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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병자의 날’은
프랑스 루르드에서 일어난 성모 마리아의 발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서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지요.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 발현 첫 날을 해마다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교회는 이날 병자들의 빠른 쾌유와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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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돌보게 하셨다."
<창세기의 말씀 2,4ㄴ-9.15-17>
4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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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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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의 묵상글 *
<사노라면 언젠가 반드시>
오늘 세계 병자의 날이자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예기치 않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이웃들,
오랜 세월 동안 불치병과 싸우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오늘 다시 한 번 성모님의 도움과 위로로 힘과 용기를 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모든 환우들이 병고를 기꺼이 이겨내셔서
보다 크게 한걸음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축복의 나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지독한 병고와 신체 장애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형제의 말씀이
오늘 하루 모든 환우들 삶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면
이 고통이 언제 어떻게 축복으로 돌변할까 기대합니다.
어쩌면 시련은 축복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재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마음 크게 먹고 바라보면 고통도, 신체장애도 제게는 또 다른 축복인 것입니다.”
병고로 인해 고통 받고 계시는 분들,
다시 한 번 힘내시기 바랍니다.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힘드시겠지만 병고를 통해 우리는 보다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올려다볼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면 두려울 것도, 슬퍼할 것도 없게 된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복자(福者) 가운데
지난 2002년 시복되신 자티 수사님이 계십니다.
건강이 약해 사제가 될 수 없었던 그는 간호사와 약사로 일하게 됩니다.
한평생을 아르헨티나 비에드마에 있는 병원에서
가장 가난한 환우들의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삶을 보냅니다.
자티 수사님의 병원은
서울 영등포 역 옆에 위치한 무료 자선 병원인 요셉의원과 흡사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의료계의 이방인들인 극빈자들이었습니다.
더럽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3세계에서 온 외국인이란 이유로, 의료보험카드가 없다는 이유로, 신용불량자란 이유로
다른 병원에서 진료가 거부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티 수사님의 병원은 다른 병원과 반대였습니다.
가난할수록, 더럽고 냄새날수록 더 우선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특히 다른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 시간 낭비다,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중병의 환우들도
자티 수사님의 병원에서는 가장 A급 고객으로 관리되었습니다.
자티 수사님에게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손님이었습니다.
자티 수사님은 돈도 없으면서 까탈스럽고, 지독한 중병의 환우가 찾아오면
기쁜 얼굴로 병원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병원을 축복해주러 오신 착한 목자님께 내어드릴 방이 있나요?”
자티 수사님은 또한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극빈 환우들을 위해
“우리 구세주께 드릴 코트나 바지가 있나요?”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받아들이면 병원이 얼마가지 않아 망할 것이라는 직원들에게
자티 수사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받아달라고 청하는 환자들이 예수님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면 어찌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환자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가장 큰 축복의 선물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환우들이 끝도 없이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런 나머지 이제 그만 이쯤에서 포기하겠노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분들이 절망 속에서도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드리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이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
사노라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 아름다운 세상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겠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도록 기도해드리고 격려해드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고통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은 그 고통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티 수사님 같은 천사들이 좀 더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반드시 지금의 고통은 끝이 있고,
이 고통을 잘 넘기면 상상도 못할 하느님의 위로와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다정한 목소리로 알려주는 자티 수사님 같은 천사들의 몫을 우리가 이제 대신해내길 바랍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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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묵상글 *
저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가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인기 있었던 드라마에 한번 빠졌다가,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으면서까지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 전 저녁에는 동창 신부와 함께 하는 즐거운 만남이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동창 신부 역시 예전에 드라마에 빠졌던 저처럼
그 시간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드라마를 꼭 봐야만 하는 중독에 걸린 것이지요.
요즘 이렇게 드라마에 푹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 에덴의 동쪽 등등…….
인기 드라마 보는 재미에 사신다는 분들도 있더라구여.
그런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이 드라마에 사람들은 왜 푹 빠질까?’
그 드라마의 내용이 특별하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드라마의 내용이 우리의 일상 삶과 똑같으면 어떨까요?
별 특별한 일 없이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계속해서 똑같이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생활의 연속이라면
이러한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드라마에는 뜻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나며,
교훈적인 내용까지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 뜻밖의 일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특별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고,
교훈적인 내용까지도 얻을 수 있기에
그 시간만 되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지요.
문득 우리의 삶도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미운 사람을 더 예뻐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 삶이 드라마와 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드라마 같은 내 삶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전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드라마와 같이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들이 피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주시지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이렇게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들은 모두 잘 나가는 드라마처럼 멋지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에만 관심을 갖고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바로 내가 주인공이 되어 멋진 드라마를 만들도록 합시다.
