 뒤 쪽을 짜증스럽게 돌아보면서 말을 했다.
"왜?"
"저대로 놔 둘거야? 유승리 저 계집애 안 그래도 기분 나쁜데..."
선영의 말에 이지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니?"
"두 말하면 잔소리지."
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이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나머지 이지의
패거리들도 같은 생각인 듯 했다. 이지는 문에서 떨어져 조용히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며
선영과 승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오직 이 사실을 아는 것은 그들의 대화를 엿 듣고 있던 한 소년밖
에...
"이런..."
소년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책을 내리며 선영과 이지의 일행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입
가에 재미있다는 미소를 띄웠다.
어느덧 점심시간도 끝이 났고 승리는 정화와 함께 가방을 챙기며 집에 가려고 할 때였다.
두 사람은 다른 애들보다 조금 굼뜨게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방을 다 정리했을 때는
이미 교실에 주번 두 사람과 자신들뿐이었다. 주번들에게 정화가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할
때 누군가 자신들의 앞에 서서 갈 길을 막았다. 승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을 보았다. 옆 반의 선영이가 과장된 웃음을 자아내며 말을 했다.
"너 유승리지? 현우가 널 찾더라. 따라와."
"에? 현우가? 왜 승리를 찾는 거지?"
"그 인간이 그래? 누구보고 오라 가라 그러는 거야? 저보고 오라고 그래!"
정화의 말에 이어 승리의 비수 꽂힌 말을 뱉어 내었다. 선영은 약간 움찔하고 놀라더니
알겠다는 듯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여자아이를 보내었다. 승리는 직감적으로 현우가 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를 채고는 정화에게 주번들과 함께 나가라고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의 신경전에 겁을 먹었는지 주번과 정화는 가방을 들고 뒷문으로 헐레벌떡 뛰어 나갔고
이제 안심이 됐는지 승리는 선영을 쳐다보았다. 그 쳐다보는 눈빛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끄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선영은 승리의 기백에 눌리면서도 승리에게 끌리는 자신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지가 교실에 당도했다. 이지는 선영을 제치고 들어가더니
거만한 포즈로 승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유승리지?"
"할말이 뭐야?"
승리는 이지의 말을 딱 자르고는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말했다. 그런 승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먹을 올리려다 참으며 승리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난 네가 싫어."
"그래?"
"너같이 예의 없고 못생긴 애가 뭐가 좋다고 현우는 같이 있는지..."
"너 나 알아?"
"뭐?"
"난 널 처음 보는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반말로 시비 거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아닌가?"
승리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고 팔짱을 끼면서 말하자 이
지는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손이 빠르게 올라가더니 승리의 왼쪽 뺨을 매섭게 내리쳤다.
바람을 가르는 그 소리에 일격을 받은 승리보다 이지와 함께 있던 나머지 세 명이 훨씬
더 놀란 듯 했다. 승리는 한참을 그렇게 고개가 돌아 간 상태로 서 있다 느린 반응을 하듯
맞은 왼쪽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승리의 왼쪽 입술에서 입술이 터
져 피가 조금 흘러내리고 있었다. 승리는 손가락에 묻은 피를 보고 피식 웃고는 이지를 노
려보았다.
한참을 학교 아래로 내려가던 정화는 학교아래 분식집에 서서 떡볶이를 먹고있는 진령과
현우를 보았다. 깜짝 놀란 정화는 두 사람에게로 달려가서는 현우의 팔을 잡아 당겼다.
현우는 들고 있던 떡볶이를 떨어뜨리고는 자신의 팔을 당긴 사람을 보았다.
"뭐하는 짓이야?"
"너, 아까 승리를 부른 것 아니었어?"
"뭐?"
정화의 떠는 목소리에 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정화를 보다 뭔가 짐작이 가는지 느슨하
게 맸던 가방을 들쳐 매고는 경사길을 빠르게 뛰어올라갔다. 그런 현우를 보고 진령도 뒤
따라서 올라가자 정화도 그들을 따라서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옷자락을 잡은 주
인 아주머니가 말하길,
"학생, 계산하고 가!"
"네?"
승리는 노려 본지 몇 초도 되지 않아서 또 다른 후속타를 갈기려고 이지가 손을 올려 승
리에게 향했을 때 딱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지의 손이 자신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이
지는 짧게 비명을 지르고는 뒤로 자빠졌고 선영은 스러진 이지를 일으키며 승리를 보았다.
그러나 승리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덩치의 키 큰 사내가 자신들 쪽을 화난 얼굴로 노려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현... 우?"
선영이 이지를 일으켜 세우며 나직하게 이름을 불렀고 현우는 약간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더니 승리에게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승리는 붉은 입술에서 피를 닦으려는 듯 손등을
입가로 가져가 훔치려고 하였다. 현우는 승리의 손을 잡아 내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
수건을 꺼내어 입가의 피를 조심스럽게 닦으며 다른 곳은 맞은 곳이 없는지 승리의 얼굴을
살폈다. 승리는 그런 현우의 손길이 귀찮다는 듯 차갑게 뿌려 치고는 자신을 때린 이지가
아닌 현우를 혐오하는 눈길로 보고는 움직일 때마다 피가 배어 나오는 입을 열었다. 그 피
가 나는 모습만큼이나 무서운 눈길과 말이 승리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손대지마."
