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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누가의 宣敎神學
김경진
복음서기자들 가운데 누가만큼 다양한 관심을 나타내 보이는 인물은 없는 듯 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누가는 가난한 자들이 그 대표로 소개되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the gospel for the poor)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하고, 또한 다른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13명의 여자들과 여자들에 대한 긍정적 묘사로 인해 '여자들을 위한 복음'(the gospel for the wome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밖의 다른 관심사로서는 기쁨, 기도, 성령, 어린이 그리고 유대인들은 물론 모든 이방인들을 포용하는 보편주의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관심사 속에,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보편주의를 참작할 때, 누가가 또한 선교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自明)한 일로 여겨진다. 본 소논문은 누가의 다양한 신학적 특징 중 특별히 선교에 대한 관심에 주목하여 누가의 선교신학을 정리 및 소개함에 그 목적이 있다. 누가의 선교에 대한 관심을 정리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선 선교사로서의 누가의 인간적 면모(面貌)를 살펴보고, 이어서 복음서에서 선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나타나는 보편주의 motif에 주목하여 살펴볼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복음서의 속편이자 사도들의 선교가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선교적 관심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선교사로서의 누가
선교사로서의 누가란 칭호는 누가가 바울의 표현대로 의사(physician)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골 4.14), 그 전제 위에서 그를 일종의 의료선교사로서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누가가 의사였다는 것이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가 의사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1882년 W. K. Hobart에 의해 주장된 바 있다.1) 호바트는 누가의 어휘나 문체가 헬라의 의술 학교(Greek Medical Schools)에서 사용된 것들과 유사함을 들어서, 특별히 당대의 의사들(Hippocrates, Galen, Dioscurides, Arataeus)의 글들과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누가복음의 본문을 마가복음과 비교함으로써 그 차이점을 부각시킴으로써, 누가가 의사였다고 주장하였다.2) 그러나 호바트의 이런 주장은 1920년 예일대 교수였던 H. J. Cadbury에 의해 논박되었는데,3) 그 요점은 누가가 사용하는 의학적 용어라는 것이 당대의 다른 고대 문헌, 예를 들면 Josephus, Lucian, Plutarch 등의 비의학적 작품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인 까닭에 그것을 근거로 하여 누가가 의사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었다.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대한 묘사 및 치유와 관련하여 누가복음을 다른 복음과 비교할 때 드러나는 차이점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누가가 의사였을 것이란 주장은 누가-행전에 나타나는 다음의 몇몇 구절에서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5) 첫째로, 누가복음 4장 38절을 마가복음 1장 30절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누가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좀더 상세하게 '중한(μεγαλω)' 열병으로 기록하고 있다. 호바트는 열병을 중하다 혹은 경하다고 그 차이를 지적하는 것은 분명 의사로서의 관찰에 입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6)
아울러 마가는 단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κατεκειτο)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보다 전문적으로 "(열병에) 붙들린지라"(συνεχομενη7))고 표현하고 있다. 둘째로, 누가복음 5장 12절을 마가복음 1장 40절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누가가 문둥병 들린 사람의 상태를 보다 자세하게, 즉 '온 몸에'(πληρη 의 의미는 '문둥병으로 가득하다'는 말이다) 문둥병 들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일종의 의학적 전문용어로서, 의사로서 질병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8) 셋째로, 누가복음 8장 43절을 마가복음 5장 26절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누가가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삭제함은 물론 아예 의원이란 단어조차도 사용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누가가 자신이 의사인 까닭에 마가복음에 기록된 의사 일반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생략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9) 넷째로, 누가복음 8장 44절을 마가복음 5장 29절과 비교할 때, 마가는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누가는 좀더 의학적으로 "혈루증(피의 흐름; 직역)이 즉시 그쳤더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사도행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3장의 앉은뱅이 거지를 고치는 기사에서 누가는 그가 고침 받아 회복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3.7). 