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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셋 엄마하나] 13
1. 세 남자의 집 거실 (밤)
들려오는 말소리에 놀라는 나영.
경태모 : (놀라) 뭣이여? 뭐... 뭐를 기증혀?
경 태 : (말하기 싫지만, 울상으로) 아이씨... 정자기증...!
이내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나영.
나 영 : (경태를 향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자기증이라니요...?!
이때 마침 광희와 수현이 하선을 안은 채 현관에서 들어온다.
광 희 : (하선을 안은 채, 집안에 대고) 나영씨 우리 왔어요.
수 현 : (즐거운 표정으로 조약돌 꺼내며) 나영씨, 이게 스톤 테라피라고...
하지만 두 사람은 본 체도 않고 경태 앞으로 가는 나영.
나 영 : (경태를 보며) 말해봐요...! 정자기증이라니요...?
이런 나영의 모습을 보며 놀라서 굳은 듯 멈춰서는 수현과 광희.
경 태 : (나영 보고 당황해서 엉거주춤) 저기... 나영씨...!
나 영 : 그러니까, 나 몰래... 세 분이 뭐...뭘 했단 거죠?
경태 차마 대답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데, 놀란 광희와 수현이 후다닥 뛰어 들어온다.
광 희 : (하선을 앞에 맨 채, 나영에게) 저기, 나영씨 그게요...!
수 현 : 경태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나영 막아서며) 나영씨 경태가 뭐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니에요...! 그 말 믿지 마세요.
(경태에게) 너 잠깐 나 좀 보자.
수현, 경태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나 영 : 아니요...! 전 경태씨한테 들어야겠어요. 경태씨... 방금 한 말이... 사실이에요...?
광 희 : (끼어들며, 나영에게 변명하는) 아니라니까요...! 나영씨 그게...
이때 경태가 나지막하게 대답한다.
경 태 : (고개 숙인 채) 네... 사실이에요...
나 영 : (놀라고 믿기지 않는 듯) 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광희 품 안의 하선을 보며) 아니야, 아니야...
경 태 : (고개 숙인 채) 진작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허탈하게 낭패감을 느끼며 경태를 돌아보는 수현과 광희. 경태모도 당황한 듯 허둥댄다.
경태모 : 이게 다 무신 일이라냐? 그럼 하선이 쟈가, 성민이 애가 아니란 말이여?
이때 가볍게 신음 흘리며 픽 쓰러지는 나영.
나 영 : 아...!
세 남자 얼른 쓰러지는 나영을 잡으며 모여든다.
세남자 : (동시에) 나영씨! 나영씨!!
2. 2층 나영방 (밤)
정신을 잃은 나영을 안고 와 침대에 눕히는 수현. 광희도 하선을 앞으로 맨 채, 수현을 도와 나영을 눕힌다.
나영은 축 늘어져있을 뿐 정신을 못 차린다.
잠든 하선을 얼른 아기 침대에 눕히는 광희.
수 현 : (이불 덮어주며) 이대로 그냥 놔둬도 될까? 어떡하지? 충격이 너무 컸나봐...!
광 희 : 기절을 안 하면 이상한 거지. 하선이가 성민이 애가 아니라고 아주 공표를 해버렸는데...
수 현 : (벌 떡 일어서며) 내, 경태 이 자식을...!
화가 잔뜩 난 채로 씩씩대며 나가는 수현. 광희 이런 수현을 말리려고 부르며 따라간다.
광 희 : 야, 수현아...! 기다려...!
3. 세 남자의 집 거실 (밤)
씩씩대며 계단을 내려오는 수현. 광희가 수현을 말리며 따라 내려온다.
수 현 : (내려오며) 야...! 나황경태...! 너 어디 있어...!
광 희 : (뒤에서) 야, 참아...! 이제 와서 경태한테 그러면 뭘 해...!
두 사람 씩씩대며 내려오면, 경태, 경태모 앞에 고개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경태모 : (수현과 광희에게, 엄하게) 니들도 여기 좀 앉아봐.
수 현 : (좀 전까지 씩씩대던 기세는 간 데 없이) 저기 그게요... 어머니...
경태모 : (목소리 높아지며) 아, 일단 앉아 보라니께!
경태모의 서슬에 찍소리도 못하고 경태 옆에 양반자세로 앉는 수현과 광희.
경태가 무릎 꿇고 앉아있는 걸 보고는, 재빨리 자세 고쳐 무릎을 꿇는다. 원망하듯 경태를 노려보는 수현과 광희.
경태모 : 내가 우리 경태한티 다 들었다...
수 현 : (경태를 찌르며, 작게) 너, 어디까지 얘기했어...?
경 태 : (고개 숙인 채) 사실대로... 다...
광 희 : (역시 작게, 따지듯) 사실대로 어디까지...?
경 태 : 하선이가 아무래도 내 애 같다고...!
광 희 : (화들짝 놀라) 뭐? (경태모에게) 어머니...! 저기 경태가 지금 뭔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게...
경태모 : 착각이라니? 그럼 니들이 정자기증 해준 게 아니란 말이여?
광 희 : (할말 없어) 뭐, 그건 아니지만...
경태모 : 그런디, 왜 그 사실을 여태 하선이 에미나 나헌티까지 숨긴 겨? 무신 뜻이 있어서?
수 현 : 어머니... 무슨 뜻이 있어서 숨긴 건 아니구요... 성민이가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경태모 : (버럭) 이런 게 비밀이 지켜져? 자기 핏줄이 달린 문젠데?
수 현 : 네? 핏줄이요...?
경태모 : (광희에게) 광희 늬 어머니도 올라오시라고 혔다...
광 희 : (더 놀라) 네? 우리 엄마를요? 왜요?
경태모 : 혈육이 얽힌 문젠디, 앞으로 하선이하고 하선 에미를 어떻게 헐지, 어른들끼리 상의를 해봐야 안 되것냐?
세남자 : (난감해서) 네...?
경태모 : 이 눔들아! 니들이 뭔 짓거리를 헌지나 아는 겨?! 제발 생각들 좀 하고 살어라...! 이 속창시 없는 눔들아!
다시 찜찜한 듯 고개를 숙이는 세 남자.
4. 달리는 광희모의 차 안 (밤)
심각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광희모.
광희모 : (혼잣말)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난데없이 정자기증이라니...? 어휴... 내가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겠네...!!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운전하는 광희모. 그러다가 문득 딴생각이 드는지, 곰곰이 짱구를 굴리는 광희모.
광희모 : (혼잣말) 아니야... 어쩌면 잘 된 일이지도 몰라... 광희 이 녀석, 평생 장가도 안가고 혼자 살면서
골치나 썩힐 게 틀림없는데... (고개 끄덕이며) 그래... 이참에 아예 결혼을 시켜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잖아...?
어쩐지...! 하선이 걔를 딱 봤을 때부터 남 같지가 안더라니...!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차의 속도를 더 높이는 광희모.
5. 세 남자의 집 거실 (밤)
세 남자를 노려보고 있는 경태모.
여전히 경태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세 남자. 다리가 저린지, 땀을 흘리며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다.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경태모 : (광희에게) 나가 봐라. 늬 어머니 오셨는갑다...
그 말에 저린 다리를 펴며 주섬주섬 일어나는 세 남자. 저린 다리를 안보이게 살살 주무르는데...
비틀거리며 어기적어기적 문 열러 가는 광희.
광 희 : (잔뜩 쫄아, 문 열며) 엄마, 왔어...?
그런데 문이 열리자, 나영부의 모습이 보인다.
광 희 : (놀라며) 아니...? 나영씨 아버님께서 웬일이세요...?
나영부 : (들어서며, 광희에게) 자네 어머니가 여기로 좀 와보라고 해서 왔는데? 혹시 우리 나영이한테 무슨 일이 있나?
뭐 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던데... 정자기증이라나 뭐라나...? 그게 다 뭔 말인가?
광 희 : (당황하여) 네...? 그게... (참 난감한데)
이때 나영부 뒤에서 광희모가 다급히 들어서며 나타난다.
광희모 : 어머? 어떻게 나영씨 아버님께서 먼저 오셨네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인사하면)
나영부 : (같이 인사하며) 아, 네... 별일 없으시고?
광희모 : 별일이야... (광희 째려보며) 많이 있죠...! 호호호...! 들어가세요...
나영부가 먼저 거실로 들어서면, 대뜸 광희의 귀를 움켜잡는 광희모.
광 희 : (비명 지르는) 아야...! 엄마 왜 그래...!
광희모 : (계속 귀 꼬집은 채) 왜 그래? 왜 그래? 지금 그런 말이 나와?
광 희 : 이거나 좀 놓고 얘기해, 엄마...!
광희의 귀를 잡고 거실로 들어 온 광희모, 팽개치듯 귀를 놓아준다.
비명을 지르며 귀를 부여잡고 수현과 경태 옆으로 가 서는 광희.
수현과 경태,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으로 광희모와 나영부에게 꾸벅 꾸벅 인사한다.
수 현 : (동시에) 안녕하셨어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버님...
경 태 : (수현과 같이 고개 인사하며, 장단 맞춰) ... 어머님... ... 아버님...
한심하다는 듯 세 남자를 째려보는 광희모.
세 남자의 고개 더욱 수그러지면, 경태모가 인사를 한다.
경태모 : (일어서며, 나영부에게) 오셨세요...?
나영부 : 아, 네...
경태모 : (소파 옆자리 가리키며) 아무튼 잘 오셨네요... 일단 여기 앉으세요...
경태모와 나영부, 광희모 소파에 앉으면, 어쩔 줄 몰라 서 있는 세 남자.
나영부 : 자네들도 앉지...?
세 남자 서로 눈 마주치며 양반자세로 쪼로록 앉으면,
광희모 : (세 남자에게) 어디서...? 무릎 꿇어!
그 말과 동시에 잽싸게 다시 무릎을 꿇고 앉는 세 남자.
나영부 : (광희모에게) 아니 근데 아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정자기증이라니...?
6. 세 남자의 집 전경 (밤)
가로등 불빛아래 보이는 세 남자의 집 전경.
7. 2층 나영방 (밤)
아기침대에 둘러서서 잠든 하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경태모, 광희모, 나영부.
경태모 : (하선을 짠하게 보며) 세상에... 그럼 요것이, 우리 경태 씬지도 모른단 말이여...?
광희모 : (역시 하선만 보며)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광희하고 딱 닮았는데요...!
