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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살인에 관한 긴 이야기!
등단 39년을 맞은 박범신의 39번째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목숨보다 더 사랑한 여자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었던 야수 같은 남자의 처절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교도소에서 출옥한 뒤 노숙자로 떠돌다 고향 도시로 돌아온 주인공 '나'는 5층짜리 원룸빌딩 '샹그리라'의 관리인으로 고용된다. 샹그리라의 주인이자 도시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배하고 있는 이사장은 폭력과 악의 화신 같은 존재이다. 이사장의 행각을 목도하고 잔인성을 깨달아가는 동안 '나'의 손바닥에 숨어 있던 말굽이 모습을 드러내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급기야 '나'는 그 말굽으로 살인들을 저지르게 된다. 폭력이 거듭되는 동안 잊혀졌던 '나'의 기억이 회복되고,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사랑했던 여인과 비극이 일어났던 그날을 기억하게 되는데….
☞ 북소믈리에 한마디!
2010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 총 120회로 연재된 작품이다. 작가는 마술적 리얼리즘과 하드고어라는 형식을 시도하며, 맹목적인 폭력의 잔혹함을 강렬하게 형상화했다.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 문명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폭력의 위태로운 재생산 구조와 인간 마성의 근원에 대해 묻는다. 또 한편으로는 야수적 욕망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신성한 순수와 불멸의 사랑에 바치는 우화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프롤로그 : 살인의 기록
정강이뼈
샹그리라
밝은 눈
클레멘타인
가족회의, 본능적으로
단식, 개인수련
대화
돌아눕는 뼈
탄생 이전에서 온 슬픔
에필로그 : 말굽이 하는 말
작품해설 : 죽음은 죽지 않는다Ⅰ양윤의
우리는 그날 함께 죽고 싶었으며
또 함께 죽음을 이겨내고 싶었다
등단 후 39년, 박범신의 39번째 장편소설
박범신만이 도달할 수 있는 하드고어의 새로운 발견
박범신 신작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가 ‘문예중앙’에서 출간되었다. (2010년 11월 1일부터 2011년 4월 22일까지 여섯 달 동안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joongang.co.kr)에 총 120회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박범신이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본격적으로 차용한 첫 번째 소설이며, 지금까지 집필했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하드고어(Hardgore)적 폭력 묘사로 인간 마성(魔性)의 근원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소설이다. 또 다른 한편 야수적 욕망의 난장(亂場)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신성한 순수와 불멸의 사랑에 바치는 우화이기도 하다.
“나는 이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로, 번지르르한 자본주의 문명 뒤에 은밀히 장전돼 있는 폭력성의 비정한 탄환을 가차 없이 발사했다고 느낀다. 내가 쓴 것 같지 않다. 오늘의 이 문명이 나를 앞세워 썼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기 차용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기법은 우회로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향해 직진보행하기 위한 첩경을 선택한 것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리얼리즘이다. (...) 이 소설에서, 손에 말굽이 생기는 마술적인 장치는 내적 필연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동의를 얻을 자신을 가지고 있다.”
