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박 12일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다.
나홀로 떠난 두번 째의 중국여행이었다.
대부분의 표지판이 간체로 되어있으니, 학창시절 배웠던 것과는 달랐다.
한문이 뜻글자인데다가 낯선 간체이니,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각자의 일을 하면서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일을 나간 사이, 나도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와 미리 봐놓은 버스정류장에서
무작정 991번 버스에 올랐다. 옛날에나 있을 법한 버스 차장이 지금도 있었다.
뚫어지게 노선도만 보고 있던 나는, 누가봐도 딴나라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다음역을 안내하는 전광판은 봐도봐도 모르겠고, 그나마 스쳐가는 영문표기를
보고 짐작하면서 가고 있었다. 버스 안을 둘러보다가 젊은 여성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눌한 영어실력으로 무작정 혼자 나와봤는데 추천할 곳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자신의 회사옆에 문화의 거리가 있는데, 수시로 공연을 할 뿐더러, 간간히 무료 전시회도
볼 수 있고, 그 거리엔 카페 및 아티스트들이 만든 공예품도 있으니, 같이 내리자고 했다.
돌아가는 버스는 3분 마다 있으며, 타는 장소는 내렸던 장소의 맞은 편이라고 일러주곤
만약 길을 잃었을 시는, 자기한테 처음 말을 붙였을 때처럼 그렇게 접근해서 물어보면 된다고
하면서 출근지를 향해 걸어가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당신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며 감사했다고
정중히 인사하고, 나는 나대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거리에서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배는 고픈데 결재수단이 없으니, 애궂은 물만 마시며 한참을 쉬었다.
1950년대의 일만 제곱미터의 공장부지를 2007년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 있었다. 수양버드나무 늘어진 벤치에 앉은, 한 이방인이 목적지도 없이
물 한병 달랑 들고 나와서,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중국말들 중에 행여 아는 단어가 나올세라
슬며시 엿들어 봤지만, 나에겐 그저 웽웽거리는 소음일 뿐.. 그러기에 용기가 필요한 시도였다.
돌아갈 때도 역시 올 때처럼 전광판을 뚫어지게 보며, 노선도와 비교하면서 하차지점을
메모한 종이를 차장한테 보여주며, 다음역이 여기가 맞냐고 손가락으로 수화를 했지.
정확하게 내릴 수 있었다. 8월 한더위 속에서 낯선 경험을 시도해 본 기록적인 날이었다.
첫댓글 혼자서 용기있게 도전하셨군요.
난 그런 대범함이 없어서 해외여행은 패키지로만 하고 졸졸 따라다닙니다.
더군다나 중국은 피키지 아니고는 못간답니다.
추석전에 애들하고 대만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혼자는 못할거 같습니다.
교회에서 매년 여러나라 단기선교를 가는데도 나는 겁이 많아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곰님은 요리도 좋아하시고 중국은 먹거리의 천국인데 , 카드땜에 곤란이 있으셨군요ㅎㅎㅎ
그래도 가히 기록적인 날이라 할 만합니다. 분위기가 그려지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