아울러 누가는 5장에서 아나니아와 그 아내 삽비라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혼이 떠나는지라"(εξεψυεξν ; 5, 10절), 9장에서는 다비다의 소생을 묘사면서 "일어나 앉는다"(ανεκαθιεσν ; 40절), 13장에서는 헤롯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충이 먹어 죽으니라"(ακωληκοβρωτοs εξεψυξεν; 23절)는 의사다운 전문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누가가,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병자 애니아를 치유한 일(9.32-35)과 욥바의 여제자 다비다를 소생시킨 사건(9.36-43)을 기록하고 있고,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8.7-8),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14.8-18)과 드로아에서 바울의 긴 강론으로 인해 졸다가 죽은 유두고를 소생시킨 사건(20.7-12)을 기록함은 물론이고,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뱀에게 물렸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28.6a). 아울러 멜리데 섬의 족장이었던 보블리오의 부친의 병명을 '열병과 이질'로 묘사한 부분도 우리의 주목을 끈다(28.8). 이밖에도 베드로와 바울이 전도하는 가운데 병자를 치유한 사건을 요약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5.15; 19.11-12). 끝으로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나사렛 예수께서 지상 사역 중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10.38)는 구절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관원들의 핍박을 받으면서 드린 사도들의 기도 중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란 구절을 역시 포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위에서 질병 치유와 관련하여 제시된 누가-행전의 여러 사건과 구절들을 종합해 볼 때, 비록 누가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병자들의 질병을 고친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하여 여러 사도 및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병자를 치유한 많은 사건들을 누가가 기록하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누가-행전의 저자가 의사였을 것으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10)
사도행전에 기록에 따르면 누가-행전 저자 누가는 그 자신이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행하였던 일종의 선교사였음을 알게 된다.11)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직업이 의사였던 누가는 아마도 의료 선교사로서 말씀 선교사였던 바울을 도와 병약(病弱)했던 그를 치료함으로써 선교에 동참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골 4.14).12) 또한 아마도 누가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에도 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곁에 있으면서 여러 모양으로 도움으로써 바울의 선교를 줄곧 지원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딤후 4.11).13) 아울러 전도 여행 중 누가는 많은 여행에서 얻은 피로와 박해로 인해 병약했던 바울만을 상대로 하여 의술을 베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필요에 따라 선교지의 주민들에게 의술(醫術)을 베풀어 질병을 고쳐주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약이나 의술이 매우 원시적이었던 고대 세계에 누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고, 누가의 이런 의술은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에게 상당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까닭에 아마도 바울은 누가를 자신의 '동역자'(συνεργοs)라고 간주하였다고 생각된다(몬 1.24).
여기서 우리는 team mission의 모범적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즉 team partner였던 바울과 누가는 영적 치유와 육적 치유를 병행함으로써 전인적 측면에서의 구원을 선교지의 원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범적 모델은 오늘날의 선교를 위하여서도 매우 중요하고도 실제적인 하나의 지침(指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간주된다.
