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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에서 바라본 현재의 중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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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친 후 대전지역의 각종 행정기관과 시중은행들의 지점, 주요기업, 대형 상점·상가 등은 약속이나 한 듯 중앙로로 모여든다. 교통과 행정의 최고기관인 대전역과 충남도청이 양 끝점에 위치해 있고 당시 대전시청사가 지금의 동백사거리 옛 대전상공회의소 건물에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시는 1949년까지 행정구역 명칭이 대전부(大田府)였고 대전부, 이후의 대전시는 현재의 대전중구청이 입주해 있는 충남도청 옆 시 청사가 완공될 때까지 옛 대전상공회의소 건물에서 부 행정, 시 행정을 관장했다. 현재 삼성생명 빌딩이 있는 곳에 있던 2층 건물에는 대덕군청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유성구, 대덕구, 서구·동구의 외곽 지역을 포함하고 있던 대덕군은 당시 행정구역 안에 청사가 없던 탓에 보통시였던 대전시의 한복판에 청사를 두고 군 행정을 폈다.
이처럼 가장 번화하고 도시의 핵심기능들이 몰려 있던 중앙로에는 그러나 1970년대 중반까지 5층 이상의 층고를 가진 건물이 운성빌딩, 옛 충청은행 본점, 대전역 앞의 옛 대전일보사 건물, 중앙데파트 등 몇 되지 않았다. 2-3층, 3-4층정도밖에 되지 않는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나란히 줄지어 들어서 있었을 뿐이었다. 1980년대 들어 인구가 급증하고 도시기능이 커지면서 점차 층고가 높은 건물들이 중앙로에 잇따라 지어졌다. 이런 건물들에는 의류·구두전문점 등 각종 상점, 다방·술집 등 유흥업소, 병·의원 등이 차례로 입주해 영업을 했다. 백화점인 갤러리아동백점 자리에는 시민관이라는 개봉관이 있었고 홍명상가 아래 지금은 유료주차장으로 변한 곳에 중앙극장이 영화관객을 불러모으는 등 성업을 했다. 시민들은 제각기 이곳에서 쇼핑을 했고 모임을 가졌으며 데이트를 했다. 대전 시민들에게 중앙로는 현재 삶의 일부를 가진 실재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추억을 가진 곳이기도 한 것이다.
김진섭(46·대전 유성구) 씨는 “1980년대로 들어섰을 때 시내버스 요금이 20원, 25원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거북선 담배 한갑이 450원일 때 중앙로에 있던 수정다방 등의 커피 한잔 값이 350원이었다. 실내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이런 다방에서 친구들을 만나 잡담을 하다 날이 저물면 인근 술집이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20대 초반 젊었을 때의 추억 상당부분이 중앙로에 있다”고 말했다.
대전역에서 충남도청 청사까지 1.1㎞인 중앙로는 세 구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 구역은 대전역에서 대전천까지, 두 번째 구역은 대전역에서 옛 대전상공회의소 건물이 있는 동백사거리까지, 마지막 세 번째 구역은 동백사거리부터 충남도청까지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대전천과 인위적으로 뚫어놓은 도로가 중앙로를 자연스럽게 구획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원도심 구역 가운데를 중앙로가 관통하고 있으니 다시 중앙로 좌우 편 여섯 개의 블록으로 구분되는 셈이다.
대전역에서 볼 때 첫 번째 구역 왼쪽 블록은 중앙시장 입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거 대전 시내 주요개봉관 중 하나였던 중앙극장은 예전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이 터만 남아 유료주차장으로 운영 중이다. 시중은행 지점들이었던 건물은 알루미늄 패널이나 대리석 등의 석재를 붙인 건물로 리모델링된 뒤 은행 지점으로 여전히 영업 중이다. 대전역이 문을 연 뒤 얼마 안 돼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 건물로 지어진 옛 한국산업은행 대전지점은 현재 안경체인점이 예전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영업 중이다. 오른쪽 블록은 현재 한약거리·인쇄거리가 포진해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며 한때 대전 최고의 고급식당으로 불렸던 한밭식당과은 그대로 남아 손님들을 받고 있다. 개봉관이었던 아카데미극장은 4개의 상영관을 가진 복합상영관으로 바뀌어 개봉영화를 상영 중이다.
두 번째 구역 왼쪽 블록은 ‘으능정이 거리’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10대와 젊은층의 거리로 변신했다. 각종 의류·패션상점이 즐비하다. 충청은행 본점이었던 건물은 지금 젊은층 위주의 패션전문 상가로 바뀌어 예전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대전부청사, 청소년회관, 대전상공회의소 등의 순서로 주인이었던 옛 대전상의 건물은 지금 외관이 완전히 바뀐 채 화재보험회사가 입주해 있다. 이 블록 끝부분에 있던 대전극장은 10여년 전 영화관이 있는 복합상가로 바뀌었지만 영화관은 4년 전쯤 영업을 중단하는 등 원도심 공동화 현상의 격랑을 피하지 못했다. 이 구역의 오른쪽 블록은 대우당약국과 길가의 의류·구두전문점 등만 건재할 뿐 전반적으로 슬럼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곳은 현재 ‘은행1구역’이라는 이름의 재개발이 추진 중이다.
세 번째 구역도 변화의 정도를 따지면 다른 구역에 못지않다. 왼쪽 블록 끝에 있던 옛 한일은행 대전지점 건물은 1953년부터 한국은행 대전지점이 들어서 있었고 근대 석조건물이라는 역사성에도 불구 오래 전에 헐려 복합상가 건물이 거의 다 지어진 상태. 과거 학생도서관이었던 건물은 대전중구가 개청하자 임시 청사로 쓰이다 헐려 공영주차장 등의 역할을 한 뒤 현재는 ‘우리들공원’으로 최근 탈바꿈했다. 이 블록은 예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화랑 등 전시공간이 늘어나고 미학적인 디자인을 한 카페·커피숍 등이 몰려들면서 ‘문화예술의거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세 번째 구역 오른쪽 블록은 충남도청 바로 길 건너편이라는 지리적 이점에 따라 골목 하나만 들어가면 각종 고급음식점과 두부두루치기 전문점들이 즐비했지만 지금은 과거의 모습에서 상당히 퇴락한 상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곳에서 대전 문화예술의 싹을 키워오던 대전문화원은 대전중구문화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중구 문화동에 새 사옥을 짓고 이전했다.
대전 최고의 도심이었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중앙로의 다음 모습은 어떻게 변할지 대전 시민들에게는 관심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