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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흠집
황 검사(檢事), 그 자식 생각할수록 얄밉다. 얄미울 뿐만 아니리 괘씸하다. 그리고 아니꼽다 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얄미울 것도 괘씸할 것도 아니꼬움 것도 없다. 그저 창피하고 낮 뜨겁고 켕기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또 그 자식 황 검사가 얄밉고 괘씸하고 아니꼬워지는 것이다.
“여보게 진우, 자넨 내 친구지?”
황 검사는 정색을 한 채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그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러니 곧 가래침 뒤집어쓴 것 같은 모멸감에 포박당했다.
황민찬 검사, 아니 중학을 거쳐 고등학교 동창이며 과(科)는 달라도 같은 대학을 나온 민찬이는 분명 ‘여보게 진우’했고 ‘자네’라는 말을 썼다. 마흔이 내일 모레인 그들 몇몇 사이에서는 여태껏 단 한번도 선택의 영광을 받아보지 못한 단어들이었다. 야 임마, 짜아식, 요런 맹추―얼마나 애용했고 친숙해진 말들이던가. 끝없는 우정의 상징으로, 변질되지 않는 신의의 대명사로 만남의 첫마디를 장식 했던 말들이다. 그런데 민찬이는 정말이지 황당무계하게도 여보게, 자네 어쩌고 지껄인 것이다. 얼굴은 환히 보이면서 음성이 들리지 않는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둔 것 같은 거리감이 왈칵 몰려들었다. 그건 견디기 어려운 모멸감이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황 검사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표정은 백치의 그것이었고 헤벌어진 입, 그러나 입술이 가늘게 경련하고 있었다.
“자네까지 이러면 난 어떡하나?”
황 검사는 여전히 포진(布陣)을 풀지 않은 표정이었다. 저 건방진 것도, 근엄한 것도, 교만한 것도 아닌 표정. 아 그렇구나, 그때 그 얼굴이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검사가 된 황민찬. 자식은 제가 맡은 첫 번째 사건 공판 때 클럽 친구들을 초대했었다. 그들 다섯은 열 일 젖혀놓고 재판소의 방청객이 되었다. 조직 밀수단 사건의 원고가 된 검사 황민찬의 일거일동은 그야말로 멋들어지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들 다섯은 황민찬의 영광을 맘껏 축복했고 그런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과 그런 친구의 친구라는 사실로 환장하게 기분이 좋을 수 있었다. 그날 민찬의 표정은 시종 건방진 것도, 근엄한 것도, 교만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그 셋이 합해진 표정도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함부로 접근하거나 대들 수 없는 어떤 의지와 신념의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그날 밤 축하 술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민찬이는 “그랬던가?”
하며 얼버무렸다.
그때 이후 처음 본 민찬의 그 표정. 아아…… 그는 신음을 삼켰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황민찬은 굳이 커피값을 내겠다고 했다.
“야 임마, 날 끝까지 병신 취급할 작정 이냐?”
그는 그만 발끈 화를 내며 ‘야 임마’에 힘을 주고 있었다.
“요런 맹추, 넌 내 직장까지 찾아온 손님이 아니냔 말야.”
“염려 말어, 그 부탁과 이 커피값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에라 짜식아, 나가죽어라.”
황민찬은 그의 등짝을 갈겼다.
“진즉 그럴 것이지.”
그는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뭘?”
“아냐, 아무것두.”
그는 구름 걷힌 기분으로 대꾸했다. 그리고 껄껄거리며 홀가분하게 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황 검사 그 자식의 태도를 꼬치꼬치 셈하게 된 것은 큰딸년이 졸라대는 피겨 스케이트를 사려는 생각이 떠오른 때부터였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서 아내를 대하게 되면 다시 되씹어야 할 민찬이놈이었다. 그러나 미리 되새김질을 하다가 그만 술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게 어이가 없었다.
큰딸년 하면 아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조건반사였다. 그건 아마 아내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지경으로 큰딸년이 에미를 닮은 데서부터 비롯된 이런 저런 기억 때문일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큰딸년은 그의 회사 자가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급 이상 간부 사원들의 출근을 돕기 위해 회사에서는 자가용을 내고 있었다. 그의 다음에 타는 사람이 영업부장이었고 큰딸년의 학교는 영업부장이 타기 전이었다.
“아빠, 시간이 넘었는데?”
큰딸년은 가방을 집어들며 차의 지각을 추궁하고 있었다.
“오겠지. 좀더 기다리려무나.”
그는 조간을 뒤적이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전화가 매미 울음을 운 것은 조금 뒤였다.
“회사지 아빠?”
그가 전화를 끊자 큰딸년은 코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래, 어서 가자.”
“아빠 웃으세요, 웃어요. 웃어야 젊어져요.”
딸년은 벌써 그를 놀리고 있었다. 차가 못 온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전에도 더러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럴 때면 꼭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되면 버스로는 학교에 지각이라고 딸년은 앙탈이었다. 그는 영락없이 택시 요금을 없애야 하는 엉뚱한 봉변을 당하곤 했다. 처음 한두 번, 너 때문에 괜한 돈을 없애는 거라고 언짢아했더니 딸년은 토라져서 눈물까지 훌쩍이는 귀여운 악마의 근성을 발휘하여 그를 녹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이렇듯 배시시 웃으며 선수를 치고 드는 것이다.
