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문제들 중에 나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를 하나 생각해 보십시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빚이라고 해 봅시다. (각자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적용해 보세요)
우리 영 안에 이미 가진 것 중에 부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보가 아니라 진리이며 정보는 듣고 인정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진리는 듣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내가 진짜 믿는지 믿지 않는지는 나의 감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은 진리에 대한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만 감정을 통해 우리가 진짜 믿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내가 진짜 믿으면 결국에는 느껴진다는 얘기지요.
자기를 괴롭히는 그 문제가 사라진 상태를 잠시 상상해 보십시오. 진짜로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빚이 사라진 상태를 한번 '느껴' 보십시오. (느껴보라는 것은 뉴 에이지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진짜 믿는지 안 믿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용합니다.) 빚이 정말 다 사라졌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질병의 문제가 있는 분들, 의사가 '다 치유되었네요!'라고 판정을 내리는 소릴 들었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인간관계의 호의를 원하시는 분들,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부르심의 사명이 모두 다 완수되어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시는 소릴 들었다면 그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이 정말 믿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뉴 에이지에서는 '느껴보라'고 합니다. 뉴 에이지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예수님'만 빼고 성경에서 말하는 원리를 그대로 갖다 사용하는 이단 집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알아보니, 힌두교나 선 사상과 아주 비슷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경의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면에서는 우리 보다 앞서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믿는다는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믿는지 안 믿는지 확인할 때 느껴보는 것도 좋은 방도가 됩니다.
자, 정말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그 기분을 느껴 보시니 평소 믿는다, 믿는다 했던 것에 대한 감정과 같은 감정이십니까, 아니면 평소에는 내 힘으로 얻어내려고 애를 썼는데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좋으십니까? 정말 믿는다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네 통장에 10억 입금했다'라고 했고 그것을 정말 믿는다면 기분이 좋지 않겠습니까? 기분이 좋기만 하겠습니까, 입이 귀에 걸리겠지요. 질병을 앓고 계신 분들, '완치됐습니다'란 소리를 의사에게 듣는다면, 지금 당장은 통증이 느껴지더도 그 시무룩했던 얼굴에 웃음꽃이 피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성경 말씀이 '너는 치유 받았다'라고 하신 그 말씀을 정말 믿었다면 의사가 완치 판정을 내렸을 때와 같은 반응이 나와야 정말 믿은 것입니다. 이제 정말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시겠지요? 정말 믿으면 감정이 따라옵니다.
자,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안 믿어지는 걸 어떡합니까?'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었는데도 믿어져서 천국 가고 어떤 사람은 믿으려고 애를 썼는데도 안 믿어져서 지옥 간다면 하나님만큼 불공평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것은 자기의 선택입니다.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안 믿어지는 것은 안 믿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부분이 받아들이기 힘드실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불신과 의심의 세상에 쪄들어 살기 때문입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아는데, 위의 구절에서는 '믿는다' 대신에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무에 달린 놋뱀을 쳐다만 봐도 살았듯이 믿음은 이렇게 우리의 선택이며 그 선택이 행동을 낳습니다. 믿고 싶으면 믿기로 선택하면 됩니다.
폭탄 하나 또 떨어뜨려도 될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 각자가 처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에 있는 이유는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잠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쉽게 말해 인간은 자기 생각대로 살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저를 예로 들어보면, 저에게는 서울로 갈 수 있는 선택도 있고 부산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선택도 있지만 저는 부산에 있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부산에 사는 것입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옮기면 됩니다. 그런데 그랬을 때 여러 위험 부담을 감당하는 것과 그냥 남아있는 것 사이에 '그냥 남아있기로' 자기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한 것입니다. 왜 그것을 선택할까요? 둘 중에는 그것이 더 낫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것을 인정하는 자와 인정하지 않는 자, 이렇게 둘로 나뉩니다. 인정하면 삶이 아주 심플해지고, 모든 말씀이 너무나 단순하게 다가옵니다. 회개의 삶, 그러니까 생각을 새롭게 하면서 성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삶이 아주 복잡해집니다. 그런 경우 말씀을 적용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받아드리시기를 강권합니다. 이것을 거부하면 인생은 매우 꼬이고 힘이 듭니다. 이것을 인정하면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고 쉬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소망도 생깁니다. "아, 믿음이란 내가 선택하는 것이구나. 내 삶은 내 선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긴 해도 그것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구나."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선택과 반응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통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마저 나에게 맡기셨고 내가 원치 않으면 그분도 일하실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해야 하고 진짜 원한다면 결단과 행동이 따라옵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전부 내가 선택한 것들입니다. 혹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도 (부모님, 국적, 성별, 타인이 내게 가한 피해 등) 그에 대한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말씀에서 약속하신 것을 믿기로 선택합시다. "믿어진다", "안 믿어진다"는 말은 말이 안 됩니다. 만일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믿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믿어져야만 천국 간다고 하면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 아니신 게 됩니다.
믿기로 선택하십시오. 믿는다는 것은 미래에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는 것입니다(막 11:24). 일단 말씀을 믿어야 생각을 새롭게 하든지 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것을 어떻게 풀어내겠습니까? 믿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을 새롭게 하여 풀어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영적인 활동이기에 이 계시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여러분께 풀어져 나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