경태모 : (광희모를 보며) 이것 봐요.
광희모 : (경태모를 무시하며) 보긴 뭘 봐요?
나영부 : 왜들 이러세요? 이제 유전자 검사만 하면 다 밝혀질 텐데...!
광희모 : (나영부에게) 그렇겠죠?
나영부 : 그럼요, 세상 이치가 있는 법인데, 누가 아버진지는 정확히 밝혀야죠. 나한테는 사위가 될 텐데...
이때 신음소리와 함께 힘겹게 눈을 뜨는 나영.
나영부와 광희모, 경태모가 일제히 나영을 돌아보고는 나영의 침대로 온다.
나 영 : (눈 뜨며, 신음) 으음...!
나영부 : 나영아...!
광희모 : 이제야 정신이 돌아 온 모양이네? 괜찮아...?
나영, 잠시 어리둥절 주위를 둘러보며 살피는데,
경태모 : 어이구...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물잔 집어주며) 물 좀 마셔.
나 영 : (그제야 정신 차리고 몸을 일으키며) 하선이는요? 하선인 어디 있어요?
경태모 : (아기 침대 가리키며) 잘 자고 있어. 걱정 말어...
하선을 보더니, 그제야 경태모가 내미는 물잔을 받아 마시는 나영.
광희모 : 아직두 안 좋은 거 같은데, 좀 더 누워있지...
나 영 :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영부 보며) 그런데 아빠까지 어떻게...?
나영부 : 얘기 다 들었다... (흥분) 아니, 어떻게 하선이가 정서방 애가 아니라...
나 영 : (놀라 말 자르며) 아빠! 무슨 말 하는 거야?! 하선인 성민씨 애야...! 그런 말 입에 담지 마. 절대...!
나영부 : (바로 꼬리 내리며) 그러니까 말이다... 이제 이일을 어찌해야 할지...?
근심스러운 듯 길게 한숨 내쉬는 나영부.
경태모와 광희모도 어째야할지 서로 눈길만 마주친다.
광희모 : (어쩔 수 없는 듯) 저기, 하선이 엄마... 지금 충격도 클 텐데, 우리가 이런 말 꺼내기가 좀 미안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어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우리 생각도 좀 들어봐...!
나 영 : (의아해서) 네...?
8. 세 남자의 집 거실 (밤)
2층의 분위기만 살피며 서있는 세 남자.
수 현 : (경태를 노려보며, 작지만 격한 음성으로) 너 미쳤어? 제 정신이야? 성민이랑 우리끼리 한 약속도 못 지키고
그걸 어머니한테 고해바치냐?
경 태 : (죽을 맛, 역시 2층에 들릴까 작은 목소리로) 그럼 어떡해?
엄마가 막무가내로 나영씨랑 하선이를 내보내라고 난리치시는데?
수 현 : 그럼 어떻게든 둘러댔어야지! 사내자식이...?!
경 태 : 엄마한테 어떻게 거짓말을 하냐? 난 못해.
수 현 : 그래, 잘났다, 임마.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렇게 입조심 좀 하라 그래도, 번번이 실수하더니, 결국 사고 칠 줄 알았어...!
이제 어쩔 거야!
광 희 : (2층에 귀 기울이며) 좀 조용히 좀 해봐.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수 현 : 이제 어떻게 할 거냐구?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거야? 엉?
경 태 : 어쨌든 내가 책임질게...!
수 현 : 어떻게? 니가 뭘 책임질 건데?
경 태 : 니들은 아무 걱정하지 마. 하선인 내 앨 거야. 그러니까...
수 현 : (경태의 멱살을 잡으며) 뭐? 이게 진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마치 한대 팰 것처럼 주먹을 치켜드는 수현. 광희가 재빨리 두 사람을 말린다.
광 희 : (얼른 말리며) 야, 왜 이래? 정말!
경 태 : (기꺼이 맞겠다는 태세다.) 칠라면 쳐.
수 현 : (더 열 받아 진짜 팰 듯이) 이게 진짜!
광 희 : (수현을 뜯어 말리며) 야, 이건 놓고 말해...! 어쩌겠어? 이젠 돌이킬 수도 없는데...!
수현 어쩔 수 없이 멱살을 놓는데, 이때 2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광희모 : (E) 아니! 하선 엄마...! 그러지 말고 우리 얘기를 좀 들어보라니까...!
우당탕 내려오는 발소리에 쳐다보는 세 남자. 나영이 하선을 안은 채 내려오고 있다.
나 영 : (뒤에 대고) 유전자 검사라니요? 제 앞에서 다신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 뒤를 광희모와 경태모, 나영부가 따라 내려온다. 나영부는 간단한 짐 가방을 들고 있다.
광희모 : (뒤에서) 아니, 그래도 검사를 해야, 애기 아빠가 누군지 알 거 아냐?
경태모 : 그려, 정확히 헐 건 해야지...! 이건 하선이만의 문제가 아니잖여...!
나 영 : 하선인 성민씨 애에요...!
나영이 현관으로 향해 나가자, 우르르 나영에게 다가가는 세 남자.
광 희 : 나영씨...
경 태 : 나영씨...!!
수 현 : 잠깐만요. 우리 얘기도 좀 들어봐요.
나 영 : (세 남자를 향해, 쏟아내는) 전 그동안 세 분이 저하고 하선이한테 잘해주신 게, 다 성민씨와의 우정 때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고작 이런 거였어요? 어떻게 이렇게 절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요...?
나랑 하선이 몰래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일을...!
수 현 : 나영씨 진정하고 일단 우리 얘기부터 들어요... 우리가 일부러 나영씰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
광 희 : 우린 정말로 나영씨랑 하선일 아껴서 그런 거라구요...! 왜 사람 마음을 몰라줘요?
경 태 : 진짜에요. 나영씨...! 우리가 얼마나 하선이 사랑하는지 잘 알잖아요...!
나 영 : 그럼 끝까지 비밀로 해주셨어야죠...! 왜 이제 와서...!
경 태 : 미안해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나 영 : 아니요...!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죠... 이제 다시는 정자기증이니 뭐니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아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세 분 얼굴... 못 볼 거 같네요...
세분께서도 앞으로 우리 하선이 볼 생각 하지 말아주세요.
세남자 : (놀라며) 네?
나 영 : 그동안 고마웠어요. 제가 갚아야 할 빚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다 갚을 게요. 안녕히 계세요...!
나영 돌아서려하면, 수현이 나영을 잡는다.
수 현 : 나영씨...! 어딜 가겠다는 거예요? 이 밤에?
나영부 : 당분간 나랑 같이 지낼 거네. 그 손 놓게...!
수 현 : 네...?
나영부가 나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세남자 : (동시에) 나영씨...! 나영씨...!!
나영을 부르며 우르르 따라 나가는 세 남자.
광희모와 경태모, 어쩔 줄 몰라 서로를 뻘쭘하니 쳐다본다.
9. 세 남자의 집 앞 (밤)
굳은 표정으로 하선을 안은 채 계단을 내려오는 나영. 그 뒤를 나영부가 따라 내려온다.
우르르 쫓아 나와 나영을 잡는 세 남자.
경 태 : 나영씨... 안돼요... 가지 마세요...!
광 희 : (급해서 반말 나오는) 나영씨, 우리가 잘못했어... 제발 화 풀어...! 이렇게 그냥 가면 안돼!
수 현 :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 하선아...!
하지만, 나영은 아랑곳 않고 경태와 광희, 수현을 비켜 간다.
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세워 타는 나영과 나영부. 더 이상 나영을 잡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세 남자.
차문이 닫히고, 택시가 출발하면,
경 태 : (탄식처럼 낮게) 나영씨...!
광 희 : (탄식처럼) 하선아...!
수 현 : ....!
10. 택시 안 & 집 앞 (교차. 밤)
나영의 품에 안긴 하선이 일어서며 유리창으로 손을 뻗어 세 남자를 쳐다본다.
창 밖으로 경태, 광희, 수현이 차례로 스친다. (아기 시선)
하 선 : (E) 어? 엄마, 아빠들 두고 어디 가는 거야...? 난 아빠들하고 같이 살래! 아빠! 파파! 대디!
(현실의 소리로) 아빠... 파파... 대대...!
나 영 : (하선을 똑바로 앉히며) 아니야... 하선아... 이젠 할아버지랑 같이 살 거야...
멍하니 안타까운 시선으로 택시안의 나영과 하선의 모습을 바라보는 세 남자.
원망스러운 나영의 얼굴 너머로, 세 남자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빠져나가고...
멀어져가는 택시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서있는 세 남자.
속상해서 말없이 하선을 안고 가는 나영.
나영이 사이드 미러에 비친 세 남자의 모습을 쳐다본다. 거울 속으로 천천히 멀어지는 세 남자의 모습.
택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허탈하게 남아있는 세 남자.
11. 나영부의 옥탑 방 옥상 (밤)
앞서서 계단을 올라오는 나영부. 나영이 하선을 안은 채 따라 올라온다.
나영부 : 방은 코딱지만 하다만... 그래도 공기는 좋다. 이렇게 앞마당도 있고...!
옥상 마당에 크고 작은 화분이 줄지어 있고, 한쪽에 접힌 박스들이 쌓여있다.
재빨리 널려져 있는 박스 따위와 쓰레기를 줍는 나영부.
나영부 : 내일 아침에는 마당부터 좀 치워야겠네...?
쑥스러운 듯 웃으며 옥탑방의 문을 여는 나영부.
나영부 : 들어가자...!
12. 동 옥탑방 안 (밤)
불이 켜지며, 화장실만 따로 있고 부엌과 방이 일체형인 작은 옥탑방의 모습이 드러난다.
나영부 : (나영에게) 들어와... 가만 걸레질을 하긴 했는데...
재빨리 먼저 들어와 걸레로 방을 훔치는 나영부.
나영부 : 좁긴 하다만, 너랑 하선이 둘이 지낼 만은 할 거다.
나야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면 공사판에서 며칠씩 안 들어오거나 맨날 늦으니까...
나 영 : 아빠, 인력시장에 나가...?
나영부 : (나영의 품에 안겨 잠든 하선을 보며) 늬 모녀가 나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됐는데... 내가 널 볼 면목이 없다.
나 영 : 안 힘들어?
나영부 : 안 힘들기야 하겠냐? 내가 평생 써본 근육이라곤 (시늉하며) 화투장 내리치던 근육 밖에 없었는데...?
씁쓸하게 같이 웃는 나영.
