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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진달래, 밤나무 등 '고대 나무' 동북아 피난처서 생존…'금수강산' 빈말 아냐
설악산 등 고산지대는 북방계 식물의 도피처, 설악산 케이블카는 산림 사유화 신호탄
» 한반도의 산악지역은 ‘고대 생물’이 살아남은 세계 5대 피난처 가운데 하나여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 정부의 산악관광 진흥정책은 이런 산지의 공공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사진은 문경새재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의 모습이다. 문경/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초등학교 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을 하늘이 가장 파랗고 4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이라고 배웠다. 산삼을 비롯해 약초의 효능도 세계 제일이란 얘기도 자주 들었다. 이렇게 키운 한반도 자연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새 스러져 버렸다. 고도성장 기간 동안 이어진 난개발로 ‘비단에 수를 놓았다’는 산천이 난도질을 당했으니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열린 세계식물원총회에서 만난 외국 식물전문가들과 이야기하다 ‘한반도에 살아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2010년부터 국제 느티나무 보전 사업을 벌이고 있던 이들이었다.
느티나무 종류는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하다가 공룡시대 이후 기후가 차츰 서늘하고 건조해지면서 남쪽으로 피난해 살아남은 ‘고대 나무’다. 현재는 지중해 주변의 시실리, 크레타, 코카서스 등에 극소수가 살아남았고 동아시아에는 제법 많다.
유럽에서 멸종위기인 느티나무를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부럽다는 얘기였다. 느티나무는 수백만년의 환경변화를 이기고 살아남은 적응력이 뛰어난 나무다.
» 수령 500년으로 확인된 경북 예천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정자나무 거목으로 많이 남아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수형이 곱고 노거수로 자라며 항암성분이 발견되기도 한 쓸모 많은 나무이기도 하다. 야생 느티나무는 경기·충북·경북 ·전북 산지에 분포한다. 보호종도 아니고 일반인의 눈길도 끌지 않는 나무이지만 인류 탄생 이전부터 한반도를 지키고 있다.
느티나무 말고도 진달래, 밤나무, 주엽나무(쥐엄나무) 등이 그런 고대 나무다.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북부 등 동북아는 고대 나무가 살아남은 세계 5대 피난처 가운데 하나다(나머지 네 곳은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 플로리다 등 미국 남동부, 지중해를 둘러싼 유라시아 남서부, 중국 남부와 히말라야 등 동아시아 남부이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이 많고 생물다양성도 풍부하다. 한반도가 금수강산이란 자랑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는 거듭된 빙하기 동안 직접 얼음에 덮이지 않아 춥고 건조한 날씨를 피해 이동해온 많은 생물의 피난처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의 산악지대가 바로 그런 북방계 식물의 피난처이다.
» 툰드라 지대에 분포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 암매. 한라산에 자생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대표적인 예가 한라산 정상의 바위에 붙어 자라는 떨기나무인 돌매화나무(암매)이다. 극지 가까운 툰드라지역에서나 볼 수 있고 백두산에도 없는 고위도 식물이 한라산에 산다.
암매처럼 자연사 유산의 가치를 지닌 나무는 이 밖에도 많다. 설악산에는 100여종의 북방계 식물이 산다. 키가 작아 누운 것 같은 눈잣나무는 만주, 사할린, 캄차카 등 고위도 지방에 널리 분포하는데 남한에선 유일하게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일대에서 자란다. 백두산의 수목한계선 위쪽 사면을 수놓는 노랑만병초도 설악산 정상 부근에서 발견됐다.
지리산, 덕유산 등도 고산식물의 보고다. 그러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산악지역에서도 북방계 희귀식물이 최근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중부지방 석회암 지대가 그곳이다. 기껏 시멘트 원료가 나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이곳 산에서 함경도 고산 초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도여로와 너도개미자리가 확인되기도 했다.
»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짓기 위해 수백년 자연림을 베어낸 가리왕산. 사진=김명진 기자
이처럼 어디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 없는 국토를 우리는 어떻게 다루었나. 지난 20년 동안 산림의 2.1%가 사라졌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10년 동안 줄어든 산림면적은 530㎢로, 여의도 183개 면적의 숲이 도로나 각종 개발사업을 위해 베어졌다.
지나친 규제로 산지가 방치됐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육상 보호지역이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1%는 물론이고 생물다양성협약이 2020년까지 달성하기로 합의한 목표 17%에 턱없이 모자란다.
오는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허용 여부를 심의한다. 그 결정에 시민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설악산뿐 아니라 모든 명산과 나아가 국토의 64%인 산지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을 관광자본에 내맡길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발표한 회칙에서 “자연환경은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라고 했다. 환경부는 자연환경 보전의 책무를 위임받은 정부기관이다. 4대강 사업을 방조한 데 이어 국립공원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문을 닫으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50도 동토 내몽골, 한반도 숲의 원형 14.8.27
동북아 북방계 식물 자생지 답사 ① 내몽골 건허
설악산 대청봉 자생 눈잣나무 숲이 영구동토에 펼쳐져, 극지 식물 월귤도 지천으로 깔려
2만년 전 빙하기 한반도 숲의 원형, 기후변화 영향 가장 먼저 받아 세계적 관심 모여
» 내몽골 북방계 식물 답사 경로
한라산 꼭대기 암벽에는 키 5㎝에 탐스런 연노랑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자란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란 별명을 지닌 암매(돌매화)이다. 백두산에도 없고 시베리아나 스칸디나비아, 알래스카의 극지 고산지대에 많은 이 나무가 한라산에서 살게 된 이유는 뭘까. 신생대 제3기 이후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진화해온 동북아시아 생물의 자연사 속에 그 비밀이 담겨있다. <한겨레>는 국립수목원과 함께 빙하기 피난처로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동북부, 만주 연해주, 일본 혼슈 등 대표적인 동북아의 식물의 자생지를 답사했다. 한반도 식물과 유연관계가 깊은 이들 지역에서 훼손되지 않은 한반도 숲의 원형을 확인했다. 또 기후변화로 멸종위험에 놓인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보전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는 9월 강원도 평창에서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린다. 이 기획을 통해 동북아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도 살펴 보았다.
» 빙하기 동북아 숲의 원형을 간직한 것으로 평가되는 내몽골 건허의 원시림. 만주잎갈나무 고사목이 넘어져 있고 옆에 자작나무, 월귤 등이 자라고 있다. 땅 표면 40㎝ 아래에는 영구동토대가 있다. 취재진은 중국 센양(심양)에서 자동차를 타고 만주를 관통해 1500㎞에 걸친 북상 길에 올랐다. 북방계 식물을 중심으로 한반도 자연사의 기원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다.
