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14CAD485869A71433)
32p
우리는 책 사이에서만, 책을 읽어야만 비로소 사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야외에서, 특히 길 자체가 사색을 열어주는 고독한 산이나 바닷가에서 생각하고,
걷고, 뛰어오르고, 산을 오르고, 춤추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 <즐거운 학문>
57p
걷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쪽 발을 다른 쪽 발 앞에 놓는 것, 이것이 바로
가고 싶은 곳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정확한 척도이자 적당한 거리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59 ~ 60p
느림이란 곧,
초(秒)들이 나타나 마치 바위 위에 내리는 보슬비처럼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질 때까지
시간과 완벽하게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간의 늘어남은 공간을 깊이 파고든다. 이것이 바로 걷기의 비밀 가운데 하나다.
74p
걸었다. 항상 걸으며 “경쟁자가 없는 자신의 두 발로” 땅의 너비를 재어보았다.
115p
원래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결코 편애하지는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비로소 자기를 편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시 자기를 사랑하는 법으로 돌아가려면 오랫동안 걸어야 한다.
136p
그 누구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리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네.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하여 일을 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걸어줄 수는 없지.
가장 큰 기준을 바로 이것일세.
151p
참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외관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습관과 전통, 일상을 초월해 관습과 위선, 거짓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163p
걷는다는 것은 곧 전환이며 부름이다.
끝내기 위해서, 그리고 빠져나오기 위해서도 걷기도 한다.
세상의 떠들썩함과 점점 늘어만 가는 일, 마멸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는다.
잊기 위해서,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기 위해서는 지루한 도로를,
한없이 단조로운 숲길을 걷는 것 보다 더 좋은 게 없다.
걷는다는 것은 곧 마음을 멀리한다는 것, 떠난다는 것, 다시 출발한다는 것이다.
226p
결국 걷는다는 것은 항상 똑같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조로움의 비밀은 바로 권태에 대한 치료제라는 사실이다.
권태란 사유의 공백에 직면한 육체의 부동성이다. 걷기의 반복은 권태를 소멸시킨다.
263p
기복 없는 곳에 사는 그들은 도대체 어떤 공간에서 사는 것인가.
태양도 비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그들이 사는 시간은 어떤 것인가.
이처럼 오솔길과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면 우리의 상황을 잊게 된다.
계절과 시간은 전혀 마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278p
우리는 걸으면서 자기 자신과 결산을 한다.
자신을 바로잡고,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다.
282p
걷는 동안에는 모든 기구와 모든 기계. 모든 매개물로부터 멀어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 본연으로 되돌아가 인간이 타고나는 본질인 청빈함을
다시금 구현한다. 그러므로 겸허함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겸허한 사람은 우쭐해하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겸허함은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우리의 진정한 모습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자랑스러운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존재한다. 즉, 우리는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다.
286p
비폭력은 폭력을 부끄럽게 만든다.
자신의 순수한 인간성과 올곧은 위엄을 신체적 폭력에 대립시키는 사람을
계속해서 때리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와 영혼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