"승리?"
"이제 즐겁니? 내가 맞은 모습을 보니까 행복하고 좋겠구나. 이 모습 보려고 지겹게 ?m
아 다녔니?"
"틀려, 승리야 난."
"앞으로 내 앞에 얼씬도 하지마. 네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
현우는 당황한 듯 할 말을 찾다 승리의 양어깨를 잡고는 자신에게 해명할 기회를 달라며
애원하는 눈초리로 승리를 바라보았지만 승리는 다시 현우의 손을 뿌리치고는 흥분한 얼굴
과 언성을 높이며 현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이래? 날 내버려두란 말이야!"
이 말을 한 직후 승리는 한참을 씩씩거리더니 조금 진정이 됐는지 쥐고있던 손을 살며시
풀고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이마위로 쓸어 올렸다. 그리고 숨을 크게 입으로 들이쉬고는
흥분을 가라앉히듯 떨리는 입술로 숨을 뱉어 내기를 몇번, 다시 현우 너머로 서 있는 이지
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너와 관계된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아니, 영. 원. 히."
"승리, 말이 너무..."
"넌 끼어들지마. 너도 해당이 되는 말이니까!!"
승리는 자신의 말을 자른 이지가 불쾌하다는 듯이 조소를 띄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방
을 집어들고는 성큼성큼 걸어서는 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현우는 다시 승리를 잡아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지금의 승리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렸던 팔을
제자리로 쓱 내렸다.
승리는 길을 걸으며 냉정하게 자신에게 다그치고 있었다. 분명 화낼일은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낸걸까? 평소에 이성적이던 자신이 현우와 있을 때 이상하게 흐트러 지는 것
을 느끼며 승리는 풋하고 웃었다. 태양이 너울거리며 산너머로 인사를 하고 구름조차 황금
빛으로 물들어 흘러가고 있는 저녁. 바람조차 고요하게 느껴진다고 승리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현우들이 말한 지하철로 가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을 해 봐야할 여지가 있었
다. 진령의 성격으로 봐서는 아마도 한번정도 사전 답사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가만, 내가... 왜 이러지? 난 음양사가 아니잖아?"
승리는 흠짓 하고는 자신이 생각한 것들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들에게 자
신이 휩쓸리고 있었다.
"역시 안 올려나?"
정화는 시계를 내려다보며 현우와 진령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초조하게 시계
를 쳐다볼 때마다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어 어느?C 쥐 한 마리조차 보이지않을 정도로 고
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정아는 머쩍은 듯 빈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바닥을 쳐다보았다.
"역시 안 올려나?"
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화가 나 있겠지 하면서 승리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려는 듯 개찰구를 통과하려고 할 때였다. 멀리서 희미하지만 누군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점점 형태를 갖춰가며 다가 왔을 때 그들은 그가 곧
승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리는 급하게 뛰었는지 거칠게 숨을 쉬며 쓰러질 듯 진령의
품에 안겨오자 진령은 팔을 굳히고 승리를 너끈히 받쳐준다. 그런 승리를 보며 현우는 와
준 것에 고맙기도 했지만 자신이 아닌 진령의 품에 안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고 다행히 와줬구나 하고 웃을 뿐이었다. 승리는 숨을 고르며 진령의 품에
서 떨어졌다.
"아.. 기... 기.. 다리게.. 해서.. 미.. 안..."
"역시 오실줄 알았습니다."
"않온다더니..."
진령이 웃으며 말하자 정아도 역시 웃으며 승리의 머리를 매만진다.
"아.. 안올려고 했는데 역시 신경쓰여서..."
"아.. 어쨌든 빨리 들어가죠?지금 막차가 도착할 시간이라서.."
"아차!"
정아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말하자 승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표를 넣고는 지하철
승강장으로 뛰어내려갔다. 다행히도 전철은 멀리 터널에서 이제 막 신탄진역으로 오고 있
었다. 진령은 역 주위를 둘러보며 승리에게 귓속말을 한다.
"아직 이렇다 할 기는 느껴지지 않는데요."
"동감이야."
"역이 문제가 아니라 철도나 전철이 문제라는 이야기 군요."
"그렇군."
"무슨 얘기를 그렇게 은밀이 하는 거야? 꼴사나우니까 떨어져!"
현우가 진령의 머리를 승리의 머리에서 떼 내면서 말하자 승리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비웃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레일 위를 전철이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있었다. 승
리는 순간 온 몸의 오감이 서는 냉기를 느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하고 설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음기가 전철이 자신들에게 다가올수록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진령 또한 이정 도
로 강한 음기라면 보통 사람이 못 느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슬쩍 현우와 정아 얼굴을 보
았다. 두 사람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추운 듯 숨을 쉬었다. 진령이 자신의 옆에 서있는
승리 또한 슬쩍 쳐다보려고 할 때 오히려 승리가 진령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당황한 진령
이 주춤하며 약간 뒤로 물러서자 승리가 진령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는 왜그러냐는 듯나 표
정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승리는 약간 크게 떴던 눈을 원상복귀하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가 있다.