센양 도심에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와 모감주나무가 열매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자 주택가 공터의 활짝 핀 참나리와 코스모스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도시와 시골에서 보는 모습 그대로였다. 김영환 센양응용생태연구소 박사는 “공통의 지질역사를 지닌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 일본 중부에는 비슷한 식물이 많다”며 “내몽골의 다싱안링(대흥안령) 산맥에 가면 한국에는 매우 드문 북방계 식물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 훼손되기 전 만주 벌판의 숲의 모습을 간직한 내몽골 다칭구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원시림. 백두산 산록의 식생과 유사하다.
센양에서 200㎞ 떨어진 내몽골 다칭구의 국가 자연보호구역에는 사막 오아시스에 원시림이 펼쳐져 있었다. 용천수가 뿜어나오는 계곡 주변 1300여㏊의 숲에는 만주물푸레나무를 비롯해 피나무, 신갈나무, 가래나무, 황벽나무, 느릅나무 등 우리에게 낯익은 나무들이 들어서 있었다. 동행한 장창기 공주대 생물교육과 교수는 “백두산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나무가 거의 다 여기 있다”고 설명했다.
31일 자동차는 평원을 뒤로하고 언덕으로 접어들었다. 만주에서 베이징 이남까지 남북으로 1200㎞에 걸쳐 뻗은 중국 최대의 산맥인 다싱안링 산맥을 넘어 야커스시로 향했다. 우리나라 고산지대에 있는 흰 수피의 자작나무가 평야에 대규모로 심어져 있었다. 이 지역 최대 산업은 임업이다.
» 내몽골 야커스 시의 자작나무 조림지. 이곳은 중국내 최대 임업지역의 하나이다.
야커시 외곽의 운룡산장 경관보호구로 갔다. 센양에서 북쪽으로 약 1100㎞ 떨어진 북위 59도 지역이지만 식물에서는 강원도 분위기가 났다. 호수 근처 습지에는 곰취와 솜방망이의 노란 꽃과 보랏빛 용담 꽃이 한창이었다.
만주 특산의 분홍빛 꽃을 피우는 부추와 우리나라에선 매우 희귀한 작약도 흔하게 나타났다. 오승환 국립수목원 박사는 “비무장지대 안의 묵논을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만주 특산의 부추. 한반도의 흰 꽃을 피우는 부추와는 약간 다르다.
애초 예상과 달리 야커스에서도 한반도 북방계 희귀식물 군락을 보기는 힘들었다. 중국의 개발과 기후변화 속도는 중국 식물 전문가가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빨라 보였다.
» 내몽골 야커스 지역의 대평원 지대에 야생화가 피어있다.
다시 밤 열차를 타고 260㎞ 북쪽인 건허시로 향했다. 중국 최북단으로 다싱안링 산맥 한가운데 자리잡은 곳이다. 안개에 잠긴 자작나무와 이깔나무 자연림을 뚫고 이튿날 새벽 장추량 대흥안령 삼림생태계 국가 야외과학관측연구소장을 만났다. 답사를 서두르는 취재진에게 장 소장은 “불곰이 물 먹으러 내려오는 시간이라 기다려야 한다”고 말렸다.
» 건허 눈잣나무 보호림의 눈잣나무를 취재진이 살펴보고 있다. 이곳의 눈잣나무는 평지여서 비교적 크게 자란다.
» 건호 눈잣나무 보호림의 모습.
한겨울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건허에는 중국 최대의 눈잣나무 군락이 있다. 보호림에 들어서자 산 들머리부터 조림한 것처럼 눈잣나무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누운 것처럼 땅을 기는 이 잣나무는 설악산에서 키가 1~2m인데 이곳은 평지여서인지 4m가 보통이었고 10m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설악산 중청봉에서 대청봉을 잇는 능선 양쪽 산비탈과 소청봉, 관모능선 등에는 남한에서 유일하게 눈잣나무가 자란다. 이 나무는 연간 5~6개월 동안 눈에 덮이는 춥고 바람 센 곳에서만 분포한다. 바이칼호에서 캄차카 반도까지 시베리아에선 흔하지만 설악산은 유라시아에서 가장 남쪽 자생지이다.
» 설악산 대청봉 일대의 눈잣나무. 사진=국립산림과학원
» 눈잣나무 분포도. 그림=나카무라, 크레스토프
눈잣나무는 빙하기의 유산이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생물지리학)의 설명을 들어보자.
눈잣나무는 지난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에도 연속적으로 분포하다 온난화 함께 활엽수에 밀려 고산지대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빙하기 한반도 자연사를 복원하는 지표종이자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변화를 모니터링하는 지표로서 가치가 크다. 지구온난화가 더욱 진척해 동북아 북부의 눈잣나무가 쇠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오랜 기간 격리돼 온난한 기후에 적응하도록 분화된 우리나라 집단이 생태계 복원에 쓰일 수도 있다."
» 눈잣나무 아래 백산차, 월귤 등 극지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 열매를 맺은 초소형 극지 나무 월귤. 극내에는 극소수가 설악산 등 고산과 풍혈에 분포한다.
눈잣나무 아래 숲 바닥을 덮고 있는 식물은 풀이 아니라 초소형 나무인 월귤이었다. “이 지역 월귤의 붉은 열매가 시장에서 ㎏당 20위안에 팔린다”고 연구소 관계자가 귀띔했다. 우리나라에선 강원도 홍천 등 자생지가 3~4곳에 불과한 희귀식물이다. 월귤과 함께 한반도에선 백두산에만 있는 백산차가 숲바닥에 깔려있었다. 모두 알래스카나 시베리아 북부 등 극지대에 흔한 식물이다.
» 건허의 원시림 지대. 만주입갈나무와 자작나무 등이 서 있다. 지하 40㎝ 밑으로는 영구동토가 있다.
건허의 원시림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면적 8500㏊인 이 보호구역에서는 일반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과학적 연구만 허용한다. 대낮인데도 진입로에 있던 노루와 들꿩이 놀라 달아났다.
200~300년 된 만주잎갈나무 고목이 곳곳에 죽어 넘어져 있었다. 땅속 40㎝ 깊이에 영구동토층이 있어 뿌리가 얕아 자주 쓰러진다. 벼락을 맞은 나무도 치우지 않는다. 숲 바닥에는 월귤과 들쭉 같은 키 작은 나무와 두루미풀, 이질풀 등 고산성 초본이 깔려 있었다.
“불곰이 개미집을 파헤친 흔적”이라고 연구소 관계자가 숲 바닥을 가리켰다. 이곳엔 너무 추워 멧돼지나 뱀이 살지 못한다.
» 건허 원시림에 핀 이질풀의 한 종. 한반도 개체와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초본이 많이 눈에 띈다.