―박범신, 《문예중앙》 2011 여름호 인터뷰에서
소설의 주인공 ‘나’는 4년간 수감되어 있던 교도소에서 출옥한 뒤 노숙자로 십여 년을 떠돌다 고향 도시로 돌아온다. 그곳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묻고 떠난 뒤,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수천 번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강력한 힘에 이끌리듯 돌아온 것이다. ‘개백정’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무허가 판잣집이 사라진 자리에는 음산하고 위압적인 5층짜리 원룸빌딩 ‘샹그리라’가 들어서 있다. 나는 그 앞에서 우연히 만난 기괴한 외모(젊고 건장한 사내의 몸에 노인의 얼굴을 가진)의 집주인 이사장에게 빌딩 관리인으로 고용되고, 어둡고 축축한 욕망의 배설관 같은 그곳에 숨겨진 비밀들에 한 발짝씩 다가가게 된다. 샹그리라엔 메마른, 불모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 샹그리라에 사는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천태만상은 자본주의 문명의 남성적 야수성과 잔혹성의 표본이다. 샹그리라의 주인이자 그 도시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배하고 있는 군주인 이사장은 폭력과 악의 화신 같은 존재다. 그의 비정한 행각을 목도하고 잔인성을 깨달아가는 동안 나에게는 믿기지 않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나의 손바닥에 숨어 있던 말굽이 모습을 드러내고, 위기감과 분노에 빠지는 순간들마다 걷잡을 수 없이 자라서 나는 그 말굽으로 희대의 연쇄살인에 버금가는 살인들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말굽이 휘두르는 불가해한 폭력이 거듭되는 동안 망각의 늪에 빠져 있던 나의 기억이 회복되어, 나는 ‘샹그리라의 눈먼 안마사 여인’이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사랑했던 ‘여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래전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던 그날, 내가 화염 속에 뛰어들어 구했던 소녀. 나의 얼굴에 새겨진 흉물스런 화상 자국은 그애의 아버지를 구하려고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다가 얻게 된 상처였다. 나와 여린의 어린 날에 대한 기억과 함께 이사장이 과거 특수부대 부대장으로 저지른 끔찍한 사건들도 드러나고, 그로 인해 나와 여린의 삶이 어떻게 파멸되어왔는지도 밝혀진다. 이사장이 장악하고 다스리는 ‘죽임’의 장소, 생명의 폐기장소에서 사이코패스처럼 살인을 거듭하는 말굽을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하는 나는 그 악의 잿더미에서 여린을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등단 후 39년, 박범신의 39번째 장편소설
박범신 소설 특유의 흡입력과
또 다른 문학적 편력의 예고 같은 변화들이 만나고 있는 작품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올해로 등단 39년째를 맞은 작가 박범신의 39번째 장편소설이다. 올여름 25년간 몸담았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직을 떠나며 소설가로서의 새 출발을 앞두고 여섯 달간 치열하게 매달려 집필한 소설인 만큼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독자들의 오랜 지지를 받고 있는 박범신 소설 특유의 흡입력과 앞으로 새롭게 펼쳐나가게 될 또 다른 문학적 편력의 예고 같은 변화들이 만나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손바닥에서 자라나 폭력의 화신으로 날뛰는 말굽, 이사장의 몸에 현현되는 괴이한 징후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먼 여린의 비밀스러운 방의 묘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스릴과 섬뜩한 호러의 분위기 등, ‘맹목적인 폭력의 잔혹함’을 그 어느 소설에서보다 강렬하게 형상화하는 미학적 장치들도 쓰였다.
“작가노릇, 지금까지 정확하게 38년을 했는데, 앞으로 30년이 더 남았다면 이제부터 뭔가 다시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가로서 스스로 무르익었다고 느낀다. 교만하다고 비난해도 할 수 없다. 이제 온갖 테크닉도 마음대로 두려움 없이 구사할 수 있고, 쓸 거리도 여전히 넘친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박범신, 《문예중앙》 2011 여름호 인터뷰에서
자본의 독재가 지배하는 세계의 폭력적 구조와
무한히 확대 재생산되는 욕망의 노예로 사는 가짜주체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싸늘한 자본주의적 국가가 폭력의 컨설턴트로 군림하기 시작할 때 무한히 파생되는 폭력의 고리들을 냉철하게 증언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들을 복원해가며 이사장이 ‘인간성이 완전히 뿌리 뽑힌’ 기형의 괴물로 탄생되기까지를 추적하는 과정은 ‘무한 증식하는 폭력’의 연대기다. 말굽을 통해서 주인공과 이사장의 폭력은 무한히 이어진다. 문학평론가 양윤의는 주인공의 손바닥에서 자라는 말굽을 ‘폭력으로 이어진 인간관계의 결절점(폭력?폭력?폭력?폭력…)’과 ‘모든 폭력의 누적과 총합(폭력?폭력?폭력?폭력…)’의 기호로 보았다.(작품해설 <죽음은 죽지 않는다> 참조)
