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부지와 달구
우리 부모님의 교육관은 자식은 나면 서울로, 말은 나면 제주도셨다.
해서 뚜렷한 교육관이 없이 불타는 교육열로 자식들을 도시로 유학을 시키셨고
우리는 방학이 되면 집으로 가곤했다.
엄마는 우리가 가면 그동안 곯았던 정서와 영양을 채워 주시려 마당 한켠에서
닭을 키우시다가 포동포동한 닭을 잡아 백숙을 해 주셨다.
그런데 매번 닭을 잡으시던 엄마가 한번은 아부지에게 반기를 드셨다.
다른 집은 남자가 잡는데 왜 번번히 이 어려운 일을 내가 하느냐고
그러니 이번은 당신이 잡으시오 하셨다. 사실 울 아부지는 너무나 마음이
여리셔서 6남매를 때리거나 혼내지도 못 하셨는데 닭을 잡으라는 말은
실로 난감하기 짝이 없어 어떻게 잡느냐고 난색을 표하셨다.
엄마는 아주 강경한 어조로 난 안잡겠다고 하며 이렇게 저렇게 잡으라고
기술 전수를 하시고 들어가 버리셨다. 난감한 아부지가 닭을 잡으려니 달구는
퍼덕퍼덕 거리며 꼬꼬거리고 난리가 났다.
나도 자리를 피했는데 잠시 후 엄마의 한 옥타브 올라 간 목소리가 들려 현장으로
가 보니 궁여지책으로 나온 방법은 아부진 트럭 바퀴를 개조 해 만든
바이스에 달구를 물려 놓고 살살~ 망치보다 살짝 더 큰 함마로 때리고
계셨다. 그것도 한 손은 눈을 가리고......달구는 아프다고 난리치고 엄마도 난리고
결국 엄마가 다시 잡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달구는 멍이 들고 갈비뼈가 부러져 있다고
했다.
달구 다리는 의례 아부지의 대접에 담겼는데 그날 저녁에 아부지 몫이였던 달구 다린
아부지가 드셨는지 안드셨는지 기억이 없다.
2. 아부지와 순대
우리 아부진 우리가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음식은 절대로 못 사게 하셨는데 하물며
길가에서 먹거나 가면서 먹는다는 것도 절대로 허락치 않으셨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비위생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런 걸 사 먹지 못하게 용돈도 아주 쬐끔 주셨다.
그런데 어디 길거리 군것질이 호락호락한가.
번데기, 아이스께끼, 설탕뽑기, 쫀디기, 순대 등등... 서울서 유학하던 우린 그 순대가
너무 먹고 싶어 집에 가서 계속 아부지를 졸랐다. 지성이면 감천이랬는지 어린 자식
이 졸라 못 이겨 그랬는지 어느날 아부진 도축장까지 가서 재료를 몽땅 사오셨다.
그걸 본 엄마는 소스라쳐 놀라 단칼에 난 못하요. 하고 이웃집으로 가버리셨다.
난감X만랩이시던 아부지가 하는 수 없이 돼지 내장을 씻으셨다.
아부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신 것이다.
아부지가 그리 하시니 엄마도 하는 수 없이 온갖 재료를 다 넣어 순대를 만들어
마당에 장작을 때고 솥단지를 걸쳐 놓고 하루 종일 삶았다.
요리솜씨 좋은 울 엄마가 순대는 처음이라 모르셨나보다. 재료를 빵빵하게 안 넣어야
삶으면서 부풀어 올라 터지지 않는다는 것을...
순대는 터지거나 쪼그라 들거나 했지만 그렇게 맛있는 순댄 그 이후로 먹어보지
못했다. 그 뒤로 우리집에서 다시는 순대 만드는 일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래도 아부진 우리에게 길거리 음식 취식 금지령은 여전 했고 더 자라 나는 순대를
몰래 사 먹었다. 물론 사가지고 집에 와서......