2. 복음서에 나타난 누가의 선교신학
1957년 독일 신학자 한스 콘첼만은 {시간의 중간}(die Mitte der Zeit)란 책을 출판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누가-행전을 편집비평의 학문적 도구를 이용하여 분석한 본격적인 누가신학 책이었다. 그리하여 이 책의 영문판은 아예 그 제목을 The Theology of St Luke이라고 명명하였다.14) 이 책에서 콘첼만의 주요 논지는 누가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종말(παρουσια)의 문제를 누가가 3단계의 구속사를 이용하여 역사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주님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종말이 곧 임하지 않게 되자 누가공동체 교인들은 동요하며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따라서 그 공동체의 지도자 중 하나였을 누가는 이러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권의 책을 저술하게 되었는바, 그 주장은 종말이 그들의 기대처럼 곧 오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연기되었으므로 현재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미래의 종말이 아니라 오늘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님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이었다(행 1.8). 이렇게 함으로써, 콘첼만은 누가를 단지 전승의 수집가가 아니라 독창적인 신학을 주창한 신학자로 크게 부각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누가를 신학자로 부각시키는 것은 좋았으나, 그 논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누가의 역사적 사실 묘사를 신학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함으로써, 누가의 역사 기술(記述) 자체에 회의적이도록 만들었다는 문제가 야기되었다.15) 결국 누가의 관심이 구속사 신학에 있으므로 수단화된 누가의 역사 기술의 역사성이 의문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콘첼만의 주장에 대항하여 누가의 역사 기술을 옹호한 신학자가 영국 아버딘 대학의 하워드 마샬(I. Howard Marshall)이다.16) 마샬은 역사가로서의 누가를 평가절하했던 콘첼만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누가가 예수님과 초대교회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역사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 독자들의 신앙을 확증하기 위해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의 역사기술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므로 그를 역사가로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샬은 누가가 두 권의 책을 저술함에 있어서 본래 가졌던 의도는 역사적이지도 신학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복음전도적이었다고 주장한다.17) 따라서 누가를 역사가와 신학자라고 불러도 틀리지는 않지만, 보다 바람직한 칭호는 '복음전도자'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복음전도자로서 누가가 전도 및 선교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을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누가는 두 권의 저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로마제국의 한 귀퉁이인 팔레스타인의 시골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그 나라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거쳐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까지 많은 장애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전파되었는지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할만한 것은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스가랴의 예언이자 동시에 주님의 예언이기도 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14.27-28/마26.31-32). 즉 누가복음에는 부활하신 후 예수님이 다시 갈릴리로 돌아간다는 기록이 빠져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계속 진취적으로 앞으로, 즉 땅 끝인 로마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지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누가의 누가-행전 기록 목적이 복음전도적, 즉 선교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된다.
누가-행전이 선교적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증거 중 하나가 누가복음에서 강조되어 나타나는 보편주의(普遍主義)이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글을 쓴 누가의 여러 가지 신학적 특징 증 주목할만한 것은 보편주의이다. 물론 다른 복음서기자들 또한 보편주의적 특징을 전혀 갖지 않은 것은 아니나, 누가는 다른 이들과 비교할 때 이를 보다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편주의(universalism)라 할 때 이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에 대조되는 말로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이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한 없이 허락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보편주의는 자연히 그 성격상 전도 및 선교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누가는 그 누구보다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우리는 그에 대한 증거를 누가의 두 권의 저작에서 자주 발견하게 된다.
누가의 보편주의적 특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만민과 이방인 그리고 사마리아인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첫째로,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난 선지자 시므온이 고대하던 메시야 아기 예수님을 만났을 때 노래한 찬송시(詩) 가운데에서, 주의 구원이 만민 앞에(παντων των λαων) 예비된 것으로, 그리고 이방(εθνων)을 비추는 빛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눅 2.31-32). 둘째로, 세례자 요한의 설교 가운데서 우리는 그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고 외치는 것을 듣는다(눅 3.6). 여기서 '모든 육체'(πασασαρξ)는 만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로, 주께서 승천하실 때 주신 마지막 명령 중에서 우리는 회개의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하리라는 말씀을 듣는다(눅 24.27). 