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때문에
박덕규
고무장갑 때문에요
마침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거든요.
고무장갑은 벗기가 불편하잖아요.
제 입에서 구슬 하나가 툭 튀어나가는데
그걸 잡으려니 미끈거려서 잡을 수 있어야지요.
겨우 움켜쥐었다 싶었는데 다시 입에서
더 작은 구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더군요.
붙잡아야지 붙잡아야지 하는데
구슬들은 자꾸 미끄러지고
고무장갑을 벗는 사이
그 구슬들은 배수구 속으로 빨려들어갔어요.
고무장갑 때문에요.
고무장갑 때문에 많은 말을 놓쳐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말.
놓쳐버린 말.
배수구 속으로 사라진 말.
돌아오지 않는 말.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가
다시 벗는 사이에
그처럼 많은 영롱한 것들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걸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어요.
_유심 2026년 여름 호 120~121쪽
_박덕규 시인
1980년 『시운동』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에 등단하였고,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통해 평론가로 등단하였다. 1994년 계간 『상상』으로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시집 『아름다운 사냥』(문학과지성사, 1984), 『골목을 나는 나비』(서정시학, 2014),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포구에서 온 편지』, 탈북소설선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 장편소설 『밥과 사랑』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 평론집 『문학과 탐색의 정신』 『문학공간과 글로컬리즘』, 기타 『강소천 평전』 등을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