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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분별과 신앙의 응답
누가복음 12:54~13:9
서문
우리는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들 속에서 심판과 책망과 회개에 대한 요청의 말씀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도 그러한 말씀들 중에 일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의 백성 가운데 오셔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요청하며 심판의 긴박성을 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신 참 선지자의 증거들이기도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죄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입에서 평안함과 형통함만을 외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들은 도리어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 백성의 허물과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일을 합니다.
한 가지 성경의 예를 들면, 미가서 3장 5절 이하의 말씀에서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 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미가서 3:5~12)
그 당시나 지금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복채를 많이 갖다 주면 평강을 외치고 형통을 선언합니다. 아무 것도 갖다 주지 않으면 전쟁 곧 화와 저주를 선언하려 듭니다. 반면에 진정한 선지자는 사람들의 죄악의 실상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된 길인가를 선포하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여 드러내고 책망하고 경고함으로써 돌이켜 그들의 영혼과 삶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살고 진정한 복과 은혜와 형통함을 받게 하는 것이 참된 선지자의 사역인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 때에 이런 입바른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는 나라 전체가 양심과 사명감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의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온통 재물에 대한 욕심과 뇌물과 재물의 대가만을 바라는 사람들 곧 돈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곧 나라가 망할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질 것이요 외국의 침공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과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불길한 예언의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하고 다녔을 때에 국정을 맡았던 히스기야 왕은 그 선지자의 입을 막고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존중하고 회개하면서 백성들 전체에 퍼진 물질만능주의를 청산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히스기야 시대에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은 약 100년 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히스기야 왕이 미가 선지자의 가혹한 심판 메시지를 듣고 분노하고 그를 잡아 넣었다고 한다면 유다 왕국의 종말은 히스기야 때에 임했을지 모릅니다. 반면에 선지자 예레미야 때에는 선지자의 죄의 책망의 말을 듣자 왕과 관리들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찾아다녔고 감옥에 쳐넣었습니다. 그 결과 결국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고 왕도 눈이 뽑히고 고관들도 처참하게 죽고 완고했던 백성들도 거의 죽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주가 되신 그 선지자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선민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날카로운 죄의 지적과 책망과 심판의 메시지를 자주 선포하였던 것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심령을 돌이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게 하여 저주 대신에 복을 받고 멸망 대신에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담긴 주님의 날카로운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우리 영혼을 살리는 보약으로 알고 믿음으로 잘 받아서 우리의 영혼과 삶이 진정한 행복과 평안과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도록 합시다.
본론 1. 시대를 분별하라
먼저, 오늘 본문 말씀 누가복음 12장 5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모인 무리에게 이르시기를 시대의 징조를 잘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4절로부터 57절까지를 살펴보면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사람들이 천지의 일기와 하늘의 기상은 주의 깊게 살펴서 날씨를 미리 정확히 예측하면서도 더 중요한 시대의 징조들을 잘 살펴 분간하지 못하여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여 스스로 패망의 길로 가곤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기상청 예보가 거의 정확합니다. 이는 저 하늘에 기상 관측 인공위성이 떠 있어서 대기를 자세히 분석하여 정보를 전달해주기 때문입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일본 등이 기상 위성을 발사해서 운용하였는데,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약 6번째로 천리안이라는 기상 관측 인공위성을 띄워서 기상 예측을 정확히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관측 시설 없어도 선조들이 바람의 방향과 습도에 대한 체감과 하늘의 구름의 모습들을 살펴보고 과거의 경험들을 비추어 보고서, 날씨를 매우 정확히 예측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날씨를 분간하는 것처럼 시대의 징조들도 미리 잘 살펴보고 인간사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측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예수님은 여기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상 만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다스려서 도와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는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의 장래에 대하여 낙관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인간적인 방법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나라에 지금 심판을 내릴 것을 준비중이었는데,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를 깊이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깊이 부패해 있었습니다. 당시의 종교적 주류 세력인 바리새인들은 신앙의 형식주의로 참 신앙의 생명력을 말라 죽이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인들은 물질주의적인 세계관, 인간적인 성공주의에 물들어서 유대인들의 신앙을 깊이 세속화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종교적 형편 속에서 유대 민중들은 생명의 양식을 얻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세상에 보내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여서 사람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내적 갱신을 도모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성령으로 보여주셨고 예수님의 진리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영혼이 깨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들의 죽은 영이 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옛 시대는 가고 새 시대가 도래하는 거대한 영적 전환점을 그들 앞에 세워놓으셨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고대하던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 길이 그들이 살고 망하지 않고 복을 받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낡은 가죽부대를 붙들었고 새 가죽부대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귀신 들린 자로 