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리그 왕좌를 차지함과 동시에, 유럽 각 리그들은 긴 휴식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바스의 선수들 역시 예외는 아니였고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해후했다. 나 역시 오랫만에 가족들과 고국에 있는 시골로 돌아가 일가 친척들과도 조우했다. 특히 어머니는 어디서 주워들으신건지 스포츠신문에 나에 대한 자그마한 기사가 났다며 기사를 오려 소중히 간직하고 계셨다.
그때 보았다. 이마의 주름이 몇줄이나 더 그어진 어머니의 얼굴을.
창창한 30대의 나이에 남편 잃고 한평생 내 뒷바라지만 하시느라 등골이 다 휘어졌는데 못난 아들은 삼십년 넘게 방황만 하며 망나니 생활만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나마 이제서야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게 자리를 잡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창 바쁠 겨울시즌 생각에 당장 시골집의 보일러도 갈고 티비 중계가 뻔히 되지 않는걸 모르시는지 티비에 나오는 아들 얼굴도 보고싶으시다길래 좋은 티비도 새로 해드렸다.
나 잘났다고 시골에서 농사 짓는 것도 뿌리치고 도시로 도망가다시피 한 형을 하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얼마 되지도 않는 땅 열심히 일군 동생 내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도 새로 해주고 다만 비닐하우스 값이라도 하라며 돈봉투를 내밀었다. 동생 내외는 한사코 거부했지만 그래야만 내가 할 도리를 다 한 것 같아서이다. 아니 앞으로 해야할 도리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없이, 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2.
영국에 다시 돌아온 나는, 얼마 뒤 또 한번의 이적 제의를 받게 되었다. 18살의 플레이메이커 Mulamehic에 대한 피터보로우의 2만 6천 유로 제의였다. Hogg는 이미 떠났고 차기 팀의 미드필드진 구성을 이 선수 위주로 꾸릴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나로선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워낙 상위팀의 제의였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선수가 무척이나 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또 한번 원치않는 이적료를 벌게 된 셈이다.
사실 바스의 선수들 대부분은 시즌이 종료되자마자 주전 선수부터 심지어 후보선수까지 수 많은 이적제의를 받아왔다. 되는 족족 이 선수들을 다른 클럽에 넘겨버렸다면 선수진 구성조차 애를 먹게 될 판이라 정말 적절한 제의가 아니라면 거절할 수 밖에 없었고 다행히 선수들은 이런 나를 이해해줬다. 대부분 팀에 몸담은지 1~2시즌이었기에 가능하기도 했고 또한 나의 열망을 이해해주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어서 한시즌 더 나와 뛰기로 했었다.
하지만 Mulamehic의 상황은 다르다. 오래전부터 상위클럽들이 노리고 있는 재능이었으나 다만 우리 팀에게 테스트를 맡긴 느낌일 정도로 막상 이 선수와의 계약을 꺼렸다. 나는 과감히 도장을 찍었고, 이 길 잃을 뻔했던 재능은 그야말로 꽃을 피웠다. 간사하게도 이제 이 곳에서 검증이 되었다 싶으니, 더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하며 그를 하이재킹 한 것이다. 나로선 잔인한 이 곳 축구판에 대한 원망도 저항도 하지 못했다. 치열한 종가의 축구판에서 온정따윈 없다. 어쨌든 누군가는 결국 이기고, 결국엔 지는 것이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억울하면 출세하라.
오냐 그래. 억울하니 출세해야겠다. 그러고 말겠다.