나영부 : 어이구...! 이럴 게 아니라, 이불부터 펴 줘야지.
주섬주섬 한쪽에 쌓여있는 이불을 펼치는 나영부.
비켜주던 나영이 벽에 걸려있는 작은 거울을 보면, 거울에 옛날 사진이 꽂혀있다.
런닝셔츠 차림의 나영부가 돌 정도 된 아기 나영을 안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바라보다가, 거울 속으로 이불을 까는 나영부를 보는 나영.
나영부 : (이불 펴며) 난 요 앞 슈퍼에 좀 갔다 올게.
나 영 : (돌아보며) 슈퍼에는 왜?
나영부 : 집에 먹을 거라곤 라면 밖에 없어서... 내일 하선이 뭘 좀 멕일려면 쌀하고 반찬거릴 좀 사와야지.
나 영 : (지갑 꺼내려하며) 아빠, 돈 여기 있어...
나영부 : (마다하며) 나도 돈 있다. 할애비가 손녀 딸한테 맛있는 거 좀 사줄려는데, 막지 마.
나영부 나가면, 이불에 잠든 하선을 눕히는 나영. 하선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다가 문득 하선을 내려다본다.
나 영 : (혼잣말)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니...?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고개 저으며) 말도 안돼... 정말 말도 안돼...!
이렇게 성민씨를 닮았는데... 믿을 수 없어...!
13. 경태 방 안 (밤)
침울하게 침대에 기대어 방바닥에 앉아있는 경태. 살짝 맺힌 눈물을 고개 돌리고 몰래 찍어낸다.
경태모가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이런 경태를 쳐다본다.
경태모 : 아니, 왜 이려? 왜 질질 짜? 사내 눔이?
경 태 : 나 때문에 하선이하고 나영씨가 떠났잖아...!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경태모 : 뭐여? 지금 다 내 탓이다 이거여?
대답은 하지 않고,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며 한숨 내쉬는 경태.
경태모 : 아이고! 아이고, 이 눔이? 너 잘 생각혀. 하선 에미는 성민이 각시여...! 알어? 성민이 각시!
어떻게 친구 각시한티 맘을 뺏기냔 말여...!
경 태 : 누가 몰라...?
경태모 : (답답한 듯) 아이구, 속 터져...! 아이구, 속 터져...!! 에미 속 뒤집어지는 꼴 볼 꺼여?
지금이라도 맴을 꽉 틀어잡고 잘 추슬러라, 잉? 아이구...!
답답한 듯 가슴을 치는 경태모.
14. 동 2층 나영방 (밤)
방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광희모.
광희모 : (혼잣말) 어딘가에 있을 텐데...? 너무 가늘어서 안 보이네...?
계속해서 아기 침대와 배게, 방바닥을 샅샅이 뒤지는 광희모. 이때 광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광 희 : (면목 없는) 엄마, 안 갈 거야...?
광희모 : (돌아보지도 않고 바닥만 뒤지며, 건성으로) 가야지...
광 희 : (다가오며) 근데 뭘 그렇게 찾아...?
이때 바닥에서 무언가 가는 터럭을 발견하고는 좋아하는 광희모.
광희모 : (좋아하며) 어머? 찾았다...! (터럭을 광희에게 내밀며) 이거 맞는 거 같지?
광 희 : (의아해서) 뭐가...?
광희모 : 하선이 머리카락!
광 희 : 뭐...?
광희모 : 이걸로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바로 니 앤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니?
광 희 : (어이없어) 뭐? 엄마...!
광희모 : 왜? 니 애가 아니면, 아무 신경도 안 써도 되고, 만약에 니 애면, 우리가 데려다 키우면 되잖아!
엄만, 니 얘였으면 좋겠다, 얘...!
광 희 : (팔짝 뛰며) 엄마! 정말 왜 이래? 미쳤어?
광희모 : 일단 넌 빠져있어. 엄마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너두 머리카락 하나만 이리 내라!
갑자기 광희에게 달려들어 다짜고짜 머리카락을 뽑는 광희모.
광 희 : 안돼! 엄마. 저리 비켜! 유전자 검사는 절대 안 된단 말이야! (이때 뽑혔는지) 아야, 아야! 아야야야...!
광희모 : 어머, 미안해. 너무 많이 뽑았네...?
이때 안되겠는지, 광희모의 다른 손에 들린 아기터럭을 휙 나꿔채 빼앗는 광희.
광희모 : (다시 뺏으려 달려들며) 너 그거 이리 못내?
광희, 어쩔까 하다가 입안에 넣고 꿀꺽 삼킨다.
광희모 : (억지로 광희의 입을 벌리려하며) 너? 그거 빨리 못 뱉어?
광 희 : (혓바닥 보여주며) 없어! 벌써 삼켰어...!
광희모 : 뭐? (한대 치려는 듯) 내, 이....!
그러다 얼른 다시 방바닥에 엎드려 터럭을 찾기 시작하는 광희모.
광 희 : (억지로 광희모를 끌어내며) 엄마, 이러지 말고 빨리 가! 제발 가라구...!
가기 싫다는 광희모를 억지로 끌고 나가는 광희.
15. 세 남자의 집 앞 (밤)
착잡하게 서성거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수현.
- 인서트 - 하선을 데리고 나가며, 세 남자를 향해 말하던 나영.
나 영 : (세 남자를 향해, 쏟아내는) 전 그동안 세 분이 저하고 하선이한테 잘해주신 게, 다 성민씨와의 우정 때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고작 이런 거였어요? 어떻게 이렇게 절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요...?
수현, 착잡한 듯 밤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이때 현관문이 열리며 경태모와 경태가 나온다.
경태모 : (경태에게) 너 에미 말 맹심혀? 행여나 또 하선이 에미 찾아가 만날 생각 허지 마! 알것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경태.
그 뒤로 광희모와 광희가 나온다.
광 희 : (광희모에게) 엄마, 조심해서 가... (경태모에게) 어머니, 조심해서 가세요...!
수 현 :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경태모와 광희모에게 꾸뻑 꾸뻑 인사한다.)
경태모 : 그래, 또 전화 허마.
광희모와 경태모가 나란히 차로 향한다.
광희모 : (귀찮다는 듯) 나오지 마! 아, 어서 들어가!
광희모가 채근하자, 쭈삣쭈삣 인사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세 남자.
경태모 : (가슴 쓸어내리며) 세상에...! 이 일을 어쩐당가... 이 일을...!
이때 광희모가 경태모를 보면서 씽긋 웃는다.
경태모 : 아니? 뭐가 좋아서 그리 웃어요? 웃길?
광희모 : (새침 떨며) 아, 뭐, 그럴 일이 있어요. 먼저 갈게요...!
재빨리 세워 놓은 자기 차에 올라타는 광희모.
16. 광희모의 차 안 (밤)
차창 밖으로 경태모의 동태를 살펴보는 광희모. 경태모가 탄 트럭이 떠나자,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펼치는 광희모. 하얀 손수건 속에, 약간 곱슬거리는 가는 아기 머리카락 몇 올과
광희의 것으로 보이는 길고 뻣뻣한 어른의 머리카락 두 올이 나온다.
광희모 : 요것만 검사해보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걸, 뭐?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접는 광희모.
17. 경찰서 (낮)
핸드폰을 열어 나영의 전화번호를 띄웠다가 그냥 닫는 경태. 다시 핸드폰을 열어 나영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또 닫는다.
미칠 지경인지 두 손으로 얼굴을 훔치며 마른세수를 하는 경태.
18. 경찰서 건물 밖 (낮)
핸드폰을 들고 통화중인 경태.
경 태 : 아버님이세요? 나영씬 괜찮아요?
나영부 : (E) 전화하지 말게.
경 태 : 아버님! 끊지 마세요! 하선이도 잘 있죠?
나영부 : (E) 잘 있으니까, 전화하지 말게. 이제 전화해도 안 받겠네.
경 태 : 아버님! 아버님!
실망해서 전화를 끊는 경태.
19. 광희방 (낮)
광희의 핸드폰 액정에 찍히는 문자. ‘나영씨 우리가 일부러 속인 게 아니구요.’
문자 앞부분 ‘나영씨’만 남기고, 다시 지워지는 문자. ‘나영씨’ 다음부터 다시 문자를 찍어 넣는 광희.
‘나영씨 죄송해요. 성민이하고한 약속 때문에 나영씨를 속이게 됐네요.’
열심히 문자를 보내고, 또 보내는 광희의 모습 위로 들려오는 소리.
광 희 : (E) 나영씨, 우리도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우릴 용서해줘요. 하지만 우리가 하선이를 의무감 때문에
돌본 건 아니에요. 하선이를 정말 사랑해요... 나영씨두요... 보고 싶어요, 나영씨...
허탈하게 문자를 찍다가 그대로 허공을 보고 있는 광희.
20. 수현 회사 복도 (낮)
서성이며 음성 메시지 남기고 있는 수현의 모습이 점프 컷으로 계속 이어진다.
수 현 : (사죄하듯) 나영씨, 정말 미안해요. 지금 어디에요? 잘 있는 거죠? 하선이도 아무 탈 없이 잘 있죠? (점프 컷)
수 현 : (답답한지 성급하게) 나영씨, 일단 나하고 만나요! 만나서 얘기해요!
내가 어떻게 된 건지 전후사정을 속 시원하게 다 말해줄게요... (점프 컷)
수 현 : (풀이 죽어) 나영씨... 연락 한번만 줘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풀이 죽어 핸드폰을 끊는 수현.
21. 수목장 나무 아래 (낮)
하선을 안고 ‘정성민 나무’ 라고 쓰인 나무를 만지는 나영.
나 영 : (원망스러운 듯) 성민씨...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말 좀 해봐!
원망스러운 듯 생각에 빠지는 나영.
- 인서트 -
왜 의사가 시키는 대로 노력하지 않느냐며 성민을 몰아붙이던 나영. 1부. 21씬.
고쟁이를 입겠다며, 병원에 한번 더 가보자고 말해주던 성민. 1부 48씬.
회사에 가져가 먹겠다며 보약을 챙기던 성민. 1부 57씬.
아기를 갖기 위해 함께 요가를 하던 나영과 성민. 1부 66-5씬.
(현재) 자책하듯 멍하니 한숨만 내쉬는 나영.
나 영 : 성민씨... 나 때문에 힘들었던 거야...? 내가 너무 무리한 욕심을 부린 거였어...?