"진령.."
"네."
"현우, 정아는 타지마."
"뭐?"
"왜?"
두 사람의 말에 승리는 약간 고개를 거만하게 젖히고는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지
하철의 안으로 들어갔다. 진령에게 이유를 해명해 달라는 눈빛으로 호소를 했지만 진령은
승리의 말에 찬성한다며 두 사람을 남겨두고 승리를 따라 전철에 올라탔다. 막차라서 그런
지 승객이라고는 통로 끝 좌석의 신문을 읽고있는 검은 코트의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나이
뿐이었다. 진령은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그 사나이가 혹시 이번일에 연류되지나 않을까 하
고 걱정어린 눈으로 간격을 두어 위치를 확인한다. 하지만 목적지인 수명역이 다가 오도록
그는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친 진령은 목을 뒤로 ??히며 운동을 하다 승리를 보았
다. 뒷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지만 뭔가
아까부터 긴장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승리씨."
"..."
"214호차 문제없다."
기관장은 천천히 게이트를 닫고는 미끄러지듯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어이 신참, 마치고 나서 한잔 할건데 갈건가?"
무전기에서 기계적인 소리가 들리자 이차장이라고 불리는 사나이가 '예? 알겠습니다.'라
고 대답하자 무전이 뚝 끊긴다. 그는 무전기를 들고 흔들다 고장이 난걸 확인한 후 대수롭
지않게 넘긴다. 그가 한참 다음 역으로 향하는 터널을 중간쯤 지났을 때 그의 뒤의 천장에
서 알 수 없는 발이 나타나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발은 떠있는 상태인 것 같이 공
기와 중력의 장에를 받지 않고 소리 없이 내려와 처음엔 다리가 다음에는 허리, 가슴, 목,
머리 순으로 천장을 뚫고 나타났다.
운전을 하던 이차장이 앞을 보다 난반사로 비친 자신 뒤의 사람을 보고 까무라 칠 정도록
놀란다. 그는 춤추는 듯 우아한 동작으로 뒤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양팔을 넣어 그를 끌어
안는다. 서늘함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승리는 문에 기대어 스쳐 지나가는 불빛을 보며 들리지 않는 듯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진
령은 그런 승리의 어깨에 다가가 손을 올리려다 말고는 뒤돌아서 다시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나이의 자리쪽으로 보았다.
"아니?!"
진령의 목소리에 승리가 몸을 비스듬히 돌리고는 진령을 보자 한곳으로 눈을 고정하고 뗄
줄을 몰랐다. 승리도 같은 곳으로 눈을 돌리다 다시 진령을 보자 진령은 뭔가를 발견한 듯
걸음을 옮겼고 좌석 위에서 종이 같은 것을 집어 들어올린 진령이 온 몸이 뻗뻗하게 굳는
다. 진령의 행동거지에 이상하다고 생각한 승리가 다가가 그의 손에 쥐어진 종이를 본다.
"종이... 무신?"
승리가 얼어붙은 진령의 손에서 종이를 뺏어 들었을 찰라,
끼기기기기기긱
전철이 이유 없이 터널에서 급정거를 했고 진령과 승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급제동의 충격이 멈출 때까지 한참을 굴렀다. 그 충격으로 승리와 진령은
여기저기에 부?H혀서 지끈거리는 곳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승리씨, ?I.. 찮... 습니까?"
"아... 그런데 옆 칸에서 무슨 소리가.."
"네?"
진령이 승리의 말에 반응하여 반사적으로 옆 칸으로 통하는 문의 투명 유리 너머로 옆 칸
을 보다 벌떡 일어서 문을 열고 옆 칸으로 넘어갔다. 승리는 얻어맞은 듯 지끈거리는 왼쪽
어깨를 누르듯 문지르며 살짝 찌푸린 얼굴로 옆칸으로 이유를 모른체 따라간다. 그러자 승
리의 눈에 보인 풍경은 역시 급정거로 여기저기 바닥을 굴러다닌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정화와 현우.
"오지 말랬잖아!"
"하지만!!!"
승리가 소리치자 정화는 우물쭈물하며 주눅이 든 얼굴로 승리를 보았다. 평소 같으면 그
냥 넘어갔을 진령도 승리의 말을 거들며 소리친다.
"하지만이 아닙니다. 이번 일은 위험하다고 저희가 판단을 했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너희끼리만 결정하고서는 결정은 무슨.."
현우가 기분이 상한 얼굴로 진령의 말을 받아쳤고 다시 두 사람이 동시 다발로 말 하려는
것을 승리가 거두절미하고 차가운 어조로 말한다.
"이미 이렇게 됐으니 그만하지. 진령, 괜한 싸움으로라도 체력을 소비하지마. 지금은
말로 소비하는 체력도 아까울 정도니까... 알겠지?"
승리의 말에 기분 나쁜 뉘앙스가 풍기기는 하지만 분위기로 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좋겠
다고 생각한 현우는 화를 누르고 잠자코 있었다. 그런 승리를 보던 정화가 승리가 손에 쥐
고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묻자 승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옆 칸에서의 이상한 진령
의 행동을 기억해내며 손에 쥐고있던 사람 모양으로 오려진 종이를 펼쳐 보였다.
