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항복(Surrender of Japan) 선언

일본의 항복(Surrender of Japan)은 일본 제국이 1945년 8월 14일에 연합국에 통보하였고, 8월 15일 낮 12시에 쇼와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한 것을 말한다. 9월 2일에는 일본의 도쿄만 요코하마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USS 미주리 (BB-63) 선상에서 일본 대표가 정식으로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였다.
1945년 5월 8일의 나치 독일 항복에 이어 1945년 9월 2일에 일본제국의 항복 (포츠담 선언 서명)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은 종결되었다. 20세기의 세계사 세계 대전 시대의 종결과 냉전 시대의 시작을 선포하는 큰 전환이 된 사건이기도하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 의한 점령 통치의 시작이며, 1868년 1월 3일 메이지 유신("왕정 복고의 큰 호령")에 의하여 성립된 일본 제국은 성립으로부터 77년 후에 붕괴했다. 일본 천황을 기축으로 하는 "일본제국"(日本帝國)에서, 일본국 헌법과 미일 안보 조약을 기축으로 하는 "일본국(日本國)"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역사상 1603년 도쿠가와 막부 성립과 1868년 메이지 유신과 나란히 큰 전환점의 하나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1945년 8월 10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소식을 전해들은 파리 시민
1945년 8월 14일,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전해들은 뉴욕 시민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화민국, 정부 수뇌들이 모여 일본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정치가들은 포츠담 선언을 묵살했다. 그 결과 일본 제국의 단말마는 1945년 8월 방문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된 2발의 원자폭탄이다. 이 원자폭탄 이외에, 8월 9일에는 소련군이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 국가인 만주국을 침공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1945년 9월에 정식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일본을 공격할 거라고 예정되어 있으나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는 바람에 실패하였으며 연합국(미국, 영국, 소련, 중화민국) 측에서는 9월에 일본을 독일처럼 분할 점령하려고 했으나 이 역시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무산되어 결국 미국이 단독 점령을 하였다.
그 2발의 원자폭탄은 일본 제국군이 점령한 동북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에서 독립 운동을 야기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의 뚜껑을 끈 사건이 8월 13일 발발한, 호치민의 베트남 8월 혁명이었다. 이 후 8월 14일 쇼와 천황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 하였다.
포츠담 선언 체결
그리고 항복 선언 3일 뒤인 8월 17일에는 일본 군정하에 있었던 인도네시아에서 독립 선언이 나왔다. 그리고 8월 18일에는 괴뢰 국가인 만주국이 결국 무너졌다.
그리고 포츠담 선언은 1945년 9월 2일 체결 즉시 발효되었다. 포츠담 선언 조인식에서는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 9월 2일을 '대일 승전 기념일(VJ 일)'라고 한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이 포츠담 선언 체결 일, 호치민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바오다이 이끄는 베트남 제국은 붕괴했다.
항복 소식을 듣고 할복을 기도한 일본 병사.
일본 제국이 주권을 박탈당하자 식민지는 승전국인 미국, 중화민국에 각각 넘어갔다.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어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하여 일본 식민지가 되었으나 항복하는 바람에 다시 프랑스로 넘어갔다(1945년에 북베트남은 독립운동으로 남베트남은 1954년에 프랑스가 미국으로 넘겨주는 덕에 독립을 하였다).
타이완은 중화민국에 반환되었다.
나머지 일본의 도서 지역은 미국이 주도하는 GHQ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괴뢰 국가였던 만주국은 멸망하였다.
옥음방송(일본어: 玉音放送 ぎょくおんほうそう 교쿠온호소[*])이란 일본 제국의 히로히토 천황이 〈대동아 전쟁 종결의 조서〉(일본어: 大東亜戦争終結ノ詔書 だいとうあせんそうしゅうけつ しょうしょ 다이토아센소슈케츠노쇼우쇼[*])를 읽은 라디오 방송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바라는 포츠담 선언의 요구를 수락하여, 이 방송을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의 항복을 알리게 된다. 이 녹음방송은 오키나와 전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 폭탄 투하, 소련의 만주 침공 이후인 1945년 8월 15일 일본 표준시 기준 정오에 일본 방송 협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방송되었다. 여기서 옥음(玉音)은 일본 천황의 목소리를 말한다.
