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와 세월 사이에서
영어를 배우던 중학교 1학년 시절, 영어 선생님이 칠판에 큼지막하게 적어 주신 문장이 있었다.
Once upon a time.
“옛날 옛적에”라는 뜻이라고, 동화책이 이렇게 시작한다고, 외우라고 하셨다.
그땐 그냥 단어 세 개를 붙여서 리듬감 있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보니, 저 세 단어가 품고 있는 시간의 결이 참 묘하다.
Time은 길다.
해가 뜨고 지는 사이, 계절이 돌고 돌아가는 동안, 천천히 쌓인다.
할아버지 시계의 초침이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며 옆으로 걸어가는 것, 그게 time이다.
흐름을 멀찍이서 바라볼 때, time은 마치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그런데 Timing은 다르다.
time이 강물이라면 timing은 강물에 던지는 작은 조약돌 한 알이다.
찰나, 그 정확한 순간.
야구장에서 투수가 던진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타자의 어깨가 돌아가는 바로 그 0.몇 초.
자동차 두 대가 교차로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오다, 브레이크를 밟아 피하거나 혹은 부딪히는 그 1초의 전후.
그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번쩍이는 순간이다.
그래서 한국어로 말할 때, ‘타임(time)’은 대체로 길게 잡히지만, ‘타이밍(timing)’은 짧게, 딱 맞춰 써야 한다.
아날로그 시계의 둥근 판 위에서 초침이 돌아가는 게 time이라면,
디지털 시계에서 ‘00:00’이 번쩍 바뀌는 찰나가 timing이다.
그리고 이 둘을 잇는 것이 바로 Once upon a time이다.
동화 속에서 ‘옛날 옛적에’는 늘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절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속의 주인공들은 늘 어떤 결정적인 timing을 맞닥뜨린다.
백설공주가 사과를 받는 순간, 신데렐라가 시계를 보고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순간,
피터팬이 웬디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동화 속 ‘옛날’은 길고 부드러운 time이지만, 이야기를 움직이는 건 언제나 짧고 날카로운 timing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길고 지루한 하루하루 속에서, 단 몇 번의 timing이 방향을 바꾼다.
첫 직장의 면접 날, 친구가 건넨 한마디, 사랑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 몇 초가 지나고 나면, 그 뒤로 흐르는 세월이 통째로 달라진다.
중학교 1학년 때 외운 Once upon a time이 망팔이 된 지금까지도 입에 맴도는 건,
아마 그 문장이 우리 인생의 구조를 은근히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씩,
자신만의 결정적인 timing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오래오래 기억 속에 살아남는다.
왜냐고?
그건 아마도 내 타이밍에는 아직도 ‘종치기 5초 전’의 심장이 뛰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