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귀여운 아내 위한
‘빛의 풍경’ 마드리드를 비추다
입력 2022. 11. 15.
마드리드 문화유산-미식-스마트 여행⑩
펠리페2세의 안나 맞이, 녹색왕후의 길
위기의 합스부르크 대동단결 의미 담겨
레티로湖 낭만, 크리스탈 궁전의 신비
나폴레옹 훼손 견딘 412살 사이프러스
프라도 낭만,피카소 족적,이색버스킹도
스페인 마드리드 빛의 풍경(Paisaje de la Luz)
지대, 레티로 호수 유네스코 세계유산 빛의 풍경 입구.
마드리드라는 메트로폴리스 도심에
400년간 가꾼 거대 공원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빛의 풍경 입구.
마드리드라는 메트로폴리스 도심에
400년간 가꾼 거대 공원이다.
레트로 궁전이 있던 근세 시대의 모습.
레트로 궁전이 있던 근세 시대의 모습.
[헤럴드경제, 마드리드=함영훈 기자]
마드리드 도심에서 동대문 격인 알칼라문(門)과
시청 격인 시벨레스광장은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빛의 풍경(Paisaje de la Luz)’ 북쪽 입구이다.
빛의 풍경은 ‘바세오 데 프라도’
즉 녹색의 길 또는 ‘왕후의 길’로 불린다.
이 녹색지대는 400년 동안 꾸준히 친자연
마인드로 리모델링한 곳으로,
네티로 공원·호수·옛궁전, 크리스탈궁전,
카스데자나 거리, 프라도 문화예술 집적지
끝자락을 아우르는 120ha 규모로
여의도의 4배가 넘는다.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거대 녹지라는 점,
건설 초기부터 예술성과 문학성, 미학을
추구한 시민공원이라는 점,
수백년에 걸쳐 지속가능한 개선을 진행한,
‘도심 속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
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펠리페2세
이곳은 16C 펠리페 2세(1527~1598)의
동쪽 별궁이 있던 자리이다.
당초 별궁이 있을 때의
그림을 보면 공원 사이로 개천도 흘렀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찾기어렵고 레티로 호수에
큰 물이 고여있는 정도이다.
3개 코스의 동~서 그란비아를 축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마드리드는
빛의풍경이라는 거대한 녹지와
그 사이에 난 왕후의 길을
계기로 남~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의 천도를 감행한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오는
네 번째 부인을 맞기 위해 이 길을 단장한다.
그래서 왕후의 길이다.
빛의 풍경지대 속 레티로 공원엔
정적에 의해 왕궁에서 퇴출된 석상과 숲 사이로
조깅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동안의 결혼은 정치적 문제로 점철됐다.
첫 번째 마리아(포르투갈, 외사촌,
아이낳고 18세 사망)와의 결혼은
포르투갈과의 동맹차원,
두 번째 메리튜더(영국, 11세 연상, 5년만에
사망)와의 결혼은 영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것,
세 번째 엘리자벳(프랑스,
앙리2세와 카테리나메디치의 딸)과는
영국과의 관계가 틀어진 후 프랑스와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영조가 출신성분이 미약한 첫사랑 정빈의
석연찮은 죽음을 지켜주지 못하고,
조강지처 정성왕후(홍릉) 옆에 묻히겠다고 했다가
결국은 손녀뻘 젊은 부인이자
당시 집권정당(노론)의 중심인물이던
정순왕후와 함께 원릉에 묻히고 말았으며,
정작 가장 사랑한 여인은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었다는 점에서 보듯,
왕이 정치적 목적, 정국변화(환국)에 의해
결혼할 부인을 선택하는 것은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비슷했다.
크리스탈 궁전
네 번째 부인
안나는 어리고 사랑스러웠으며 세자를 낳았다.
기울어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단합을
도모하는 정치적 이유는 있었지만,
이번에야 말로 정말 결혼생활 잘 해보고 싶다는,
펠리페2세의 사랑의 뜻이
이 ‘빛의 풍경’ 녹색지대에 투영됐다.
물론 당시에는 레티로궁으로 진입하는
길목과 개천 변에 수목들을 꽤 많이 심은 정도이지,
후대왕 카를로스3세~지금의
펠레페 6세(유네스코 등재 성공) 등이
수백년 다듬어온 지금의 규모 보다는 작았다.
16세기 이후 진행된 여러 족적들은
조성되고 파괴되고, 리모델링 되기를 거듭했다.
원형경기장, 귀족주거지역 등은 사라졌고,
16개 분수대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의 분수대만 보이다.
17세기 그림에는 물길이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레티로호수에만 고여있고
작은 개천 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레티로 호수변에 아침이 밝으면
출근객, 조깅객, 수상스포츠선수 등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이 보인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엔 빛의 풍경 일대를
기반으로 과학을 통한 경제발전,
문화를 통한 삶의질 향상을 도모했는데,
지금은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센트럴파크
기능을 주로 한다.