마지막 빙하기가 전성기이던 1만8000년 전 춥고 건조하던 한반도의 숲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장 소장은 “이곳은 빙하기 동북아 식생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 공동기획: 중국 센양, 야커스, 건허/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인터뷰-장추량 야외과학관측연구소장
“영구동토대, 기후변화 감시 적합”
장추량 다싱안링 삼림생태계 국가 야외과학관측연구소장(사진)은 건허가 중국 최북단의 도시로서 기후변화 영향을 감시하는 최전선이라고 말했다. 북위 50도에 위치한 이곳의 겨울 평균기온은 영하 32도, 연평균 기온도 영하 5.4도이다. 6월이 돼야 얼음이 녹고 8월 말이면 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은 석달뿐이다. 빙하기 식물이 살아남은 배경이다.
장 소장은 “건허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 영구동토대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더 남쪽인 야커스에도 동토지대가 있었고 이곳과 같은 원시 산림이 있었지만 개발로 면적이 줄고 기후변화로 조각나 모두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야커스에 기후변화를 감시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연구센터를 설치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원시림 가운데 65m 높이의 측정탑을 설치해 10m 단위로 기상, 식물의 광합성량, 호흡량 등을 측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구동토는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곳이라 국제적인 관심이 모이고 있다. 건허의 원시림 지대는 해발고도가 높지 않고 넓은 면적을 지닌 영구동토 지대여서 더욱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건허(내몽골)/ 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동북아는 빙하기 야생동물 피난처
다람쥐·너구리 등 야생동물 살아남아
» 다람쥐. 사진=김봉규 기자
동북아는 빙하기 식물뿐 아니라 야생동물이 추운 날씨를 피해 살아남았다가 간빙기에 다시 확산하는 피난처 구실을 했음이 계통생물지리학 연구를 통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반도는 빙하기 야생동물의 피난처였다 참조).
다람쥐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에 서식하는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 결과 빙하기 때 이들 가운데 적어도 2곳에 피난처가 있었음이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한반도의 다람쥐는 이 과정에서 백두산 일대의 빙하에 가로막혀 고립돼 중국·러시아 다람쥐와는 다른 종으로 분화했음이 드러났다. 하늘다람쥐도 한반도가 빙하기 때 피난처의 하나였다.
너구리는 동북아와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분포하는데, 2만년 전 빙하기 때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피난처 몇 곳에서 살아남은 뒤 간빙기 때 퍼져나갔다. 민미숙 서울대 수의대 박사 등 연구진은 한국 너구리와 러시아, 중국, 베트남 너구리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0.4~0.6%에 그쳤지만 일본 너구리와는 2.4%에 이르렀음을 밝혔다. 이는 일본의 너구리가 100만년 이상 전의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 이동해 간 무리가 격리해 진화했으며 이후 교류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아가미 없이 허파로 호흡하는 미주도롱뇽과의 이끼도롱뇽이 한반도에 서식하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한반도의 피난처 구실을 뒷받침한다. 세계 미주도롱뇽의 99%는 북아메리카에 서식하고 지중해 서부에 서식지가 한 곳이 있는데, 한반도에서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됐다. 민미숙 박사팀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던 미주도롱뇽이 한반도와 지중해 서부 두 곳을 빼곤 모두 멸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밖에 한반도는 참개구리, 꼬리치레도롱뇽, 흰넓적다리붉은쥐 등이 빙하기 때 살아남는 피난처 구실을 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빙하기 때 피난처였던 동북아는 원시적인 생물이 많이 살아남았고 생물다양성도 높아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
수백살 잣나무 원시림, 한국호랑이의 고향
동북아 북방계 식물 자생지 답사 ② 러시아 연해주 피단산
세계적으로 드문 온대 원시림 펼쳐진 시호테알린 산맥
주인은 잣나무, 한국 호랑이와 표범의 마지막 보루
» 피단산 자연림에 쓰러져 있는 잣나무 거목.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본격적으로 농경을 하기 전 자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타임머신이 없어도 이런 궁금증을 풀 곳이 있다.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식물원이 그곳이다. 2014년 9월 7일 정식 명칭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 지부 식물원 연구소’인 이곳을 찾았다. 숲에 들어서자 원시림은 아니지만 100년 이상 잘 보전된 곳임이 실감났다.
» 블라디보스토크 식물원의 진드기 주의를 알리는 경고판.
이 숲의 주인인 쭉 뻗은 검붉은 수피의 잣나무가 신갈나무, 피나무, 음나무, 들메나무, 까치박달 등과 함께 병풍처럼 둘러섰다. 그 밑에는 약용식물로 유명해 국내에선 보기 힘들어진 가시오갈피가 흔하게 보였다. 습한 곳엔 100살 이상 된 전나무 거목이 들어섰고 황벽나무와 피나무의 거목도 자주 눈에 띄었다.
» 블라디보스토크 식물원의 자연림.
동행한 권혜진 국립수목원 박사는 “평지인데도 큰 나무가 많은 것은 원시림이 사라진 뒤 저지대 노령림이 자연적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도 도끼질을 당하지 않은 한반도 산림의 원형을 보려면 시호테 알린 산맥으로 들어가야 한다.
러시아 연해주는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원시림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 핵심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동 쪽으로 1100㎞ 길이로 뻗은 시호테 알린 산맥이다.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와 아무르표범(한국표범)의 최대 서식지이기도 한 이곳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방대한 온대림”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 군용 구난트럭을 개조한 트럭. 시호테알린 등반에 필수품이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피단산(해발 1332m)으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70㎞ 거리이지만 인근 리캬노프카 역에서 산자락까지 가는 데만도 5~6시간이 걸릴 정도로 도로사정이 나쁘다. 당일 산행을 위해 취재진은 트랙터 바퀴와 크레인을 장착해 개조한 군용 구난 트럭을 타야 했다.
산자락엔 곰이 열매를 따 먹느라 가지가 부러진 개벚지나무와 함께 자작나무, 가래나무, 피나무 등으로 이뤄진 2차림이 펼쳐졌다. 차에서 내려 본격 산행을 시작하자 해발 500m가 안 되는데도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나 보는 주목과 고산식물이 나타났다. 계곡에서는 국내 고산에서도 보기 힘든 땃두릅나무와 린네풀, 그리고 남한에는 없고 북한에서도 천연기념물인 고산식물 돌부채가 보였다.
» 산 중턱에 나타난 거대 주목.
» 등산객이 불쏘시개로 쓰려고 쳐낸 잣나무 거목의 상처.
해발 650m부터 경사가 급해지면서 원시림이 펼쳐졌다. 350살로 추정되는 가슴 높이 지름 95㎝인 거대한 잣나무가 300년은 된 거제수 거목과 함께 길을 막아섰다. 잣나무는 500살까지 살 수 있다.
» 350살로 추정되는 잣나무 거목.
그러나 제 수명을 다하기는 쉽지 않다. 파벨 크레스토프 박사는 “잣나무는 뿌리가 얕아 나무가 클수록 폭풍에 쉽게 쓰러진다”고 말했다. 땅에 넘어진 잣나무 고목 속에서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레스토프 박사는 “커다란 하늘소 애벌레가 안에서 나무를 갉아먹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 잣나무 거목.