“그래, 일소일소라더라. 어서 가자.”
“엄마한테 택시값 받아야지, 아빠.”
“너 아빨 그렇게 무시하기냐?”
딸년은 헤헤거리며 “엄마 다녀오겠습니다”를 건성으로 외치고 나갔다.
“그럼…… 다녀오세요.”
매일 아침 하는 이 말을 아내는 요 며칠째 몹시 힘들게 했다. 그런 아내의 눈에는 금세 물기가 번지는 것이다. 그 눈을 대하면 그는 그만 안타까워졌다.
“여보, 염려 말구려. 내 힘껏 손을 써보리다.”
그는 진정으로 아내를 위로하고 돌아섰다. 대문을 나서려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이러다가 몸 상하겠는데……, 걱정 말아요. 내 힘은 없지만 그 일 하나 처리 못하겠소. 오늘 그 친구도 만나볼 테니까.”
아내는 곧 울 것 같았다. 그는 더욱 아내가 안쓰러워졌다.
택시가 움직이자 딸년이 가볍게 옆구리를 두어 번 찌른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딸년이 말끔히 쳐다보고 있다. 맑은 눈이다. 제 에미 눈이다. 그런데 그 눈엔 눈물이 어리지 않았다. 아내의 처녀 시절의, 아니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 아내가 지니고 있었던 그 눈이다. 요건 제 에미를 빼박았다. 자신을 닮은 데라곤 단 한군데도 없다. 미안해서인지는 모르나 장모님이 굳이 찾아낸 곳이 귀다. 그때 제일 기뻐한 사람이 아내였다. 자신도 아내만큼 기뻐하며 딸년을 안고 거울에 비춰가며 귀를 비교해 보고 비교해 보고 했었다. 어느 친구는 자넬 닮은 데가 없어 퍽 억울할 게야 했고, 누군가는, 거 기분 나빠 어떻게 키우느냐고 불난 집 부채질이었다. 그러나 그는 반대로 아내를 빼박은 큰딸년이 자신을 상당히 닮은 작은딸년보다 더 귀엽고 예쁘니 도시 모를 일이었다.
“아빠, 아빤 날 사랑하나?”
“허, 또 무슨 요구 조건이신가. 유도 신문은 그만두시고 본론부터 말씀하실까?”
“아유, 아빤 냄새 나. 내가 거래처 상인인 줄 아나 뭐.”
딸년은 입술을 삐쭉하며 돌아앉았다. 하, 또 실수로구나. 요게 벌써 중 3이 아닌가 말야. 저 말하는 솜씨까지 제 에미라니.
“그래, 그래. 아빠가 딴 일로 복잡해서 그런 거아. 자 어서 말해 봐.”
이래서 여자가 뚱뚱한 게 좋으냐, 날씬한 게 좋으냐, 날씬하려면 밥을 안 먹는 게 좋으냐, 먹을 건 먹고 운동을 하는 게 좋으냐, 운동을 하는 데는 그럼 어떤 운동이 좋으냐, 월동 준비는 다 됐느냐 안 됐느냐, 뭐 이런 식으로 열두 고개 쯤 지나서 딸의 건강과 월동 준비를 위해 피겨 스케이트를 새것으로 바꿔줄 것에 동의했고 손가락까지 결어서 확약을 한 다음 딸년은 택시에서 내렸던 것이다.
오늘 황 검사를 만나보겠다고 단언한 것은 완전히 즉흥적이었고 그건 순전히 아내의 눈물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언뜻 아내는 악어의 눈물을 지었고 자신은 거기에 속아넘 어간 우둔한 물소꼴이 되지만 결코 그런 의미는 아니다. 아내의 눈물은 그 사건이 그만큼 고통이 되고 괴롭고 그래서 마음이 절박하고 아프다는 표시였다. 그런 아내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처남 철균이를 구해낸다기보다는 아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나 아픔을 없애는 것이 그의 급선무였다.
천광협 씨가 회사로 전화를 건 것은 그해 정월이 다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천광협 씨인 것을 확인한 그는 송수화기를 두 손으로 받쳐잡은 채 대답을 할 때마다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갑자기 걸려온 장군의 전화를 받으며 안절부절을 못하는 일등병의 모습과 흡사했다. 사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천광협 씨는 일등병에게 비치는 장군의 존재보다 덜할 것이 없었다.
“예, 예 찾아가 뵙겠습니다. 5시까진 뵙도록 하겠습니다.”
“으응, 그래 주게나. 고마우이.”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 도중에 전화가 끊겼다. 그는 휴우 막힌 숨을 뿜으며 송수화기를 무슨 사람 얼굴이나 되는 것처럼 들여다보고는 놓았다.
“아휴, 대창 같은 영감님.”
그는 비로소 걸상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독립 투사 천광협, 어쩌면 한 시대를 주름잡던 언론인으로 더 이름이 알려진 분이었다. 이씨(李氏)가 영도하는 정당이 부패의 악취를 풍겨대며 권력의 횡포를 일삼아온 세월 동안 천광협 씨는 정면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필봉을 휘둘러댄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 이 ‘칼날’이었을 것이다.