그래서 친구들한테 그런 부탁까지 한 거야, 나 몰래...? 그럼 이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나영.
하선이 우는 엄마를 향해 손을 뻗으면, 하선에게 미안한 듯 얼른 눈물을 손으로 닦고는, 당황하는 나영.
나 영 : (갑자기 하선에게 잘못이라도 빌 듯) 어머! 하선아, 미안해...! 그렇다고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알지?
넌 내 딸이야.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때 영혼으로 나타난 성민이 조용히 나영의 어깨에 손을 얹어준다. 성민의 존재를 모른 채, 하선만 꼭 안아주는 나영.
나 영 : (하선의 얼굴 쓰다듬으며) 그래... 어쩌면 아빠가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우리 아빠한테 고마워하자.
하선을 더 꼭 안아주는 나영. 옆의 성민도 나영과 하선을 꼭 안아준다.
- 인서트 -
임신했다는 의사의 말에 기뻐하던 나영과 성민. 2부. 4씬.
“너만 좋으면 난 다 좋아...!”라고 말해주던 성민. 2부 16씬.
이 아기는 하늘이 주신 선물이야! 라고 말하던 성민. 2부 18씬.
하선의 돌잔치 때, 하선을 위해 노래불러주던 세 남자의 모습. 10부 55씬.
(현재) 나무에 기대어 앉아, 해맑게 웃는 하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나영.
옆에서 미소 지으며 보고 있던 성민의 영혼이 투명하게 사라진다.
나 영 : (평온해져서) 성민씨... 고마워. 이제 다른 생각은 안할게...
우리 하선이는 하늘이 주신 선물인데...! 자기가 나한테 남겨준, 최고의 선물인데...!
불어 온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간다. 그림처럼 나무 아래 오래도록 앉아 있는 나영과 하선.
22. 유전자 검사 센터 (낮)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광희모.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안내 데스크 앞으로 가 선다.
광희모 : (안내원에게, 조심스럽게) 여기... 유전자 검사로 친자확인 해주는데 맞죠...?
안내원 : 네. 친자 검사하시게요?
광희모 : 그게 머리카락으로도 되죠...?
안내원 : 그럼요. 검사 받으실 분 머리카락은 가져 오셨어요?
핸드백에서 조심스럽게 손수건 꺼내는 광희모.
광희모 : (손수건을 펴, 머리카락 가리키며) 여기요. 이게 아빠 꺼구, 이게 아기 꺼.
안내원 : (손수건 받고는 서류 내밀며) 여기 감정 의뢰서 써주시고요, 12시간 후에 오세요.
광희모 : 어머? 그렇게 빨리 결과가 나와요?
안내원 : 네...
광희모 : 세상이 참 좋긴 좋아졌다...!
씩 웃으며 서류를 작성하는 광희모.
23. 경찰서 (낮)
점심시간인지, 텅 빈 사무실.
멍하니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하선이가 출생할 때의 사진이 붙어있는 아기 수첩만 들여다보고 있는 경태.
- 인서트 -
나영과 함께 임산부 체조를 하던 경태. 3부 51씬.
분만실에서 머리를 쥐어뜯기던 경태. 4부 24씬.
처음 태어난 하선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경태. 하선에게 런닝셔츠로 기저귀를 해주던 경태. 5부 18씬.
하선과 나란히 앉아 얼굴에 오이조각을 달고 있던 경태. 8부 51씬.
“넌 내딸이야.” 놀이방에서 하선을 데리고 나오던 경태. 8부 61씬.
하선이와 미끄럼틀을 타던 경태. 10부 16씬.
그리고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르던 하선의 모습. “경태씨랑 결혼할 여잔 참 좋을 거예요.”라고 말해주던 나영. 11부 36씬.
경태의 겉옷을 쓰고 함께 빗속을 뛰어가던 나영. 11부 43씬.
(현실) 생각하며 혼자 미소를 짓지만, 이내 슬픈 표정이 된다.
경 태 : (작게 되뇌는) 나영씨... 나영씨...! (한숨) 돌아와요, 제발...
이때 문이 열리며, 동료 형사들이 우르르 이빨을 쑤시며 들어오자,
얼른 아기수첩을 접고 일을 하는 경태. 하지만 일이 잘 되지 않는다.
24. 세 남자의 집 2층 하선 방 (낮)
하선의 침대에서 베개를 들어 하선의 냄새를 맡아보는 광희. 쓸쓸히 베개를 내려놓고는, 모빌을 만져본다.
흔들리는 모빌 너머로, 나영의 화장대와 액자속의 나영을 돌아본다.
- 인서트 -
“하선이는 광희씨가 다 키우다시피 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던 나영. 11부 16씬.
하선의 오줌 세례를 받던 광희. 5부 4씬.
그림자놀이를 하며 행복해했던 하선과 나영의 모습. 8부 32씬.
첫 걸음마를 하던 하선의 모습을 경이롭게 보던 광희. 9부 48씬.
하선을 개줄에 묶어서 보던 장면. 10부.
크레파스로 벽에 낙서를 하며 그림을 그리던 하선. 10부 14씬.
세 남자 중 광희의 입에만 과자를 넣어주던 하선. 그런 하선을 안고 기뻐하던 광희. 10부 58씬.
나영과 함께 하선이와 컵 쌓기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던 광희. 12부 58씬.
광희의 발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는 나영. 8부 26씬.
취해서 나영의 어깨에 기대어 택시를 타고오던 광희. 10부 30씬.
광희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는 나영. 10부 32씬.
(현실) 액자속의 나영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광희. 쓸쓸하게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25. 동 1층 계단 ~ 욕실 앞 (낮)
2층에서 쓸쓸히 내려오는 광희. 문득 욕실 앞을 지나다가 나영의 더러워진 운동화를 발견한다.
운동화를 집어 들고 보는 광희.
26. 동 욕실 (낮)
칫솔로 나영의 운동화를 빨고 있는 광희.
27. 광희의 방 안 (낮)
나영이 선물로 주었던 오토바이 미니어처를 집어 든다.
미니어처 앞에 ‘앞만 보고 달려요, 광희씨!’ 라고 나영이 쓴 메모지가 보인다.
미니어처 든 채, 침대에 그대로 뒤로 벌렁 드러눕는 광희.
광 희 : (미니어처 들여다보며, 혼잣말) 나영씨도 앞만 보고 달려요...!
광희의 손에 들린 미니어처 오토바이가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난다.
28. 수현의 회사 (낮)
찜찜한 표정으로 트레이딩 모니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수현. 이때 김팀장이 수현에게 묻는다.
김팀장 : 오늘 안 잊었지?
수 현 : 네...?
김팀장 : 우리 애 돌잔치말이야. 돌잡이 할 때 쓰게 만원 짜리 몇 장, 빳빳한 걸로 꼭 준비해와.
한대리 돈이 우리 회사에서 제일 재수가 좋은 돈 아냐? 금광도 터지고.
수 현 : (힘없이) 네, 그럴게요...
김팀장 가고 나면, 다시 찜찜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수현.
29. 돌잔치 뷔페 (밤)
사회자의 진행으로 돌잔치가 진행되고 있다.
동료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입맛이 없는지 포크를 내려놓는 수현.
사회자 : 자, 그럼 여러분께서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돌잡이 순서를 시작하겠습니다.
(김팀장에게) 아버님. 오늘 돌잡이 때 특별히 돈을 내놓으실 분이 계시다구요?
김팀장 : 네! 우리 팀의 한수현 대리.
사회장 : 한수현 대리님 어디 계십니까...?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나가는 수현. 수현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돌상위에 내려놓자, 사회자가 핀잔을 준다.
사회자 : 에이~ 한 장은 너무 했다. 몇 장 더 내놓으시지...
어쩔 수 없이 몇 장 더 꺼내 내려놓는 수현. 수현, 들어가려는데...
사회자 : 그냥 들어가시면 섭하고... 우리 아기를 위해서 노래 한곡 하고 가시죠!
수현은 됐다는 듯 손사래 치지만, 사람들 모두 박수치며 ‘노래! 노래!’ 연호한다.
어쩔 수 없이 사회자에게 마이크 넘겨받는 수현.
수 현 : (노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그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수현의 노래가 시작되고, 그 노래 소리 위로, 하선의 돌잔치와 추억의 화면들이 쭉 이어진다.
- 인서트 -
돌잔치에서 하선을 위해 노래하고 있는 세 남자. 10부 55씬.
하선의 설사똥 세례를 받던 수현의 모습. 6부 17씬.
마트에서 잃어버린 하선을 찾아 헤매던 수현. 9부. 잃어 버렸던 하선을 찾고서 힘껏 안아주는 수현. 9부 39씬.
그날 밤. 하선과 왈츠를 추던 수현. 9부 40씬.
수현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서 ‘아빠’라고 쳐다보던 하선의 천진한 모습. 10부 15씬.
하선을 데리고 나영에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가르쳐주던 수현. 9부 28씬.
나영의 코피를 멈추게 하려고 목을 지압해주던 수현. 9부 46씬.
나영과 하선, 수현부가 즐겁게 웃던 모습. 11부 29씬.
“어디 갔다 와?” 라고 경태가 묻던 질문에, “데이트요!” “수현씨랑 좋은데 다녀왔어요.” 하던 나영의 모습. 11부 31씬.
돌잔치 때 노래 불러주던 수현과 그 모습을 행복한 듯 보고 있던 나영. 10부 55씬.
(현실) 목이 메어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멈추는 수현.
수 현 : (슬픔을 감추며, 사회자에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김팀장에게) 아기 돌, 축하드려요...!
꾸벅 인사하고는, 박수를 받으며 고개 숙이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수현.
무대에서는 사회자의 돌잡이 행사가 다시 요란하게 진행되고,
자기자리로 돌아가 앉지 않고, 그냥 밖을 향해 걸어 나가는 수현.
30. 밤거리 (밤)
침울한 표정으로 밤거리를 걸어가는 수현.
다른 거리. 쓸쓸하게 밤거리를 걸어가는 수현.
또 다른 거리를 힘없이 걸어가는 수현의 모습.
31. 아지트 술집 (밤)
문을 열고 기운 없이 들어서는 수현. 술집 안이 부산하고 시끄럽다.
주인이 수현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한다.
주 인 : 마침 잘 왔어. 저 친구 좀 어떻게 해봐...!
수현 돌아보면, 경태가 술에 취한 채 마이크를 붙잡고 흐느적거리고 있다.
