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트는 나뭇가지
삼일절 다음이 토요일이라 여유가 좀 있었다. 영하권 꽃샘추위까지는 아닐지라도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점심 식후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서 평소 출퇴근길을 걸었다. 출퇴근 동선은 창원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길가에는 여러 종의 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사철나무는 푸른 잎맥을 보여주었다. 배롱나무, 벚나무, 산수유나무 등은 나목이 된 채 겨울을 나고 봄이 오길 기다렸다.
봄이 오는 길목에 듬성듬성 간격을 유지한 산수유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봄방학을 맞아 며칠 학교를 나가지 않은 새 산수유나무 꽃망울을 몽글몽글 부풀어 있었다. 며칠 가지 않아 연방 노란 꽃잎을 펼칠 기세였다. 길을 나서면 어디든 봄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대동아파트 못 미친 지점에서 개울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넜다. 다시 차도를 올라 봉곡동 주택지로 들어 학교로 갔다.
근무학교에 들러 교무실로 갔더니 한 처녀교사는 신학기를 앞두고 학교에 나와 교재연구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초임교사가 되어 우리 학교로 부임해 왔으니 교직 이 년째 접어든 새내기다. 올해는 담임을 맡아 학급 경영에 대한 설계로 마음 설레고 기대 부푼 즈음이었다. 나도 내 자리로 가서 당장 학급에 들어 수업에 임할 교재를 펼쳐 살폈다. 개학하면 고3 국어를 지도해야 한다.
교재는 집으로 가져가 더 연구할 요량으로 배낭에 담아 넣었다. 이후 학교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내 또래 지인한테 전화를 넣었다. 며칠 전 얼굴을 한 번 뵙자는 메일을 받아 놓고 내가 시간을 내지 못해 빚이 진 듯하였다. 과학을 가르치는 지인은 수 년 전 내가 장유의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 얼굴을 알게 된 사이로 다른 내 친구와 진주에서 성장기를 보낸 절친한 사이였다.
지인은 내 전화를 반갑게 받으면서 반나절 산행에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지인이 사는 창원컨트리클럽 입구로 갔다. 그곳은 봉림지구 택지개발지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다. 며칠 전 봉림동주민자치센터가 준공되어 민원업무를 개시했다.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개울에선 ‘우렁우렁’ 울어대는 개구리소리가 들려왔다. 까무잡잡한 색깔의 북방산개구리가 알을 슬어 놓고 떠나지 않고 지켰다.
약속된 시간 아파트단지 앞에서 지인과 만났다. 둘은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창원컨트리클럽 입구의 찻길 따라 걸어갔다. 내가 동정을 잘 살피지 않아 모르고 있었는데 신학기 인사이동 때 창원 관내 중학교로 옮겨왔다고 했다. 자신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학교를 배정 받아 새로운 임지에 적응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나마 전입을 환영하고 축하해주었다.
태복산을 오르면 어떨까 물었더니 그곳은 하도 많이 다녀 숲속 나들이 길 따라 소목고개로 가보자고 했다. 나는 어디든 아무 상관이 없다면서 창원컨트리클럽 동남쪽 숲을 따라 난 길을 걸었다. 그렇게 가파르지 않는 평탄한 흙길이었다. 사람들이 더러 다녀 숲속 길은 반질반질했다. 신이대 군락지를 지나 야트막한 산등선을 넘었다. 나뭇가지 사이 소목마을과 고속도로가 드러났다.
우리는 소목고개 쉼터를 내려와 약수터에서 샘물을 한 모금 마셨다. 사격장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길엔 따스한 봄 햇살이 가득 번졌다. 운동장 묵은 잔디에선 파릇한 새움이 돋았다. 사격장 일대는 수령이 제법 되는 벚나무들이 많았다. 맨몸으로 겨울을 난 가지 끝에는 수많은 꽃눈이 달려 봄 한철 격정을 토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달 남짓 지나면 연분홍 꽃대궐을 이룰 것이다.
지인은 건강을 챙기느라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다만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했다. 둘은 사격장 아래 간이 주막에 들렀다. 우리는 명태전을 앞에 놓고 맑은 술을 몇 잔 기울였다. 남들에게 폐가 되지 말고 건강을 잘 지켜가자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든 무리하지 말고 세상을 관조하듯 뚜벅뚜벅 가자고 했다. 마음 비우고 느긋해지자고 했다. 연장전이 없을 인생의 후반전이라 생각하자. 1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