"글씨가 써 있잖아?"
유심히 내려다보던 정화가 말하자 승리와 진령이 놀란 듯 퍼뜩 내려보고 그후 현우도 보
았다.
"승리씨.. 처음에는 분명 아무 글자도.."
"그랬었지.."
"12시간 후 신데렐라가 유리구두 한 쪽을 성에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다?"
"무슨 뜻이야?"
정화가 글자를 또박또박 읽어 내렸고 그 문장의 알 턱이 없는 현우가 갸웃거리며 말했고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은 진령과 승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진령이 말을 꺼냈
다.
"승리씨...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진령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승리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진령의 옆모습을 보았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승리일행은 문이 열린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기관사 복
장의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손에는 손전등을 든 체로 서 있었다. 나이 추정이 불가능
한 기관사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엔진 고장으로 잠시 멈출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렇게 말을 남기고는 다른 칸으로 너머 가서 승객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것 같다. 진
령은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는 승리에게 이어서 말을 한다.
"사실 몇 일 전일입니다만, 승리씨. 그날 현우와 제가 옥상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상
한 매를 향해서 제 무신을 날려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싸웠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
지 않았습니다."
"결.. 론이 나지 않았다구?"
승리는 되물으며 속으로는 '진령정도의 주술사를 상대로 동등히 싸웠다면 보통은 아니
군.'라고 생각했다. 진령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던 것이었지만
진령 정도의 실력을 가진 주술사는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는 승리는 듣는 도중에도 누구일
까하고 추리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방이 술수를 멈추더군요. 그래서 저도 술수를 멈추고 무신을 부적으
로 돌렸는데..."
진령은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뜸하게 하고는 뒤 말을 이었다.
"상대방은 새 모양으로 오려진 종이를 무신으로 사용했더군요."
"그렇다면 진령이 이긴거야?"
정화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결과를 묻자 승리는 두 눈을 시리도록 푸른빛을 내며 말했다.
"아니. 진령이 진거야."
"에? 어째서?"
"상대가 사용한 건 '종이'니까."
승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정화가 해답을 요구한다.
"부적이라는 것은 주력을 넣어 만든 것이야. 하지만 그런 주력을 넣으려면 일반 종이로
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제조 방법을 거쳐서 부적으로 쓸종이를 만들지. 다시 말해서
주술적 행위를 행하면서 종이를 만든다는 말이지."
"그래서?"
현우가 승리에게 묻는다. 승리는 아직도 모르겠냐? 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을 이
었다.
"부적으로 무신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인데다가 다루기도 쉽지. 하지만 아무 것도 없
는 종이로 무신을 만든다는 것은 여간 해서는 쉽지 않을뿐더러 힘의 소비도 심해서 하고있
지 않아. 하지만 내가 마음에 걸리는 건..."
승리가 턱을 쓸며 말끝을 흐리자 모두 침을 삼키며 집중을 하고 있었다.
"어머 벌써 11시네?"
정화가 시계를 보고는 벌써 이렇게 됐는가 하고 윳었지만 승리는 평소와 달리 오늘따라
11라는 숫자에서 묘한 힘이 전해져옴을 느끼고 조용히 서두를 꺼내었다.
"그나저나 12시간 후 신데렐라가 구두 한쪽을 성에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다라는 것은 무
슨 뜻이지? 묘하군."
"사전 지식 없이는 힘들겠는데?"
현우가 이마를 쓸며 길게 숨을 뿜어내고는 답답한 심정으로 창을 바라보았다. 칠흑같이
검은 어둠만이 창 밖의 풍경의 전부, 현우는 이 흑색처럼 칙칙하고 검은 것이 자신들을 감
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꼭 뭔가에 둘려 싸여 있는 것 같이 기분 나쁜데?"
현우가 낮은 음성으로 말하자 승리가 흠짓하고 놀라며 현우를 보았다. 자신과 진령이 어
렴풋 느끼고 있는 이 공기를, 견귀인 정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반인은 느낄 수 없는,
희미하지만 묵직한 이 냄새를 현우가 느끼고 있었다. 진령과 승리는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
고받은 후 승리가 입 꼬리를 올린다. 진령은 현우에 대해 깊게 생각하려다 생각을 떨치려
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평소의 눈빛으로 주위를 응시했다. 공기의 흐름이 약간 다른 것 이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었지만 유비무환이라고 자신을 다그치며 진령은 정신
을 집중했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막히는 이 냄새, 속이 뒤집어 질 것 같
은 비릿하면서도 짜릿한 냄새는 뭐지?'
"피냄새군."
승리의 단호하면서도 깔끔한 어조에 진령은 순간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승리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출입구에 좁다랗게 나있는 유리창 너머
로 길게 뻗어있는 터널을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응시했다. 다른 현우나 정화는 아까 승리
가 한 말에 움츠러든 모양으로 눈을 두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승리의 표정은 등을 돌리
고 있어서 알 수 없었지만 정화는 가끔 승리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승리에게 느껴지는 것은 공포도 어둠도 아니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이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돌아보는, 삶의 끝에 몰린 인간이 자포자기하고 포기하려고 하는 그런 느낌들을 느끼
기도 했지만 정화가 승리에게 느끼는 더 큰 것은 이대로 있다간 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
은 안스러움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시리도록 아픈 고통과 절
규 그리고 그 끝에 살짝 비치고 있는 가득한 따뜻함이 정화에게 느껴지고 또 가슴아프게 한
다. 왠지 이제는 멀리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때 승리가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현우는 승리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승리의 미소에
서 어둠이 베어 나온다는 생각을 하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벌이라도 주는지 뺨을
세게 한 대치고는 고개를 숙인다.