3.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나는 그 억울한 선수들을 대거 합류시켰다. 역시 소속팀 유스에서 버림받은 어린 유망주들과 소속팀에서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아 갈 곳 없는 성인 선수들이었다. 특히 Francesco Pavon과 Seyfo Soley의 합류는 선수단에서조차 믿기지 않는 영입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챔피언쉽에서도 충분히 팀의 주축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제의를 하지 않았을 때 관심을 보였던건 오직 나 하나였다. Pavon은 곧바로 영국으로 건너왔고 그의 취업비자도 25회나 되는 국가대표 출장 기록 덕에 빨리 발급 될 수 있었다. 또한 Soley의 경우 프레스턴에서 자유계약으로 풀어버린 것을 스카우팅 팀이 전해와 금새 그와 접촉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19세의 신예 Lester Peltier의 경우 작년부터 소속팀 없이 트리니다드 & 토바고 국가대표로 데뷔하는 바람에 일찌감치 국가대표 경기를 취업비자 발급 하한선에 여유있게 맞출 수 있었고 여유있게 천재 윙어를 낚아챌 수 있었다.
어린 유망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그들을 장기적으로 붙잡아두기 위해 유스 계약보단 프로계약으로 임했고 그들은 각각 3년 계약에 도장을 찍으며 미래를 클럽에 맡겼다. 이로서 혹여나 생길 부상으로 인한 이탈과 선수층의 부족을 어느정도 메울 수 있게 되었다. 저들만 잘 성장해준다면, 높은 무대에 한걸음 더 다가설 것이다.
그렇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난 잃어버린 것보다 상회한 영입으로 이번 시즌을 준비할 각오를 했다. 일신 우일신. 그것만이 갓 승격한 우리에겐 살아나갈 방법이었다.
4.
몇몇 친선일정이 잡혔다. 이번 역시 챔피언쉽 리그 소속의 클럽들이었고 경기를 하겠다고 약조했다. 재정을 늘리는데엔, 이만한 행사도 없을 것이다. 한 시즌동안 이 곳 축구판을 구르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한가지는, '돈이 전부를 말한다' 였다.
제휴구단인 브리스톨 시티에서 골키퍼 Stephen Henderson을 보내왔다. 지난시즌 자유계약으로 영입했던 주전 골키퍼 David Dejoie에 상위구단인 번리에서 7만 유로의 이적제의가 들어와있는 상황에서 너무나 다행한 일이었다. 이 프렌치를 리그1으로 올려주기로 결정했다. 언젠간 다시 만나면 모두 적으로 돌아올 선수들이었으나, 이 역시 거부한다면 선수가 불만을 표시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또한 이제사 이야기하지만 지난 시즌 0점대 방어율을 과시했던 이 골키퍼는 실은 수비진의 도움을 너무나도 많이 받아왔다. 물론 컨퍼런스 수준에서 생각해본다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였지만 그의 실수로 경기가 뒤집힌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제 값 할 때 얼른 파는 것이 이익이었다. 터프한 수비수 Richard Walker 역시 마찬가지였다. 트란메어의 2만 5천 유로의 제의를 수락하면서 지난시즌 중요할 때마다 레드카드를 받았던 그의 불같은 성질머리를 떠올려 보았다. 제 값이다. 떨어지는 제안이 아니다.
난 이익되는 장사를 원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그들이 제안한 얼마간의 유로화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수들의 야망과 단점을 덧셈해보는 것이다. 그 계산이 손익분기점을 넘었을 때, 난 그 결정을 구단주에게 말한다. 팔겠습니다, 아니 못팔겠습니다, 아니면... 알아서 하시든지.
오프시즌에 계산 머리가 비상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전직 회계사라는 묘한 자존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그래도 결국엔 그들은 더욱 좋은 조건을 가지고 떠난다, 에 변화는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연봉을 지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정을 끊고, 합당한 돈을 받고, 그들을 적으로써 맞이하는 것.
그리고 그 매정한 현실이
이 세상에선 가능한 일인 것이다.
------------------------------------- 8부에서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재밌네요 ㅋ ㅋ 기다리고있음~
Seyfo Soley 오오 끝내주는 영입이군요~
저도 놀래서 급히 에디터 켜고 확인하니 클럽 명성이 1600대정도 밖에 안되었더라구요. 그래도 왔음 ㄷㄷㄷ
히야... ㅋㅋㅋ 운도 따라주시는듯? ㅋㅋ 재미도 있구요 ㅋㅋ 언넝 언넝 진행해서 언넝 승격 하셔야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