경 태 : (술 취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한 마리 표범이고 싶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 (처량한 늑대소리) 오우~ 오오오~
(노래, 빽 목소리 높아지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안 좋은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경태를 붙잡는 수현.
수 현 : 가...!
경 태 : (술 취해) 어? 수현아...? 언제 왔어...? 야... 너도 노래해라...! (마이크 내밀며) 자...!
수 현 : (경태 잡아끌며) 가자니까...! 너 왜 이렇게 술을 먹었어...?
경 태 : (힘없이) 나영씨가... 나영씨가 떠났잖아... 하선이까지 데리고...!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그대로 경태를 끌고 나가는 수현.
32. 술집 앞 거리 (밤)
경태를 어깨동무하여 부축해 걸어가는 수현.
경 태 : (여전히 술 취해 노래)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수 현 : (데리고 가며) 그만 해...
경 태 : (입고 있는 노란셔츠 집어 보이며) 수현아, 이거 나영씨가 사준 옷이다?
수 현 : 알아...
경 태 : 내 평생 처음으로 노란색 옷을 입어 봤어... 나영씨 땜에...!
수 현 : 안 다니까...
경 태 : (괴로운) 정말... 내가 나영씨 좋아한다고 하면... 나 정말 나쁜 놈이지? 그지?
수 현 : (경태의 시선 피한 채) 아니야... 니가 왜 나쁜 놈이냐? 누굴 좋아하는 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니?
경 태 : (물끄러미 멍한) ....
수 현 : 얼른 가자.
착잡한 표정으로 취한 경태를 부축해 데리고 가는 수현.
33. 유전자 검사 센터 (밤)
심각한 표정의 연구원과 마주 앉아 있는 광희모.
광희모 : 검사 결과가 나왔나요?
연구원 : 네...
연구원이 서류 봉투를 광희모 앞으로 쓱 내민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서류 봉투를 받는 광희모.
광희모 : 혹시... 진짜 친자가 맞아요...?
잠시 신중하게 생각하는 연구원.
연구원 : 아닙니다...!
광희모 : (약간 실망하여) 그래요...? 이상하다...? 생긴 건 둘이 꼭 닮았는데...?
연구원 : (호기심 생기며) 네? 꼭 닮았다구요...?
광희모 : 네. 우리 애 어렸을 때하고 그 애가 아주 똑같이 생겼다니까요?
연구원 : (못 믿겠다는 듯)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광희모 : 뭔가 잘못 된 거 아니에요? 검사를 한번 더 해 봤으면 좋겠는데...?
연구원 :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잠시 뜸 들이더니) 개털을 가져오셨거든요.
광희모 : (놀라) 네...? 개... 개털이요?
연구원 : 더 정확히 말씀드려서, 흰색 코카 스패니얼의 콧털이라고 해야겠죠!
(개 종에 맞게 바꿔주세요. 화면상으로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광희모 : (어이없어) 네...? 코... 콧털이요...?
연구원 : 네... 개의 콧털...!
광희모 : (어안이 벙벙해) 개의 코털...
34. 출판사 사무실 (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뜬 ‘세 남자와 황금똥’ 만화. 만화를 재미있게 보며 깔깔거리며 웃는 희숙.
희 숙 : 아하하하... 최작가. 너무 웃겨. 너무 웃겨! 어디에 이런 재능이 숨어있었던 거야?
이내 웃음 멈추더니 후회막급의 표정이 되는 노희숙.
희 숙 : 어쩌지? 내가 쓰레기라고 했으니, 이젠 날 거들떠도 안 볼 텐데...? 거액의 베팅이라도 해야 될려나? 아...! 최작가...!
머리를 쥐어뜯는 희숙.
35. 광희 방 (밤)
‘세 남자와 황금똥’ 블로그를 살펴보는 광희.
‘왜 오늘은 작품을 올리지 않았어요?’ - 얼음공주’ 등... 작품을 빨리 올려달라는 라는 내용의 댓글들이 많이 달려 있다.
한숨을 쉬는 광희.
광 희 : (타이핑하며 읽는)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연재를 쉴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죄송합니...
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받는 광희.
광 희 : 왜, 엄마...?
36. 유전자 검사 센터 일각 (밤)
유전자 감정서 들여다보며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는 광희모.
광희모 : 너 애기 있던 방 청소했어? 안했어?
광 희 : (E) 왜 또?
광희모 : 엄마가 털을 잘못가져왔어...!
그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 괜히 광희모를 쳐다본다. 슬쩍 눈길 피하며 통화하는 광희모.
광 희 : (E) 무슨 털...? (하다가) 엄마! 지금 무슨 말하는 거야? 유전자 검사는 안 된다니까...!
광희모 : 그럼 어쩌려고? 넌 하선이가 누구 앤지 궁금하지도 않어?
37. 세 남자의 집 거실 (밤)
방에서 나오며 핸드폰 통화하는 광희.
광 희 :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그리고 하선이 방 아주 깨끗하게 청소해서 실오라기 하나 없으니까, 그렇게 알어!
신경질 난 듯 핸드폰 끊고는, 창고에서 진공청소기를 꺼내는 광희.
광 희 : (청소기 들고 2층으로 올라가려 하며) 또 와서 찾는다고 수선떨지 모르니까, 이 참에 아주 깨끗하게 싹 청소해놔야겠다...!
이때 문이 열리며 수현이 경태를 부축해 들어온다.
광 희 : 어...? (청소기 놓고 달려가며) 어떻게 된 거야? 둘이 같이 마셨어?
수 현 : 아니야. 경태 좀 받아. 술을 많이 마셨어...!
경 태 : (취해서 괴로운 듯) 나영씨... 하선아...!
재빨리 수현을 도와 경태를 부축하는 광희.
38. 경태 방 (밤)
경태를 침대에 눕히는 수현과 광희. 이불을 덮어 준 후, 길게 한숨을 내쉰다.
광 희 : (경태 보며) 자식...! 이럴 걸 왜 얘기는 꺼내가지고...!
수 현 : 누가 아니래냐...?
광 희 : 참! 2층 방 청소해줄 테니까, 오늘부턴 2층 니 방에서 자.
수 현 : 내 방에서...?
광 희 : 나영씨 그러고 나갔는데, 다시 돌아오겠냐? 불편하게 여기서 자지 말고, 올라가서 자.
수 현 : 어떻게 그래...? 그래도 거긴 나영씨 방인데...?
광 희 : 아래층에서 지내는 거 불편하다며?
수 현 : 그래도... 그대로 좀 놔두지, 뭐... (머쓱한 듯) 나 좀 씻을께...!
넥타이 풀며 밖으로 나가는 수현.
광희, 이런 수현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쳐다본다.
광 희 : 자식... 언제는 불편하다고 난리더니...
문득 널브러져 있는 경태를 바라보는 광희.
광 희 : 우리가 왜 이렇게 됐냐...
불을 꺼주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나가는 광희.
39. 옥탑방 안 (밤)
불을 꺼놓고 스탠드 불빛을 벽에 비추며 하선에게 그림자놀이를 해주는 나영.
세 남자와 즐겁게 했던 그림자놀이와는 비교되게, 왠지 쓸쓸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는 나영.
나 영 : (개 모양 만들며) 이건 강아지. 멍멍... 멍...멍! (새 모양 만들며) 이건 새. 짹짹... 짹짹... 이건...
나영이 토끼 모양을 만들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나 영 : 가만있어봐...? 토끼는 어떻게 만들었지...?
쓸쓸하게 생각에 잠기는 나영.
- 인서트 -
벽에 후레쉬를 비추며 그림자놀이를 해주던 세 남자. 강아지, 새, 토끼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움직인다.
(현실) 나영도 잠시 그때가 그리운 듯 미소 짓고는,
나 영 : (하선에게 묻는) 하선아, 엄마가 주책이다... 삼촌들 생각이 나네? 그래도 삼촌들이 우리한테 참 잘해줬는데... 그치...?
그렇다는 듯 나영을 보는 하선.
하 선 : (E) 맞아, 엄마...! 우리 아빠들한테 가자...! 아빠들 보고 싶어...! (현실의 목소리) 아빠... 파파... 대대...!
갑자기 걱정스러운 듯 하선을 빤히 들여다보며 요모조모 살펴보는 나영.
나 영 : 하선아... 엄마 눈엔 니가 아빠를 꼭 닮은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 삼촌들 중에 한명을 닮았다는 거니...?
(한숨) 아~ 말도 안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선을 보는 나영.
40. 어느 집 주방 (낮. 나영의 상상1)
반백의 머리로 늙은 수현이 젊고 발랄한 20대의 하선(나영이 분장)과 마주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
식탁 한가운데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장어구이가 놓여있다.
수 현 : (입맛 다시며) 장어구이네...? 하선아, 먹자...!
하 선 : 네, 아빠...!
동시에 젓가락을 집더니 내미는 하선과 수현. 동시에 장어 꼬리에 젓가락이 가 닿는다.
수 현 : 하선아! 장어 꼬리는 아빠 꺼야...!
하 선 : (아무렇지 않게) 아빠. 이 장어 누가 샀지?
수현의 고개 푹 꺾어지면,
하 선 : 내가 샀잖아. 내 피 같은 돈으로. 그럼, 꼬리 정도는 내가 먹어도 되는 거 아냐?
수 현 : 그거야 그렇지만...
그대로 장어 꼬리를 당당하게 집어 입에 넣는 하선. 맛있다는 듯 먹는다.
똥 씹은 표정으로 하선만 흘겨보는 수현.
수 현 : (E. 삐져서) 다음에 내가 산 거 먹기만 해봐라...!
하 선 : 몸통이라도 먹게 해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 아빠.
41. 옥탑방 안 (현실. 밤)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나영.
나 영 : (혼잣말) 안돼! 절대 안돼! 그 아빠의 그 딸이라고...! 짠순이 되면 절대 안돼!
(하다가 깜짝 놀라며)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지?
당황스러운 나영. 문득 다시 하선을 들여다보며 상상에 빠지는 나영.
42. 공원 (낮. 나영의 상상2)
공원 벤치에 앉아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는 노년의 광희. 역시 반백의 머리다.
광 희 : (통화하는) 어... 그래, 최여사... 그럼, 있다가 우리... 노인정에서 만날까...?
(사이) 좋아, 좋아... 요새 물 좋~다는 파고다 공원에서 우리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고...!
허리를 끙 피며 일어나는 광희.