"이제 곧 자정입니다."
진령이 팔목을 살짝 걷어 시계를 보자 승리는 '음..'하고 별다른 말없이 서있다. 하지만
뭔가를 생각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12시가 되었다. 네
사람은 12시가 되면 종이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스릴감을 느끼며 자
리에 서있었다. 12시 정각이 되자 괘종소리가 울렸다. 이 곳은 지하철이라서 괘종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마치 동굴 속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들려져 오는 소리에 불안한 마음이 점
점 퍼져서 마음의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무서워."
정화는 목을 쑥 밀어 넣고는 승리의 옷자락을 살포시 쥐었다. 순간 터널을 환희 밝혀주
던 전등이 모두 꺼졌다. 승리는 그때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있던 정화의 손길이 뜯기듯 사
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둠이 점점 목을 감겨오고 이제는 작은 소리에도 오감이 바짝 설쯤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승리는 출구가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여인이 구두를 벚어 던지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문을 열려고 할 때 얼굴이 없는 사나이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여인
의 가녀린 팔을 낚아챘다. 그녀는 비명을 체 지르기도 전 남자의 거친 손에 입이 틀어 막
히고 속옷이 다리 사이로 이미 걸쳐져 있었다. 승리는 여인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다 괴
로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옮겼다. 사나이는 행위가 끝나자 눈물로 호소하는 여인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목을 양손으로 힘껏 졸라매었다. 그가 목믈 조르자 그녀는 처음에는
손톱으로 그의 양손을 피가 날 정도로 긁기를 몇번 반복하다 숨이 끊기듯 천천히 손을 바닥
으로 떨어 뜨렸다. 남자는 여자가 죽은 것을 확인하는지 가슴에 귀를 대고 있다 머리를 들
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인의 시체를 바닥에 버려두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사나이
는 여인의 머리맡에 서서 한 손에는 도끼를 쥐고 한 손에는 비닐을 든체 서 있었다. 상황
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않봐도 훤했다. 사나이가 도끼로 여인의 목으로 내리치려고 할 찰
라 목에서 뻗어 나온 피가 공중에서 꽃잎으로 변하고 꽃잎을 따라서 시체와 사나이도 꽃잎
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바람에 분분하듯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바닥에는 몇 장의 꽃잎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승리는 바닥의 꽃잎을 내려다보았다.
분명희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꽃잎이었다. 꽃잎에서 나는 향기, 마치 취할 것 같이 숨
막히는 향, 절대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돼는 꽃. 인간계에서는 본적이 없는 꽃인 이 꽃
은...
"단월화?"
승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꽃을 내려다보았다. 놀라는 것도 잠시,
승리는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몸을 구부려 꽃잎을 주우려 할 때 승리의 손앞에 검은 실이
넘실거리며 엉켜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머리였다. 물체는 스윽하며 배로 기는 소리
를 내며 아주 조금씩 승리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승리가 물러서면 또 그만큼 따라와 승리
의 발 앞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승리는 잠자코 물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지켜보기로
하고 발을 멈추었다. 물체는 바로 앞에 발이 있자 바닥에 밀착 되어있던 머리체를 들고
발을 유심히 보더니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승리의 발목을 손으로 쥐었다.
"넌 발이 있잖아?"
"!!"
"나에게 줘!"
그리고 고개를 번쩍 들어 승리를 보았을 때 승리는 피부의 반이 타다 만 그녀의 얼굴에
혐오감으로 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아야 했다. 그녀의 얼굴을 심하게 부패되어서 얼굴을 덮
고 있는 피부가 너덜너덜하게 걸쳐져 있었고 반쪽은 타다가 말았는지 머리카락은 없고 얼굴
이 심하게 그을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생각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그녀는 승리의 종
아리를 물어뜯으며 피를 빨아들였다.
손으로 머리를 때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승리는 자신의 다리를 물어 뜯고있는 귀신을
때기 위해 주술을 사용하려고 정신을 집중 하려고 했지만 단월화의 향기에 취해서 주력도
사용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승리는 의식을 잃어갔고 자신의 한쪽다리는 살점이 뜯겨 바닥에
피를 적시고 있었다.
'안...돼!'
'일어나, 승리! 그렇지 않으면 네 다리는 모두 사라져!'
'일어 날 수가 없어.. 단월화의 향기 때문에 어지러워서 주문도 쓸 수 없어.'
승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년의 목소리에 화답을 했다.
'걱정마.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머리 속에 작은 손이 승리의 양 귀를 살포시 감쌌다.
"승리!!"