말로만 들어오던 천광협 씨를,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날카로운 비판, 정연한 논리, 해박한 지식을 통해서 순수한 야당성을 야생적으로 발산하던 그분을 처음으로 대하게 된 것은 아내와 결혼한 직후였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기가 바
쁘게 그는 친가 쪽에 인사를 마치고 처가 쪽 어른들을 찾아다니던 참이었다. 그날도 아내는 구정물 몇 방울 튀었을까 말까 한 집 인데 인사를 가란다고 부모님들의 처사에 불평을 털어놓고 있었다.
“무릎부터 주물러 두세요.”
골목을 돌아서며 아내가 한 말이었다.
“말이 많으신 분인가?”
“될 수 있는 대로 말대꾸를 하지 마세요.”
아내가 걸음을 멈춘 집, 그는 문패를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천광협 씨!”
“어머…… 이분 알고 계세요?”
“존경하고 있소.”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아유 큰일 났네. 제발 시국 얘길랑 꺼내지 마세요. 그런 얘기가 나와도 대꾸하지 말구요. 끝이 없으니까요.”
아내는 곧 울상이 되어 그에게 매달리듯 했다.
그분의 집에서 나왔을 때는 밤 10시가 지나 있었다.
“허허, 내 말년에 조카사위 하나 잘 두었네. 숙아, 네 남편 봉양 잘해라. 너보다 열 배 낫다. 참 반가우이, 자주 놀러 오게나.”
그분은 대문 밖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진우 씨가 그린 다혈질의 우국지사고 청렴한 애국잔 줄은 미처 몰랐었군요.”
오늘로 세 집을 돌면 인사가 다 끝나게 되어 있는 계획이 빗나가서 아내는 이렇게 꽈배기를 틀고 있었다.
“우리도 잘살긴 틀렸나 부죠? 그 아저씬 광적인 데가 있어요. 혼자선 만족하는지 몰라도 그 부인꼴이 뭐예요. 그 흔해빠진 나이롱 치마 한 벌 못 얻어입고…….”
“염려 마사이다, 난 백번 죽었다 깨나도 그분같이 되긴 틀렸으니까. 그분과 나 같은 인간과는 아예 피가 틀려요, 피가.”
그는 택시 안에서 이렇게 아내를 얼렀다.
과원들에게 일을 찢어 맡겨놓고 부랴부랴 천광협 씨 댁에 도착한 것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가까이 지난 뒤였다.
“보게, 이놈이 내 큰손주라네. 금년 고등학교 졸업반인데 예비고사에서 낙방이지 뭔가.”
“피이, 할아버진 괜히 창피하게…….”
“이놈, 주둥아리 닥쳐라! 모자란 녀석 같으니라구.”
천광협 씨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그 분의 노안에는 안개빛의 수심이 냉기로 뒤덮였다.
“재수를 시켜도 필경 또 낙방일걸세. 내 뜻으론 제 힘으로 안 되는 녀석, 대학이고 뭐고 그만두는 건데 지 애비가 막무가내구먼. 저도 대학을 못 나온 판에 자식까지 그럴 순 없다는 게야. 애비가 이렇게 완강하니 난들 할말이 있겠나. 헌데 이놈이 예비고사가 필요 없다는 예능계 대학에 시험을 치르지 않았겠나. 또 낙방이지 뭔가. 그것도 연극영화과래나 뭐래나…….”
천광협 씨의 그 더할 수 없이 쓸쓸한 표정과 착 가라앉은 음성은 그로선 10여 년 만에 처음 대하는 것이었다. 나라를 찾는데 젊은 시절을 앗겨버린 그분이 가정을 돌보았을 리가 없었다. 외아들이 열 살 땐가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변변히 치료를 못해 다리 불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부인의 힘으로 근근이 고등학교까지는 마쳤으나 대학은 아예 보낼 엄두도 낼 수 없도록 천광협 씨는 빈주먹이었다는 것이다.
“이놈이 그 연극영 화과엘 들어가겠다고 법석이래는구먼. 그것도 돈을 써가면서 보결로 말야.”
천광협 씨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머리는 벌써 연극영화과가 있는 대학을 추려내고 있었고, 거기에 손이 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더듬어나갔다.
“이놈 꼴 좀 보게나. 어디 배우가 될 낌새라도 있나 말야. 쟝 카방이나 거 얼마 전에 타계한 김승호 정도가 될 소질이 있다면 몰라. 이놈 대가리나 몰골로는 아예 틀려먹었거든. 그리고 연극이나 영화가 예술인 게 분명하지만, 허 천광협의 손주가 배우라…….”
천광협 씨의 음성은 허탈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언가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잘근잘근 씹는 느낌이었다.
그의 머리를 스치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필립 안이라는 배우였다. 할리우드 배우라는 필립 안이 모국을 방문하고서야 비로소 안창호 선생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어지러움. 실망이라기보다는 충격이 분명했던 그 감정을 수습하는 데는 어느 어느 독립투사 자손들이 학교는커녕 끼니조차 때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낸 다음이었다.
그는 필요한 몇 가지를 적어가지고 일어섰다.
“최선을 다해 노력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그래, 부탁하네. 진정 고마우이.”
천광협 씨의 주름잡힌 눈 언저리에는 물기가 젖은 듯싶었다.
