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운전자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인명 사고에 잠재적 두려움을 갖는다. 자동차가 갖는 편리함 못지 않게 운전자를 괴롭히는 숙명적 불편함이, 교통사고이다. 인명을 앗아가는 교통사고, 그것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뺑소니 교통사고는 가해자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원통함과 비통함을 안겨 준다. 테리 조지 감독의 [레저베이션 로드]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건 자체의 외적 해결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한다.
에단(호아킨 피닉스)은 사랑하는 아내 그레이스(제니퍼 코넬리) 사이에 아들 조쉬와 딸 엠마(엘르 패닝)가 있다. 에단 가족은 피크닉을 다녀오던 중, 반딧불을 놓아주기 위해 조쉬가 도로를 건너가고 있었다. 영화 제목인 레저베이션 로드는 조쉬가 서 있던 도로 이름이다. 그때 이혼한 변호사 드와이트(마크 러팔로)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아들 루를 옆 자리에 태우고, 레저베이션 로드를 달리고 있었다. 드와이트는 조쉬를 뒤늦게 발견했지만 이미 차로 친 상태였다. 드와이트는 루가 받을 충격이 두려워 자신이 사람을 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뭇거리다가 뺑소니를 친다.
영화 맨 앞 부분에 전개된 뺑소니 사고. 그리고 [레저베이션 로드]의 내러티브는 뺑소니 운전자를 잡기 위한 에단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드와이트를 축으로 전개된다. 경찰조사가 별다른 단서 없이 지지부진하자 에단은 변호사를 찾아가 사건조사를 의뢰한다. 그런데 그 변호사가 드와이트다. 또 에단의 딸 엠마는 학교 발표화에서 연주할 피아노 연습 때문에 개인교습을 받는데, 엠마의 피아노 선생님이 드와이트의 이혼한 아내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설정은 미국 작은 도시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인위적 구성이라는 느낌을 준다.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드와이트가 에단을 만나면서 어떻게 죄책감에 시달리는지, 그리고 갑자기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지는 에단은 보이지 않는 범인에 대한 복수심에 어떻게 심신이 피폐해져 가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아들이 죽은 후 그레이스는 좀 더 현실적 자세로 충격을 딛고 일어서려고 하지만, 에단은 뺑소니범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감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ㄷ. 그리고 이것은 부부 사이의 새로운 갈등을 발생시킨다.
[레저베이션 로드]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의 분노와, 사고를 일으킨 후 죄책감에 사로잡힌 운전자라는 대립적 구성을 축으로 사건을 전개시켜 나간다. 교통사고의 피해자/가해자라는 현실적 소재에 매우 사실적으로 접근해서, 일상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호텔 르완다]로 골든그로브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테리 조지 감독은 헨드 핼드 카메라로 인물들의 불안한 심리묘사를 드러내려고 한다. 피해자 아버지인 에단과 가해자인 드와이트 모두 각각 다른 방향에서 불안한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특히 변호사 드와이트가 뺑소니범이라는 사실을 에단이 알게 되는 결정적 장면에 연출은 많은 힘을 집중하고 있다. 학교 발표회가 끝난 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쏟아져 나오는 어둠 속에서 드와이트는 자신의 아들 [루]를 부른다. 멀리서 그 소리를 들은 에단은, 레저베이션 로드의 사건 현장에서 뺑소니범이 소리쳤던 [루]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어둠 속을 이동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건을 의뢰한 변호사 드와이트가 바로 뺑소니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체적으로 어둡게 촬영이 되어 있지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사람들의 소음이 시청각적으로 교차하면서, 에단의 시선으로 카메라가 바라보는 드와이트의 모습은, 매우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이다호]의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의 동생으로 알려졌지만 [글래디에이터] 등에서 개성적 연기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호아킨 피닉스가, 거뭇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 에단 역을 뛰어나게 보여준다. 전반부에는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빠진 연기를, 드와이트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난 후반부에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흔들리는 격렬한 연기를 빼어나게 보여준다. 에단의 아내 그레이스 역의 제니퍼 코넬리나, 뺑소니를 친 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드와이트 변호사 역의 마크 러팔로의 연기도 아주 좋다. [레저베이션 로드]는 배우들의 호연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실감을 증폭시키는 연출의 힘으로, 죄와 벌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