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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좌파집권연구회 `밥과 장미` 원문보기 글쓴이: 김성원
민주노총, 단일노조로의 전환 시작해야
전두환 정권이 탄생시킨 기업별 노조 시스템
1980년 5.17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노동법을 개악하여 산별노조를 불법화하고 기업별 노조로 노동조합 조직체계를 강제적으로 바꾸었다. 산별노조의 연합체였던 한국노총은 전두환 정권의 강압에 따라 기업별 노조 연맹으로 조직 체계를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단위노조의 조직 형태를 산별노조에서 기업별 노조로 후퇴시킨 전두환 정권의 노동법 개악은 1987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 때도 개선되지 않았다.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떨쳐 일어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단히 전투적이었지만, 불행히도 이들은 전두환 정권이 개악한 노동법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노동운동가들이 참고했던 일본 노동운동의 경험들이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나온 것들이었다는 점도 한국 노동운동이 기업별 노조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출범과 산별노조 운동
1990년대 중반 전노협이 민주노총으로 조직 형태를 한 단계 발전시키면서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는 산별노조 운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업별 노조 체계로는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으며, 애사심과 노사협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노동자들이 보수화된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이 기업별 노조의 직접 가입을 허용하지 않고, 산별 노동조합연맹의 가입만을 허용했던 것도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민주노총은 10여년에 걸쳐 서서히 산하 노조의 조직 형태를 산별노조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보건의료노조와 전교조를 시작으로 금속노조, 공공노조 등 민주노총을 구성하는 주요 거대 노조가 산별노조로 조직형태를 전환했다. 올해에는 통합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의함으로써 금속, 공공, 공무원,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등 가입자 수 상위 5대 노조는 모두 산별노조가 되었다. 여기에 과학기술노조와 전국언론노조와 같은 소산별노조를 합치면 민주노총의 지배적인 조직 형태를 산별노조로 바뀐 셈이다.
지체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전환
하지만 민주노총의 산별노조화를 가로막는 여러 가지 걸림돌 역시 뿌리깊게 남아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별 노조 시스템과의 타협이라 할 수 있는 산별노조의 기업별 지부가 아직까지 지배적인 조직 형태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관료들이 산별노조로의 완전한 전환을 꺼리면서 기업별 노조로의 퇴행, 또는 산별노조 기업별 지부 해소 반대 등과 같은 방해 책동을 벌이면서 조직 형태의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
기업별 노조 시스템의 유산은 민주노총 조합원 가입과 조합비 납부, 대의체계 구성 과정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노동자 개인이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직접 가입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민주노총을 구성하는 산별노조의 경우에도 사실상 노동자 개인이 직접 가입하는 형태로 조합원 수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개인은 단위 기업 노조나 기업별 노조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산별노조 기업별 지부에 가입하고, 단위 기업 노조와 산별노조 기업별 지부는 노동자가 납부한 조합비 중 일정한 비율을 민주노총에 납부할 뿐이다. 이렇게 노동자 개인이 민주노총에 직접 조합비를 납부하며 조합원으로 가입하지 못하는 것은 각 사업장 별로 기업별 노조를 구성한 후 조합비를 사측이 봉급을 지급할 때 일정 비율만큼 일괄 공제하여 노조 집행부에 전달했던 관행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비를 거의 전적으로 각 단위 기업노조에 의존하게 된 민주노총은 대의 체계 역시 민주적으로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 민주노총 최고 의결기관인 대의원대회는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한 대의원들로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소위 '맹비'라 불리는 단위 기업노조의 조합비 납부 액수에 따라 민주노총은 파견 대의원 수를 각 단위 노조에 할당하고, 각 단위 노조 집행부는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 파견할 임원을 지명하는 식으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와 같은 중대한 안건이 대의원 대회에 상정될 때마다 각 단위 기업노조들이 파견 대의원 할당수를 확보하기 위해 미납했던 맹비를 납부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해법은 단일노조로의 전환이다
기업별 노조 체계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민주노총은 주요 고비 때마다 고질적인 정파 갈등과 지도부-현장 조합원의 괴리를 노출시키며 큰 내상을 입었다. 2005년 초 노사정위 복귀 안건을 둘러싼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는 기업별 노조 체계가 민주노총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얼마나 해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04년 말 조합원 총투표로 결정한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 방침을 불과 몇 달 만에 대의원 대회를 통해 철회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민주주의는 실종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노사정위 복귀를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 안건으로 상정했거나, 최소한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조합원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대표성을 인정받았다면, 노사정위 복귀 반대파들도 폭력까지 불사하며 대의원 대회를 무산시키는 명분없는 행동을 함부로 저지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 이상 기업별 노조 체계 속에서 노동운동의 민주화를 진전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꺼려하는 형국을 타개하지 않으면 민주노총의 활로를 뚫을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이 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해법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첫째,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보다 더 높은 조직 형태인 단일노조로의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자들이 직종, 산업, 기업, 성별, 인종, 지역, 종교, 학력 등의 차이를 초월하여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좋은 조직 형태는 바로 단일노조이다. 