소설 출간을 앞두고 《문예중앙》과 가진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독재자의 독재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무서운 ‘자본의 독재가 지배하는 세계의 폭력적 구조’와 그곳에서 ‘무한히 확대 재생산되는 욕망의 노예로 사는 가짜주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힘들게 쓴 소설이다. 많이 아프기도 했고, 악몽도 많이 꾸었다. 이런 이야기를 꼭 써야 하나, 회의에 빠진 순간도 있었다. 나는 이번 소설에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잔인하고 무참하게. 쓰면서 내가 왜 몸서리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가 배후에 거느리고 있는 가감 없는 현실이다. 폭력은 인간문명의 이중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예민한 키워드다. 잘 차려입고 고상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이대어 묻고 싶었다. 당신의 가슴속에 진짜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당신은 진짜 인간이냐고.” ―박범신, 《문예중앙》 2011 여름호 인터뷰에서
태어남과 함께 부여되는 불가피한 슬픔과 존재함의 뜨거운 고통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구원이 부재하는 세계에서 존재의 근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갈망의 의미를 묻는 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나’가 사랑과 헌신을 바치는 눈먼 여린은 타락한 세계의 추함과 악함을 마주하지 않는 순수한 존재이자 되찾을 수 없는 생명의 시원이다.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이 작품을 위한 발문에서 “실로 악이 죽는 순간들이 있으니, 그건 슬픔이 터져 나올 때라고 작가는 말한다. 슬픔은 끝없는 악의 불길들 사이에 문득 스며든 어떤 수액, 저 기승하는 악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흰 햇빛 붉은 놀’의 처연함이다.”라고 했다.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로 그려지는 처연한 여린의 이미지는 태어남과 함께 부여되는 불가피한 슬픔과 존재함의 뜨거운 고통에 대한 상징에 다름 아니다.
도착된 것일지라도 사내의 흡혈과 식인은 사랑하는 이와 한 몸이 되고자 하는 동일시의 욕망을 보여준다. 피와 살을 먹고 마심으로써 사내는 둘만의 성찬식을 거행한다.
불멸의 사랑이야말로 외롭게 방랑하는 이 사내가 평생 안고 온 소망이다. 나아가 그것은 문학이라는 빙벽에 매달린 작가 박범신이 갈망해온 가치이기도 하다. 불가능한 꿈, 그것은 박범신의 소설에서 ‘모성’의 상징으로 반복되었다. 여인의 품, 절대적인 모성의 우물. 그것은 바로 이 세계의 자궁이다. ―양윤의(문학평론가)
책속으로 추가
* 사막이 그리웠다. 내가 그리는 사막엔 해가 지지 않았고, 모래바람이 자주 불었으며,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바닷속처럼 고요했다. 보물 같은 것은 없어도 좋았고 찾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나도 무조건 사막으로 가고 싶었다. 사막이 너무 그리워 무릎 사이에 한참 동안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모래폭풍 소리가 들렸다.
밤에는 엎디어 짐짓 글을 쓰는 시늉을 해보기도 했다.
오래전, 정말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십대 때였다. 나의 소일거리는 책을 읽는 것과 암벽을 타는 일뿐이었다. 책을 읽고 암벽을 타고 책을 읽고 암벽을 탔다. 심심하면 개한테 소설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책을 읽어주면 난폭하던 개들은 조용해졌고, 빈사상태의 개들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일어났다. 감동적인 힘이었다. 그 외에 내가 개를 위해 하는 일은 사료를 주는 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개를 잡는 일엔 나를 절대로 끼워 넣지 않았다.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고 아버지도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개고기를 안 먹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특수부대 장교들이 아버지를 양쪽에서 꼼짝 못하게 잡고 개고기를 강제로 입안에 마구 밀어 넣은 일이 있었다. 장교들 손을 뿌리치고 잽싸게 도망친 나는 암벽 꼭대기에 숨어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뙤약볕 아래 웃통을 벗어부친 장교들이 낄낄거리면서 아버지의 입에 개고기를 쑤셔 넣었다.
“자기는 안 먹으면서 개고기를 판다는 건 부도덕해!”
“그렇지. 불륜과 같아!”