» 우수리 자연보호구에서 넘어간 초대형 잣나무. 사진=2010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극동 지부, <우수리 자연보호구의 숲>
잣나무는 다른 활엽수와 함께 시호테 알린 산맥의 숲을 대표하는 나무다. 연해주엔 아직도 이런 잣나무와 활엽수로 이뤄진 원시림이 3만 3000㎢가 남아있다.
강호상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연해주의 면적은 남한의 1.6배이지만 인구는 200만명에 지나지 않은 것이 원시림이 보전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라면서 “자연훼손의 주 위협 요인은 개발보다는 산불”이라고 말했다.
» 잣나무와 함께 나타나는 거제수 거목.
중국 동북부의 잣나무 원시림은 백두산과 샤오싱안링(소흥안령) 산맥을 빼곤 모두 사라졌다. 크레스토프 박사는 “중국에서 호랑이가 거의 사라진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잣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동물은 다람쥐부터 호랑이까지 30여종에 이른다. 그는 또 “한국의 강원도 산악지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전 다양성이 높은 잣나무가 있어 보호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상자 기사 참조).
» 남한에는 없고 북한에서 천연기념물인 돌부채가 개화했다.
해발 950m에 이르자 잣나무는 전나무에 자리를 내주었다. 검은 열매를 잔뜩 매단 땃두릅나무가 그 밑을 뒤덮었고 숲 바닥엔 극지식물인 월귤이 깔려 있었다. 반짝이는 흰 수피의 사스래나무와 분비나무 고사목 지대를 지나자 키 작은 나무만 자라는 너덜지대가 정상까지 이어졌다.
»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 극소수가 분포하는 땃두릅나무가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바위틈에는 시호테 알린 산맥 특산식물인 눈측백 비슷한 마이크로바이오타와 돌부채가 가득했다. 해발 1244m 지점에 오르자 남한에선 한라산 꼭대기에만 일부 남아 있는 고산식물 시로미가 출현했다.
» 눈측백 비슷하게 생긴 시호테 알린 산맥 특산식물인 마이크로 바이오타 군락.
» 피단산에서 만난 곤충.
최근 한라산 시로미를 조사한 권혜진 박사는 “한라산 시로미에 비해 이곳 시로미의 키가 훨씬 작아 같은 시로미 속의 다른 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크레스토프 박사는 “이곳에서도 시로미는 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 피단산에서 바라본 시호테 알린 산맥 산줄기.
한라산과 피단산은 10도의 위도 차가 난다. 하지만 두 곳의 시로미는 약 2만년 전 빙하기 동안 연해주와 한반도 남단이 추위를 피해 살아남은 동북아 식물의 공동 피난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동북아 잣나무의 고향은 한반도
지구상에 분포하는 소나무속 나무는 175종에 이른다. 이 많은 소나무 가운데 학명에 ‘한국’이 들어간 유일한 나무가 잣나무이다. 잣나무의 영어 명칭은 ‘한국 소나무’이다.
잣나무는 목재와 씨앗인 잣의 쓸모가 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림 수종이기도 하다. 전국의 잣나무 숲은 무려 21만㏊에 이른다. 신라 때부터 조림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조림 역사가 있기도 해 잣나무가 우리에게 무척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무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잣나무림이 가장 널리 분포하는 곳은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부, 그리고 북한 개마고원 일대이다. 남한과 일본에선 대규모 숲 형태가 아니라 고산 지대에 점점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등에서 전나무, 신갈나무 등과 함께 자란다.
잣나무 천연림은 잣나무와 활엽수가 섞인 형태이며 동북아 산림을 대표한다. 6세기 이후 여진족의 농경과 19세기 러시아인의 정착, 20세기 초 대규모 벌목을 거치면서 동북아 자연림은 많이 파괴됐다. 대규모 잣나무 천연림이 남아있는 곳은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러시아 시호테 알린 산맥 잣나무 혼효림의 단풍. 사진=크레스토프
그러나 최근 분자 차원의 연구 결과 분포면적이 넓지 않은 우리나라의 잣나무가 러시아나 중국보다 높은 유전다양성을 지녔음이 드러나 눈길을 끈다. 김진수 고려대 교수(현 명예교수) 등 한국과 러시아 연구진은 한국, 중국, 러시아의 잣나무 자연림 12곳에서 채취한 시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 잣나무의 유전변이가 가장 높고 중국, 러시아로 갈수록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제학술지 <수목 유전학> 2005년 8월호에 실린 이 논문은 러시아의 잣나무는 한반도의 것이 확산해 나갔음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동북아 잣나무의 분포는 빙하기의 영향을 받아 변해왔으며, 현재의 분포는 후빙기인 홀로세 때 남쪽에서 북쪽으로 확장했다고 보편적으로 설명한다”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잣나무가 북쪽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집단 크기가 줄어들면서 상당한 양의 유전변이가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점에서 한반도, 특히 북한의 잣나무 분포지가 중요한 (빙하기) 피난처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외설악 권금성 잣나무 천연림. 사진=국립산림과학원
그러나 최근에는 한반도뿐 아니라 백두산 등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지역 안에서도 잣나무가 춥고 건조한 기후조건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잔존했다가 나중에 퍼져나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일본의 잣나무는 한반도를 통해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후 대륙과 고립돼 유전자 교환의 기회가 적었고 기후 변동에 따른 분포 변화를 겪으면서 유전변이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러시아로 확산해 나간 잣나무의 ‘고향’은 일본의 피난처가 아닌 한반도를 포함한 러시아 이남의 피난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규모는 작지만 유전다양성이 높은 한반도 잣나무의 보전 가치는 매우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 교수는 “하루빨리 잣나무 자연집단과 주변 개체들에 대한 기초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며 “북한의 잣나무에 대한 연구와 중국, 러시아 등의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인터뷰 파벨 크레스토프 러시아 극동 식물원 원장
“동북아 식물 연구, 국경 넘어 협력 강화를”
“러시아와 일본 연구자가 쿠릴 열도와 홋카이도 식물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같은 식물을 놓고 두 나라 학자가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종이 전체의 30%나 됐습니다.”