눈을 번쩍 떴을 때 현우의 얼굴과 진령, 정화의 얼굴이 차례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승리
는 몸을 일으키며 일어서려고 하였지만 일어 설 수가 없었다. 다리가 너무 아팠다. 마치
잘려 나간 듯이.
승리는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자신의 다리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다리에 살점
이 뜯겨나가 피를 심하게 흘리고 있었다. 임시 방편으로 손수건으로 감아 놓았지만 피는
계속 흘러 작은 웅덩이를 연상시키게 했다.
"여기서 가까운 역이 얼마나 걸리지?"
현우가 승리를 등에 엎고 진령에게 묻는다. 승리는 보통 때 같으면 현우에게 자신의 몸
에 손대지 말라며 소리쳤겠지만 지금은 다리의 아픔 때문에 말조차 하자 못하고 입술만 달
싹였다. 현우는 차츰 창백해지는 승리의 얼굴을 보고 열려진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삑-.
나가려는 일행을 막는 듯 문이 스르륵 닫히고 전철이 조금씩 움직이고는 보통 때와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정화는 놀랐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며 현우에게 말한다.
"다행이다. 걸을 필요 없이 편하게 다음 역에서 내려서 병원으로 가면 되겠다!"
"그.. 그래."
세 사람은 승리를 의자에 눕히고는 다음 역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정화와 현우가 승리
를 돌보고 있을 때 진령은 오로지 밖만 보며 역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였다. 진령은 현우와
정화를 흔들어 일으키고는 밖을 보게 하였다. 그들이 고개를 들고 밖을 보았을 때 전철은
역의 플랫폼을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었고 세
사람을 지켜보던 승리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알게 되었다.
"난 견딜만해."
승리가 세 사람에게 평소의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애써 태연한 척 연기를 했지만 서로
는 너무도 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령은 주술을 행할 사람이 아프다는 것이 마음
에 걸렸지만 일단 승리에게 아까의 이야기를 묻고 상처가 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진령
은 뭔가를 알겠다는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요는 시체의 다리를 찾으면 일이 해결 될 거라는 거군요."
"그럼 빨리 찾아야지!"
정화가 양손에 힘을 주어 문제없다는 싸인을 보낸다.
"그럼 찾아보자!"
현우가 일어서며 커다란 장신을 쭉 폈다. 세 사람은 시체가 있을만한 곳을 여기저기 뒤
지었지만 모든 칸에 시체는커녕 쓰레기조차 찾을 수 없었다. 힘없이 터덜터덜 승리에게 돌
아온 정화는 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승리를 보았다.
"승리?"
정화가 승리의 이름을 두려운 듯 불렀지만 승리는 대답 없이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의
자를 피로 적시고 있었다. 파리해진 승리의 얼굴을 보고 정화는 비명을 지르고 현우와 진
령이 이 소리에 놀라 옆 칸에서 뛰어와 무슨 일이냐며 묻자 정화는 승리를 한 손으로 가리
키며 울고 있었다. 진령이 승리의 상체를 일으키며 몸을 흔들어 이름을 불렀지만 승리는
정화에게 했던 것처럼 말없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진령은 괴로운 듯 승리의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쓸며 이름을 불렀고 이 모습을 안타까운 듯 정화와 현우가 보고 있었다.
바스락.
종이 넘기는 소리에 놀란 진령이 움찔하고 몸을 움직였고 현우는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곳
에는 방금 전 까지는 없었던 남자가 신문을 펄럭이며 읽고 있었다. 현우가 진령을 보자 진
령은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말이 없어도 서로의 의사를 알 정도로 친해져 있었던 것
이다. 현우는 천천히 걸어며 신문을 읽고 있는 사나이에게 다가가자 그는 현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나이가 서는 것을 보고 뛰어가는 현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현우게게 옷깃을 잡히지 사나이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까와 똑같은 사람
모양으로 오려진 종이 인형이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현우는 의자위로 떨어진 종이를 집어
들고 유심히 보다 진령에게 종이를 내민다. 진령과 정화는 종이를 보고 놀란 얼굴로 굳어
있었다.
'세워진 관속에 불빛이 있다.'
"세워진 관이라니? 너무 추상적이잖아!"
현우가 화가난 목소리로 말한다. 진령도 그에 따라 뭔가를 이야기한다. 승리는 기절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두 눈은 감기고 의식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소리만은 생생하
게 들렸고 자신은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잠깐!?"
현우가 진령의 말을 자르며 조용히 서 있는다.
"이 전철 점점 빨라지고 있어."
"뭐? 무슨소리야?"
정화가 모르겠다는 눈초리지만 조용히 전철의 움직임을 느끼던 진령도 현우의 말에 동감
하며 현우의 운동 신경에 놀라워했다.
"예, 확실히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하지? 아까부터 역들이 보이지 않았다구!"
"그럼 철도의 끝까지 달려갈 샘인가?"
현우의 말에 정신이 번쩍든 정화가 토끼같이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열었다.
"이 구간은 종점이 없어!"
"뭐?"
"아직 완공이 안돼서 일부 구간만 운영이 된단 말이야!"
정화가 두 손으로 입을 감싸며 핏기가 가신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진령은 역의 지표
를 보며 양정역 다음을 손가락으로 짚고는 9정거장 후에는 완공이 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
다. 진령이 돌아보고 말한다.