젊은 장교들은 소리쳤다. 부도덕한 아버지와 부도덕한 나의 시선이 찰나적으로 마주쳤다. 아버지의 번질번질한 눈가에 햇덩어리가 타고 있는 게 보였다. 배를 잔뜩 불린 장교들이 몰려 나간 뒤에야 은행나무 밑에서 아버지는 한참이나 구역질을 했다. 고막을 쇠꼬챙이로 뚫려 듣지도 짖지도 못하는 조용한 개들이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107~108쪽)
* 나는 불길 속으로 부나비처럼 뛰어들었다. 나에겐 증오로 만든 창(槍)이 있었으며, 그러므로 사랑에의 열망으로 빚은 뜨거운 화살과 전통(箭?)도 있었다. 지옥인들 가지 못할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린 그녀는 불길이 잡아먹다시피 한 거실 한 귀퉁이에 혼절해 있었다. 그녀를 먼저 둘러업고 나왔다. 현관 일부가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아, 아버지!”
혼절에서 깨어난 그녀가 몸부림쳤다.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몸부림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관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불지옥을 그녀는 가리켰다. “가라!”라고 나의 여신이 내게 명령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를 구하러 다시 불지옥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때마침 도착한 소방차에서 물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거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물과 불의 지옥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잠들어 있을 안방 쪽으로 무작정 내닫는데 천장에서 쏟아져 내린 무엇인가가 머리와 어깻죽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118~119쪽)
* 말굽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말굽의 단점은 손금과 손가락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살인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강고해지는 건 진정으로 황홀하면서도 고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했다가 내 안에서 풍선처럼 부풀린 다음 우주까지 다시 확장시키는 경험이 그럴 터였다.
나는 점점, 그러면서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제 내 육체를 유린할 수 없을 것이며, 샌드백처럼 다루게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둠의 제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밤이 되면 명안진사도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칼날 같은 그믐달빛에 의지해 나는 랜턴도 켜지 않고 가볍게 암벽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열패감은 더 이상 없었다. 근육들이 산맥처럼 일어서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곧 암벽이고 암벽이 곧 나였다. (180~181쪽)
* 갑자기, 너무도 간절하게 여린이 그리웠다. 밑도 끝도 없이 다가든 그리움이었고, 폭력보다 더 폭력적인 그리움이었다. 그것은 그리움이라기보다 차라리 통증이었다. 명치가 찢어지는 고통이 왔다. 나는 씨근덕거리면서 숲 사이로 걸었다. 나뭇가지들이 달려들었다. 눈두덩이 찢어진 듯, 피가 배어나왔다. 내부의 통증은 이제 명치를 찢고 간장(肝臟)을 찢고 염통을 찢었다. 올 때와 달리 나는 상처받은 짐승이 되어 걸었다. 여린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193쪽)
* 무한한 슬픔이 그 순간 나를 사로잡았다.
이유도 없고 단계도 없고 근원도 없는 슬픔이었다. 포악했다. 의식할 새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짐짓 돌아서서 주차장 쪽을 멀리 우회해 걷기 시작했다. 그녀를 더 이상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플루트 소리 역시 나의 귀를 찢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가 그랬듯이 맑은 플루트 선율이 갑자기 슬픔이 되어 내 빰을 스쳤고, 잔설이 버석거리며 내 신발을 감쌌고, 마른 풀들이 내 종아리에 자꾸 감겼다. 얼어붙은 연못이 다가왔다. 나는 연못가 빈 정자에 간신히 기대섰다. 플루트 소리가 멈춰 있었다. 식당 앞까지 걸어간 그녀는 식당을 나온 애기보살과 이모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무실을 나선 백주사가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모두 햇빛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애기보살이 뭐라고 했는지 이모들이 왁자지껄 웃었다. 나는 행여 누가 볼세라 얼른 돌아서서 얼어붙은 연못을 보았다. 나에게는 유일하게 남은 감정은 슬픔이었다. (202~203쪽)