생물의 학명을 라틴어로 국제학술지에 기재하는 까닭은 애초 다를 수밖에 없는 일반명을 넘어 적어도 학자들끼리는 명칭을 통일하자는 뜻에서다. 크레스토프 박사는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이유를 종을 규정하는 학술적 시각차뿐 아니라 이 지역 과학자들 사이의 소통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동북아 지역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지역이고 또 공통점도 많다”며 “동북아 지역 차원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국립수목원이 2012년 발의해 현재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대만 등 동북아 7개국 8개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는 ‘동아시아 생물다양성 보전 네트워크’(EABCN)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아는 무엇이 특별할까. 그는 “온대이지만 북미처럼 빙하기 때 얼음에 덮이지 않아 이때 살아남은 생물이 많다. 이 지역 활엽수 대부분이 이런 유존종이다. 참나무, 음나무 등이 그런 예다. 오랜 생존 역사를 지닌 다양한 생물이 사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런 동북아 식물의 가치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그는 지적한다. “과학자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교육에 너무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국과 중국이 인구밀도가 높은데다 산업화 속도가 빨라 이런 특별한 식물이 위협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잣나무가 그런 예라는 것이다. “잣나무는 이 지역 온대림을 대표할 만한 특별한 나무입니다. 잣을 땅에 묻어 이 나무를 퍼뜨리는 동물만도 다람쥐, 잣까마귀 등 대여섯 종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사람의 과도한 이용과 벌채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만 해도 지구 온난화로 잣나무의 생장이 좋지 않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남한의 잣나무와 함께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울릉도·한라산·설악산의 고산식물 옮겨놓은 듯
동북아 북방계 식물 자생지 답사 ③ 일본 야쓰가타케 보호림
빙하기 홋카이도·사할린 통해 대륙 연결, 낯익지만 다른 종 식물 많아
월귤, 시로미, 만병초, 솔송나무 한 자리서 '원시림 정원' 이뤄
» 용암 위로 이끼가 뒤덮은 야쓰가타케 보호림의 아고산 침엽수림대 모습.
“이게 무슨 종이죠?” 식물학자와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묻는 말이다.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우리나라의 어떤 종과 비슷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선 달랐다. 우리 식물과 형태는 비슷해도 종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았다. 한반도와 일본 모두 지난 빙하기 때 식물의 피난처였지만 일본은 지난 2만년 동안 섬으로 고립되면서 종의 분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 일본 나가노현 야츠노타케 보호림 위치
지난달 11일 일본 열도의 중앙인 나가노현과 야마나시현 경계에 위치한 야츠가타케 보호림을 찾았다. 이곳은 300만년 전까지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고산지대로, 빙하기 식물의 피난처여서 희귀식물이 많은 국립공원이다.
보호림에 들어서자 “문을 꼭 닫고 다니시오”란 팻말이 붙은 그물 울타리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사슴을 막기 위한 시설이다. 동행한 오하시 하루카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박사는 “일본사슴이 1만 마리 이상 사는데 희귀한 고산식물을 마구 먹어치워 큰 골치”라고 말했다.
» 겨우내 일본사슴이 껍질을 벗겨먹은 침엽수 모습. 보호림 안에만 1만 마리가 산다.
실제로 겨울 동안 사슴이 나무껍질을 벗겨 먹은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포식자인 일본늑대가 멸종하고 사냥이 준데다 기후변화까지 겹쳐 사슴이 급증했다”고 오하시 박사가 설명했다.
보호림 안에는 일본분비나무가 빽빽이 들어서고 자작나무가 군데군데 섞여있는 아고산 침엽수림이 펼쳐졌다. 해발 2100m 고도였다. 수령 200년은 돼 보이는 커다란 분비나무 아래에 어린 분비나무가 대를 이뤄 자라고 있었다.
» 일본분비나무 거목과 그 밑에 돋아나는 어린나무들.
» 거목이 쓰러진 숲 틈에 돋아난 어린 침엽수. 자연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거목이 쓰러져 숲 틈이 생긴 곳에는 쏟아져 들어온 햇빛을 받아 어린나무들이 올망졸망 자라 침엽수 유치원 같았다. 죽음과 삶이 윤회하는 전형적인 자연림의 모습이다.
어느 지점을 지나자 숲 바닥을 뒤덮던 조릿대가 자취를 감추고 이끼가 나타났다. 조릿대가 기승을 부려 어린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희귀 초본이 사라지는 현상은 우리나라 한라산 등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나카오 카츠히로 총합삼림연구소 박사는 “조릿대는 40~50년마다 꽃을 피우고 일제히 죽기 때문에 생태계에 어떤 구실을 하는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용암을 덮은 이끼 위에 자연림이 덮여 한라산 곶자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는 사스래나무는 키가 작지만 이곳에선 한 아름은 될 거목이 흔했다. 나카오 박사는 “한라산 아고산대에 올랐을 때 이곳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숲이 있었다”며 “그러나 종은 달랐고 나무의 키가 훨씬 작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동행한 장계선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한라산의 아고산 침엽수림이 가파르고 바람 센 곳에서 자라지만 이곳은 고도가 높아도 평지인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숲 바닥을 용암이 가득 메우고 그 위를 이끼가 뒤덮고 있는 모습은 한라산의 곶자왈을 떠올리게 했다. 설악산 등 고산지대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만병초가 마치 정원에 심어놓은 것처럼 다양한 종이 가득했다.
» 우리나라에서 고산지대에서 드물게 만나는 다양한 종류의 만병초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숲바닥은 고산 희귀식물인 시로미와 월귤이 덮고 있었고, 주변은 키 작은 눈잣나무와 북한에만 있는 풀산딸나무, 가장자리엔 솔송나무와 섬잣나무, 분비나무가 둘러쌌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을 보려면, 섬잣나무와 솔송나무는 울릉도, 시로미는 한라산, 눈잣나무와 월귤은 설악산에 가야만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해발 2200m 고도의 평지에 모두 모여 있었다. 원시림의 정원 같은 모습이었다.
» 월귤, 시로미, 만병초, 솔송나무 등 희귀 고산식물이 한 곳에 자라고 있어 원시림 고산 정원을 이루고 있다.
나카오 박사는 “이곳은 빙하기가 끝난 뒤 고산지대로 쫓겨난 아한대성 침엽수가 잔존하는 피난처”라며 “피난처라는 개념이 아직 보전정책에 널리 쓰이지 않고 있지만 기후변화 시대에 이런 역사적, 진화적 관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의 고산식물이 비슷해 보여도 종이 꼭 같은 건 아니다. 한국의 식물은 좀 더 대륙에 가까운 형질을 지니고 있지만 일본 식물은 오래 고립돼 분화가 진행된 것이 많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동안 러시아의 사할린과 일본의 홋카이도, 혼슈가 육지로 연결됐다. 이때 일본 남쪽과 한반도의 연결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때 홋카이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 북방계 식물이 대거 유입됐다.
» 보호림의 시로미. 우리나라에선 한라산 정상에서만 볼 수 있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생물지리학)는 “이런 자연사 배경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북방계 식물엔 공통종이 많다. 홋카이도 다이세츠잔 고산지대는 위도가 43도로 한반도보다 훨씬 높지만 설악산의 눈잣나무와 한라산의 돌매화, 시로미 등이 다수 분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난 뒤 일본의 북방계 식물은 고산지대에 고립되면서 외부로부터 유전자 유입이 없이 독특한 진화의 경로를 걸었다. 이제 인위적 기후변화로 동북아 북방계 식물은 다시 한 번 위기에 놓였다. 과거 일본에서 이들이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아는 것은 한반도와 다른 동북아 생태계 보전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공 박사는 말했다.
