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은 우주의 생명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눈길을 모아 자세히 봐야 하는 대상이지요. 우리는 그것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은 우리에게 "나한테로 오라!" 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지요. "나를 관통하여 법(法)으로 나아가라!" 이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이란, 그것을 통하여 우주의 생명인 법과 우리가 만나는, 열려있는 통로입니다.
선생은 우리로 하여금 거대한 우주의 생명을 향하여 깨어나게 합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있어서, 이 생명과 그의 관계는, 헤겔의 술어를 빌려서, '안 시크(an sich, 그 자체 안에)' 입니다. 그러나 선생-학생 관계에서 학생과 우주의 관계는, '휘르 시크(frsick, 그 자체를 위하여)' 지요. 곧, 스스로-깨어남(self-awakening)의 문제인 것입니다. 선생은 학생으로 하여금 선생을 의존하게 하지않습니다. 그로 하여금 우주의 생명에 의존하고 그래서 참된 홀로서기를 얻게 하지요. 우주의 생명에 의존하여 홀로 서기 - 이것이 (선생에 대한) 참된 신뢰(genuine trust)의 내용인 것입니다. [마이다 슈이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 중]
한님.
한 청년을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순서 없이 편안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이래저래 나누다 보니, 꽤나 긴 시간동안 알았던 그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참으로 사람을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음을 크게 경험한 시간이었네요.
수많은 이야기를 거의 듣기만 했는데 그의 이야기 안에 이십대 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간 풀리지 않았던 나의 아픔 하나가 드러났습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거든요.
오랜 시간 그때 행동의 흉터가 열등감으로 남아있기도 했어요.
이십대의 나는 아파서 했던 행동인데, 나는 그것을 치부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두려워했었습니다.
부끄러워서 다시는 그때처럼 행동하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쓰며 살아온 시간도 꽤 길었지요.
오늘 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래서 스스로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 싶어 측은한 마음이 불쑥 솟구쳤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때의 나에게 " 괜찮아, 그렇게 해도 돼. 참 애 많이 썼어." 라고 자상하게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청년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그 먼길을 왔다합니다.
" Feel free to be~"
한님.
저를 살리시려 수많은 안내원을 보내고 계신거지요.
눈을 제대로 떠서 당신의 안내를 잘 받게 도와주세요.
늘 필요할 때마다 안내원을 보내시는데, 제가 몰라서 거절하지 않도록 이끌어주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