여기서 모든 족속(ταεθνη)이란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로, 고향 나사렛에서 행한 주님의 취임설교 중 우리는 유대인 선지자 엘리야와 그 제자 엘리사만이 아니라 그 파트너로서 이방인(아람) 장군 나아만과 사렙다의 한 과부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본다. 다섯째로, 만찬의 비유에서 누가는 미리 초대받았으나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참석을 거절함으로써 주인에게 모욕(侮辱)을 안겨준 부자 손님들 대신에 불러올 손님들을 찾으러 '길과 산울 가로 나가라'고 주인이 말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눅 14.23). 이 비유 해석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먼저 초대된 이들은 기득권을 가진 유대인이고 후에 초대된 이들은 이방인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주님의 잔치에 이방인들이 참여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눅 14.24). 여섯째로는 이방인으로 간주되었던 사마리아인에 대한 예인데,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가려 하다가 저지를 당하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의 불을 내려 부락 전체를 멸하기를 주님께 간청하였는데, 주님은 이 형제들의 철없는 간청을 오히려 꾸짖으셨음을 보게 된다(눅 9.52-56). 이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긍정적 묘사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로는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인데(눅 10.30-35), 여기서도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재물을 허비해 가면서 강도를 만나 어려움에 처한 비참한 이웃을 도움으로써 착한 일을 행한 의로운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여덟째로는 열 명의 문둥병자 치유 사건인데(눅 17.11-19), 열 명의 문둥병자가 주님의 은혜로 고침 받았으나 돌아와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오직 사마리아 사람뿐이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역시 사마리아 사람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여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적 관심이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방인들과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다.18) 이에 대한 두 가지 예를 들면, 첫째로 누가는 예수님의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만남 장면을 생략하고 있고(막 7.24-30), 둘째로는 백부장 하인의 질병을 치유하는 기사에서 마태복음과는 달리 백부장이 주님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백부장의 하인이 나아와 주님을 만난 것으로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백부장과의 만남이 없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눅 7.1-10; 마 8.5-13). 이 문제와 관련하여 터킷(C. M. Tuckett)은 예수님이 그 사역동안 많은 이방인들과 접촉한 사실이 없음을 알았던 누가가 역사적 사실 보존의 차원에서 이렇게 기록했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19) 결과적으로,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볼 때, 누가복음에서는 사도행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방인 선교가 예시적 혹은 암시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20)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살펴본 바와 같이, 누가는 그 복음서에서 주님의 복음이 사마리아인을 포함하여 모든 이방인들, 즉 만민들에게 미칠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이로써 복음이 팔레스타인의 지역적 한계와 유대인 중심의 인종적 한계를 벗어나 전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누가의 이러한 복음전도적, 즉 선교적 관심은 주님 자신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 4.43).21)
3.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의 선교신학
누가의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선교활동을 기록하였다면,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책제목처럼 사도들의 선교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두 책에서는 여행의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즉,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 전체 기사 중 약 40%를 차지하고 있고(눅 9.51-19.27),22)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의 선교여행이 역시 약 57%를 차지하고 있다(행 13-28장). 이렇게 볼 때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의 전도여행과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의 선교여행은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두 권의 책에서 선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우리에게 부각시켜주고 있다.23)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도행전 1장 8절은, 누가복음 4장 18절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전개과정을 예시해주는 프로그램적 요약 구절로 알려져 있다.24)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복음전파, 즉 선교의 프로그램은 예루살렘(1-7장) → 온 유대와 사마리아(8장) → 땅 끝, 즉 로마(9-28장)까지 이르는 세 단계의 과정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 프로그램에 따라서, 1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과 전도자 스데반의 유대인들에 대한 전도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이 때 사도들과 스데반은 약 50여일 전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예정하신 오실 메시야 구주라는 사실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證人)의 자격으로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유대인들과 심지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 회개하고 개종하게 되었다(행 2.41; 6.7).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고, 사도들은 유대 관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에 의해 많은 핍박을 당했고, 전도자 스데반은 결국 순교 당하고 말았다.