"그럼 이제 철없는 레일을 달리겠군요."
"무슨소리야? 이 구간 다음에는 강이 있기 때문에 강을 건너는 전철 공사를 한단 말이
야! 우린 아래로 떨어질 거라구!"
"아! 그러고 보니 여기 다리 전에 부실 공사로 무너졌잖아!"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가는지 세 사람은 충격을 받은 표정을 금치 못했다. 그런 분위기
를 깬 것은 진령이였다.
"어서 다리를 찾죠? 그래야 열차가 멈출 것 같습니다. 승리씨의 피도..."
승리는 혼란스러운 밖과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쉬고 있었다. 아무
도 모르는 자신만이 아는 마음의 세계에서 승리는 꿈을 꾸었다. 끝없이 펼쳐진 꽃밭에 많
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승리는 열심히 꽃을 구경하다 어느덧 커다란 강이 흐르는
곳까지 와버렸는데 그곳에는 다리를 하나 남겨두고 옆의 화원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승리
가 보기에 이곳 보다 건너편 꽃밭의 꽃이 훨씬 예뻐 보였다. 건너편 꽃밭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신기하고 진귀한 꽃들이 가득했고 이름 모르는 아픔다운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건
널까 말까하는 승리의 머리위로 날던 새가 어깨에 내려앉았다. 감청색의 푸른빛의 매였다.
승리는 일찍히 자신은 푸른색 매를 본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새의 깃털을 쓰다듬으려고 할
때 새는 승리의 손길을 피해 하늘로 다시 날아올라 자신의 깃털 색과 같은 푸른 하늘을 빙
글빙글 돌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승리는 새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며 새가 떠나
하늘을 우러러 보다 다시 건너편 꽃밭을 보았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하늘거리며 날아와
자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자 승리는 마음을 먹은 듯 사람들이 서있는 다리를 향해서 걸음
을 옮기려 할 때였다.
'가지마! 가면 안돼, 승리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자 본적도 없는 남자가, 하지만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의 20대 중반의 한복을 입은 남자가 자신을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다.
남자면서도 남자답지 않게 가는 턱선과 길게 뻗은 콧날과 짙은 눈썹, 길게 기른 앞 머리
카락이 얼굴의 가장자리를 가르며 나머지 뒷 머리카락은 하얀 비단으로 된 끈으로 단정히
묶여져 있었다. 얼굴은 눈처럼 하얗고 입술은 피처럼 붉고 비단처럼 윤기있는 검은 머리카
락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의 루비빛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이름을 부
르고 있었다.
승리 어찌 할 줄 몰라 계속해서 그를 보자 그는 손을 들고는 옆의 숲 쪽을 가리켰다. 손
이 나와있는 쪽을 바라보니 영화의 스크린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진령과 현우, 정화가 자신
의 몸을 붙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승리가 다시 그를 돌아 봤을 때 그는 승리의 코앞에 와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 그토록 아름다웠던 그 사람은 따뜻하게 웃어주며 승리를 보았고 너무나도 다정하
고 포근한 느낌에 자신을 안으려고 하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안겼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승리의 코를 간지럽혔다. 그는 승리를 감싸고 있던 팔
로 승리를 밀어내고는 몸을 구부려 승리의 다리를 어루어 만졌다. 그가 어루어 만진 순간
새 살이 돋아나고 피가 흐르던 다리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 몸을 세워서 승리
를 보고는 여전히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넌 여기 있으면 안돼. 아직 넌 이곳에 올 때가 아니다.'
'하지만...'
'뭘 망설이는 거냐?'
'하지만...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서.'
승리의 고개 숙인 말에 그는 다시 승리를 품에 앉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을 다독이고는
다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내가 다시 보내주마.'
승리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눈을 살포시 감았다. 향기가 뇌를 지배하는 느낌이 계속
되었고 따뜻한 그의 품은 여전히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아빠의 품 같이..
"승리?"
벌떡 일어난 승리를 보고 세 사람이 동시에 한 말이었다. 승리는 피로 젖은 손수건을 풀
고는 다리를 만져 보았다. 꿈에서 치료된 것과 같이 다리는 깨끗하게 나아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쉽게 도움을 받은건 경계심 많은 승리로써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나은거야? 혹시 막 상처가 스스로 재생되는 그런 건 아니겠지?"
"..."
현우과 과장된 목소리에 장난끼를 숨겨 말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할 말을 잊은 듯 서 있
었지만 승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생각에 잠겨 그 사람을 되세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지하철은 점점 종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꺼낸건 진령이었다. 진령은 자초지정을 들을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후 승리에게 종이
를 건네주었고 승리가 기절했을 때 일을 간단 명료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게 그건가?"
"네. 예의 두 번 째 종이입니다."
"잠깐, 다리가 어떻게 나았 냐니까?"
"그만하시죠?"
현우가 큰 소리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가르자 진령은 차가운 얼굴로 크지만 낮은 톤의
위엄있는 목소리로 현우의 말을 되받아 쳤다. 현우는 자신과 있는 동안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던 진령이 처음으로 화난 얼굴을 보자 놀랐는지 약간 몸을 뒤로 젖히며 가만히 있는다.