19세기 초 프랑스군이 파괴한 정원을 복구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지역별, 기후대별
정원들을 조성하고 단장해
주변 문화유산과의 조화를 도모했다.
왕궁에서 이곳으로 옮겨온(정적에 의해 퇴출당한)
왕가 인물들의 석상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레티로 호수에 이르면, 보트를 탄 가족,
선수용 카누를 젓는 전문가의 모습,
호수변에서 셀카를 찍거나 재잘거리는 연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세그웨이 동호회 회원들
연못 주위에는 알폰소 12세의 기마상이 있으며,
야외 음악당이 있어 겨울을 제외한
일요일 오전에는 야외 음악당에서 시민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마드리드가 내륙지방이어서 레티로 호수는
한때 해상공원으로 꾸며지고,
학익진 같은 해상전투 대형을 시연하는
기능도 했다.
호수를 지나면, 산책하던 여행자들이 쉬는
테라스옆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관련된 디자인,
상상의 동물 조각작품이 이채로운 궁전이 보이다.
이 궁전은 문예회관 기능을 하는데,
원래 세라믹 공장이 있던 곳이다.
방치했더라면 흉물이 되었을 곳을
국민-여행자 힐링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빛의 풍경 지대 숲 사이엔
유리잔 음악 버스킹도 벌어진다.
빛의 풍경 일대는 구역마다
나무와 조경의 특성을 달리한다.
아란후에스 세계유산 궁전의 방식과 비슷하다.
떡갈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곳,
난온대 식생 중심의 플로리다 정원,
프랑스풍 정원으로 꾸민 보타닉 정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숲과 정원 곳곳에서는 파이프플루트, 트럼펫,
유리잔 연주 등 버스킹이 이어지고,
많은 유럽의 유적지에서 만나는
인간 조각상 퍼포먼스
(기념촬영하면 팁을 줘야하는)도 벌어진다.
유리로 만든 궁전 크리스탈 궁전을
지나 보타닉 정원에 이르면, 프라도 미술관,
헤레니모 성당 등이 내려다 보인다.
지금은 미술관
도서관으로 바뀐 동궁(레티로 궁전)으로
가던 귀족들의 출근길과 닿아있다.
이 중 도로쪽엔, 구역별로 예쁘게
다듬어 파르테레 기법으로 조경한
꽃밭이 좌우대칭 질서있게 들어서있다.
프랑스 양식이다.
프랑스 침략군이
대포를 걸쳐놓았던 마드리드의 영물,
412년 된 65m 사이프러스 나무.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군은 이곳의 성스러운
나무에 대포를 걸쳐두었다고 한다.
상처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높이 65m로 자란 사이프러스로,
‘빛의 풍경’
그 400여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나무이다.
문득,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코스 길목,
한번 껴안고 가면
발병을 안나게 해준다는 갈리시아주 사모스의
500살 사이프러스가 생각난다.
빛의 풍경을 지키는 이 412세 사이프러스는
마드리드의 영물임에는 틀림없다.
마드리드 중심부에서 약간 동쪽에 치우쳐 있는
‘빛의 풍경’일대는 서쪽 끝자락에
고야의 동상이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걸치고 있다.
반경 3㎞ 이내엔 남서쪽으로 국립박물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똘레도 관문,
서쪽으로 솔광장, 마요르광장, 시장, 왕궁,
북서쪽으로 살라망카 럭셔리 쇼핑거리,
고 고학박물관, 알칼라 관문, 그란비아거리,
스페인광장으로 연결된다.
고야의 ‘까를로스 4세가족’(1801)
그림은 실권자인 부인이 중앙에 서고,
센터에서 밀려난 왕이
자존심 때문에 앞으로 한 발을 내밀고,
엄마편인지, 아빠편인지 불확실한 왕자
역시 한 발을 내미는 모습이다.
심리회화.
서울에 비유해 지리를 파악한다면,
빛의 풍경 지대는 동대문-대학로,
똘레도관문은 남대문, 왕궁과 스페인광장은
경복궁과 서촌, 마요르카-솔광장은
종로-명동쯤 되겠다.
빛의 풍경 조성 초창기,
레티로궁전 왕의 접견실 옆 파티장은
나중에 프라도도서관으로 바뀌었는데,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그린 명작
‘게르니카’가 1992년까지 이 도서관에 걸려 있었다.
그후 과학적인 보존을 위해 마드리드 시내 레이나
소피아 왕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피카소(1881~1973)는 말라가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와 산티아고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다
프랑스로 진출했으며, 마드리드와 파리를
오가며 활동을 벌이다,
말년에 다시 말라가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그냥 뉴욕, 인천 같은 센트럴파크가 아니라,
가는 걸음걸음 가슴찡한 이야기와 회환,
아름다운 문화예술이야기가 밟히는
빛의 풍경 지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