몰아갔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단과 사이비의 가르침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오하였고 그의 제자들을 박해하여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도 죽이려 했고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 선생도 성전에서 떨어뜨렸고 곤봉으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영적 무감각함과 복음에 대한 증오심과 박해와 그들 내부의 도덕적 타락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내부에 혼란을 허락하시니, 그들 중에 강도들이 일어나 서로 계속 죽였고 폭동을 일으켰고 마침내 로마에 대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서 예수님의 승천 후에 약 37년만인 주후 70년에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로마 군대에 의하여 포위되어 18개월 지나다가 함락되어 유대인들이 다 죽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읍이 완전히 불타고 사람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예루살렘 성을 보면서 우시면서 그들이 당할 그 참혹한 멸망을 예고하신 바 그대로가 그들 가운데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에서 이 시대를 분간하라는 가르침은 단순한 추상적인 경고장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30년 후에 일어날 민족 전체의 대 환난을 주님은 영안으로 보시면서 이렇게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절규하듯 경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경고의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시대의 징조들을 분간하라는 신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가르침은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시대의 징조를 살펴보건대 매우 심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시대의 영적 풍토를 살펴보면, 신앙적 예리함들이 사라지고 종교간 경계선들도 흐릿하게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단과 사이비들도 버젓이 종교의 이름으로 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이단과 사이비들이 정치계에 줄을 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회 사업을 한다면서 평화의 이름으로 기독교 목회자들이 다른 종교 곧 스님과 신부님들과 연합하여 활동하면서 언론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낱 미신으로 취급되던 무속인들은 이제 당당하게 거의 모든 대중 매체에 등장하여 활동하고 있고, 무속 신앙은 이제 우리나라의 자연스러운 주류 문화 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다종교화된 한국 사회 속에서 신앙의 순결함을 포기한 채 여기 저기에서 손금도 보고 점을 치고 궁합을 보는 등 잡신 숭배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 백성들이 가나안 문화에 물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불러오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풍조들을 잘 살펴서 우리가 순결한 믿음의 자세를 확고하게 지켜가고자 굳게 결심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우리가 보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성경에서 예고한 말세의 징조들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주님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예고한 바대로 말세의 징조로서 전쟁의 소식이 늘 들려오고 있습니다. 자연재앙도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기근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에서 지진이 오백 건이 넘게 발생하여 섬 주민들이 70퍼센트가 떠났다고 합니다. 지난 해 아이슬란드 섬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났고 우리나라에 매우 가까운 일본 구슈 섬 사쿠라지마 화산도 최근 폭발하여 수천 미터에 그 구름이 올라갔습니다. 올해 1월 초에 일어난 미국의 서부 로스엔젤레스 시 주변의 산불로 인하여 대 부호들이 살고 있는 도시 외곽의 최고급 저택들이 속수무책으로 다 불탔습니다. 강력한 바람 때문에 무슨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피해 면적만 해도 서울 시의 4분의 1 규모의 넓이가 산불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산불 피해가 아직 복구도 안 되었는데 로스에인젤스 시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는 이 겨울에 홍수 피해가 연이어 발생하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한 도시에는 한 달 강수량이 한 시간만에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인근 바다에 나간 배들이 전복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부들의 말로 바다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이 바다가 많이 거칠어졌다고 말합니다. 하늘에 별들의 징조도 있겠다고 성경은 예고하였는데, 최근에는 소행성 하나가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약 3퍼센트까지 있다는 천체물리학자들의 보고로 인하여 술렁이고 있습니다. 약 80미터 크기의 소행성이 2032년 정도에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데, 만약 충돌하면 그 피해는 핵폭탄의 500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해와 달과 별이 삼분의 일이 어두워질 것이라는 요한계시록 8장 12절 말씀은 현실화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사도들의 종말의 현상 중에 인간의 내면 세계 속에서의 점점 불안정성도 심화되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미움과 갈등들이 더욱 커져갈 것이라고 말씀한 바 있는데, 그러한 모습들도 우리는 점점 더 체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거칠어져가고 있고 적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징후로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이미 우리나라에는 이단과 사이비 추종자들이 적지 않은 세력을 가진 상태입니다. 현재 경기도 가평 지역에는 신천지와 전도관 관련 이단 세력인 에덴성회 등이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서 가평 지역 목회자들이 여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징조들 역시 말세의 현상들이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영적으로 주님 오실 때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1장 28절 이하에 이르기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하시더라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28~36)
고 주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군대들에 에워싸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고 하시면서 인류 전체의 종말과 관련하여 여러 현상들을 이렇게 나열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종말의 현상에 대한 경고 말씀들을 이미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예루살렘 멸망 사건으로 국한시켜 적용하기도 합니다. 이미 주후 70년에 일어난 로마 장군 디도의 군대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루살렘 함락과 유대인의 3백만 명의 떼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선지자들은 한 가지 말씀을 가지고 가까운 사건들 뿐 아니라 먼 미래의 일들까지도 겸하여 말씀하시곤 합니다. 마치 우리가 산을 멀리서 바라볼 때 산 봉우리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더 가까이 가보면 그 보던 산 너머에 더 큰 산맥이 있는 것을 발견하듯이, 한 가지 사건을 보면서 말씀하신 것은 그 후에 일어날 또 다른 일들을 겸하여 함께 예고하곤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멸망의 사건만 아니라 그 후에 주님이 재림하여 오시기 때까지 계속 되는 역사 속의 수많은 하나님의 심판 사건들을 모든 세대에게 경고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재림 직전의 주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주는 영적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다고 보는 것이 제 견해이고 많은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래서 주후 70년에 성취된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의 심판 예언은 종말의 예표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 때 일어난 일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귀한 교훈을 줍니다. 