그 탓인지 난 혼자 볼 일이 있어 외출해도 혼자선 식당도 못 들어갔고 붕어빵도 사 가지고
집에 와서 먹었다. 그러던 40살이 넘어 어느 겨울날 남의편과 길을 가다 붕어빵을
사서 바삭거리는 꼬리의 유혹에 못참아 나도 모르게 덥썩 한 입을 먹었다.
남의편이 소리쳤다. 야~OOO(내이름) 많이 타락했다. 길을 가면서 붕어빵을 먹다니..
나도 깜짝 놀라 멈추었다. 남의편이 다시 얘기한다.
괜찮아요. 너무 그러지 말고 그렇게 살아요.
지금은 혼자서도 식당 들어 갈 수 있는지 몇 년 되었다.
아빠, 아버지, 아부지. 그 중에서도 젤로 어울리는 호칭이 울 아부지
자주 그립다.
첫댓글 저도 닭잡아 본적없네요
여름에 처가에 갔는데 먼저 와있던
동서 형님이 개를 끌고나가기에 짐작은
했지만 감나무에 매달더니 작대기로
후려쳐서 기겁했답니다
결국 저는 개고기 안먹었고
장모님께서 미리 잡아 놓을걸 그랬다고
큰 사위를 나무라기에 제가 어쩔줄 몰라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
지금은 개고기 안 먹지만 젊은 시절
친목회 할때마다 식당 에서는 잘 먹었어요 ㅎ
숙면 하시고 내일 또 뵈요,
아휴~~~ 너무나,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자칫 예민한 화제지만 어른이 된 후로
저는 한 때는 여러가지 이유로 세미베지테리언의 하나인
페스코베지테리언이었습니다.
육식은 하지 않지만 해산물과 동물의 알, 과일, 견과류, 생선 등은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지요.
지금은 불규칙한 생활로 체력관리가 안돼 가끔은 육식을 한지는 오래 되었어요.
그러나 보신탕 먹는 사람은 친해지기 힘듭니다. 것두 자기집에서 키운 애를
잡는~~~~
갑장님이 보신탕 안드신다니 천만다행입니다. ㅎㅎㅎ
맛점하시고 좋은 하루되세요.~
감명깊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란 사명감으로....자식을위해
없는실력 발휘하시어...
꼬꼬를 이리패고 저리패고...
차라리 한방에 보내시지...
저 달구는 을~매나 아팠을까여....
세상에 온몸이 시퍼렇게
멍두들궁...으흐흑......ㅎㅎ
아버지.어머니란 단어.
참 정겹고 소중하죠~^^
ㅠ.ㅠ 그러게나 말이니다.
그걸 못해서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하시더라니까요.
250원님 좋은 하루되시고 삶방에 좋은 글 올리셔서
날마다 좋은날 되시기를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아버님이
선비셨군요
감사합니다
예쁜 밤 되시고
고운 꿈 꾸세요
저희 아부진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선비처럼 곧은 분이셨습니다.
이해타산이 부족해 엄마를 좀 고생시키셨지요.
늦은 시간에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맛점하시고 평안한 날 되시기를요.
안녕요 틈새님
글을 읽다보니 추억의
먹거리와 더불어 결론은
사모곡 아닌 사부곡이네요
유년시절의 추억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잘 봤습니다 틈새님~^^
감사합니다. 사부곡 맞습니다.
지금도 어쩌다 꿈에서 뵈면 그모습 그대로
활짝 웃으시는 걸 뵈면 너무 좋습니다.
누가 놀러와서 둘째언니 짱구머리라(그 땐 짱구머리가
못생긴걸로 취급하던 시대라) 흉보고 그 사람
혼나고 쫒겨난 일화가 있습니다. 자식들을 참
사랑하셨지요.
맛점하시고 좋은하루 되세요.^^
엄마들은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억척 스러게 하시지요
틈새핀님 엄마 보고 자라셔서
몸도 안 아끼고 밤새 김장하시는 것
같아요 아버진 길거리 음식 사먹지
말라 금지령 내리시고 처음으로
함께 만들어 먹었던 순대 의 맛 !!
