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나라에서는 의사와 정부의 대혈투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듣도 보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방적으로 의사수 확대를 강행하지도 않고 의사들의 집단 행동도 없습니다. 현재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이른바 인턴과 레지던트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9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21일 현재 전국 100개 병원을 점검한 결과 전공의가운데 70%이상인 9천명정도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이 수술 등에서 집도의를 도와서 수술을 보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은 매우 심각한 것을 파악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은 거의 모두 젊은 층이어서 정부의 설득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정부는 업무개시 명령을 내려 복귀를 종용하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으며 한국의 의료 현실이 과연 어떠길래 이런 대격돌의 치킨게임을 할 수밖에 없을까요. 한국은 참으로 독특한 사회입니다. 판검사와 의사만이 최고의 직업이라는 요상한 직업관이 우리 주변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아마도 일제시대때부터 유래된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온국민이 신음속에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 일제 강점기에 국민들의 눈에 판사 검사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물론 과거시험을 치뤄 급제하는 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신식문화에 법복을 입은 판사와 검사가 멋지게 보였을 것입니다. 엄청난 권력과 지위를 소유하는 그런 자리로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의사는 어떻습니까. 의사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걸치고 환자를 보는 그 모습이 근사하지 않았겠습니까. 게다가 월급도 타 직종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겠죠. 다른 직업들은 일정 기간지나면 정년이라는 것때문에 현장 일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판검사는 변호사로 의사는 평생 본인이 원한다면 의사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멋지고 부러웠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특히 판검사 그리고 의사의 권위가 높았겠지요. 그러니 자식을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판검사 그리고 의사를 만들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고시에 붙으면 동네에 플랭카드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때도 있었습니다. 의사시험에 합격하면 동네 잔치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주변인들은 판검사나 의사에 대한 선호도와 경외심이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판검사와 의사의 위치는 일반인들이 감히 상상할 수없는 조선인 최고의 자리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풍조는 해방이 되고 근대화가 되어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관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심해지는 분위기입니다. 판검사는 이제 고시를 치르지 않고 로스쿨이라는 법전문대학원이 생겨 그래도 조금 인식이 바뀌고는 있다고 하지만 판검사의 위상과 파워는 조금도 줄지 않고 있습니다. 인문계 학생이라면 환경이 허락하면 꼭 되고 싶은 직업중 부동의 1위 아닙니까. 의사도 마찬가집니다. 아니 의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정말 하늘을 찌릅니다. 현장에 있는 의사분들은 무슨 소리냐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그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AI 즉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대체할 직업이 의사와 판 검사라고 해도 부동의 지위를 위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되기위해 입학해야 하는 의대의 선호도는 그래서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2024학년도 대입에서 서울대 자연 계열 정시모집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인원이 2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타 대학 의대에 중복 합격해 이탈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대의 경우 자연계열 모집 인원 769명 가운데 164명이 등록을 포기했습니다. 무려 21%이상입니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해의 2배에 해당합니다. 서울대 자연계열과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의대 등에 중복 합격해 서울대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의대를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로아닙니까.
정부의 의대정원 2천명 증원 방침이 전해진 뒤 학교와 학원가가 요란스럽답니다. 자연계 학생들이 너도 나도 의대에 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지지 말자는 것이겠지요. 학생들과 학부모가 의대 선호하는 것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의사가 되면 앞날이 좀 더 편할 것 같고 돈도 많이 벌 것 같고 사회에서 대우도 더 받을 것 같아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의대 증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일반 공대와 기초과학은 상대적으로 더욱 헐벗는다는 그런 비아냥 소리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른바 유능한 학생을 의대로 다 빼앗기니 하는 말이겠지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속에 정부는 강력하게 의대 정원 확대를 내세우고 강행하려 하고 현직 의사들과 현재 의대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적극 반대에 나서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정부는 현재 지방 도시에 의사가 태부족이고 특정 과에 경우 지원하는 의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의대 증원 확대로 해결하겠다는 계산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그런 방식으로는 현재 의료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구도 계속 줄어드는데 의사만 계속 늘려나가는 것이 무슨 해법이냐는 것이죠. 초저출산으로 앞으로 2~30년안에 나라가 소멸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사만 늘려놔서 어떻게 되겠느냐는 논리입니다. 양쪽 다 맞는 주장같기고 하고 틀린 주장같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직업에 대해서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노력에 비해 대우가 신통치 않은 직업에는 아예 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보수도 많이 받고 평생 그 직업에 종사할 수 있어 강제퇴직같은 날벼락도 맞지 않아도 되는 의사직종이 엄청난 선호를 받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속된 의사 선호사상과 현대에 들어 더욱 뚜렷해진 편하고 돈 많이 버는 직종을 찾아 나서는 사회적 현상에 따라 의사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직업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자리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의사들이 지금 집단으로 의료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밥그릇 다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부의 초강경책에도 현장을 벗어나는 의사들의 심정을 정부가 아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들립니다. 또 양비론을 언급해서 죄송하지만 정부는 엄단하겠다 또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삐뚤어진 의료체계 문제를 잡을 수 없다는 식의 강경론만 들고 나올 것이 아니고 의사들도 의사의 본분을 저버리는 의료현장 이탈을 삼가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매번 강대강만으로 대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 답답함도 느낍니다. 강대강으로 문제가 일부 해소될 지 모르지만 그 근본은 결코 해결되지 않아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의 의료현장에는 외국에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와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도외시하고 무작정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두 의사자격을 박탈하겠다라는 으름장만으로는 사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좀 더 현명한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사회지도층과 의료계 원로들이 모여 해결책을 도출해 내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24년 2월 2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