“내가 교육계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더구나 현직에서 물러나 이렇게 박혀 있으니 아는 손이 다 끊기잖나.”
그분은 애써 웃으려고 했다. 그러나 일흔셋의 늙은 얼굴은 맞바라보기 난처할 지경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틀 후 천광협 씨는 굳이 학교까지 가겠다고 했다. 눈이 녹다 얼어붙어버린 비탈길을 손자와 그에게 부축을 받아 오르며 그분은 몹시 숨을 헉헉거렸다.
그가 전해주는 입학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함빡 웃음을 담던 그분은 너무 평범한 노인이었다.
“이놈아 큰절해라. 너 땜에 얼마나 고생을 하셨냐. 앞으로 공부 좀 잘하고.”
손자의 등을 쓸어내리며 그분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손님은 무슨 고민이 많은가 보죠?”
“응? 으응, 참 너 심심하겠구나.”
그는 여급에 게 담배를 불쑥 내밀었다.
“그것 대신 잔을 좀 줘보세요.”
심각한 체 그만 하고 술을 좀 흥나게 마셔보라고 여급은 일깨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맥주가 네 병째 비어가고 있었다. 줄곧 따라주는 술만 들이켠 것이었다.
“잔 하나 더 가져와서 따라 마시라구.”
“가라는 말이군요. 실례하겠어요.”
여급은 발끈 일어났다. 그는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거품이 흘러내리는 컵의 밑부분, 유리가 두꺼운 오목한 자리에 얼굴이 비쳤다. 아내의 얼굴이다. 수심이 가득 차 있다. 그는 얼른 컵을 입에서 뗐다.
“그분은 제일 친한 친구들 중에 한 분이잖아요.”
이런 아내의 물음이 아닌 추궁에 뭐라고 대답을 할까. 아내는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내는 그 일이 지금껏 수긍이 안 되고 있으니까. 막내며 독자인 고 귀여운 아들 영규가 젖먹이 시절, 젖이 모자라던 아내는 일제 ‘모리낭아’나 미제 ‘시미락’ 분유를 먹이겠다고 한사코 고집이었다. 이에 맞서 그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내세웠다. 값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값이 비싸서가 아니다. 위생 처리가 잘못되어 있지 않느냐, 분유는 정부 허가 식품이니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된다. 각종 영양가 조절이 엉터리며 특히 비타민 함유량은 절대 믿을 수 없다, 다른 애들이라고 잘만 크는데 그 무슨 흉측한 모략이냐. 우량아 콘테스트에 나온 애들이 국산 분유 먹은 줄 아느냐 모두 모두 외제 분유 먹였다더라, 거 재판소에 끌려갈 소리 작작해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이렇게 다투다가 급기야 아내는 “도대체 뭐예요, 뭐냔 말예요”를 되풀이하며 울어버렸고 “한국놈 국산 먹고 크는 것 당연하지 않소.” 그는 허허대고 웃었다. 아내의 말을 좀체로 꺾지 않는 것이 그의 장기요 모자람이었지만 그 일만은 수긍할 수가 없었다. 뭐 이렇다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꾸 속이 메슥메슥해지고 구역질이 솟았던 것이다. 아내는 불만인 채 그가 고른 국산 분유를 먹였다. 영규놈은 6개월이 되도록 배탈 한번 나지 않고 잘 커갔다. 매달 1회씩 병원에 다니며 육아 상담을 할 때도 언제나 표준 이상을 유지했다. 이쯤 되자 아내도 외제 분유에 대한 애착을 차츰 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궁지에 몰리게 된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이즈음이었다.
동생의 상대 동창인 박 군이 찾아왔다. 재학 시절에는 둘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군침을 흘리던 축들이었다. 세상의 괴로움은 저희들이 다 불하라도 맡은 것 같은 심각한 얼굴들을 하고 다녔다. 그들은 탁견을 지닌 정치인이었는가 하면 절개 푸르른 지사(志士)로 둔갑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가망이 없는 주정 뱅이가 되어 하늘아 찢어져라고 기염을 토했다. 저것들이 아마 상대를 법대로 혼동하는 것이 아닌지 몰라, 그는 혀를 끌끌 차며, 왜 이 나라 경제가 항상 빈혈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라도 얻은 것처럼 언짢은 표정을 짓곤 했었다. 그러나 그런대로 그들의 사람값을 쳐주었던 것은 술을 퍼마시고 떠벌려대는 말 중에도 제법 뼈가 든 소리들을 추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난타전을 벌이는 아마추어 권투 선수들처럼 정신없고 신바람 나고 맹렬하게 대학 생활을 마치더니만 곧 군대에 끌려 들어갔다. 군대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한결 어른스런 냄새를 풍겼다. 그건 군대의 ‘빳따’ 효과였는지 아니면 ‘사회’라는 고이얀 늪에 뛰어들어야 하는 공포 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취직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을 놓고 미간에 주름을 잡는 무게를 과시했던 것이다.
“득남 소식은 진작 들었는데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박 군의 깍듯한 인사치레였다.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 자네 아들은 잘 크나?”
“예, 무병하게 큽니다.”
이렇게 말하는 박 군의 표정은 밝고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그런 박 군한테서 자리가 잡힌 어른을 만나고 있었다.
