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망원경으로 투시한 나의 40년 구도 여정
https://youtu.be/4Kzrm5bVr0w?si=1vcpfOBno_yBFEio
갈릴레이의 망원경 — 두려움의 율법주의 감옥을 깨부수다
인류의 머리 위를 지배하던 종교적 천동설을 단 한 번의 투시로 깨부순 갈릴레이의 망원경처럼, 제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첫 번째 영적 지각변동이 있었습니다.
2014년, 저는 완전히 파선당해 있었습니다. 니체가 꿰뚫어 보았던 것처럼, 제 신앙의 뿌리는 사실 ‘정죄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행위와 율법, 인과응보라는 종교적 천동설에 갇혀, 조금만 잘못해도 심판받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제 영혼은 매일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거대한 감옥이었습니다.
그 절망의 끝에서 주님은 제게 ‘조건 없는 은혜의 복음’이라는 갈릴레이의 렌즈를 주셨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증명해 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이미 완벽하게 용납되었다는 그 압도적인 사랑 앞에, 저는 억눌렸던 오열을 터뜨렸습니다. 두려움의 족쇄가 풀리고 은혜의 지동설이 시작되던 날, 제 영혼이 맛본 그 해방의 감격과 기쁨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첫 번째 기적이었습니다.
허블 망원경 — 내세지향적 염세주의의 우물을 깨고 대양을 보다
대기권 밖의 광활한 은하계를 보여준 허블 망원경처럼, 저를 가둔 좁은 종교의 우물을 깨부순 두 번째 대각성이 찾아왔습니다.
톰 라이트의 신학을 만나기 전까지, 저의 신앙은 이 세상을 철저히 부정하는 염세적 신앙이었습니다. 죽어서 갈 내세 천국이라는 ‘구원 티켓’ 하나에만 집착한 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역사와 현실의 삶은 아무래도 좋은 껍데기로 여겼습니다. 세상을 부정하니 삶은 늘 공허했고, 교회라는 좁은 성벽 안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허블의 렌즈를 통해 마주한 하나님 나라는 장대했습니다. 복음은 염세주의적 탈출증이 아니라, 이 땅을 치유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통치였습니다! 죽음 너머로 미뤄두었던 구원이 지금 내가 딛고 선 이 땅에서 찬란하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슴이 터질 듯한 환희가 밀려왔습니다. 우물 갇힌 인생이 비로소 우주라는 대양을 마주한 감격이었습니다.
제임스 웹의 적외선 망원경 — 추방의 고통 너머, 진정한 지성소를 투시하다
우주의 거대한 가스 구름과 두꺼운 먼지를 투시하여 태초의 별을 찾아내는 제임스 웹 망원경처럼, 제 인생의 가장 처절한 고통 속에서 마지막 세 번째 렌즈가 열렸습니다.
담임목사라는 안전한 성채에서 정죄당하고 마침내 교회 밖으로 추방당했을 때, 제 영혼은 피를 흘렸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외로움과 고통의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추방의 비극은 신성시되던 기독교 교리와 문자주의, 배타적 문법이라는 거대한 종교적 가스 구름을 걷어내는 제임스 웹의 적외선 렌즈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쫓겨나고서야, 저는 비로소 가스 구름에 가려져 있던 ‘진정한 지성소’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원죄의 낙인으로 인간을 정죄하고 대속의 이름으로 성벽을 쌓아 이웃을 심판하던 종교의 먼지를 걷어내자, 그 너머에 예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진실과 자비’라는 참사람의 도리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성채 밖으로의 추방은, 저를 박제된 성전에서 해방해 진짜 삶의 자리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가장 눈부신 섭리였습니다.
맺는말 —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
갇힌 삶에서의 끝없는 해방, 그리고 그때마다 펼쳐진 새로운 세계의 발견. 이 세 가지 망원경을 거치며 겪은 고통과 기쁨의 흔적들은 이제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경험이자 거룩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매일 아침 아이들을 태우는 노란 어린이집 버스의 운전석에서, 나의 소박한 거실에서, 이웃과 부딪히는 거친 세상의 바다에서 제임스 웹의 렌즈로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그곳이 바로 진짜 지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인식의 렌즈를 갈아 끼울 때마다 영혼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마침내 도달한 이 보편적이고 광활한 복음의 대양 안에서 저는 참으로 자유합니다. 저는 오늘, 두려움 없이 미소 지으며 이 장엄한 우주와 하나님의 진실을 마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