이때 오토바이 한대가 요란하게 달려오더니, 광희 앞에 끽! 선다.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 발랑 까지게 생긴 남자.
뒷자리에 역시 20대의 발랑 까지게 생긴 하선(나영 분장)이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타고 있다.
하 선 :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아빠! 어디가?
광 희 : 어... 최여사하고 데이트가 있어서...
하 선 : (오토바이 탄 남자의 팔짱끼며) 잘 됐다. 그럼 나도 우리 준이 오빠랑 데이트 좀 하고, 늦게 들어가도 되지?
광 희 : 준...? 아니, 아침엔 믹키 만난댔잖아...?
하 선 : 미키오빠는 오전 타임, 준이 오빠는 오후 타임...!
광 희 : 뭐...?
43. 옥탑방 (현실. 밤)
질색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나영.
나 영 : 안돼! 그 바람기 닮으면 절대 안돼...! 그건 더 악몽이야...!!
끔찍해하며 난색을 표하는 나영. 기가 막히는 표정이다.
44. 체육관 (낮. 나영의 상상3)
‘나황하선’ 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도복을 입고 있는 20대 하선(나영 분장).
반백의 경태와 젊은 하선이 태권도복을 입은 채 마주 서 있다. 서로 대련 자세를 취하는 경태와 하선.
얍! 기합소리와 함께 그대로 격돌한다. 한동안 치고 막고, 피하며 대련을 하는 경태와 하선.
이때 돌연 하선의 발이 쭉 올라오며 경태의 턱 바로 앞에서 딱 멈춘다.
경 태 : (침 꼴딱 삼키며) 졌다... 하선아...!
하 선 : (여전히 발 든 채) 또 졌지? 아빠?
문득 코앞에 닿을 듯이 멈춰있는 하선의 발 냄새를 킁킁 맡는 경태. 하선의 발이 시커멓게 때가 끼었다.
경 태 : 근데 하선아, 너 발은 씻고 다니냐...?
하 선 : 아빠는...? 대한민국 형사가 발 닦을 시간이 어딨어? 밥 먹을 시간도 없는데? 범인 잡아야지...! 아비요...!
그대로 튀어 오르며 걸려있던 샌드백을 향해 거칠게 2단 옆차기를 날리는 하선.
45. 옥탑방 (밤)
더욱 기겁하며, 앉은뱅이 책상을 쿵 치는 나영.
나 영 : 이것도 아니야...! 이것도...! (문득 당혹스러운)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선 보고) 하선아, 넌 절대 그 세 사람 닮으면 안돼...? 넌 꼭 성민씨를 닮아야 돼...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는 하선이 천진하게 고개만 끄덕끄덕 한다.
이때 문이 열리며 나영부가 들어온다.
나 영 : (나영부에게) 아빠, 왔어...?
나영부 : (하선 앞에 앉으며) 하선이 오늘 잘 놀았니?
나 영 : 잘 놀았어.
나영부 : (비닐봉투 내밀며) 딸기 좀 사 왔다. 씻어서 하선이 좀 먹여라.
나 영 : 이런 거 안 사와도 되는데...
나영 비닐봉투 받아 씽크대로 가면, 하선을 안아 어르는 나영부.
나영부 : 그래, 하선이 맡길 데를 정했다구?
나 영 : (딸기 씻으며) 응... 저 아래, 구립 어린이집에 마침 자리가 있대. 원비도 싸고, 시설도 좋더라구.
나영부 : 내가 봐줘도 되는데...
나 영 : 아니야. 아빠도 일해야지. 어차피 이번 주는 내가 휴가니까, 하루에 몇 시간 씩만 맡기는 훈련을 했다가,
익숙해지면 다음 주부터 종일반에 맡기려구. 너무 걱정 말아요. 그리고 참, 하선이 짐이 그 집에 다 있는데...
나영부 : 하선이 짐?
나 영 : 응. 입힐 옷하고 유모차랑 장난감, 아기침대 같은 거... 내 옷도 다 거기 있는데... 어떡하지? 내가 가긴 좀 그렇고...
나영부 : 알았다. 내가 내일이라도 가서 가져오마. (나영을 힐끔 보며, 조심스럽게) 그런데 말이다...
그쪽 엄마들 말대로 유전자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니...?
나 영 : 뭐? 아빠까지 왜 그래?
씻은 딸기 가져와 내려놓으며 앉는 나영.
나영부 : 생각해봐라. 언제까지 너 혼자 하선일 키울 거야? 지금이라도 아빠가 누군지 밝혀서, 서로 의지하고 사는 게...
나 영 : (말 끊으며) 무슨 의지를 해?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그 세 사람 중에 한명이 하선이 아빠가 될 수는 없어...!
나영부 : 아니, 뭐... 아빠를 밝혀서 당장 결혼을 하라는 건 아니고, 그저 아빠가 누군지나 속 시원하게 알자는 거지...
보아하니 세 친구 다 괜찮은 놈들 같던데... 그저 양육비나 좀 보탬을 받으면서...
나 영 : (듣기 싫다는 듯) 아빠...! 하선인 누가 뭐라고 해도, 성민씨하고 나 사이에 태어난 애야.
자꾸 그런 말 하면, 나 여기서 하선이 데리고 나간다...?
나영부 : 아이구, 알았다, 알았어... 다신 그런 말 안 꺼내마...
기분 나쁜 듯 하선을 안고 딸기를 하나 입에 물려주는 나영.
나 영 : 하선아... 이거 먹어. 할아버지가 사 온 거야...
하선, 딸기를 만지작거리며 입에 넣으려하면,
나영부 : (옆에서 궁시렁) 세 녀석 다, 괜찮아 보이던데...?
나 영 : (듣기 싫다는 듯) 아빠...!
나영부 : 알았다, 알았어... 누가 뭐래냐...?
46. 세 남자의 집 전경 (아침)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세 남자의 집 전경.
47. 세 남자의 집 거실 (아침)
힘없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세 남자.
경태는 멍하니 앉아있고, 수현과 광희도 먹는 둥 마는 둥 입맛이 없다.
광 희 : (경태 보며) 야, 북어국 좀 먹어. 속 좀 풀리게.
수 현 : (힘없이) 그런데 북어는 어디서 나서, 국을 다 끓였냐...?
광 희 : 옛날에 나영씨가 야구 방망이로 두드려 놨던 거야...
수 현 : (여전히 힘없이) 아, 그거...? 유리창 깨졌을 때...?
광 희 : 니가 한 그릇에 얼마니 하면서, 나영씨 엄청 면박 줬었잖아...
수 현 : 내가 언제 면박을 줬어...? 그냥 좀 비싼 북어국이라고만 했지...
광 희 : (경태에게) 안 먹을 거야...?
그제야 멍한 눈으로 북어국을 한 입 떠 후루룩 먹는 경태.
경 태 : 이 맛이 아니야...!
그대로 숟가락 내려놓고는 자기 방으로 가는 경태.
광 희 : (경태 뒤에 대고, 미안한 듯) 왜? 맛이 없어? 이상하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했는데...?
(북어국 한 숟가락 떠먹더니) 맛이 좀 심심하네...?
수 현 : (힘없이) 아니야... 광희 넌 제대로 잘 한 거야... 우리가 그동안 나영씨 입맛에 너무 길들여져서 그런 거지...
나도 밥맛이 없다...!
미안한 듯 숟가락 놓고 일어나는 수현. 광희도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광 희 : (혼잣말) 소금을 더 팍팍 칠걸 그랬나...? 너무 간이 잘 맞네?
48. 옥탑방 마당 (낮)
하선을 유모차에 앉힌 채, 대야에 들어가 발로 밟아 이불빨래를 하고 있는 나영.
깊은 한숨쉬며, 저벅저벅 힘없이 빨래를 밟고 있다.
이때 핸드폰이 울리면 꺼내 들여다본다.
나 영 : (기운 없이, 받으며) 네, 팀장님...
49. 리서치 T/F 팀 사무실 (낮)
컴퓨터를 장착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등 부산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는 찬영.
찬 영 : 휴가는 잘 보내고 있어요?
나 영 : (E) 네... 근데 어딘데 이렇게 시끄러워요?
찬 영 : 아, 사무실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있어요.
나 영 : (E) 인테리어요?
찬 영 : 회장님께서 우리 팀을 적극 지원하라고 하신 거 잊었어요? 송나영 파트장님?
나 영 : (E) 네? 뭐라구요?
찬 영 : 이제 팀원들도 보충되고 할 테니, 나영씨도 계속 팀원만 할 순 없잖아요. 나영씨가 고객지원 파트장을 맡아줘요.
흐뭇하게 ‘고객지원 파트장 송나영’이라고 쓴 명패를 나영의 책상에 내려놓는 찬영.
50. 옥탑방 마당 (낮)
빨래를 밟다 말고 대야 밖으로 나오는 나영.
나 영 : 정, 정말이에요...?
찬 영 : (E) 파트장되면 더 바빠질 테니, 이번 휴가 잘 보내요. 하선이도 잘 있죠?
나 영 : 네...
찬 영 : (E) 안 본지 얼마 안됐는데, 또 보고 싶네?
나 영 : (씩 웃더니 하선을 보며) 하선이도 팀장님 보고 싶대요.
찬 영 : (E) 그래요? 난 하선이가 아니라 나영씨 보고 싶다는 건데?
나 영 : (놀라 당황한다. 잠깐 어색한 침묵)
찬 영 : (E) 와... 무안하네? 여보세요? 전화 끊었어요?
나 영 : 아니요... 놀리지 마세요...
찬 영 : (E) 아무튼 송파트장님 휴가 잘 보내고 다음 주에 봅시다.
나 영 : (어리둥절) 네...
핸드폰을 끊고는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이더니, 이내 하선을 보며 웃는 나영.
나 영 : 하선아... 엄마가 승진을 했어...! 승진...! 파트장이야! 이름도 멋있지? 파트장!
하선에게 쪽쪽 뽀뽀를 하는 나영.
51. 경찰서 (낮)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경태. 종희도 이런 경태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종 희 : (조심스럽게, 경태에게) 나황형사님, 점심 안 드세요...? 제가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오랜만에 알탕 어때요? 팔 천원짜리?
경 태 : 생각 없어... 남순경이나 먹고 와...
어쩔 수 없이 혼자 나가는 종희.
이때, 의경 2명이 40대 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를 데리고 와 경태 앞에 앉힌다.
의 경 : (조서 뭉치 경태에게 내밀며) 절도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잡니다.