“거 다행이군 그래. 아빠가 된 감회는 어때?”
“뭐…… 나쁜 편은 아니더군요¨ 근데 어깨가 뻐근한 느낌입니다.”
“아직 멀었네. 셋쯤 돼야 그 무게가 실감이 나지. 물론 애는 예쁘겠지?”
“생각보다 예쁘더군요. 우리네 부모들이 대여섯씩 이나 어떻게 키웠는지 약간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게 인생을 쳇바퀴라 하잖던가. 그런데 자네 회사는 어떤가?”
“한창 제철을 만난 셈입니다.”
“주문이 많은가 보구먼?”
“다행히 시장이 넓어져가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 다행인가. 자네 같은 사원들이 헌신적으로 일한 당연한 결과겠지.”
이야기는 서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박 군은 토산품(土産品) 수출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박 군의 승진은 장마철의 죽순 크듯 했다. 입사 1년 만에 계장, 2년이 다 못 되어 과장이 되더니만 곧 부장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아무리 신흥 회사라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경영주와 인척 관계가 되거나 지연(地緣)이 맺어진 사이도 아니라고 했다. 그의 도리질을 동생은 너무 간단하게 멈추게 했다.
“그 자식 알몸으로 부딪치는 거죠 뭐. 머리 싸매고 연구하고 그 담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정신없어요.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덤비는 데야 결판이 안 날 수 있나요.”
동생의 말을 납득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원이 월급쟁이로서의 의무감만이 아니라 경영주의 뜻에 부합하는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할 때 얻어지는 결과였다. 박 군은 분명 대학 시절을 난타전을 벌이는 아마추어 권투 선수처럼 보냈던 식으로 회사에서도 정신없고 신바람 나고 맹렬하게 일을 해치우는 것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역시 어쩌다 만나보는 박 군한테서는 오뉴월의 햇볕 같은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특히 수출 상품의 시장 확보에 대한 박 군의 지론은 지극히 순박했다. 그러나 그 순박성은 곧 의지와 진실로 통하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 질 좋은 상품ㅡ그건 어쩌면 지론이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상업의 근본이 바로 그것이었고 너무 상식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자칫 망각하거나 등한시 해 버리기 십상인 것이 또 그것이었다. 그 근본의 실천 여부가 끝내는 상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절대 요인이 된다는 것도 상식이었다. 박 군은 그 상식을 새롭게 받아들일 줄 아는 그릇이었다. 거기다가 토산품을 수출한다는 데에 촌스러울 지경의 긍지까지 가지고 있었다. 결국 박 군의 급진적인 승진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박 군을 가끔 만나는 것을 그는 즐거워했다. 비늘을 번쩍이며 수면(水面)을 치솟는 잉어를 볼 때처럼 때 벗어지는 풋풋한 감정의 꿈틀거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장하실 텐데 저녁 드시면서 얘기 계속하세요.”
아내가 저녁 준비를 알렸기 때문에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애기 몇 개월째죠?”
아내는 밥을 푸면서 물었다.
“저희 애가 아마 한 달 정도 늦을 겁니다.”
“뭘 먹이세요. 젖 먹이시죠?”
“아뇨, 안사람이 직장엘 나가다 보니까 천상 우율 먹 일 수밖에 없군요.”
“아참 그렇지요. 무슨 우율 먹이세요?”
“뭘 먹이시는데요?”
박 군은 아내에게 되물었다.
“우린…… × ×분유예요.”
그는 아내가 자신을 흘끗 쳐다보는 걸 의식했지만 모른 체 했다.
“그으래요오…… 왜 하필 그걸 먹이십니까?”
박 군의 말에 그는 흠칫했다.
“박 선생님네는 뭘 먹이시는데요?”
아내도 그와 같은 느낌이었는지 밥 푸던 손을 멈추고 답쳐 물었다.
“거 시미락이라고 있잖습니까?”
“아, 미제 말이군요. 그 통이 파란 색깔인…….”
아내의 목소리는 신음하듯 잦아들었고,
“그렇지요, 파란 색깔 바탕에 하얀 글씨로 시미락이라 썼지요.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박 군은 손짓까지 해가며 신이 나고 있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애 먹이는 건데 국산은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요, 맞아요. 국산은 먹이면서도 불안해 죽겠어요.”
우리 앤 어쩌면 좋으냐는 조바심이 뚝뚝 떨어지는 아내의 맞장구였다.
“국산 먹이는 것하고 미제 먹이는 것하고 성장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국산을 먹여가지고는 그 애들과 경쟁이 안 돼요. 어림없지요.”
“그래요,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자넨 미국 애들과 국제 레슬링 시합이라도 시킬 참인가?”
그는 담배를 찾아 일어섰다.
“안 됩니다. 이 나라 걸 뭘 믿습니까. 사기 아닌 게 없는 걸요.”
박 군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필요 이상 큰소리로 떠벌렸다.
아내는 당장 다음날부터 미제나 일제로 갈아치울 기세였다. 그는 부처님 시늉만 계속했다. 눈치만 살피던 아내는 다음날 저녁부터 미소를 앞세운 설득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온갖 감언이설이 그의 귀를 간질였지만 그는 끈기 있게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부처의 자세를 지켰다.
