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조를 내는 분들께 고마움을 표합시다.
수필가 정임표
올해(2026년) 우리나라의 총지출 예산 규모는 약 728조 원에 달합니다. 이 막대한 재정의 상당 부분은 기업이 납부하는 법인세,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근로자들이 떼어낸 소득세, 그리고 열심히 돈 벌어 성실히 세금을 내는 자영업자들의 주머니에서 채워집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도로와 대중교통, 치안과 국방,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복지와 문화의 혜택은 이렇듯 국민이 묵묵히 이행한 납세의 토대 위에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우리는 세금을 내는 분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마움을 표시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세금은 국가가 당연하게 거두어들이는 권리처럼 여겨졌고, 납세는 피할 수 없는 의무로만 치부되어 왔습니다.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기업인과 자영업자 사장님들, 그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매달 근로소득세를 내게 해주는 고용주들의 공로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셈입니다. 인정은커녕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다행인 각박하고 한심한 환경이 오늘날의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구수필가협회 역시 회비와 회원들의 찬조금으로 움직입니다. 돈이 나올 수익사업이 따로 없으니, 협회의 작은 행사 하나도 결국은 누군가의 지갑에서 나온 재원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국가든 협회든 우리가 속한 모든 조직은 타인의 기여와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조직을 맡은 이들은 공사의 구별을 엄히 해야 하고, 공적인 돈은 10원 하나라도 천금 같은 무게로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 법입니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다리 밑의 거지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볼 수 있습니다. 있는 돈 쓰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가 있습니다. 돈을 벌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돈을 우습게 여깁니다. 돈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마치 자신이 돈에 초연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착각하거나 자신은 돈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통이 큰 사람이라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백이면 백 죄다가 허풍쟁이이자 거짓말쟁이일 뿐입니다. 인생 칠십을 살아본 경험에 따르면 그런 이들일수록 정작 돈 몇 푼에 쉽게 영혼을 팔아버리는 것을 비일비재하게 보았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지위의 법조인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양심을 팔아버린 뉴스를 이 글을 읽는 작가님들은 죄다 보셨을 것입니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우리는 돈에 영혼을 팔아버리는 가엽은 인생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돈에 팔려가더라도 문학을 하는 우리만큼은 달라야겠습니다. 공짜를 멀리하고 성실하게 근검절약하며, 내 형편 범위 내에서 수필문학을 위해 찬조하는 분들을 기억하고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간집 말미에 기부금을 내주신 분들의 이름을 항구적으로 기록하여 감사를 표하고자 회칙을 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규정은 돈을 낸 분을 치켜세워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특정 계층에 특권을 인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협회의 재정을 떠받치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려는 것이며, 후배들도 이를 본받아 수필문학 발전을 위한 귀한 봉사정신을 이어 나가게 하려는 우리 협회의 정신과 철학을 담은 것입니다.(봉사 할 시간 있으면 내 글이나 쓰겠다며 뒤에서 궁시렁 거리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회원들이 쓴 글이 세상에 무슨 유익이 있겠는지요. 회사 직원들도 요즘은 그런 자들이 있어요. 회사의 중요한 문제를 강건너 불보듯하며 '내 일도 아닌데 퇴근 시간 되었으니 집에 가자'고 하는 직원. 공동체에서 그런 정신을 가진 자는 아예 제명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각박해지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고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올해도 연간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귀한 정성을 보태준 분들께 우리의 진심 어린 마음이 닿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감사의 기록이 우리 협회의 내일을 향해 더 단단한 동행을 만드는 따뜻한 불씨가 될 것입니다.(202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