여자를 경태 앞에 앉히고, 가버리는 의경들.
경태, 고개 숙인 채 앉아있는 여자를 한번 힐끗 보고는 조서를 읽는다.
경 태 : (조서 읽는) 금일 11시 15분 경... 동네 슈퍼에서 우유 15팩... 3만 2천원 상당을 절취하여...
(여자 보며) 아니, 웬 우유를 이렇게 많이 훔쳤어요? 어디다 쓸라고?
여 자 : (고개 들지 못하고) 죄송해요... 그저 어린 딸한테 마음껏 우유를 먹게 해 주고 싶어서...
경 태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여 자 : (눈물 훔치며) 세 살 난 딸이 하나 있는데, 남편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내서 지금 병원에 누워있거든요...
집에 돈은 떨어지고... 마침 일하던 식당에도 못 나가게 돼서... 죄송해요... 흑흑...!
경 태 : (마음이 안 좋은) 네...
52. 슈퍼마켓 (낮)
계산대에 앉아 있는 슈퍼마켓 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있는 경태.
경 태 : 굶고 있는 아이 때문에 그랬다잖아요...! 물론 아이 엄마도 잘한 건 아니지만,
배고파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한번만 용서해주시죠...?
주 인 : (안됐다는 듯) 그 아줌마, 사정은 딱하지만, 나도 우리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구요.
여기서 한 달 내내 과자 부스러기 팔아봐야, 얼마나 남는다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봐주면, 난 어떻게 먹고 살아요?
경 태 :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선생님 마음 쓰신 거까지 포함해서, 5만원을 드릴 테니까,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주 인 : 뭐... 나야 좋지만... 형사님께서...
경 태 : 그럼 그렇게 하세요...!
재빨리 지갑에서 돈 꺼내 내미는 경태.
주인이 미안하다는 듯 받는다. 좋아하는 경태.
경 태 : (생각난 듯) 가만... 세 살짜리 애를 키우려면, 물 티슈 하고, 요구르트 같은 것도 좀 필요하지 않나...?
문득 카운터 옆에 놓여있는 장바구니 들고 냉장고로 가더니, 한 손에 요구르트를 서너 팩 꺼내 집어넣는 경태.
53. 백화점 (낮)
쇼핑백을 잔뜩 들고 서연을 따라가는 수현. 마침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부가 보이자, 고개를 돌려 멍하니 본다.
서 연 : 뭘 그렇게 보세요?
수 현 : (무의식중에) 애가... 참 이쁘네요...
서 연 : 수현씨 애들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수 현 : (피식 웃으며) 뭐, 애들 귀엽잖아요. 이쁘구...
서 연 : 그래요...? 난 애들은 딱 질색인데? 시끄럽고, 정신없고...?
수 현 : 나도 옛날엔 그랬었어요.
서 연 : 그럼 지금은 좋다는 건가요?
수 현 : (서연 보며, 당황한 듯) 네?
서 연 : (진지하게) 그 부분은 확실히 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미래가 달린 문제니까.
가치관이 다르면, 결혼생활이 힘들지 않겠어요?
수 현 : (그제야 감 잡고, 과장 되게) 아뇨...! 지금도 애들 별로 안 좋아해요...! 별로...!!
서 연 : (먼저 가며) 난 내 인생을 애나 키우면서 낭비하고 싶진 않거든요...!
굳은 표정으로 서연을 바라보고 있는 수현.
서 연 : (돌아보며) 안 갈 거예요?
수 현 : (그제야, 억지웃음 지으며) 아... 가야죠...!
재빨리 서연 쪽으로 걸어가는 수현.
54. 서연의 차 안, 수현 회사 앞 (낮)
서연의 차가 와서 멎고, 차에서 내리는 수현.
수 현 : 그럼 잘 들어가요. 점심 잘 먹었어요.
서 연 : (쇼핑백 하나를 내밀며) 이거요!
수 현 : 이게 뭐예요?
서 연 : 와이셔츠 하나 샀어요. 수현씨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수 현 : (받으며) 뭐 이런 걸...
서 연 : 이거 실크라서, 관리가 중요한데... 지난번처럼 다리미 자국내시면 안돼요?
수 현 : 아,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서 연 : 그럼 갈게요.
서연의 차가 떠나자, 쇼핑백을 들고 돌아서는 수현. 양복 주머니에서 맛사지용으로 주웠던 돌멩이를 꺼내 쳐다본다.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다 씁쓸하게 회사로 들어간다.
55. 세 남자의 집 앞 (낮)
나영부를 도와 하선의 짐을 이삿짐 트럭에 싣고 있는 광희. (광희는 슬리퍼 차림이다.)
나영부 : (손바닥 털며) 다 됐나...?
광 희 : (아기침대를 씁쓸하게 만져보며) 두고 간 물건 나오면,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나영부 : 당분간 전화는 하지 말게. 나영이 때문에 말이야, 전화 받기가... (껄끄럽다는 표정.)
광 희 : 그래요...?
나영부 : (광희의 어깨 짚으며) 아무튼 자네들... 그동안 정말 고마웠네.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좀 전해주게.
광 희 : 네...
나영부가 트럭에 타려고 조수석으로 향하면,
광 희 : (다급하게) 저기... 나영씨하고 하선인 정말 잘 있죠...?
나영부 : 그럼. 잘 있지... 나영이도 충격이 심해서 그런 거니까, 자네들이 이해해주게.
광 희 : 네...
나영부 : 뭐, 시간이 지나면 나영이도 좀 풀어지지 안 겠어?
미안한 듯 차에 타는 나영부.
광 희 : (다급히) 그래도, 어디 사는지 주소라도 알아둬야...
나영부 : 그러다 나영이 알면 나 큰일나네... 나, 감세. (운전사에게 손짓하면)
출발하는 트럭. 트럭을 바라보다 힘없이 돌아서는 광희. 이때 계단 밑에 세워둔 자전거가 보인다.
광희, 갑자기 얼른 자전거를 꺼내 타더니, 트럭을 향해 쫓아간다.
56. 거리 (낮)
멀리 하선의 짐들을 싣고 달리는 트럭. 헉헉거리며 패달을 저어, 힘들게 트럭을 따라가고 있는 광희.
페달을 젓던 한쪽 슬리퍼가 벗겨지며 바닥에 떨어지지만, 개의치 않고 맨발로 패달을 저어 열심히 트럭을 따라 달린다.
57. 다른 거리 (낮)
건널목 앞에 멈춰서있는 트럭.
한쪽 발은 맨발인 채로 열심히 패달을 저어 자전거를 타고 오는 광희. 겨우 트럭을 쫓아오면,
신호등이 바뀌었는지, 건널목 앞에 멈춰있던 트럭이 다시 출발한다.
다시 열심히 트럭을 쫓아가는 광희의 자전거.
58. 경찰서 복도 (낮)
경태에게 꾸벅 인사하는 아줌마.
아줌마 : 너무 감사 드려요...! (손에 들린 비닐봉투 들어 보이며) 이렇게 먹을 거까지 다 주시고...!
아무리 어려워도 도둑질만은 하면 안 되는데...! 내가 뭐에 홀렸는지...!
경 태 : (주머니에서 봉투 꺼내 내밀며) 참, 이거...
아줌마 : 이건 뭐예요...?
경 태 : 급할 때 쓰세요. 당분간...
아줌마 : 아니, 어떻게... 안돼요, 안돼요...
손사래 치며 받지 않으려하는 아줌마. 하지만 경태, 억지로 아줌마의 손에 봉투를 쥐어준다.
경 태 : 얼마 안돼요...!
아줌마 : (어쩔 수 없이 받으며) 살기 힘들어서 애 데리고 죽을 생각까지 했는데...!
경 태 :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이상한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저한테 언제든지 전화 주시고요. 아셨죠?
아줌마 :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할지...!
경 태 : 빨리 가보세요.
아줌마 :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깊게 인사하고는 걸어가는 아줌마. 마침 복도 끝에 허름한 옷을 입은 할머니가 아기를 안은 채, 아줌마를 보고 있다.
재빨리 달려가 아기를 받아 안는 아줌마. 아줌마가 아기를 안은 채 경태에게 깊게 인사한다.
경 태 : (웃으며 손 흔들어 주며, 그리운 마음에 중얼거리는) 나영씬 잘 있나...? 하선이라도 한번만 봤으면...!
이때, 경태의 핸드폰이 울리며 메시지가 들어온다. 핸드폰 열어 확인해보는 경태.
광 희 : (E) 나영씨가 있는 곳을 알아냈어. 와볼래?
경 태 : (핸드폰 덮으며) 가야지...!
59. 수현의 증권회사 회의실 (낮)
회의 테이블에 앉아, 동료들과 함께 김팀장의 증권 브리프를 듣고 있는 수현.
핸드폰 화면에 떠있는, ‘나영씨가 있는 곳을 알아냈어. 와볼래?’ 광희의 메시지를 보며 고심하고 있다.
김팀장 : (서류 보고 발표하는) 향후 연준의 금리동결은 채권가격 하락과 달러 가치 강세,
그리고 증시 안정을 이끌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도저히 안 되겠는지, 손을 드는 수현.
수 현 : (미안한 듯) 저, 팀장님... 제가 기업 탐방을 좀 가봐야 할 거 같은데...
김팀장 : 회의 끝나고 가지? 좀 있으면 끝나는데....?
수 현 : 그게... 아무래도 지금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일어서며)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하고는 주섬주섬 서류 챙겨 황급히 나가는 수현.
김팀장과 동료들이 의아한 듯 수현을 돌아본다.
60. 옥탑 방 앞 골목 (낮)
담벼락 뒤에 숨어서 나영의 옥탑 방을 올려다보고 있는 세 남자.
남자들 뒤로 광희의 자전거가 보이고, 광희는 한쪽 발이 맨발이다.
수 현 : (광희에게) 저 집이라구?
광 희 : 응...
경 태 : 하선이 안고 오르락 내리락 하기 힘들텐데... 난간도 낮아 보이고... 우리 하선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광 희 : (발이 따가운지 보며) 아이, 씨. 발바닥 다 까졌네...
경 태 : (시선은 옥탑방 향한 채, 비닐봉지 내밀며) 참, 여기 신발.
광희, 비닐봉지에서 더러운 운동화를 꺼낸다.
광 희 : (질색하며) 아이, 냄새...!
경 태 : 경찰서에서 신던 거야. 그냥 신어.
광 희 : 하나 새 거 사오지...!