“당신 미쳤어요? × ×분유회사에서 와이로라도 받아먹었어요? 자매결연이라도 했냔 말예요.”
아내는 급기야 냄새 나는 모성(母性)의 밑바닥을 벌겋게 드러내고야 말았다.
아내는 끝내 사랑스러운 아들 영규에게 그리도 소원이던 인제나 미제 분유를 먹여보지 못했다. 아내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일이 가슴에 서운하게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심중을 이해할 수 없고 몸에 좋다는데 먹어서 나를 건 뭐냐는 식으로 신축성 있게 조립된 아내의 의식 구조로는 황 검사의 처사가 납득이 될 리 만무일 것이다.
“그분은 제일 친한 친구 중에 한 분이잖아요?”
아내가 이런 식으로 반문 아닌 반박을 해온다면 그로서는 할말이 없을 것은 뻔하다. 제일 친하다는 친구가 그런 것도 안 봐주면 친구랄 게 뭐 있나요. 매달 한차례씩 모여 돈 없애고 술 마시며 키운 우정 이 고작 그건가요. 우리 집에서 상을 차린 것만도 그동안 몇 번인 줄 아세요. 그분도 너무해요.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럴 순 없어요. 아녜요, 그게 아녜요. 결국 또 당신이 속은 거예요. 당신 생각으로만 제일 친한 친구였지 그분은 그게 아니었단 말예요. 당신을 어떻게 보았으면 그럴 수가 있어요. 당신을 전적으로 무시한 거예요. 아내의 그 한 마디는 이 정도의 말은 담고 있을 것이다. 아내로서는 의당 할 수 있는 말이고 자신으로서는 무슨 말을 해도 구구한 변명밖에는 안 될, 옷에 똥 싸버린 입장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 아내는 박 군의 일과 사촌오빠의 일을 놓고 들 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 의미는 ‘당연한’ 또는 ‘불가피한’, 더 나아가서는 ‘필요한’이란 뜻까지 내포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사촌오빠는 매해 서울대학에 50명 정도 합격시킨다는 속칭 2류 고등학교의 역사 선생이고 교무주임이었다. 그분은 서양사보다는 동양사를, 그중에서도 국사에 남다른 저울대를 가지고 있었다. 마흔다섯이 넘도록 교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분은 훈장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약간 쯤 위선적이고 약간쯤 유아독존적이며 약간쯤 인격이 있는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막혀버렸거나 예상 외로 구지레한 것이 대다수의 그들이었다. 그런 것들에 습관화되면서 그들은 수도 파이프 사고(思考)에 고정되기 십상이고 더 심해지면 녹음 테이프와 의형제를 맺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분에게서는 그러한 점이란 놀라울 만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분 나름의 뚜렷한 역사관이나 비판 의식, 폭넓은 식견 등이 교직에서 익힌 겸손과 위엄과 자제 등으로 잘 반죽이 되어 언제나 안정감 있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한 그분의 견해 같은 것은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삼국 통일은 씨족이 부족으로 부족이 다시 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귀결이라는 당위성을 일단 기정 논리로 인정한 다음, 왜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게 되었으며, 그 방법론이 현대사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하였으며, 통일신라의 지배가 형성한 민족성은 어떤 양상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가에 대해 그분은 독특한 논리를 신랄하게 전개하곤 했다.
그분의 이야기는 대체로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고 시대와 시대를 초월해서 현대에 걸쳐지기가 일쑤였다. 어느 부분이건 약간 독선적이고 억지스러운 데가 없지도 않았지만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역사 시간이란 잘못되면 연대(年代) 암기하느라 지겨워지고 어느 경우는 옛날얘기 시간이 되기 쉬웠다. 그러나 그분이 이끌어가는 역사 시간은 꽤나 색다르리라고 그는 미루어 생각했다.
이런 아내의 사촌오빠가 금반지를 사들고 집에 온 것은 영규놈 돌잔치 때였다. 친척들은 입을 모아, 거참 똘똘하게 생겼다, 달덩이처럼 훤하다, 한자리하게 생겼다, 아주 실하게 컸다, 영규놈을 비행기 태우고 있었다. 아내는 그저 몸살이 날 지경으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더니 엉뚱하게 분유 이야길 꺼내놓았다. 그때는 이미 영규놈의 악착스러운 거부권 행사로 우유를 끊은 지는 한 달이 넘어 있었다. 어쨌든 아내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섭섭함이 컸다는 것이고, 남들의 칭찬을 받다 보니까 외제 분유를 먹였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여자의 단순한 욕심이 모성까지 자극한 탓일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공박해댔다.
“허, 자네 알고 있던 것보단 심한걸. 자네가 교육감이었다면 나 같은 사람은 당장 파면이었겠는데.”
사촌오빠였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몇 달 전에 실시된 대학 예비고사에 원서를 제출하면서 커닝 작전을 폈다는 거였다. 그 시험은 지구(地區)를 나누어 몇 개 고등학교가 한 단위가 된다. 수험 번호 배정은 응시자가 많은 학교와 적은 학교를 한 파트로 하여 많은 학교의 두 명 사이에 적은 학교 한 명씩을 끼워넣어 정해지는 게 상례였다. 그래서 응시자 전원을 통틀어놓고 반으로 나눠 공부 잘하는 학생 뒤에 성적이 부진한 학생의 원서를 놓는 방법으로 하여 접수를 시킨 것이다. 그럼 다른 학교 응시자의 원서가 어디에 끼여들든지 간에 포진은 완벽한 것이었다.