솔직히 진령도 다리의 상처가 어떻게 나은 것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철을
멈추는 것이 더 급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도 아직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
간 내기가 아니라고 칭찬하며 승리는 '역시 조무래기 음양사는 아니야.'라고 감탄한다.
'하지만.. 세워진 관속에 불빛이 있다 라...'
종이를 내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를 수차례 반복하다 승리는 어려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 진령은 지금 자신들이 직면한 상황을 상기 시켜주었고 머리 속 뇌가 현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패닉상태에 빠져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승리는 두 사람을 보고 재밌다
는 듯 미소를 짓다 다시 한번 종이를 읽으려 할 때였다. 이상한 시선이 자신에게 느껴져
주위를 둘러 보다 자신의 앞에 있는 유리창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그곳에는 꿈에서 보았던
다정한 남자가 서서 터널의 등이 바뀌는 것에 따라 사진이 찍히는 것처럼 손을 들고는 소화
전을 가리키며 희미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승리.. 저기에...'
"아!"
승리는 고개를 돌려 소화전을 보았다.
"세워진 관은 벽에 붙은 사각의 상사, 불빛이 있다는 건 소화전 상자 안의 경보기였어!"
승리와 진령은 재빨리 소화전을 보고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달려가 문을 열었다. 미쳐
여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문을 열자 검은 비닐에 싸여있는 발과 피묻은
도끼가 발견이 되었다.
"됐다!"
"이제 멈추겠지?"
정화가 다행이라는 얼굴로 말을 했지만 전철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것은
역시 현우였고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고 승리는 기관실로 가서 직접 멈추어야 겠다며 자
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무도 없는 차장실에 허공에서 손이 나타났다. 그 손은 급브레이크라고 적힌 레버를 위
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리고는 다시 허공으로 사라졌다.
끼기기긱
불꽃이 튀며 레일 위에서 바퀴가 멈추었고 전철안의 네 사람은 충격으로 모두 좌충우돌아
혀 앞으로 던져졌다. 승리는 그 때 기둥에 이마를 박고 뒤로 나자빠져 현우의 위에 떨어졌
다. 현우와 진령, 정화모두 어딘가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
절을 했고 전철은 여전히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후.. 이런 일로 승리를 잃을 수는 없지."
예의 소년은 지하 레일 위에 서서 끼고 있던 장갑을 입에 가져가 검지의 끝을 물고는 장
갑을 잡아 당겼다. 검은 색과 사뭇 대조되는 하얀 손이 길게 뻗더니 전차가 달려오는 방향
으로 들어 올려졌다. 그러자 소년의 손에서 투명한 비눗방울 같은 기가 공 모양으로 생겨
나더니 이내 점점 커져 사방 1미터의 지하도를 틈도 없이 막아 버릴 정도로 커져 있었다.
계속해서 전차는 멈출지 모르고 다가왔고 이 속도로 가다간 아직 미완성 된 다리로 향할 것
이 분명했고 50미터 구간에서 끊겨진 다리 위에서 40미터 아래의 강으로 곤두박질 칠 것이
다. 그렇다면 제 아무리 장사라고 해도 부상은 고수하고 살아 남을 수도 없을 것이다.
소년은 자신의 뒤로 나 있는 터널의 끝을 보았다. 벌써 새벽이 오고 있었다. 아직은 개
밥바라기(금성이 저녁에 뜰 때의 이름.)가 찬란하게 빛을 내며 하늘의 아침을 밝히고 있었
지만 조금 있으면 곧 샛별로 바뀔 기세이다. 뒤돌아 봤던 얼굴을 앞으로 돌렸을 때 전차는
바로 코앞에서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이 펴놓은 기의 중심과 부딪히는 것도 잠
시 였다. 기의 장벽과 부딪히자 전철의 앞은 보기 흉할 정도로 우그러졌는데 마치 거대한
바위와 정면으로 부딪힌 것 같이 기의 공안에서 점점 처음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렇게 굉음을 내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던 기차가 흑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 쇠와 쇠가 긁
히는 소름 돋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전철은 멈추었다.
그렇게 기차가 멈추고도 한참을 손을 뻗고 있던 소년의 손에서 희미하지만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는 다시 장갑을 손에 끼고는 멈춰 있는 전철의 승리가 타고 있던 칸으로 걸어갔
다. 그리고 그들이 급정거의 충격으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스르
륵 열리며 소년이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 전차의 안으로 들어 왔다. 소리 없이 들어온 손
님은 바닥에서 이마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승리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몸을 구부리고
앉아서는 승리의 이마에서 나는 피를 보고는 마음이 아픈지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혀를
차며 손을 승리의 이마에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자 흐르던 피가 멈추면서 이마에 찢어져
있던 상처도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다. 그는 승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히 말하며 미소지
었다.
"수고했어. 승리."
----일단 수정한 것 까지만 올렸다. 사실 4화가 훨씬 더 재밌는데 수정을 다 못해서 못 보여 주겠더라. 메일 까먹어서 여기다 올렸다. 열심히 읽고 내 매일로 보내줘. 내용 어땠는지... ??주야 잘 자고 짜이지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