* 나의 슬픔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었다. 허공과 같았다. 샹그리라로 돌아와 창 너머로 운악산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더니, 유리창을 보는 건지 운악산을 보는 건지, 또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왔다. 나는 가책도 없었고 노함도 없었고 미움도 없었다. 사랑과 욕망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 남아 있는 감정은 단 하나, 이유 없는 덩어리, 슬픔뿐이라는 걸 나는 그날 밤 깨달았다. (206쪽)
* 놀이 타는 듯이 붉었다. 열네 살 그녀의 새하얀 이마엔 지금처럼 핏줄이 파르스름하게 불거져 나와 있었다. 피돌기가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나는 땀에 젖은 그 핏줄에게, 피돌기에게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만 기억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마를 가르고 내리닫이로 흐르는 그 핏줄을 보았다. 파르스름한 그곳에 귀를 갖다 대면 멀고 싶은 강물 소리가 아스라이 들여올 것 같았다. (240쪽)
* 분명 보이지 않을 테지만, 그녀는 그러나 나를 보고 있었다. 우물 밑이라도 다 들여다볼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경혈에 붙은 삭정이의 불꽃이 어느새 몸 전체로 옮겨 붙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녀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 나라고 믿고 있으리라 생각해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증거는 완벽했고 사법부는 내게 4년형을 언도했다. 그녀를 구하고 난 뒤 그녀의 아버지를 구하러 다시 불 속에 뛰어든 것조차, 취조형사는 오히려 그녀의 아버지를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기 위해 뛰어들었다고 나를 몰아세웠다. ‘개백정’의 사악한 ‘새끼’가 하는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실은 철저히 은폐되고 조작됐다. 이제 생각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면밀하게 연출한 힘 있는 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10쪽)
* 꿈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고개를 끄덕거려주자 입을 벌려 웃었다. 누리끼리한 잇속이 혐오감을 주었다. 말굽은 이미 제 할 일을 다 감지한 눈치였다. 꿈틀했다. 일어나려는 그녀를 도와 침대 위에 간신히 앉혔다. 무슨 말을 더 하려 했지만 말하기가 너무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입에 손가락을 대 보이고 나서 그녀의 어깨를 따뜻하고 섬세히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내 어깨를 주물러주던 여린의 손길이 세세히 기억났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했다. 마음을 다독거리기 위해 고갯짓을 하면서, 살 속 깊이 손가락을 박아 넣어 나는 그녀의 뼈를 부드럽게 만졌다. 그녀의 숨긴 뼈들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가늘었다.
“꿈…… 이겠지, 이것이. 마치…… 신방에 든 거 같네…….”
내 손바닥이 입을 막았으므로 그녀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말굽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벌써 독이 잔뜩 오른 말굽이 생생히 느껴졌다. 말굽의 유일한 인정주의는 제 힘을 창끝보다 더 예리하게 모아 대상을 가급적 단 한 번에, 단호하고 깔끔하게 쪼개는 것이었다. 망설이거나 하진 않았다.
나의 말굽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먼저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다음에 다른 손으로 힘차게 두개골을 내리쳤다. 그녀의 두개골은 상한 생선의 비늘처럼 연약했다. 그러나 옹골차게 지켜온 목숨이었다. 뇌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느꼈지만, 살아온 관성을 좇아 버르적거렸기 때문에, 나는 여러 번 내려쳐야 했으며, 한참이나 그녀의 어깨와 머리를 강력하게 틀어잡고 있어야 했다. 쏟아져 나온 뇌수가 무절제하게 흘러내렸다. 손바닥은 물론이고 앞섶에도 뇌수가 묻었다. 그녀가 잠잠해진 다음, 나는 손바닥을 커튼에 문질러 꼼꼼히 닦아야 했다. (321~322쪽)
* 그러므로 나는 슬픔 때문에, 슬픔을 따라가서 그를, 그들의 두개골을 내려앉혔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어떤 슬픔이냐고 반문한다면 반문하는 그의 두개골도 단연코 쪼갤 터였다. 슬픔이란, 어떤 슬픔이 없었다. 내겐 탄생 이전부터 전해져온 슬픔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슬픔은 언제나 그냥 하나의 슬픔뿐이며, 분파되지 않았다. (340~341쪽)
* 그렇지만, 그녀는 나에게 여전히 ‘아주 옛날에’ 있었던, ‘보랏빛 점’을 가진 꿈속의 소녀였다. 나를 위해 세계의 폭력에 맞서준 유일한 전사였으며,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서 우주의 순결한 바람을 넣어준 단 하나의 어린 천사. 세상이 그녀를 어떻게 다루든지, 내게 있어 그녀는 결코 훼손되지 않을 ‘존엄’이었고, ‘감미’였으며,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자연법이 만든 최고의 가치로서, 영원히 훼손될 염려가 없다고 나는 믿었다. (398쪽)
* 아름다움이란 도착점인가 출발점인가.
