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아야 할 맹세
행23:12~19
사람들은 “나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진짜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고 변수가 생기면 맹세를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수를 극복하고 맹세를 100% 지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기억해야 할 내용은 “맹세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하는 게 아니다” 입니다. 오늘 본문 12절~13절을 보겠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유대인들이 맹세를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선한 일을 위해 맹세를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죽이기 위해 맹세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맹세를 한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바울을 죽였습니까? 못 죽였습니다. 못 죽였으니까 자신들이 맹세한 대로 모두 굶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속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속을 못 지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 손에 장을 지져서 붕대를 감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저는 그런 사람을 본 일이 없습니다.
약속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못 지키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됩니다. 그런데 약속에서 지나 맹세까지 합니다. 왜일까요?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너무 경솔하게 맹세를 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에서, 여호수아, 기드온 같은 사람입니다. 하루는 에서가 사냥을 나갔다가 배가 고파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동생 야곱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붉은 콩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야, 그거 한 그릇 퍼줘” 그러니까 야곱이 “형, 공짜가 어디 있어? 형의 장자권을 내게 주면 퍼줄게” 그랬습니다. “그래? 어서 콩죽이나 퍼주고 장자권은 너나 가져라” 그랬습니다. 창25:33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이삭이 노년에 눈이 멀었는데 아마도 백내장 때문으로 보입니다. 야곱이 눈이 먼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 냈습니다. 장자의 축복이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을 뜻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에서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가서 울면서 애걸을 했습니다. 이때 아버지 이삭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창27:34~38).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福을 빼앗았도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에서가 맹세를 함부로 했다가 아버지의 유산도 빼앗기고 하나님께도 버림받았습니다. 그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서론에서 맹세는 하나님이 하는 것이고, 약속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했지요? 하나님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것까지 다 예측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맹세하신 것은 100% 지킬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의 별만큼 네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의 표식으로 할례를 명했습니다. 즉 할례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맹세의 표식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몸이 점점 늙어가는데도 자식이 생기질 않는 거예요.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초조해진 것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였습니다. 사라가 조급한 마음에 자기 몸종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들을 받아 낸 거예요.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이스마엘인데 그가 아랍인의 조상입니다. 이때 사라의 실수로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적자와 서자 간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맹세를 깨고 사라의 몸종으로부터 자식을 얻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너하고 했던 맹세는 무효다!”라고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은 맹세를 깼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했던 맹세를 지켰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 사라가 89세 되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내년 이맘때 아들이 태어날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숨어서 엿듣고 있던 사라가 피식 웃었습니다. 경수가 끊어진 지가 언젠데 내가 임신을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런데 천사가 알아차리고는 “너 왜 웃느냐?”고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나, 안 웃었어요”라며 시치미를 뗐습니다. 이런 걸 보면 사라가 보통내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도 기뻤겠지만 사라는 더 기뻤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이란 웃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런 뜻입니다. 불신앙 일 때는 피식 웃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에는 너무나 기뻐서 활짝 웃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약속을 제일 잘 지키는 민족이 있습니다. 그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한 성경을 읽으면서 삽니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성경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약속도 목숨 같이 지킵니다.
유대인들은 선편으로 물건을 보내기로 계약을 했다가 생산이 늦어 납부기일을 못 맞출 것 같으면 비행기로 보냅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계약, 즉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서 저래서 핑계를 대면서 봐달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유대인들에게 안 통합니다. 상대방이 계약을 어기면 철저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약속을 어겼다 이겁니다.
신용, 즉 약속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사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금융업입니다. 은행, 보험, 주식, 채권, 어음 등은 모두 유대인 손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은행, 보험, 주식, 채권은 모두 “남의 돈”을 가지고 하는 장사입니다. 단지 “약속”이라는 신용하나만 가지고 합니다. 약속을 목숨 같이 지킬 수 있는 유대인이기에 이런 금융업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럽의 금융을 장악하고 있는 로스차일드는 유대인입니다. 뉴욕 맨해튼의 금융가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도 유대인입니다. 심지어는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달러의 금리를 결정하는 美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도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의 자본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설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도 맞지요? 성도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