일본 나가노현/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인터뷰 다나카 노부유키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박사
"기후변화 동아시아 공동 모니터링 시급"
» 일본너도밤나무를 안아보고 있는 다나카 박사.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는 일본너도밤나무이다. 울릉도 특산인 너도밤나무와 매우 가까운 이 나무는 일본 특산으로 일본 열도 전역에 분포하는 낙엽 활엽수이다. 그런데 선선한 온대 기후를 좋아하는 이 나무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곳곳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고산지대에 쫓겨났는데도 혼슈 이남에서는 쇠퇴 징후가 짙다.
다나카 노부유키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박사(사진)는 지난 5년 동안 일본 중부인 쓰쿠바산(해발 877m)에서 일본너도밤나무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을 연구해 왔다. 다나카 박사는 “기후변화로 온대림이 난대림에 밀려 사라지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하루빨리 정밀한 모니터링을 해 보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쓰쿠바산을 연구 대상지로 정한 이유는.
=1000년 이상 된 절과 신사가 있어 일본너도밤나무 숲 극상림이 보전돼 있다. 난대림의 북한계지로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너도밤나무는 기후변화로 이미 취약해진 상태여서 상록수림에 밀려 산 정상 부근에 7023그루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모니터링을 하나.
=자생지 404㏊ 안에 있는 키 2m가 넘는 일본너도밤나무에 패찰을 붙여 한 그루씩 관리한다. 또 1㏊ 크기의 시험구를 정해 가슴높이 지름 5㎝ 이상인 모든 개체를 정밀 조사한다. 동시에 314㎡ 넓이의 시험구 62곳을 정해 그 안의 모든 식물을 조사한다.
» 쓰쿠바산 최대의 일본너도밤나무. 지자체의 설명문에는 수령 800살, 지름 7m로 돼 있다.
-지금까지 조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나.
=난대림이 점점 높은 곳으로 침입하고 있다. 전에 없이 겨울에도 푸릇푸릇한 산이 되고 있다. 상록수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지만 너도밤나무는 그늘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다. 일본너도밤나무 거목은 많지만 어린나무가 없다. 큰 너도밤나무가 쓰러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상록수가 돋아난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우선 정확한 실태를 알기 위해 정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동북아 공동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너도밤나무는 차츰 북상할 것이다. 이들이 이동할 회랑을 조성해 줘야 한다. 보호구역을 신설하거나 기존 보호구역에서 관리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도 있다.쓰쿠바/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 주목받는 풍혈
북방계 식물의 미니 피난처
» 한겨울에도 푸른 빛을 띄고 있는 홍천 풍혈의 월귤. 우리나라에는 설악산 고산지대과 이곳에만 자생지가 있다.
강원도 홍천군 방내리의 풍혈은 농가와 경작지 옆 야산에 자리 잡고 있다. 돌무더기가 애추(너덜)를 이룬 끝자락에 여름이면 찬 기운이 나오고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나온다. 주민들은 김칫독을 보관하는 등 나름대로 이곳을 이용해 왔지만 북극에 사는 식물이 터잡고 사는지는 몰랐다.
북극이나 백두산 고산지대 등에 분포하는 월귤이 이곳 풍혈 주변 10㏊ 면적에 분포한다. 국내에선 설악산 정상 일대에 일부 있는 것이 전부이다. 홍천의 풍혈에선 이밖에 큰연영초, 도깨비부채, 개족도리풀 등의 희귀식물과, 고산 능선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가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높은 산에만 사는 희귀 고사리인 주저리고사리도 경남 밀양의 얼음골과 함께 이곳에 분포한다.
이처럼 돌무더기, 동굴, 함몰지 형태의 독특한 지형에서 여름에는 주변보다 찬 공기가, 겨울에는 더운 공기가 나오는 곳을 풍혈(얼음골)이라 부른다. 주민의 휴식처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풍혈이 기후변화 시대에 북방계 희귀식물의 피난처로서의 보전 가치가 주목되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지난해 발간한 책 <한국의 풍혈>에서 “풍혈은 여름철 고온에 민감한 극지·고산식물 등 북방계 식물이 지구온난화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는 피난처 구실을 한다”며 이에 관한 연구와 보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홍천 월귤의 예처럼 빙하기 때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이 앞으로 기온 상승 시기에 살아남는 길은 설악산 같은 고산지대로 가거나 여름에도 시원한 풍혈로 숨어드는 것뿐이다. 풍혈은 소규모 피난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뿐 아니라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더라도 고산식물이 살아남는 보존 기지 구실을 한다.
»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주목이 어린나무부터 고목까지 있는 가리왕산. 풍혈지대이다.
최근 스키장 건설로 환경파괴 논란을 빚고 있는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도 약 2만㎡에 걸친 풍혈이 존재하는 것으로 환경영향평가에서 밝혀졌다. 덕분에 여름에도 서늘하고 습한 미기후가 조성돼 가리왕산에는 내륙에서는 유일하게 주목이 어린나무부터 고목까지 세대별로 분포한다.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 등 연구진은 2012년 <환경영향평가>에 실린 논문에서 각종 문헌과 자료에 비추어 전국에 69곳의 풍혈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따라 풍혈의 생태학적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교란과 훼손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풍혈의 유지·관리를 위한 방안으로 연구진은 전체 풍혈에 대한 조사, 풍혈을 환경영향평가 항목으로 도입, 보전구역 설정 등 보전과 이용 정책 수립 등을 제안했다
"식물엔 국경이 없다"…신갈나무 터전은 동아시아 전역 2014.10.15.
동북아 북방계 식물 자생지 답사 ④ 한반도 중부 산악지대
중국·일본·몽골 식물학자가 곰배령 등 한국 산 탐방해
식물의 자연사 이해는 좁은 국가주의 넘는 유력한 통로
» 동아시아 생물다양성 보전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11일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의 곰배령을 찾아 신갈나무로 뒤덮인 봉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여긴 이제야 단풍이 한창이네!” 이달 초 백두산 식생 조사를 한 김영환 중국 과학아카데미 센양 응용생태연구소 박사는 백두산에는 이미 절반 넘게 낙엽이 졌고 꼭대기엔 흰 눈으로 덮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11일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을 찾은 2014 동아시아 생물다양성 네트워크 심포지엄 참가자들은 익숙하지만 조금 낯설기도 한 한반도 중부의 자연을 둘러봤다. 김 박사는 “점봉산의 해발 1000m 지점에서 보이는 신갈나무, 거제수나무, 고로쇠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이뤄진 숲이 백두산 자락의 식물과 아주 비슷하다”며 “북쪽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곳으로 가면 식생 변화가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 강원도 양구군 두타연 주변의 숲 모습.