잊을 수 없고 늘 그리운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시는 음식이 되었네요
엄마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식성도 변하는지라 지금은 순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순댓국도 안 먹지요. 그냥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지요. 꿀밤 되시고 좋은 꿈 꾸세요.~~^^*
내두 꼬꼬는 못잡네요
마음 여리어
그렇겠지요
어머님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처음으로
만들어 드신
순대맛
좋으셨다니
~~~~~~
밤이 깊었네요
편한밤되세요
*@~~~
따순맘님도 맘이 여려 꼬꼬 못 잡으실 것 같습니다.
강원도 산골이라 잡을 곳도 마땅치 않아 모두 집에서
잡았지요.
지금은 시골은 장에 닭집에 가서 공임 주면 쉽게 잡아
주는 걸로 압니다.
어릴 때라 먹고 싶었던 음식이었으니까요.
그 때 방앗잎을 넣어서 한 것을 맛있게 먹고 방앗잎의
맛을 알았답니다. 지금은 순대 별로 안 좋아합니다.ㅋㅋ
부모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그사랑이 얼마나 큰것인지 그땐 몰랐답니다
틈새님 부모님 이야기 하시니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 잠시 잠겨봅니다
맞아요. 그리운 부모님.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 마저 돌아가시니
얼마나 서럽고 그립던지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그저 있을 때 잘하란 말이 뼛속까지 사무쳤습니다.
오늘도 예쁜 하루 되세요.~^^
정겨운 시골집 이야기를 써 주신
틈새님땜시 옛날 시골집이 그리워 지는군요
옛날에 우리도 자식에게 늘 했던 말
학교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 사먹지 말라고 해도 부모 몰래 사먹었겠지요
지금은 그 얘들이 커서 자기자식도 좋은것만 먹이려고 할거구
자식은 밑으로 내려가 자나깨나 자식들 생각뿐~
그 끈을 놓지못한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반이나 알고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민들레님 말씀 듣고 내가 아이키웠을 때
생각납니다. 학교앞에서 불량식품 먹지 말라고 귀 따갑게
얘기하고 맛있는 거 만들어 줘도 아들넘은 불량식품 압수
당하면서도 열심히 사 먹더군요.
새초롬하면서도 당당한 민들레가 생각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6남매 서울로 유학 시키신 훌륭한 부모님
과 윤택한 가정으로 생각됩니다.
그런가정에서 곱게 자란 틈새님의
필력이 더욱 힘있게 보입니다.
그러자니 세 집 살림 하셨는데 윤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버진 뭐든 얘기하면 무조건 오냐였고 엄마는 단칼에
안돼! 하시고 글쎄~ 하시면 그건 승낙이었습니다.
필력이란 단어는 저한테 과분한 단어입니다.
그저 끄적거리는거지요. ㅎㅎ
맛점하시고 좋은 오후 되세요.
부모님의 무한 사랑이
가득담긴 틈새님의 글
오랫만에 접합니다
울 아부지 닭잡았나~기억 안나고
울 랑도 나도 닭잡는거 못해서
이사오기전 집에서30마리 정도 키웠었는데
이사 올때 몽땅 동네사람 줘 버리고 왔답니다
뻔데기 신문지 돌돌 말아서
팔던 기억납니다
틈새님 덕분에 한참을 기억속 옛추억
여행을 해봅니다^^
반갑습니다.
오랫만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입니다.
이 두가지 사건은 엄마의 트라우마고
아버지를 공격할 때 쓰는 단골 메뉴가
되었는데 울 아부진 난 몰라 기억 안 나
로 손사래 치시곤 했습니다.
뻔데기, 바닷고동(대사리) 담아주던 고깔모양 신문지 그릇,
꽁지별님 말씀으로 생각납니다.ㅎㅎㅎㅎ
점심 맛있게 드시고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