기업별 노조 체계의 유산이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현 실태를 극복하기 위해,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에서 단일노조로의 이행을 위한 중간 단계라는 점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등 노동운동의 연대를 저해해 왔던 여러 가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조합원의 회비를 단위 기업 노조가 징수하여 민주노총에 대리 납부하던 관행을 탈피하고 CMS 시스템을 도입하여 조합원 개인이 민주노총에 직접 가입하여 회비를 납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재정이 단위 기업 노조의 맹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이상, 민주노총은 단위 기업 노조 위원장,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조 위원장의 입김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CMS 시스템의 전면 도입을 통한 조합원 개인의 민주노총 회비 납부가 정착되어야 더 이상 대기업 정규직 노조 위원장들이 맹비 납부를 무기로 민주노총에서 특권을 휘두르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은 1997년 국민승리21 출범 이후부터 당원 개인이 CMS를 통해 직접 당비를 납부해 왔다는 전통을 참조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맹비 시스템'은 시대착오적인 관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CMS 조합비 납부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조합원 개인이 민주노총에 직접 가입하는 이상,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권 역시 조합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민주적으로 선거되지 않은 민주노총 대의원들의 담합에 의해 위원장이 선출되는 구조로는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이 민주노총의 공론으로 자리잡히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를 실시함으로써 현장 조합원들이 직접 민주노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노조 중간 간부들의 농간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선거인 명단 작성의 애로를 들어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에 난색을 표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조합원 회비를 CMS로 직접 납부하면 민주노총 조합원 선거인 명단 작성의 실무적인 문제점도 사라지는만큼 위원장 직선제를 회피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넷째,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들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같은 층위의 조직인 산별본부로 조직을 전환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조직 체계를 크게 지역본부와 산별본부로 나눈 후에, 각 지역본부는 다시 기초자치단체 생활권을 매개로 한 지역지회로, 산별본부는 산별 지역지회로 나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조직 체계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민주노총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총장 조합원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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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본부(광역지자체별 구성) 산별본부(기존 대산별노조의 전환)
(본부장, 부본부장, 사무처장 조합원 직선) (본부장, 부본부장, 사무처장 조합원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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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지회(소지역권별 구성) 산별 지역지회(소지역권별 구성)
(지회장, 부지회장, 사무처장 조합원 직선) (지회장, 부지회장, 사무처장 조합원 직선)
* 위 그림에서 나타난 지역지회와 산별 지역지회는 서로 겹치고 융합되는 부분이 많다. 몇 개의 산별 지역지회가 하나의 지역지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ex. 울산북구 지역지회 = 금속노조 울산북구지회+공무원노조 울산북구지회+전교조 울산북구지회+공공노조 울산북구지회+...) 다만 산별본부는 전국을 대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광역지자체별로 구성되는 지역본부와 조직이 중복되지 않는다.
이렇게 민주노총 조직 체계를 민주노총-지역본부/산별본부-지역지회/산별 지역지회 식으로 구성한다면 단일노조로의 조직적 전환이 완료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민주노총을 단일노조로 전환시킨 이상 재정 역시 민주노총 중앙 사무총국에서 총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재정은 중앙당 사무총국에서 당비와 국고보조금을 모두 합산한 다음 중앙당, 광역시도당, 지역위원회 별로 당헌 당규에 정해진 비율대로 교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노총의 조합비와 국가의 보조금 역시 민주노총 중앙 사무총국이 모두 합산한 다음 민주노총 중앙, 지역본부/산별본부, 지역지회/산별 지역지회 별로 정해진 비율에 따라 교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산 편성권을 민주노총 중앙이 장악해야 기업별 또는 산업별로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방침에 어긋나는 맹동적인 행위를 벌이는 작태가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민주노총의 각급 집행부와 대의원 대회는 모두 조합원 직선으로 구성해야 한다. 민주노총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총장과 민주노총 중앙 대의원 대회, 민주노총 지역본부장, 부본부장, 사무처장/민주노총 산별본부장, 부본부장, 사무처장과 각 지역본부 대의원대회, 산별본부 대의원대회, 민주노총 지역지회장, 부지회장, 사무처장과 지회 대의원대회/민주노총 산별 지역지회장, 부지회장, 사무처장과 지회 대의원대회 모두가 조합원 직선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맹비 납부율에 따라 할당된 대의원 수를 단위 기업 노조 위원장이 집행부 인사를 지명하여 채우는 식으로 대의원 대회를 구성하고,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지역본부장과 같은 중요 임원을 간선으로 선출하는 식의 비민주적인 선거 방식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일노조로 전환한 민주노총, 국민총파업 주도할 수 있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내건 구호 중 노동운동진영이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국민총파업'이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 국민모두 총파업하자"라는 인터넷 상의 구호는 촛불시위의 진정한 함의를 간결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서울광장에 최대 100만명의 시민이 쏟아져 나온 적도 있었는데(2008.6.10), 이 군중들이 밤 시간이 아니라 낮 일과 시간에 집회를 했다면 그것이 바로 국민총파업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민들이 직접 노동운동 진영이 실천해야 할 것을 몸소 보여준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걸어야 할 길은 자명하지 않은가. 민주노총은 마땅히 단일노조로 전환하여 산업별, 기업별, 정규직/비정규직별, 대기업/중소기업별, 성별, 지역별, 인종별 차이를 극복하고 한국의 열악한 노동자/자본가 계급 관계를 혁파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민주노총이 지성으로 노력을 다한다면 국민총파업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역학관계를 도출하면서 최소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하는 것 또한 가능해질 것이다. 노조 조직율이 80-90%에 이르고 노총 위원장이 대통령과 버금가는 사회적 위치에 서게 되는 시대를 열기 위해 민주노총은 하루 빨리 단일노조로의 전환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