일본 참가자인 다나카 노부유키 삼림총합연구소 박사도 10일 강원도 양구군 두타연 주변을 둘러보다 함박꽃나무를 발견하고는 “일본에선 깊은 산에서 매우 드물게밖에 볼 수 없는 나무”라며 반가워했다. 그러나 함박꽃나무는 일본 북부 지방에는 없고 동해 쪽에만 있는 흥미로운 분포 양상을 보인다. 그는 “해수면이 낮아진 빙하기 동안 한반도와 규슈가 육지로 연결됐을 때 건너왔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점봉산의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서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자연을 자국의 것과 비교하면서 그 차이와 공통점을 묻고 토론했다. 계곡의 여울 아래 소에서 열목어 한 무리가 물살에 떠내려오는 물벌레를 노리며 유영하고 있었다.
» 곰배령 가는 길 옆의 하천에서 한 무리의 열목어가 유영하고 있다.
몽골 참가자인 바담도르지 바야르톡토흐 몽골대 교수는 “몽골 북부 산악지대에도 타이멘이라 불리는 대형 열목어가 산다”고 말했다. 열목어는 북극해로 흐르는 하천에 광범하게 서식하며 남한은 그 남쪽 분포 한계지이다.
한 나라의 희귀종이 이웃 나라에 가면 흔한 식물이 되기도 하다. 또 식물에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같은 종이 수천㎞ 떨어진 곳에 띄엄띄엄 분포하기도 한다.
» 다나카 노부유키 박사가 참가자들에게 고정 조사구의 장기 식생조사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식물의 지리적 분포를 둘러싼 이런 의문을 풀려면 적어도 수만년 동안의 자연사를 짚어보고 시야를 한 나라에서 동아시아로 넓혀야 한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 연구기관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작업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곰배령 정상에 오르자 점봉산 일대 고산을 갈색으로 물들인 신갈나무 군락이 펼쳐졌다. 신갈나무는 우리나라 높은 산 어디에나 분포하는 소나무와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나무이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신갈나무는 사실상 동아시아의 나무이기도 하다.
» 곰배령의 신갈나무 숲. 신갈나무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무의 하나이다.
» 신갈나무 분포 지역. 그림=<동아시아 주요 식물> EABCN
다나카 박사는 “일본 혼슈와 홋카이도 높은 산에 신갈나무가 많지만 습한 곳은 너도밤나무, 건조한 곳은 신갈나무가 나눠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연해주 일대, 중국은 동북지역과 황허 유역에 신갈나무가 광범하게 분포한다.
하오 장칭 중국 과학아카데미 응용생태연구소 박사는 “신갈나무는 가뭄, 화재, 저온, 고온에 모두 잘 견디는 강인한 나무인데다 목재 가치도 뛰어나 중국에서도 중요한 나무”라고 설명했다.
» 참가자들이 대관령 도둑재에서 심은 지 80여년 돼 자연림처럼 자란 소나무숲을 둘러보고 있다.
» 소나무 분포도. 그림=<동아시아 주요 식물> EABCN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나무이지만 한반도에만 분포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홋카이도 이남의 전역에 분포하며 중국의 산둥반도 등 서해 쪽 해안과 한반도와 가까운 만주 일대에서도 자란다. 러시아에선 소나무가 두만강 근처에서나 보는 희귀식물로 보호종이다. 그러나 소나무가 왜 이런 분포를 하게 됐는지와 기원 등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반대로 광릉요강꽃은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종 1급의 특별한 보호대상이지만 중국과 일본에 개체수는 적지만 폭넓게 분포하고 대만에도 있다. 또 계수나무는 익숙하게 듣는 나무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엔 자생지가 없고 일본과 중국에 많다.
러시아 참가자인 파벨 크레스토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 지부 박사는 한 마디로 “식물에게는 국경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아시아가 북극에서 열대까지 끊어지지 않은 숲으로 연결된 지구에서 가장 긴 수림대라며, 신생대 제3기 이후 한번도 빙하에 완전히 덮이지 않아 매우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아시아 식물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자연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국가간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시아 학자들은 강원도 산악지역을 걸으며 ‘식물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동아시아 식물의 자연사를 이해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뿐 아니라 좁은 국가주의를 넘어 이 지역의 교류와 협력을 이루는 유력한 통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시아 100대 식물’ 출간
‘식물의 판다’ 등 6개국 연구기관 선정한 희귀·대표 식물 모아
» 러시아가 대표식물로 내놓은 산삼(야생 인삼). 남획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심한 멸종위기에 놓인 식물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몽골·대만 등 동아시아 6개 나라 7개 식물 연구기관이 최근 <동아시아 주요 식물도감>을 펴냈다. 223쪽의 영문 서적인 이 도감은 동아시아의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첫 번째 공동 성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각 연구기관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식물, 특산 식물, 기후변화와 훼손으로 멸종 위기에 있는 희귀식물 등을 선정해 모두 100종을 모았다.
한국에서는 미선나무, 구상나무, 세뿔투구꽃 등의 특산식물과 함께 동아시아 차원에서 분포와 이동 경로를 규명해야 할 종들을 올렸다. 둥근잎꿩의비름은 주왕산에만 분포하는 한국 고유종으로 여겼지만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해안과 우수리 남부, 두만강 등에서도 발견됐다.
»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동부에 분포해 그 기원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등칡.
등칡은 한반도와 만주·중국 내륙 일부에 분포하는데, 특이하게 북아메리카 동부에서도 자란다. 500만년 전 빙하기 때 베링해가 육지로 연결됐을 때 양쪽에 모두 분포했다가 고립돼 다른 종으로 분화한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식물 가운데는 세계적 희귀식물이 많았다. 아름답고 희귀해 ‘식물의 판다’로 불리는 황금 동백나무는 광시성 좡족자치주 석회암 지대의 고유종이다. 이 지역 석회암 산악의 카르스트 지역에 극소수가 남아있는 더바오 소철도 1997년 발견된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관상용으로 불법 채취가 성행했으나 현재 1급 국가 보호종이다.
» '식물의 판다'로 불리는 중국의 희귀식물 황금동백나무.
은행나무는 2억 7000만년 전 출현한 대표적인 ‘화석 나무’이다. 한반도와 일본 등 전 세계에 널리 심겨졌지만 자생지는 중국 저장성 등에 일부가 남아있을 뿐이다.
메타세쿼이아도 중생대가 끝나고 신생대 제3기가 시작됐을 무렵 북반구에 가장 널리 퍼져 자라던 나무였다. 한반도는 물론 그린란드에서도 화석이 나온다. 1948년 화석에 있는 나무가 실제로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쓰촨 등 자생지가 일부 있고, 세계적으로 가로수 등으로 많이 심는다.