이어지는 8장에서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발생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유대 기독교인들, 특히 전도자 빌립에 의한 사마리아에서의 선교와 구스 내시에 대한 전도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분명히 사도행전 1장 8절의 주님의 명령을 받아서 그에 따라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하나님은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기를 망설이는 교회에 큰 핍박이 있도록 하여 강제로 그들을 흩어지게 하였고, 그 결과 흩어진 기독교인들이 나가서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행 8.1-3).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첫째로 아마도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을 전부 복음화시키고 난 다음에 사마리아로 나아가려 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은 여전히 완전히 복음화 되지 않았다. 이는 어떤 한 지역의 완전한 복음화란 하나의 이상(理想)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둘째로,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께서 명한 이방인 전도를 달가워하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를 놓고 볼 때 철저한 민족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큰 특권이 개나 돼지처럼 간주되는 이방인에게도 허락된다고 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25) 따라서 이런 이유로 이방인 전도를 망설이자 주님은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맞도록 하여 억지로 그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국내 전도와 국외 선교는 함께 병행되어야 할 사역이지 전(前)과 후(後)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해외 선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들의 주장은 이것이다; 아직 국내도 다 복음화 되지 못하였는데, 왜 비싼 돈을 들여가며 해외 선교를 감행하는가? 그러나 국내의 완전한 복음화는 아마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도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상(理想)의 성취를 위해 마냥 해외 선교를 미루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고, 그 증거를 우리는 사도행전 8장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히려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는 병행되면서 추진되어야할 사역임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9장부터 28장까지는 로마로 상징되는 땅 끝까지 나아가는 사도들의 선교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9장부터 12장까지는 특별히 베드로의 선교 사역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와의 만남이었다(10장).
우선, 이 사건과 관련하여 고려할 점 하나는, 흔히 유대인의 사도로 알려진 베드로가 이방인과 접촉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례 또한 베풀었다는 것이다(cf. 갈 2.9). 사실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도,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 지방을 가든지 우선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행 13.15; 14.1; 17.1 etc.). 그렇다면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구분'은 실제로는 유효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의 어느 지역을 가든지 흩어진 유대인들(διασπορα)이 이미 이방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6)
베드로의 고넬료와의 만남은 복음전파와 기독교회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기(轉機)가 되었다. 이전까지 사실 베드로는 이방인과의 접촉조차 꺼려했던 전형적인 유대인이었다. 그리하여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나타난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잡아먹으라고 명한 짐승들을 '속되고 더럽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나중에 깨달은 바에 따르면,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지 않다'고 간주한 짐승들은 결국 고넬료로 대표되는 이방인들을 가리킨 것이었다. 고넬료의 집에 가서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마침내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 34-35)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한 베드로는 그후 교회 내에서 이방인의 영입(迎入)이 문제가 되어 개최된 예루살렘에서의 사도회의에서(행 15장)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담대하게 이방인의 영입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에 동조한 주의 형제 야고보의 도움으로 교회의 허락을 받게 되었다. 결국 베드로의 고넬료와의 만남은 이방인 전도의 공식적 인정과 연결되면서, 기독교회의 진로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되었던 것이다.
베드로에 의해 다듬어진 이방인 전도의 토대 위에서 본격적으로 복음전도를 시행한 전도자가 바로 바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삼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감행하였다. 그 선교여행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차 여행에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소아시아의 갈라디아 지방의 네 도시, 즉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하였고(행 13-14장), 이차 여행에서는 실라와 함께 갈라디아 지방에 교회들을 재 방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다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와 아가야 지방의 아덴과 고린도 등을 지나 에베소를 경유하여 예루살렘을 들렸다가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온다(행 15.36-18.22). 삼차 여행에서 바울은 다시금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을 재 방문하고 에베소에서 약 삼 년을 보낸 후, 유럽의 교회들을 역시 재 방문하고, 그 다음 여러 교회들로부터 헌금을 모아 갖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행 18.23-21.17). 이런 삼차에 걸친 선교여행이 끝난 후 바울은 죄수로 체포되어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로마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앞에서 변증하다가, 네로의 법정에 호소한 까닭에 죄수의 처지에서 로마로 압송되어 가게 된다(21.18-28.31). 