“아니…… 형님 별명은 스피어 학생주임이라면서요?”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럼 학생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까?”
“이런 답답한 사람 봤나. 사도(師道)라는 것 모르나, 자네? 저희들이 어련히 알아 했을라구.”
그는 머리가 띵 했다.
스피어 학생주임 ―그분에게 퍽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학생주임 못지않게 학생들을 엄하게 다루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 했다.
“효과는 보셨습니까?”
“그만 하게, 돌잔치 망치겠네. 조카 돌을 축하하는 뜻에서 내 노래 한 곡 부르지.”
아내의 사촌오빠는 돌 축가(祝歌)로는 영 어색한 〈황성 옛터 〉를 구성지게 불러 대기 시작했다.
ㅡ내가 자네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할 것 같았으면 여태까지 전셋집에 살고 있겠나?
황 검사의 목소리는 너무 절실했다. 물론 우정을 빙자하여 해결하기에는 그 일은 너무 큰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버린 형사범을 무사하게 풀어달라는 자신의 부탁이 더없이 어리석은 것 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은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가족이라는 살인범의 안전만을 꾀하여 우정을 낚싯대 삼고 돈을 미끼로 하여 분별없이 덤벼든 뻔뻔스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황 검사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허탈하게 말한 일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명성도 있고 신망도 두터운 어느 종교인의 다이아몬드 밀수건에 관해서였다. ‘사회 정화와 종교인의 사명’이란 주제를 내걸고 세계 종교인 대회가 열렸다. 한국대표로 참가하고 귀국하는 길에 그 종교인은 다이아몬드를 밀수한 것이다. 그 사람이 소지한 다이아몬드를 검거한 것은 이미 입수된 정보에 의한 것이었다. 세관원은 그 사람의 짐을 샅샅이 뒤졌다. 예상한 것처럼 다이아몬드는 나오지 않았다. 몸수색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특별히 마련된 탈의실로 안내되었다. 세관원은 몸수색을 해야겠다는 정중한 사과부터 했다. 그 점잖은 종교인은 노발대발이었다. 사람을 어떻게 아느냐, 감히 누구를 이따위 취급이냐고 불호령이었다. 그러나 세관원의 재빠른 손은 이미 그 사람의 전신을 한차례 더듬어내린 다음이었다. 다 알고 있으니 신사적으로 내놓으시든지 옷을 벗으시든지 택일을 하라고 세관원이 말했다. 세관원의 말은 이제 정중한 것이 아니라 명령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종교인은, 이런 몰상식한 녀석들이 내가 누군데 감히 이따위 짓이냐고 또 고함을 지르다가 신분증을 꺼내 세관원의 코앞에다 디밀어 흔들어대며 나 이런 사람인 줄 알기나 하느냐고 대들었다.
너희 놈들이 이따위로 발칙하게 구니까 외국 손님들에게 욕을 먹는 게 아니냐고, 그래선 못쓰는 법이라고, 그 경황 중에도 종교인다운 훈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관원의 자동 탐지기보다 예민한 반응을 일으키는 손바닥은 그 사람의 왼쪽 옆구리에 빨간 등을 깜박이고 있었다.
“정 이러시면 완력으로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관원의 손은 그 사람의 왼쪽 옆구리를 덮쳤다.
“혁대를 푸시오!”
세관원의 차가운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미 세관원의 다른 손에 의해 혁대는 풀린 다음이었다.
“여보시오 젊은이·…… 이거 너무하잖소. 내 안사람한테 선물하려던 것이었는데, 너무하잖소.”
그 점잖은 종교인은 얼굴이 질리고 목소리는 표나게 떨렸지만 애써 침착을 가장하고 있었다.
분홍색 화장지로 싸고 또 싼 속에서 솜이 나왔고, 그 솜 속에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다. 솜을 펼치자 다이아몬드는 어머 깜짝이야 하는 듯 그 특유의 섬세하고 화사한 광채의 미소를 활짝 짓고 있었다.
그 종교인은 검찰에서도 오랜 종교 생활을 통해 몸에 밴 인내심을 나타내 보였다.
“아내의 선물이었습니다.”
“글쎄, 그렇다면 왜 옆구리에다 숨겼습니까?”
“쓰리를 당할까 봐 그런 겁니다.”
“선물이었으면 정식 신고를 했어야지요.”
“정말 아내의 선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적발되지 않았다면 그게 밀수지 뭡니까?”
“믿어주십시오. 아내의 선물이었습니다.”
“끝까지 속이지 않았습니까. 그게 바로 계획적인 밀수를 기도한 거란 말입니다.”
“저의 양심을 믿어주십시오. 아내의 선물이었다니까요.”
수사관은 맞은편의 종교인을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선물이었다고 합시다. 댁은 무슨 권한으로 통관세를 물지 않아도 됩니까? 그 행위가 바로 밀수란 말입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하늘에 맹세하지만 아내의 선물이었습니다.”
수사관은 또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다가 일어났다.
“좋습니다. 증거는 이것으로 충분하니 까요.”
