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안에 머물러라
이웃의 결점과 실수
남편의 회개를 간절히 바라는데도 남편한테서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아내는 불안해한다. 한 공동체의 책임자는 자기 공동체의 수사나 수녀가 자기가 기대한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평화를 잃을 수 있다. 또는 매일의 삶에서 이웃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기에 짜증을 낼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불안은 얼마나 흔한가!
이에 대한 대답 또한 신뢰와 내맡김이다. 다른 사람이 좀 더 잘 행동하도록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평화롭고 부드럽게 해야 하지만 나머지는 모든 것에서 선을 이끌어 내시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날마다 해나가는 영적 생활에 대한 매우 중요한 일반 원칙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상황에 처할 경우 가장 흔히 걸려 넘어지는 점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이웃의 결점에 대한 인내라는 문제 외에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을 바라고 열망하는 것만 아니라 그것을 좋은 방식으로 바라고 열망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뿐 아니라 바라는 ‘방식'에도 주의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좋은 것, 아주 좋은 것을 바라면서도 ‘나쁜 방식으로 그것을 바라기에’ 죄를 짓는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 앞에서 언급한 예를 살펴보자.
한 공동체의 책임자가 자기 공동체 회원들의 성덕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은 하느님 뜻에 합당한 훌륭한 바람이다. 그러나 그가 회원들의 불완전함이나 미지근한 태도 때문에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평화를 잃는다면 그를 움직이는 것은 분명 성령이 아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좋은 것이고 분명히 하느님도 바라시는 것이므로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때 그만큼 더 초조하고 불만스러워하며 자신의 그런 태도가 옳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것이 좋아 보일수록 그만큼 더 불안해하며 그 실현에 골몰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정말 선한 것인지는 물론 그것을 바라는 우리의 방식과 마음자세가 좋은지도 살펴야 한다. 우리의 바람은 언제나 부드럽고 평화롭고 인내롭고 초연하며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 성급하고 서두르며 불안하고 동요로 가득한 바람이어선 안 된다.
영적 생활에서 우리 태도의 결함이 자주 드러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물론 우리는 하느님께 반대되는 나쁜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 뜻에 일치하는 좋은 것들을 바라지만 ‘하느님의 방식'으로 바라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인내로운 영이신 성령의 방식이 아니라 긴장과 서두름 속에서 인간적 방식으로 바라고 그 좋은 일이 지향하는 목적에 금세 다다르지 못하면 낙심한다.
성인들 또한 우리의 열망이 비록 가장 좋은 것일 지라도 절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가 인간적 방식으로 바랄 때 우리 영혼은 동요되고 불안하며 평화를 빼앗겨 우리와 이웃 안에서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우리 자신의 성화를 포함하여 모든 것에 적용된다. 우리는 자신이 빨리 성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자주 평화를 잃어버리는가! 그러나 이는 일을 늦추기만 할 뿐이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서두르면서 덕을 얻으려 하는 것만큼 덕행의 진보를 방해하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다룰 것이다.
결론으로 다음의 것을 명심하자. 우리의 갈망이나 바람에 대해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표시는 비단 우리가 바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데에뿐 아니라 우리가 평화로운가 하는 데에도 달려 있다. 바라는 바가 매우 훌륭한 것이라도 평화를 잃게 하는 바람은 하느님한테서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라고 열망하면서도 자유롭고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그분이 바라시는 때에 열망이 실현되도록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 마음을 이런 방향으로 교육하는 것은 영적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성장하고 회개하도록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지 우리의 동요나 서두름이나 불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웃에 대한 인내
주변 사람들이 더 훌륭하게 행동하기 바라는 우리의 열망 또한 앞에서 말한 원칙을 따라 불안에서 벗어나 평온함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이웃이 부당하고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행동하더라도 평온하게 머물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을 돕고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만 모든 것을 부드러움과 평화 속에서 해나가야 한다. 우리의 무능력함 가운데 침착을 잃지 말고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맡겨드리자.
얼마나 많은 이가 주변 사람을 어떻게 해서라도 변화시키려고 하면서 평화를 잃어버리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배우자가 이러저러한 결점을 더 이상 갖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요하고 짜증을내는가! 주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웃의 결점을 인내롭게 견디라고 권고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주님께서 이 사람을 아직 변화시키지 않고 여러 결점을 없애시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견디시며 때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적당한 때를 인내롭게 기다리신다. 나도 주님처럼 해야 한다. 기도하고 인내해야 한다. 어째서 하느님보다 더 요구하고 서두르는가?
나는 내 서두름이 때로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를 사랑하시지만 나보다 덜 서두르신다!
“형제 여러분,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땅이 가을비와 봄비를 맞고 열매를 맺기를 인내롭게 기다립니다.”(야고 5,7)
이 인내는 우리 안에서 필요한 정화를 이루어 주는 것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이웃이나 우리자신의 선을 바란다고 믿지만 우리 바람은 흔히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감춰진 나의 욕구와 자신의 뜻, 편협하고 제한된 개인적 애착과 뒤섞여 있다. 우리는 이런 애착에 달라붙어 있으면서 이웃은 물론 하느님께마저 강요한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다해 이와 같은 마음과 판단의 편협함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상상하고 실현되리라 예상하는 대로의 선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폭넓고 아름다운 하느님 계획에 일치하는 선을 이룰 수 있다.
-평화안에 머물러라 / 자크 필립/ 바오로딸
첫댓글
< “서두르면서 덕을 얻으려 하는 것만큼 덕행의 진보를 방해하는 것은 없다.”>
아멘. 아멘!!!
조급증이 많은 저를 맡겨드립니다.
아버지의 뜻 안으로 저를 이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