그날은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만약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오랜 풍상을 겪은 뒤에 만나는 마지막 발화라면, 나는 뒤로 물리지 말고 그녀를 당장 차지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그녀의 모든 뼈들조차 실팍하고 섬세히 부순 뒤 그녀의 살과 머리칼과 내장까지 유쾌하게 거기 버무려서 남김없이 먹어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 유장한 길의 출발점이라면 어쩔 것인가. 단지 나의 슬픔에 밀려 그녀를 먹어치우고 만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비윤리적인 죄업이 될 터였다. (401쪽)
* 겨울 초입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가 자꾸 길도 없는 곳으로 앞장서 내달리는 바람에 간신히 쫓아가 어깨를 붙잡은 곳이 바로 여기 어디쯤이었다. 어깨를 붙잡힌 열네 살의 그녀는 내 가슴에 이마를 기대고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아빠처럼 눈이 멀 거래.” 그녀는 울면서 고백했다. 실명으로 가는 불치의 유전병이 자신의 몸속에서 시시각각 자라고 있다는 걸 그녀가 최초로 알아차린 날이었다. 눈이 멀게 된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나서 암벽으로 올라가 뛰어내릴 셈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날이 저물도록, 우리는 그날 이 부근에 앉아 있었다.
강을 물들이며 시작된 놀이 유독 황홀한 날이었다. “나는 흰색과 붉은색이 젤 좋아, 오빠. 언젠가 죽으면 햇빛, 아니면 놀이 될 거야!” 그녀의 말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었다. 실명될 것을 예시 받고 그녀가 먼저 생각한 것은 죽음이었고, 죽음의 빛깔로 그녀가 서슴없이 선택한 것은 흰 햇빛, 붉은 놀이었다. 죽고 싶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리다고 해서 죽음이 먼 것은 아니라는 걸 그녀와 내가 확인하고 동의한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날 함께 죽고 싶었으며, 또 함께 죽음을 이겨내고 싶었다.
*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우물처럼 고요해졌다.
나는 그녀 안으로 깊이 엎드려, 그녀의 우물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피를, 마음껏 빨아마셨다. 그녀의 피는 희고 붉었으며, 따뜻하고 달고 향기로웠다. 나는 놀랐고, 감동했다. 미각만은 완벽하게 살아 있었다. 혀가 천 개로 갈라지면서 길게 길게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댔을 때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예민한 감촉이었다. 빨아 마시는 것도 모자라, 나는 천 개의 긴 혀를 그녀의 심장에 더 깊이 박아 넣어, 좌심실 우심실 좌심방 우심방은 물론, 심장에서부터 뻗어 나간 여러 동맥의 붉은 내선을 따라, 그녀의 몸속에 숨겨놓은 모든 우물물을 섬세히 핥아먹었다. 따뜻하고, 달고, 향기로운 에너지가 나의 전신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기쁘고 뿌듯했다. 본성을 찾아 가진 것 같았다. (446쪽)
*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손바닥에 정말 말굽이 생겨난 것이다. 남에게는 물론이고 평소엔 내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거기, 내 손바닥에 분명히 말굽이 들어 있다.
말굽이 생긴 뒤로 손금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중이다. 생명선의 상단은 이미 지워지고 없다. 말굽으로 뭔가를 내려치면 칠수록 손금이 그만큼 가속적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말굽의 힘이 강화되면, 생명선은 물론 손금이 모두 없어질는지도 모른다.
생명선이 사라지면 죽는 걸까, 아니면 영원히 사는 걸까.
손바닥에 쇠말굽을 숨겨 지니고 영원히 사는 것은, 아무래도 슬픈 느낌이다. (18쪽)
* 남자의 상반신이 이윽고 말쑥하게 드러났다.