해당화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18세기 말 유럽에 도입돼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대표적 식물이다. 해안 생태계의 주역으로 바람을 막고 모래를 고정해 준다. 한반도와 일본의 전 해안에 분포하지만 캄차카와 중국 동북지역 해안에도 산다. 중국에선 보호종이다.
» 계수나무 거목. 중국과 일본에 분포할 뿐 우리나라에는 없다.
일본의 상징 나무는 금송이다. 살아있는 모든 침엽수 가운데 가장 오랜 계열로서 메타세쿼이아나 호주의 월레미 소나무보다도 오랜 종이다. 백악기 말부터 북반구에 널리 분포했는데 빙하기와 함께 분포지역이 축소됐고 일본 혼슈 중부에 있는 피난처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금송과 함께 조림된 나무의 44%를 차지하는 삼나무도 일본을 대표한다. 2만년 전 빙하기 때 중국 일부 지역과 일본의 피난처에서 살아남았다. 한반도에도 지난 간빙기 때 금송이 분포해 화석이 출토된다.
금송과 함께 조림된 나무의 44%를 차지하는 삼나무도 일본을 대표한다. 2만년 전 빙하기 때 중국 일부 지역과 일본의 피난처에서 살아남았다. 계수나무도 마찬가지로 신생대 제3기부터 살아남은 유존종인데, 중국 쓰촨 분지와 일본에만 살아남았다.
오가사와라뽕나무는 뽕나무의 가장 오랜 조상으로 꼽힌다. 이 섬은 도쿄에서 1000㎞ 떨어진 대양섬으로 한 번도 육지와 붙은 적이 없어 섬 식물종의 절반이 고유종이다. 이 특산 뽕나무는 150주만 남아 있는데 현재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 눈 많고 안개 많이 끼는 캄차가 해안의 특징적인 키 큰 초본을 대표하는 안젤리카 우르시나.
러시아를 대표하는 안젤리카 우르시나는 산형과의 거대 초본으로 키가 4.5m에 이른다. 캄차카 남부와 사할린, 쿠릴 열도 등에 분포한다. 눈이 많이 오고 여름엔 안개가 자주 끼는 해안에서 자생한다. 짧은 여름 동안 빠른 속도로 자라 한대 지역 해안의 독특한 키 큰 초원 경관을 형성한다.
대만 물부추는 ‘꿈의 호수’라는 2800㎡ 넓이의 작은 호수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이다. 수위가 유지되지 않으면 금세 사라진다. 2006년 2개체로 들어들기도 했지만 현재는 2만 개체 이상으로 불었다.
꿩고비는 고생대 때 남반구의 곤드와나 대륙에서 기원해 북반구로 퍼져나간 옛 식물이다. 적어도 7000만년 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살아있는 화석이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 흔하지만 대만에선 희귀종으로 보호받는다.
동아시아는 면적 2000만㎢에 북위 20도~70도에 걸쳐있는 방대한 지역으로 매우 다양한 생물다양성을 보유한다. 특히 제3기 이후 빙하에 완전히 덮이지 않은 지역이어서 고대 식물을 비롯해 매우 다양한 식물이 분포한다.
파벨 크레스토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극동 지부 박사는 이 책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은 식물 세계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경계를 제거하자는 것”이라며 “각 식물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연구자로부터 끌어내고 폭넓은 토론을 유도하기를 바란다”라고 적었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사진 국립수목원 제공
■ '동아시아 생물다양성' 심포지엄
빙하기 피난처가 생물다양성 살찌웠다
» 13일 평창에서 열린 동아시아 생물다양성 보전 네트워크의 첫 심포지엄 모습.
동아시아의 높은 생물다양성은 빙하기 때 다양한 피난처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이동 덕분이란 주장이 나왔다. 또 인위적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지역 차원의 장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동아시아 생물다양성 보전 네트워크(EABCN)는 국립수목원과 산림청 후원으로 13일 강원도 평창에서 ‘동아시아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 심포지엄을 열었다.
파벨 크레스토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극동지부 박사는 주제발표에서 “현재의 동아시아 식생 분포는 지난 플라이스토세(250만년 전~1만2000년 전 지질시대)와 홀로세(1만2000년 전 이후 시기) 동안 기후변화가 초래한 수많은 식물군집의 이동 결과 형성된 것”이라며 특히 2만 1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식물상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한랭화와 건조화로 아시아 본토의 넓은 면적에서 따뜻하고 습기를 좋아하던 식물이 멸종하거나 태평양 연안의 온난한 지역이나 섬 등 피난처에서 머물다가 이후 빙하가 물러가자 내륙과 북쪽으로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또 빙하기 동안 중앙아시아에서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종이 동아시아로 유입돼 생물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는 지난 빙하기 절정기 때 얼음이 동아시아 전역을 뒤덮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자작나무와 낙엽송 등 북방계 식물은 오호츠크해 일대로부터 태평양 연안을 따라 육지로 연결된 사할린과 홋카이도로 향했고, 동해 쪽으로는 한반도 중부까지 확산했다. 이후 습윤한 홀로세가 오자 따뜻한 해안 피난처에 있던 가문비나무, 사스래나무, 눈잣나무 등이 추운 대륙 안쪽으로 이동했다.
» 동아시아 대표 식물의 하나인 잣나무의 과거와 예상되는 미래 분포도. 맨 왼쪽은 14만년 전 지난 간빙기 때의 분포도. 두번째는 마지막 빙하기가 절정이던 2만1000년 전의 모습. 3번째는 현재의 분포도. 맨 오른쪽은 2080~2100년 기후변화로 예상되는 새로운 분포도. 그림=파벨 크레스토
또 잣나무와 낙엽 활엽수림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의 피난처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확산해 나갔다고 크레스토 박사는 설명했다. 기후변화와 피난처가 동아시아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하오 장칭 중국 과학 아카데미 박사는 2004년부터 백두산의 잣나무림 25㏊에 고정 조사구를 설치해 장기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요 식물종은 잣나무, 피나무, 신갈나무, 들메나무인데 지름 1㎝ 이상인 나무 약 4만 그루를 5년마다 일일이 조사해 기초자료를 모으고 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발표문을 통해 “국가 수준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공동연구나 활동은 미미했다”며 “매우 비슷한 식생과 환경을 공유하고 연속적인 생태계를 구성한 이들 지역의 공동 노력이 생물자원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lijah Bossenbroek - A Song Of Simplicity
.........Elijah Bossenbroek - on The Wings
.........Elijah Bossenbroek - I Give Up
.........Elijah Bossenbroek - Rest
.........Elijah Bossenbroek - Ignorance
.........Elijah Bossenbroek - Harmony In Disar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