경 태 : 그럴 시간이 어딨어?
광희 기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경태의 운동화를 신는데, 이때 쪽문이 열리며 나영이 나온다.
재빨리 몸을 숨기는 세 남자. 이내 얼굴 살그머니 내밀며 나영의 모습을 보는 세 남자.
어딘가로 향해 걸어가며, 스쳐 지나가는 나영의 모습.
아련한 눈빛으로 그런 나영을 쳐다보는 세 남자.
수 현 : 어딜 가는 거지...?
몸을 숨기며 나영을 몰래 따라 가는 세 남자.
61. 어린이 집 앞 (낮)
하선을 안고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나영.
멀리 모퉁이 벽 뒤에 숨어서 세 남자가 이런 나영을 쳐다보고 있다.
광 희 : 하선일 저 어린이 집에다 맡기나 봐...
경 태 : 아씨, 어린이 집에 불이라도 나면...
수 현 : 너, 그 입 좀 다물지 못해...!
수현의 핀잔에 입 다무는 경태.
이때, 골목을 걸어가던 나영의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빠라바라바라밤~!’ 경적을 울리며 위험하게 휙 지나간다.
깜짝 놀라는 세 남자.
경 태 : (튀어 나가려 하며) 저...! 저 나쁜 새 가...!!
수 현 : (말리며) 야, 좀 참아...!
경 태 : 니들 저 오토바이 번호 봤어? 저 놈을 헬멧 미착용으로 당장...!
이때, 나영이 뒤에서 들리는 소란에 힐끗 돌아본다. 재빨리 담벼락 뒤로 몸을 숨기는 세 남자.
광 희 : (몸 숨긴 채, 경태에게) 너, 볼륨 좀 줄여...!
경 태 : (찍소리 못하고) 알았어...
다시 빼꼼히 고개 내밀어 보는 세 남자.
수 현 : 어...? 없잖아...?!
재빨리 뛰어나와 주위를 살펴보는 세 남자. 하지만 어디에도 나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수 현 : 아무튼 넌...! 너 때문에 하선이 얼굴도 제대로 못 봤잖아...!
화가 나는 지, 경태의 뒷통수를 툭 때리는 수현.
광 희 : (덩달아 한대 치며) 그러게 말이야...!
경 태 : (면목 없는 듯) 그래도... 하선이 있는 데는 알아냈잖아...! (헤벌쭉 웃으며) 이제부터 매일 와서 보면 되지! 헤헤헤...!
62. 몽타주
경쾌한 음악과 함께, 세 남자가 나영을 피해서 몰래 하선을 살펴보는 몽타주가 펼쳐진다.
- 어린이 집 유리창 (낮)
유리창 밖에서 올라오는 광희의 얼굴. 창문틀을 붙잡고 두리번거리며 하선을 찾고 있다.
이내 하선이 블록을 쌓아 올리는 모습을 본 광희. 한손은 창틀 붙잡고, 한손으로 핸드폰 꺼내,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다 말고 ‘어어...!’ 버둥대며 쓰러지는 광희. 보면, 발밑에 벽돌을 높이 쌓아놓고 올라와서 보다가 넘어진 것이다.
- 공원 & 경찰서 & 증권회사 (교차. 낮)
광희는 공원 벤치에 앉아 깨진 무릎에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며 통화하고 있고,
경태는 경찰서에서, 수현은 증권회사에서 각각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다.
수 현 : 야, 하선이 오늘은 어떻디?
광 희 : 곤지곤지 하더라고...
경 태 : 뭐? 곤지곤지?
수 현 : 사진 좀 보내봐.
광 희 : 알았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전송시키는 광희. 경태와 수현이 사진을 열어보면, 창문에 가려 하선의 발가락만 보인다.
경 태 : (실망해서) 뭐야? 이게...? 발가락 밖에 안보이잖아...?
광 희 : 이것도 목숨을 걸고 찍은 거다?
수 현 : 야, 안되겠다. 우리 이 기회에 핸드폰 좋은 걸로 하나씩 사자. 영상통화 되는 걸로...!
광 희 : 야, 영상통화 되는 핸드폰이 얼마나 비싼데? 나, 돈 없어. 개털이야!
수 현 : 내가 좀 보태 줄게.
경 태 : 나도...!
- 옥탑 방 앞 골목 (밤)
옥상에서 하선을 안고 바람을 쐬고 있는 나영을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경태.
경 태 : (아련한 듯) 나영씨...! 하선아...!
나영이 문득 고개 돌리면, 재빨리 벽 뒤로 숨는 경태.
- 증권회사 (낮)
새 핸드폰으로 광희가 찍어 보낸 영상통화 화면을 보고 있는 수현.
나영이 놀이터벤치에서 하선을 무릎에 앉혀놓고 짝짝꿍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수 현 : (화면 보다가, 혼잣말) 우리 하선이가... 짝짝꿍을 잘하네...?
(문득 나영에게 시선이 고정되며) 어...? 나영씨... 내가 사 준 옷 입었네...?
광 희 : (E) 어? 뭐라구?
수 현 : 아냐, 아무 것도...!
이내 카메라 줌인 되며 나영과 하선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자기도 몰래 화면을 보며 미소 짓는 수현.
수 현 : 역시...! 비싼 핸드폰이 좋다! 돈이 아깝지가 않아...! 하하하...!
63. 옥탑방 앞 (낮)
깨끗하게 빤 나영의 운동화를 현관 앞에 놔주는 광희. 세 남자가 사준 아기신발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걸 발견한다.
광 희 : 어? 저기 우리가 사준 신발도 있다...
새 핸드폰으로 세 남자가 사준 신발들을 촬영하고 있는 광희.
64. 경찰서 (낮)
역시 새 핸드폰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경태.
경 태 : (새 핸드폰에 대고) 야, 내가 사준 운동화 좀 비춰봐.
광희가 경태가 사준 운동화를 비춰준다.
경 태 : 우씨...! 내가 사준 운동화는 많이 안 신겼나봐...! 깨끗해...!
광희가 자기 쪽으로 카메라 돌리며 웃는다.
광 희 : (광희모습 나오면서, E) 야,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때 화면 속의 광희의 뒤로 나영의 모습이 보인다. 깜짝 놀라는 경태.
경 태 : (놀라) 광, 광희야...! 뒤에... 뒤에...!
광 희 : (돌아보며, E) 뒤에 뭐...?
65. 옥탑방 앞 (낮)
뒤를 돌아보는 광희. 나영이 하선을 안은 채, 화난 표정으로 광희를 보고 있다.
나 영 :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광 희 : (당황해서, 핸드폰 속의 경태 가리키며) 경태랑 통화를 좀...!
얼떨결에 핸드폰을 나영을 향해 내미는 광희.
경 태 : (E, 화면 속에서 꾸벅 인사하며) 안... 안녕하세요, 나영씨...! 잘 있었니? 하선아...?
하 선 : (E, 나영의 품에 안겨) 아빠 거기서 뭐하는 거야? (현실의 소리) 아빠... 아빠...!
하선이 광희에게 가려고 손을 뻗으며 운다. 얼른 하선을 달래며 뒤로 숨기며 돌려 안는 나영.
나 영 :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광 희 : (안타깝게 하선을 보며) 저기 그게... (말 못하면)
나 영 : 저희 아빠가 가르쳐 줬죠?
광 희 : 아니에요...! 제가... 몰래 따라왔어요...
나 영 : 그만 가주세요. 전 세 분하고 하고 싶은 말 없어요.
광희를 스쳐 옥탑방 쪽으로 향하는 나영.
광 희 : (뒤에서) 저기 나영씨...!
나 영 : (돌아보지 않은 채) 자꾸 찾아오시지 마세요. 또 찾아오시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버릴 거에요!
광 희 : 그래도 하선이가 걱정 돼서...
나 영 : 하선이 걱정은 하지마세요. 제가 잘 키울 테니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앞으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다시는 하선이 근처에 나타나지 마세요. 그럼...
광 희 : 저기 나영씨...
뒤도 안돌아보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영.
섭섭한 표정으로 나영이 들어간 문만 쳐다보는 광희. 안되겠는지, 돌아서서 간다.
66. 동 옥탑방 안 (낮)
하선을 안은 채, 문에 기대 서 있는 나영. 잘 한 건지, 아닌지, 마음이 편치 않다.
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보는 나영. 밖엔 아무도 없다.
나 영 : (혼잣말) 광희씨.. 미안해요...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이렇게 해야 세 분도 마음정리 하실 거고...
하 선 : (E, 나영의 품에 안긴 채) 싫어, 싫어...! 난 아빠들 보고 싶단 말이야...! 파파! 파파...!!
나 영 : 하선아, 너도 광희 삼촌 보니까 좋아? 삼촌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었지...? 하지만 이젠 안돼. 만나선 안돼...
미안해. 하선아... 미안해...?
나영도 속상한 듯 고개를 돌린다.
67. 주택가 골목 (낮)
잔뜩 걱정스런 얼굴로 비닐봉투에 든 우유를 들고 골목길을 걸어가는 경태.
경 태 : (혼잣말) 아이씨.. 어쩌지..? 나영씨가 화가 많이 난 모양인데?
이젠 진짜로 하선이 얼굴도 못 보겠네? 어떻게 해야 풀어지려나...?
한숨 쉬고는, 이내 허름한 집 대문 앞으로 와 서는 경태.
경 태 : (문 두드리며) 아주머니, 계세요? 저 나황경삽니다...! 계세요...?
그런데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경 태 : 어디 가셨나...?
삐걱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경태.
68. 허름한 집 마당 (낮)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경태.
경 태 : (방 안에 대고) 계세요? 저기... 우유하고 먹을 걸 좀 사왔어요... 아주머니...? 안 계세요...?
이때 방안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한 느낌이 들며, 미닫이 방문을 드르륵 여는 경태. 이때 집 안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문을 박차며 휙 튀어 나온다.
깜짝 놀라는 경태. 방안엔 아줌마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묶여있고...
순간적으로 시커먼 그림자를 향해 달려드는 경태.
경 태 : (달려들며) 너 뭐야!
튀어 나온 그림자가 경태의 옆구리에 식칼을 푹 꽂는다. ‘헉...!’ 숨을 몰아쉬며 칼날을 붙잡는 경태.
튀어나온 그림자가 더 힘을 줘, 경태를 찌른다. 무너지듯, 피를 흘리며 스르르 쓰러지는 경태. - 1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