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킥돌이 공
    2. 공야
    3. 청룡태왕
    4. 공실불
    5. 푸른바다
    1. 성법맨
    2. 아싸
    3. 천손강림
    4. 은꽃비
    5. 과거와 미래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인권연대1
    2. 권혁수
    3. 강서구
    4. 과거와 미래
    5. 지리능선
    1. dbrltkd
    2. 숲가치플러스
    3. 하라발가순
    4. edev
    5. 문학중개사
 
 
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1. 왜왕 무와 웅략천황의 재위기간 비교
과거와 미래 추천 0 조회 32 25.07.08 12:4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5.07.08 22:24

    첫댓글 왜왕 무가 송에 국서를 보내온 시점이 478년으로 왜왕 무의 국서 내용에 고구려가 침략하니까 자신의 부친 제가 고구려의 침략에 저항하는 군사 행동을 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사망하였고 제의 뒤를 이을 무의 형 흥이 동시에 사망하여 무가 그 떄문에 상을 치르는 상황 떄문에 군사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국서를 보내온 478년 전후로 즉위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부친과 형이 동시에 죽어서 상을 치룬 왜왕은 일본서기에도 나타나 있지 않고요 일본서기에서는 왜왕 무로 비정되는 유라쿠 천황의 부친 인교 천황(왜왕 제로 추정) 는 453년에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장남 안코 천황(왜왕 흥으로 추정)이 재위 3년만에 시해당했다고 기록되어 부친과 형이 동시에 사망했다는 왜왕 무의 국서 내용과 다르게 나왔지요 그럼으로 국서를 보내온 왜왕 무가 유라쿠 천황으로 보기 힘든 이유가 이런 송서 일본서기 두 사료간의 재위기간에 관한 불일치한 기록내용일수밖에 없는 법이고

    아무리 송과 일본이 교통상 거리가 멀어도 새왕이 461년에 즉위했다는 가정대로 해도 즉위 18년만에 송에 자신이 즉위했다는 국서를 뒤늦게 보낸다는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은 일이지요

  • 25.07.08 22:29

    게다가 고구려의 침략 떄문에 부친과 형이 동시에 사망해서 그 때문에 고구려에 대한 복수전 준비에 송의 도움을 요청해야 되는 왜왕 무의 절박했던 형편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부형이 사망한지 18년이 되도록 송에 고구려 복수전의 도움 요청을 뒤늦게서야 한다는게 말이나 될수 있는지요 그래서 왜왕 무가 유랴쿠 천황으로 보기 어려운게 일본서기에 나온 일본의 현실과 다른 송서의 왜왕 무의 국서 내용 떄문입니다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자국 국토가 위태롭다는 왜왕 무가 고구려의 침략을 당한지 18년이나 오랜 세월이 걸리도록 즉위 국서를 보낸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 작성자 25.07.09 07:14 새글

    @공실불 지극히 합리적인 의문이십니다. 일본서기를 보면 왜 5왕의 남조 외교는 왜국 내에서의 왕권 투쟁의 결과입니다. 책봉을 요구하는 이유와 요구하지 않는 이유도 일본서기에 다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나올 것입니다.

  • 25.07.09 12:04 새글

    @과거와 미래 왜 5왕의 조공책봉에 송서의 기록에서는 왜의 권력투쟁에 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왕권 투쟁의 결과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법입니다 책봉은 중국 왕조의 주관적인 외교적 입장으로 좌우되어 나타나는 법이니까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