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두고 왔을까. 뭍을 떠나면 다 벗어난다고 잊히리라 생각했을까. 내가 아는 섬은 그리움으로 갇히고 마는 곳인데, 사방이 그리움으로 출렁거려 몸살을 앓는 곳인데, 하필이면 왜 섬을 택했을까. 그녀를 섬에서 만났을 때 나는 지난 세월 속에 그녀가 겪었을 고통과 고독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것들로부터의 자유를 물었다.
그녀가 먼저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지 않았으면 몰라봤을 것이다. 그녀는 예전에 즐겨 입던 흙먼지 묻은 편한 작업복 차림이 아닌 잿빛 승복을 입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하니 건강미 넘치던 피부와 달리, 인간사 붉은 핏기가 다 가신 듯 창백한 얼굴이었다. 마음뿐만 아니라 육신의 애착마저 버렸는지 애처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세찬 겨울바람이 금방이라도 그녀를 바다로 밀어붙일 것만 같았다. 가슴속에 서늘함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녀가 합장하며 다가오는데 다행히도 맑은 눈동자와 따뜻한 미소는 예전의 그대로였다.
그때도 겨울이었다. 길을 나섰다가 산길을 넘어오는데, 솟대와 장승들이 마당 가득 들어서 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엔 ‘길찾사’란 허름한 나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실내에 들어서니 화롯가에 한 여인이 남자와 긴 머리카락을 묶고 있었는데, 금방 감았는지 아직 물기가 남아있었다. 반기며 일어서는데 어스름 저녁 빛을 등에 진 실루엣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팔 한쪽이 없었다. 다리도 기울기가 달랐다. 시장기가 느껴져 시래깃국을 주문했다. 직접 기른 배추로 끓인 시래깃국과 묵은 김치에서, 잃어버린 고향집 맛이 났다. 난로에서 갓 구워낸 고구마와 커피를 내어놓는데, 참으로 정스러웠다. 해는 지고 인적은 끊기고 사람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처음 만났지만 우린 서로의 외로움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가갔다.
그는 화가이자 작곡가며 건축가였다. 어릴 적, 바닷가에서 놀다가 장난감인 줄 알고 건드린 폭탄에 왼쪽 팔과 다리를 잃어버렸다. 9남매나 되는 가난한 집안, 그는 왼팔다리로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서야만 했다. 그의 삶은 고통과 좌절과 비애의 연속이었지만 처절한 운명으로부터 도망가지도,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위로였다.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고, 레코드사의 전속 작곡가가 되기에 이른다. 유명 사구들에게 곡도 주고 독집 앨범도 내기도 했지만, 그 바닥의 제도적인 모순에 환멸을 느껴 음악 세계를 떠나고 만다. 의족을 한 채로 한 손으로 트럼펫을 불어가며,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걸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45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일화는 유명하다. 한 사람의 고통은 곧 그 시대의 아픔이라며, 장애인에게 물질이 아닌 진정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온몸으로 호소하였다.
그러던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찾아온다. 잃어버린 한쪽 팔이 되어줄 인생의 동반자가 나타난 것이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긴 머리를 날리며 트럼펫을 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 여인이 영화처럼 다가간다. 그때 그녀는 자선 봉사단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전각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화가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라 그들의 만남은 너무나 이상적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합심하여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남편이 밑그림을 그리고 아내가 깎고 파내어 장승을 만들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떤 것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나무를 작업장으로 들여놓을 때면 나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의식을 치렀다. 한 번을 주문 날짜가 촉박하여 제를 올리지 않고 손을 대었는데, 그녀가 나무에 도끼를 내리찍는 순간 갑자기 눈에 빛이 번쩍이더란다. 눈동자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그 뒤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나무든 풀꽃이든 생명을 지닌 것은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때달았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마음을 합쳐 성심을 다해 만든 작품들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부부가 만든 장승과 솟대와 옹기는 초대되어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들과 공유한 시간이 많았다. 바라보는 시각도마음의 색깔도 비슷하여 대화가 잘 통했다. 그의 음악 친구들과 밤새도록 놀기도 하였다. 그가 손수 지은 흙집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세상은 변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그 길목을 지나는 길손들에게 정을 나누며 살고 있었다. 내가 이사를 하면서, 길도 멀어지고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혼자 운전하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혼자 남은 그녀도 어디론가 떠나버려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 그녀를 섬에서 만난 것이다.
그녀가 거처하는 곳은 바다가 잘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절터로 마련해 놓았지만 아직 법당은 짓지 않았고, 자그마한 토굴에서 다른 도반과 생활하고 있었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얘기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있는 중에, 그녀가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은 창백하고 가누기 힘들 정도로 몸이 기진해있었다. 아침에 먹은 게 체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투병 중이라며 도반이 귀띔해주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자연치유를 위해 노력 중인데, 너무 힘들어한단다.
그녀가 숨겨놓은 바다가 있다며 구경시켜준다고 나가자고 했다. 절터 아래로 쭉 내려가니 해안선이 짧은 작은 바다지만 큰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보며 나란히 앉았다.
“짧은 기간 안에 부처님 제자가 되었지요. 스님들께서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주었답니다.”
그녀의 성품으로 보아 용맹 정진했음이 분명하다.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모든 걸 던져 수행에 몰두했을 것이다. 상심을 겪은 육체라 건강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럴수록 약해지지 않으려 더 자신을 모질게 대했을 것이다.
“고통과 싸우려 했던 게 어리석었지요. 붙들고 놓는 것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인생이 참 무상하네요. 삶과 죽음이 말은 다르지만 같은 것인데…. 요즘은 무아(無我)를 체득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에 그들이 살던 옛집 마당에 우뚝 서 있던 솟대가 보인다. 땅의 염원을 하늘에 잇고 싶은 마음이 세운 송신탑이 솟대라지. 장대 끝에 앉아 고요한 새 한 마리,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 바람이 너무 세차다.
그녀와 헤어지고 반 년쯤 지났을까. 다시 그 섬을 찾았을 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홀로 떠난 것이다.
우리는 길 위에 산다. 풍경도 사람도 길 위에서 만난다. 길 위에 집을 짓고 살다가 길 위에서 사라진다. 마음속에 난 애틋한 인연의 길도 이승의 길 끝에서는 덧없이 지워진다.
마을 어귀나 산모퉁이에 수호신처럼 장승이 서 있다. 팔도 다리도 없지만 둘이 함께 풍상을 겪으며,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 길을 가다가 장승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어디로 얼마만큼 더 가야하는지. 혹시 길 밖의 길을 걸어간 자들을 보았는지.
(이양주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