멋진 드라마는 연말이 되면 상도 많이 받더군요.
내가 주인공이 되어 만들어나가는 이 삶도
심판 날에 주님으로부터 평가받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멋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노동이 신체를 굳건하게 하듯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은 정신을 강하게 한다."
(세네카)
- 인천교구 간석4동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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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묵상글 *
<감기는 초기에>
요즘 또 환절기라 그런지 주위에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데
바이러스가 있다고 해서 항상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코나 몸 어디든지 감기 바이러스는 항상 존재한다고 합니다.
보통 때는 사람이 감기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지만
스트레스나 과로로 체력이 떨어지면 그때 감기균이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감기에 걸리는 것이라 합니다.
감기에 걸렸더라도 초기 감기 때 잡아야지
일단 심하게 들어버리면 장시간 고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불이 일단 번지게 되면 스스로 꺼지기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처럼
끌 수 있을 때 끄지 못하면 큰 재난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인생에서의 오랜 시험을 마감하는 의미로
함께 공부하는 사제들과 술을 한 잔 마셨습니다.
‘먹고 죽자~!’라고 외치며 열심히 마시다보니 이제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동료 신부가 술을 계속 시켰습니다.
뭐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계속 마시고 집에 들어오니 이미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도 역시 술이 깨지 않았습니다.
오전 내내 입에서 술 냄새가 났고 그래서 기분도 안 좋고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담부턴 다음 날까지 지장 있도록 마셔대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마시기 전부터 그런 결심으로 마셨다면 절제가 되었겠지만
중간에 그만 마셔야겠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예 초기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무엇이든 커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를 짓는 순간이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뱀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때부터였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때는 죄가 완성되는 때이지
그 때가 딱 죄를 짓는 순간은 아닙니다.
제방이 무너질 때 아주 작은 구멍에서부터 물이 새어나와 결국 큰 제방이 무너지는 것처럼
큰 죄를 갑자기 짓는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삶을 반성할 때 일어난 일만 가지고 반성하는 것은
잡초를 뽑되 뿌리는 남기고 보이는 것만 잘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런 죄는 또 짓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빙산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우리도 고해보기 전에 죄를 성찰할 때
그런 죄들이 무엇 때문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손과 그릇을 씻는 전통을 강조하는 것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안으로 들어오는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은 결국 뒤로 다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자신 안에서 나오는 나쁜 경향들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외적인 죄들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의도들’이 사람을 벌써 더럽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음탕한 마음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것도 이미 간음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실제로 간음을 하지 않아도 마음 안에서 이미 그 음탕한 의도가 그 사람을 더럽혔다는 의미입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겉보다도 우리 마음에서 어떤 생각들이 나오고 있는지 항상 살펴보아야합니다.
결국 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경향들이 나 자신을 더럽힌다는 것은
내 안에 이미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들이 활동을 하지 못하게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양식을 매일매일 충분히 먹어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혹 안 좋은 마음들이 일어나더라도 그것들을 초기에 잡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쁜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안 좋은 생각들을 계속 하지 말고 항상 조심하며
초기에 뿌리를 뽑는 습관을 기르도록 합시다.
- 로마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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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묵상글 *
<악한 선, 선한 악>
요즘 우리는 창세기를 계속 듣습니다.
어제, 그제의 창세기 말씀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시고
당신 뜻대로 된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 하셨다고 얘기합니다.
오늘 창세기 말씀은
주 하느님께서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좋도록 만드셨고
하느님 뜻대로 된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그것을 나쁘다고 보는 것이고 나쁜 것으로 만듭니다.
술이 나쁘다고 합니다.
술이 악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애초에 하느님께서 빚은 술은 좋은 것, 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 뜻에 맞게 먹는 사람에게는 선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술은 선한 선입니다.
그러나 건강이 안 좋은 사람에게 술은 나쁩니다.
술을 고약하게 먹는 사람에게도 술은 나쁩니다.
이런 사람에게 술은 선한 악입니다.
그러나 정작 마시는 그 사람은 좋다고 합니다.
좋아하니 그렇게 퍼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건강에 안 좋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도 그 사람은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술은 악한 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고 하십니다.
불교에서 내려오는 말에
소는 물을 먹어서 젖을 만들어내고
뱀은 물을 먹어서 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물인데,
소는 그것을 가지고 이로운 젖으로 만들어내고
뱀은 그것을 가지고 해로운 독으로 만들어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잘 받아들이면 그 사람을 살리고
그것을 잘 살면 다른 사람도 살립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을 말씀을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국에는 자기도 죽고 남도 죽게 합니다.
