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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원문보기 글쓴이: 경주
3계를 벗어나는 수행법;오인(五忍)과 십삼관문(十三觀門) 청화큰스님 |
구역(舊譯) 인왕경 교화품에 ‘부처님이 그 당시에 왕에게 말씀하시되, 오인(五忍)이 보살의 법이니, 복인(伏忍)의 상, 중, 하와 신인(信忍)의 상, 중, 하와 순인(順忍)의 상, 중, 하와 무생인(無生忍)의 상, 중, 하와 적멸인(寂滅忍)의 상, 하를 제불보살의 수반야바라밀(修般若波羅蜜)이라’ 하시고, 그러니까 제불보살이 반야를 닦을 때에 이 법으로 닦는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왕경 수지품(受持品)에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시되, 십삼관문(十三觀門)으로 닦는 선남자가 대법왕(大法王)이 된다’ 공부가 성숙되어서 자성을 깨달아야 비로소 성자이나 십삼관문으로 수행하면 반드시 정각을 성취하게 되므로 이 법으로 닦는 수행자도 법왕이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어째서 그런고 하면, ‘습인(習忍)으로부터서 금강정(金剛頂)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법사가 되어’ 수행하는 방법을 다 알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길목을 모르면 어디만치 가는가? 어떻게 가는가? 잘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길목을 안다면 더디 가고 늦게 갈 뿐이지 종당에는 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발심(眞發心)하고 올바른 수행 방법을 알면 설사, 금생에 성불 못하면 몇생 뒤에라도 꼭 성불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길을 알면 더디지 않는 것이지만 길을 모른다면 설령 금생에 약간의 수승한 공덕을 얻었다 할 지라도 중간에 중도이폐(中途而廢)하고 말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정다운 법에 의지하라고 세운 것이니, 그대들 대중은 마땅히 부처와 같이 공양해야 하나니 백만억천 천인들이 향과 묘화를 갖고서 받들어 숭앙한다’ 하셨습니다. 아직 범부니까 미처 모른다 하더라도 십삼관문으로 닦는다면 일반 대중들은 마땅히 부처님과 같이 공양을 할 것이며, 백만억천 무수한 천인들이 십삼관문으로 수행하는 이들을 꽃과 향으로써 받들어 숭앙한다는 말입니다. 동(同) 가상소(嘉祥疏)에 ‘복인(伏忍)의 상, 중, 하는 습인(習忍)이 하요, 성인(性忍)이 중이요, 도종인(道種忍)이 상이라, 이것이 재3현위(在三賢位)요’ 아직 성자의 지위가 되기 전에 닦아 나가는 과정들을 인법(忍法)이라는 명분으로 가른다면 이른바 복인인데, 복인(伏忍)에 엎드릴 복자를 쓰는 것은 번뇌를 다는 떼지 못하고 조복시킨다, 억제한다는 뜻입니다. 즉 견도할 때, 견성오도할 때는 단(斷)이요, 그전에는 복(伏)이라는 말입니다. 복(伏)이란 제복(制伏)시켜서 일어나지 못하게 애써서 조작(造作)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끊어 버리면 조작이 없이 임운(任運)이 되는 것이지요. 화두나 염불이나 주문이나 공부를 익혀 나가는 습인(習忍)이 하(下)고, 더욱 익혀서 확신이 서가는 정도인 성인(性忍)이 중(中)이요, 그 다음은 도종인(道種忍)이라, 이미 확실히 신해(信解)가 생겨 가지고 우리 잠재 의식에다 종자를 심는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한사코 성불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그런 종자를 심는다는 말입니다. 도종인까지는 아직은 현위(賢位)요, 성자의 지위는 못됩니다. 그 다음에 ‘신인(信忍)의 상, 중, 하는 초지가 하요’ 초지부터는 이미 환희지를 성취한, 곧 견도한 성자입니다. 그리고 초지라고 하는 것은 화엄경의 보살십지에 의거한 것입니다. ‘2지가 중이요, 3지가 상이며’ 복인에서는 현자라 하더라도 아직은 성자가 아닌 범부지이므로 이런 현자의 지위는 확실한 깊은 신앙 즉 정신(正信)은 아직은 못 갖고 항시 의단(疑團)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진여불성을 깨닫지 못하고 상(相)도 미처 여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지에서 견도하면 그때는 확실히 불성을 보기 때문에 비로소 참다운 정신(正信)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인(信忍)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순인(順忍)의 상, 중, 하자는 4지(地)가 하요, 5지가 중이요, 6지가 상이며’ 순인이라고 