이러한 바울의 선교여행을 종합해 보면, 일차 여행은 주로 갈라디아, 이차 여행은 갈라디아와 유럽, 삼차 여행은 갈라디아와 에베소 그리고 유럽을 무대로 하여 전개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의 선교여행을 통하여 누가는 복음전도를 방해하는 많은 역경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방 지역에 널리 증거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바울의 선교활동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만을 위하여 사역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그 복음을 거절할 때 비로소 이방인에게로 나아갔던 것이다(행 18.6-7).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실상 많은 유대인들이 주께로 돌아와 믿음을 갖게 되었다(비시디아 안디옥 - 행 13.43; 이고니온 - 행 14.1; 에베소 - 행 19.10, 17-18). 따라서 바울의 전도는 유대인을 일방적으로 배척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 가운데서 참 하나님의 백성을 솎아내는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결과적으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선교활동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을 거쳐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 복음을 증거했던 전도자들이 이 두 사람으로 한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가 기록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다른 사도들 역시 나름대로 받은 바 사명을 위하여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하였을 것이다.27)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누가가 초대교회의 역사 전체를 보여주기 위하여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28) 그렇다면 누가는 복음서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자료의 선택과 배열을 통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이런 맥락에서 두 사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두 번째 책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컨대, 누가는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주로 활동한 베드로를 사도행전의 전반부에서 소개하고, 후반부에서 소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로마로 이어지는 선교활동을 편 바울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편만(遍滿)하게 증거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4. 누가신학의 제일 주제로서의 복음전도
누가-행전의 저자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즉 그 저자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누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자들은 누가-행전의 통일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행전의 기록목적을 논의할 때 우리는 두 권의 책 모두를 포함하는 대표적 주제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학자들은 누가-행전의 기록목적과 관련하여 매우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음전도, 바울에 대한 변증, 로마정부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 바울에 대한 비난에 대한 변호, 종말론 연기, 영지주의에 대한 논박, 복음의 확증.29) 이러한 다양한 이론들 가운데서 학자들은 이런 저런 근거와 이유를 들어 자신들이 보기에 적절한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한다. 그러면서도 각 이론들의 유용성 및 가치를 전혀 배제하지 않는 이중(二重)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논의의 와중(渦中)에서 나는, 각 이론의 유용성들을 주의 깊게 검토한 결과, 이들 이론들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조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전제가 완전히 다른 경우는 제외될 것이지만, 예를 들면 누가공동체의 구성원이 그리스도인이냐 비그리스도인이냐,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하는 다른 전제를 갖고 출발한 이론들은 협조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30)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의 기본적인 견해는, 누가가 대상으로 삼았던 독자들은 데오빌로와 같은 이방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데오빌로는 누가-행전의 대표적 독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31) 이러한 나의 기본적 전제와 다른 이론들을 제외하고 난 나머지 이론들은, 나는 생각하기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누가행전의 핵심적인 제일 주제가 부르스(F. F. Bruce), 오닐(J. C. O'Neill), 그리고 반 우닉(W. C. van Unnik)이 주장하는 대로, 선교, 즉 복음전도라고 생각한다.32) 즉, 이 복음전도가 누가신학의 제일 주제이고, 기타 위에서 언급된 다른 목적들은 소주제로서 기능하면서, 주된 주제이자 목적인 '복음전도'를 돕는 수단적 역할 및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결국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한 누가의 선교신학은 기타 다른 소주제들을 총괄하면서 누가-행전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함께 우리가 누가행전의 목적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 문제는 이 글의 서두에서 잠시 언급한 누가신학의 다양한 특징과 복음전도적 목적과의 상호 연관성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보편주의,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 여자들의 향상된 위치, 기도 및 성령에 대한 강조, 구제에 대한 명령 등의 누가신학의 다양한 특징들은 그 자체가 대표적 주제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 주제인 복음전도적 목적을 위한 소주제로서 역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누가의 선교신학]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누가-행전의 통일성의 근거에서 말할 때, 우리는 복음전도적 목적을 하나의 종합적인 주제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전도적 목적은 누가-행전이 이방인에 대한 전도용 책자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독자이자 청중인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전도를 격려하는 차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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