-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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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학 신부님의 묵상글 *
<얼짱. 몸짱. 맘짱!>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예쁜 사람이 참 많다.
여자만 예쁜 것이 아니라 남자 아이들도 어쩜 그렇게 예쁜지 모르겠다.
원래 남자는 ‘멋있다.’, ‘잘생겼다.’고 했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예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
아무튼 요즘 사람들은 외모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얼짱이니, 몸짱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몸짱이 되려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살을 빼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죽어라 살을 빼는 모습이 안쓰럽다.
생긴 것이야 타고나는 것인데
‘놀라운 현대 의술’ 덕분에 예뻐지려는 사람도 많다.
“어느날 하느님이 자매에게 ‘너, 앞으로 40년은 건강하게 살게 해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자매는 기왕 사는 거 예쁘게 살겠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서 싹 뜯어고쳤다.
이제 좀 살아야지 하는데 그만 죽었다.
하느님께 항의를 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뜯어고쳐서 못 알아보았다.’”
물론 건강하고 예쁜 것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얼짱·몸짱이 아니라 ‘맘짱’이 아닐까?
마음이 따뜻한 사람,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사랑이 많은 맘짱.
하지만 세상은 맘짱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남들은 어찌되었든 자기만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주님께서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더럽힌다고 하신다.
주변 것들보다 우리들 마음의 더럽고 추한 것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맘짱인 사람이라면 마음에서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흘러넘칠 것이다.
그래서 맘짱인 사람들한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 인천교구 바다의 별 청소년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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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묵상글 *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
하느님이 빛이라면 사람은 어둠입니다.
하느님이 생명이라면 사람은 죽음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저절로 어둠과 죽음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봅니다.”
(시편 36,10).
생명과 빛의 하느님이십니다.
생명의 샘인 하느님께 뿌리내려야 활력 넘치는 삶이요,
하느님의 빛 안에서 빛을 보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주시고,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
(18,29).
주님이 내 등불을 밝혀 주실 때
마음속의 온갖 어둠은 사라져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로 매일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문득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란 뜻입니다.
너나할 것 없이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무한한 인간 탐욕입니다.
탐욕에는 눈도 없어 하느님도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이 탐욕입니다.
무엇인가 보면 마음은 욕심이 작동하기 시작하니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태한 마음인지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입니다.
먹은 음식은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에서 배설되어 정화조에 모아져 처리되지만
입의 말이나 몸의 동작이나 얼굴 표정을 통해 배설되는 온갖 마음의 오물들은
자기는 물론 공동체를 오염시켜 악취를 풍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은 물론 주변 분위기를 얼마나 더럽히는지요.
이래서 마음의 정화조인 고백소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고백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고백성사가 그리도 중요한 것입니다.
고백소의 사제가 아닌 아무에게나 마음의 죄나 비밀을 쏟아 놓으면
십중팔구 그 죄나 비밀은 지켜지지 않고 주변으로 퍼져나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로 오염시키기 마련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마르 7,20-23).
사람의 마음속은 그대로 쓰레기장 같습니다.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정화해야할 것은 바로 마음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의 악한 것들과의 평생 전투가
수행 생활이요 영성 생활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들 그대로 마음의 표현입니다.
말이나 얼굴, 행동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생각과 말과 행위도 깨끗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우리 수도 생활도 깨끗한 마음을 직접적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믿는 이들 역시 깨끗한 마음이 그 목표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마음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평생 수행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좋은 밭도 꾸준히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잡초 우거진 밭이 되듯,
아무리 좋은 마음 밭도 수행의 노력 소홀히 하면 탐욕의 잡초들 무성한 마음 밭이 될 것입니다.
‘의인은 하느님의 법이 그의 마음 안에 있어 그의 입에서는 지혜가 나온다.’는 시편 구절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법을,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 때
탐욕은 제동되고 정화됩니다.
온갖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 창세기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을 창조하시고 좋은 것을 다 마련해 주신 하느님은
즉시 그 사람에게 당신의 법을 주십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결국 사람이 탐욕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의 법을 어기고 열매를 따 먹음으로 자초한 불행입니다.
끝없는 탐욕이요 온갖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악한 것들이 우리를 더럽힙니다.
끊임없는 말씀과 기도와 노동의 수행 생활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마음이 깨끗할 때,
성령의 열매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요(갈라5,23),
이 성령의 열매들이 사람을 깨끗하게 합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을 통한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마음을, 생각과 말과 행위를 깨끗이 해줍니다.
아멘.
- 성베네딕도수도회 성요셉수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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