그 사람은 법정에서도 아내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 끝까지 범행 사실을 시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악착스럽게 부인(否認)만 하지 않았더라도 좀 가벼워졌을지도 모르지. 종교인도 사람 아닌가.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아내에게 선사한다는 것이 상식 밖이지만 그거야 애정이 대단한 결과라 치고, 또 견물생심이라고 음흉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니까 솔직했어야지. 차비라도 빼려고 잘못 저지른 일이었다는 식으로 군색한 변명이나마 했더라도 좀 나았을 거야. 그런데 이건 똥 싼 놈 큰 체하는 격으로 공판이 진행 중인데 압력이 들어오잖아. 기가 막혀서. 볼 것 있나, 법대로 내리칠 수밖에. 내 참 더러워서.”
그러나 황 검사는 깨끗하게 술잔을 비웠다.
“형은 얼마나 받았는데?”
“야, 그렇게 구체적으로 나오지 말아라. 술맛 떨어진다.”
이제 와서 처남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한 번이라도 더 면회를 가서 안심을 시키고 위로를 해야 할 단계다. 운전도 서툴면서 왜 사장(社長) 차를 끌고 시내로 나왔느냐고 타박해 봐야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런 말은 차를 전신주나 담벼락에 들이받혔을 때나 필요할지 모른다. 사람을 치어 현장에서 숨지게 해놓고 구속된 처지에 말은 결코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내는 며칠째 줄곧 눈물을 담고 지내왔다. 안절부절못하면서 자신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도 머리를 짜가며 해결책을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묘안이 없었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사건이 너무 컸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그런 자신만만한 말을 해버린 것은 순전히 아내 때문이었다. 그 시달리는 모습을 더 볼 수가 없어서였다.
“필요한 비용은 염려 말고 일을 좀 해줘야 되겠다.”
힘겹게 한 그의 말에,
“내가 자네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할 것 같았으면 여태까지 전셋집에 살고 있겠나?”
황 검사의 거침없는 대꾸였다.
그는 잔을 비웠다. 시계를 보았다. 10시 20분이다. 아내가 기다릴 시간이다. 초조할 게다. 동생 일 때문에 누구라도 만나면서 늦어지는 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원칙에 벗어나는 일은 안 했단 말인가요?”
아내의 푸들거리는 음성이 체온 40도에 육박한다.
“전세살일 한다는 것만으로 그 결백을 어떻게 믿어요. 그게 더 지능적인 위장술인지 누가 아느냔 말예요.”
아내는 감정의 노도(怒濤)에 밀리기 시작한다.
“당신 부탁을 거절한 건 당연해요. 여태까지 가장해 온 결백이 탄로나는데 들어줄 리가 있어요? 그렇다고 돈을 안 받고 해주긴 헛수고라 억울하고요.”
아내의 말은 맞다. 아내의 입장에서 아내의 말은 맞다. 다만 자신이 대꾸할 말이 없을 뿐이다.
아내의 우는 얼굴이 어른거린다. 10시 40분. 그는 일어났다. 머리가 윙 울리며 눈앞이 아찔해진다. 공복에 술이 과했는지도 모른다. 계단을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그의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있었다. 천광협 씨였다. 황 검사가 내리친 몽둥이에 천광협 씨는 픽 거꾸러졌다. 황 검사는 계속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한 사람씩 거꾸러지고 나동그라지며 머리에서 코에서 입에서 피를 흘렸다. 박 군이, 아내의 사촌오빠가, 점잖은 종교인이 차례로 쓰러져갔다.
“야 임마, 민찬아!”
그는 소리쳤다. 그리고 열 개쯤 남은 계단을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한참 만에 보이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시야가 깨끗해져 있었다.
“술이 과하셨던 모양입니다. 조심해 가십시오.”
그는 보이를 뿌리 쳤다.
“이마에 피 닦으시구요.”
허우적거리며 걷고 있는 그는 보이의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내의 우는 얼굴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팔을 내저었다. 소용없었다. 눈을 마구 비볐다가 떴다. 아내의 얼굴은 또 거기 공간
에서 울고 있었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약방을 찾았다. 여자 약사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솜과 머큐로크롬을 내놓았다.
“이거 말고 수면제를 한 두어 알 주시오, 수면제.”
“취하셨군요¨ 빨리 바르셔야 해요.”
“아, 수면제를 달라니까요.”
“이거 보세요.”
여자 약사는 짜증을 내며 거울을 그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거울 속에는 이마에서 피가 나고 있는 벌겋게 주기(酒氣)가 밴 상스러운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쓱쓱 문질렀다. 흰 손수건에 묻어난 피를 그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철창을 붙든 처남의 겁에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매형…….”
면회 시간 동안 처음이고 끝으로 한 처남의 말이었다.
“여보세요, 수면제를 한 두어 알 달라잖소, 수면제 말이오!”
그는 멋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 약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약병을 꺼내 빨간 두 알의 정제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건 수면제가 아니라 소화제였다. 그걸 입에 털어넣고 물을 마신 그는 어지러운 결음으로 약방을 나섰다. 그
리고 택시를 잡았다.
“약수동 갑시다.”
그는 집에 도착하기까지 적어도 15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이 들어선 안 된다고 다짐하며 눈을 부릅떴다.
〈1975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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