한 것은 법성(法性)에 수순해서 조금도 어긋나는 짓을 할 수가 없고 삼업(三業)을 여법히 청정하게 행위한다는 말입니다. ‘무생인(無生忍)의 상, 중, 하자는 7지가 하요, 8지가 중이요, 9지가 상이며’ 무생인은 불생불멸의 이치를 온전히 체험 한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적멸인(寂滅忍)의 상하자는 10지가 하요, 불지(佛地)가 상이라고 하였으니 적멸인에는 중(中)이 안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찰나이기’ 때문에 가운데다 중(中)을 넣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1에 복인(伏忍)이란, 습인ㆍ성인ㆍ도종인의 3현위에 재(在)한 보살이 아직 번뇌의 종자는 끊지 않았으나 이를 제복하여, 억제해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인(忍)이요, 2에 신인(信忍)이란, 초지부터 3지까지에서 탐혹(貪惑)을 단진(斷盡)하고 진성(眞性)을 견(見)하여 정신(正信)을 얻는 인(忍)이요, 따라서 보살 초지부터는 견도(見道)지위입니다. 견도지위에서 우리가 이른바 이생성(異生性)이라는 범부의 성품을 떠나서 성자의 참다운 성품인 정성(正性)이 되므로 견도할 때를 가리켜 정성리생(正性離生)이라 합니다. 즉 범부가 사물을 바르게 통찰을 못하고 달리 볼 수밖에 없는 분별시비를 떠나서 정성인 진여불성 경지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3지까지에서 탐혹을 단진하고 진성을 견하여 비로소 바른 신앙을, 확고부동한 후퇴 없는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3에 순인(順忍)이란, 4지부터 6지까지에서 진혹(瞋惑)을 단진하고 보리(菩提)의 도에 순(順)하여 무생(無生)의 과(果)에, 불생불멸의 과에 취향(趣向)하는 인이요, 4에 무생인(無生忍)이란, 7지부터 9지까지에서 치혹(痴惑)을, 탐ㆍ진ㆍ치 번뇌 가운데 탐혹은 가장 먼저 끊어지고 그 다음에 진혹이 끊어지고 마지막에 무명인 치혹을 단진하고 제법무생(諸法無生)의 리(理)에, 모든 법이 불생불멸한 뜻에 깨달아서 들어감이요. 5에 적멸인(寂滅忍)이란, 10지와 묘각(妙覺)에서 열반의 적멸(寂滅)에 구경(究竟)한 인(忍)이라, 열반 곧 적멸에 사무쳐 다 깨달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忍)은 인가(忍可) 또는 안인(安忍)의 뜻으로써, 인은 참을 인자 아닙니까? 진여의 도리를 확실히 믿고 안주하며, 편안히 머물러 동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13관문이란 위의 14인 중, 복인에 3이 있고, 신인에 3, 순인에 3, 무생인에 3, 적멸인에 2가 있어 14인(忍)인데, 상적멸인의 묘각위를 제한, 적멸인이 바로 묘각이므로 제하고서 13인(忍)의 수법(修法)이라, 수행하는 과정이 13인의 수법이라 13관문으로 닦는 자를 대법왕(大法王)이라 말씀하시고 여불공양하라 하시니라 곧 부처같이 공양하라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허두에서 말씀드린 선오후수(先悟後修)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석가모니께서 출현하셨을 때에 다른 위대한 성자가 계셨더라면 석가모니께서도 6년 고행이나 그렇게 많은 수도를 안하셨겠지요, 우리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안 나오셨더라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고 얼마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겠습니까. 다행히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오셔서 인생과 우주의 모든 길을 온전히 밝혀 놓으셨으므로 우리는 그 길목을 따라가야만 합니다. 가는 길목을 모르면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암증선(暗證禪)이라, 우리가 암중모색한다는 말입니다. 내 공부가 얼마만큼 되었는가, 자기 점검을 못하고 또는 다른 이들의 정도를 간별을 못합니다. 도인이라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지 우리가 저 분이 어느 정도인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십삼관문(十三觀門)같은 법문을 안다면 자기 공부 길에도 헤매지 않고 다른 수행자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조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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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