하루 전인 1945년 8월 13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포츠담 회의의 수락이 결정되어 중립국인 스위스를 통해 전달되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종서는 일본 도쿄 황거의 히로히토 천황에 의해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되었고, 바로 그 날인 8월 14일 밤 11시 20분부터 일본 방송 협회 운영진 8명의 도움을 받아 황궁에 녹음시설을 설치,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총 녹음 시간은 5분이었는데, 당시의 SP 레코드에는 3분 밖에 가지 않았으므로 총 2장에 걸쳐서 녹음되었다.[2] 8월 15일 정오 방송된 내용은 히라카와 다다이치가 진행을 맡았고,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중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기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황 폐하께서 황공하옵게도 친히 전 국민에게 칙서를 말씀하시게 되셨습니다. 지금부터 삼가 옥음(玉音)을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기미가요가 연주되었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이 끝난 후 다시 기미가요가 연주되었다. 방송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옥음방송 내용(현대 한국어)
짐은 깊이 세계의 형세와 제국의 현상에 비추어보아 특단의 조치로서 시국을 수습하려고 하여, 이에 충성스럽고 선량한 그대들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국에 대해 그 공동성명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게 했다.
무릇 제국 신민의 안녕을 꾀하고 세계만방이 공영의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은, 예로부터 황실 조상이 남긴 법도로서 짐이 삼가 신불에 바치는 바이다. 앞서 미·영 두 나라에 선전포고한 까닭도, 또한 실로 제국의 동아시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것에서 나아가, 타국의 주권을 배제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부터 짐의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 교전 상태는 이미 4년의 세월이 지나, 짐이 육해군 장병의 용맹, 짐의 문무백관의 근면, 짐의 억조창생의 봉공, 각각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국면을 반드시 호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대세 또한 우리에게 이롭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적은 새로 잔혹한 폭탄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고 참담한 피해를 입히는 바,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일찍이 교전을 계속했으나, 마침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인류의 문명마저도 파기할 것이다. 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짐이 어떻게 해서든 수많은 백성을 보호하고 황실의 신령에게 사죄할 것이며, 바야흐로 짐의 제국 정부로써 공동성명에 응하게 되기에 이른 연유이다.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 신민으로서 전쟁터에서 죽고, 일하던 곳에서 죽고, 비명횡사한 자 및 유족을 생각하면 오장이 찢어지는 것 같다. 또한 부상을 당하고 재난을 당하고, 가업을 잃은 자의 후생복지에 이르러서는 짐이 깊이 마음에 두는 바이다. 생각컨대 앞으로 제국이 받아야 할 고난은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그대들 신민의 충정도 짐이 잘 알고 있었지만, 짐은 시운을 따르는 바 참기 어렵다는 것을 감추기 어렵고, 어려움을 견딤으로써 후세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열려고 한다.
짐은 이에 국체를 보호 유지할 수 있으며, 충성스럽고 선량한 그대들 신민의 일편단심을 신뢰하고, 늘 그대들 신민과 함께 있다. 만약 그 정이 격해지는 바, 함부로 일의 단서를 번번히 늘리거나, 또는 동포를 배제하고 서로 시국을 어지럽게 하기 위해 대도를 그르치며, 신의를 세계에서 잃는 것과 같은 것은 짐이 그것을 가장 경계한다. 모름지기 온 나라 한 집안 자손이 서로 확실히 전하여, 하늘이 주신 땅이 불멸을 믿고,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생각하여, 장래의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도의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공고히 하리라 선서하고 국체의 정수를 앙양하고, 세계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그대들 신민은 짐의 이 뜻을 꼭 마음에 두고 지켜라.
방송한 후 녹음할 당시 녹음한 판의 상태가 안 좋았을 뿐만 아니라 전시 중이라서 잡음이 특히 심했고, 일반인이 잘 쓰지 않는 어려운 한자가 많았다. 또한 그 당시에는 히로히토 천황의 존재가 신격화되어 있던 때라 일본 국민들은 처음으로 천황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특유의 목소리 때문에 처음부터 알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