운악산 칼바위에서 쏟아져 내려온 북풍이 남자의 벌거벗은 웃통에 예리하게 박혀들었다. 나는 이내 쩍 하고 입을 벌렸다. 단련이 잘된 훌륭한 몸매였다. 팔을 벌리자 가슴의 승모근(僧帽筋)이 산맥처럼 단번에 일어섰다. 어깨 삼각근과 양팔의 이두박근도 훌륭했다. 목에서 쇄골로 이어진 힘줄은 뚜렷한 V자를 그려냈으며 배에는 王자가 선연히 부조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과 뛰어나게 발달된 젊은 몸매의 부조화는 차라리 기괴했다. 이상하고 언짢은 부조화였다. 나의 시야에서 잠깐 벗어났다가 다시 나타난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칼날이 햇빛과 만나 번쩍했다. 장도(長刀)였고, 잘 갈린 진검(眞劍)이었다. 목이 움찔해졌다. 질이 좋은 진검은 쇠파이프도 자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타고난 무사의 풍모가 뚜렷했다.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 때의 칼날은 급류를 타고 오르는 날치 같고 내리칠 때의 칼날은 얼마나 속도가 빠른지 햇빛까지 두 동강 나는 것 같았다. 때로는 찌르고 때로는 베고 때로는 허공을 날렵하게 가로 그었다. 재빠르게 내딛는 발끝은 유연해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떤 자세에서도 남자의 턱은 정면을 향해 꼿꼿했다. 눈에서는 이따금 푸른 섬광이 번쩍 뻗어 나왔다. 어떤 신념에 가득 찬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남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빛은 보다 투명해졌다.
칼끝이 나를 겨냥한 것은 한바탕의 춤사위가 끝날 무렵이었다. 찌르기 자세였다. 살기가 확 느껴졌다. 나를 겨냥한 것은 칼끝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눈화살도 문틈을 비집고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나와 남자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존재를 알고 있어, 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것과 남자가 한걸음으로 헛간의 문 앞까지 돌진해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이었다. (30~31쪽)
* 창밖으로 귀를 열면 가랑잎들이 비탈길을 쓸고 가는 소리가 먼 바다의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오랫동안 노숙자로 떠돌던 남해 쪽빛 바다가 때로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 도시로 돌아오게 될까 봐 두려워 떠돌던 세월이었다. 죽을 때까지 결단코 오지 않으리라고 골백번은 맹세했었다. 감옥에서 4년, 부산에서, 마산-진해, 사천, 광양, 여수에서, 또 목포의 바다 끝에서 비렁뱅이 노숙자로 흘러 다닌 것이 10여 년이나 되었다. 겨울바닷가는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틀이나 사흘을 완전히 굶은 적도 있었다. 굶고 누워 있을 때조차 겨울바다는 저 혼자 끝없이 깊어졌다. 백사장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 칼바람을 견딘 날도 부지기수였다. 죽음 직전으로 몰린 적도 있었다.
잠이 들면 한 소녀를 찾아 헤맸다.
볼이 붉고 이마가 하얀 소녀였다. 처음엔 분명했던 얼굴이 시간 따라 조금씩 지워지는 슬픈 경험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아주 옛날에 볼 붉은 소녀가 있었다.’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감옥에서 나올 때쯤 소녀의 턱과 입술이 지워졌고, 떠돌이로 10년쯤 지나자 콧날과 눈과 귀도 완전히 지워졌다. 소녀가 그리우면 피가 밸 때까지 손바닥으로 바위나 벽돌담장이나 철판 따위를 두들겼다. 아무리 두들겨도 소녀의 얼굴은 완성되지 않았다. 손바닥에선 자주 껍질이 벗겨지고 피가 흘렀다. 심지어 이름까지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닳아 없어졌다.
그것이 고통스러워 끓는 물에 손을 넣은 일도 있었다. 닳아 없어진 기억들은 복원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조차 그냥 소녀…… 라고, 이름 모르는, 보랏빛 점을 가진 소녀…… 라고만, 불러야 했다. 오랜 노숙자 생활에 그만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것은 형태 없는 붉은 볼과 박속같이 하얀 이마와 짙은 눈썹 끝의, 팥알만 한 보랏빛 점 하나였다. 내 안에서 오래 묵어, 소녀는 마침내 전설이 되고 만 것이었다. ‘아주 옛날에 보랏빛 점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라고 나는 동화책을 읽듯이 자주 소리 내어 말했다. (52~53쪽)
첫댓글 박범신 지음 / 출판사 문예중앙 | 201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