주후 70년의 로마 군대의 예루살렘 성의 포위와 18개월 동안의 공격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읍에 몰려든 유대인들이 떼죽음을 당할 때였는데, 그 때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예수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늘 기도하였던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기 직전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지시를 받아서 그 성을 피했다고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거 말했습니다. 유세비우스 교회사 제 3권 제 5장에,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전쟁이 있기 전 신앙이 인정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신적 계시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 건너 펠라(Pella)라는 마을로 옮겨겼다. 이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예루살렘에서 떠나 거룩한 사람들이 이 왕도와 온 유대 땅을 완전히 떠났을 때에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에게 가한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남아 있던 완고한) 유대인들에게 임하여 그 악인들의 세대를 땅에서 완전히 멸망시켰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경고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늘 깨어 기도하고 있었던 초대 교회 예루살렘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군해올 때에 그 예루살렘 성벽의 견고함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전에 해주셨던 경고 말씀과 성령의 지시하심을 순수하게 믿고 그 견고한 성읍 예루살렘을 떠나 지시받은 요단 동편 땅 펠라 성으로 떠남으로써 그 무서운 재난을 피했습니다. 그 펠라 성읍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정복하는 도중에 건설한 도시여서 유대인들만 있는 동네가 아니어서 로마 군대의 박해를 피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 펠라 성읍에 살던 기독교인들은 몇 세기에 걸쳐서 그곳에서 평안하고 안전하게 거주하여 살았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세상의 여러 사건 사고나 징조들을 들을 때에 자연현상으로만 보지 말고 주님의 말세 경고와 관련되어 생각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 분별하는 살필 줄 아는 영적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본론 2.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
주님은 시대의 징조를 분간하라는 가르침에 이어서 누가복음 13장 1절 이하에서 그 당시에 일어난 사건 사고를 접할 때에 자신의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는 가르침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 두 가지의 뉴스거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당시 유다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항상 말썽을 피우고 공공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갈릴리 폭도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곤 하였는데, 그 중에 폭도를 죽이고서 그 피를 로마의 신에게 바치 제사 의식을 드리는 중에 제물의 피에 섞어 드렸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이교도로서도 매우 저급한 일이요 악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일을 빌라도의 악행꺼리로 삼아 말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사마리아 사람들의 죄가 그만큼 컸기에 그렇게 이교 의식의 제사의 피에 그들의 피가 섞여지는 불행을 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사건은 예루살렘에서 실로암 못 가까이 있는 망대가 무너져서 그로 인하여 열 여덟 사람이나 돌에 깔려 죽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 큰 충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심리는 흔히 사람들이 어떤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그런 일은 그 사람의 죄 때문에 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기에, 그들의 죄가 많아서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고,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사람들이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할 때에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잘못한 점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떤 사고를 당하여 유가족들이 깊이 슬퍼하며 애통할 때에 그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위로 대신에 비난과 멸시를 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 때에도 그러하였고, 무안 비행장 비행기 착륙 사고 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얼마전 하늘이라는 초등학생을 정신 질환 교사가 무참하게 살해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불쌍하게 죽은 아이와 그 부모를 향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런 훈수를 두고 그 부모에게 비난을 하는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는가 봅니다. 욥의 불행을 보고서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 욥을 위로해주기보다 그가 저지른 많은 죄가 있어서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불행을 내리신 것이라고 비난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남의 죄를 파헤치며 정죄하려는 그 사람들에게 도리어 그들 자신이 회개하지 않으면 똑같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여 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사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날 때에도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그런 일이 얼마든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없는가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살펴야 할 점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화의 문제들이 있다면, 그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합니다. 미루지 말고 신속하게 하나님과 화해를 도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미워하시는 죄가 생각나거든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내어놓고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과 가로막힌 담을 헐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항상 세상의 수많은 사건 사고 재앙의 일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저 사람의 처지라고 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생각합니다. 무안 공항 항공기처럼 전혀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가족과 이별하고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면, 그 때 내 영혼은 하나님과 곧장 자신있게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가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면 화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헤어진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서둘러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개할 점이 있는가를 살펴서 서둘러 회개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불화한 사람이 있으면 속히 우리는 다른 이들과도 화해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 있다면 그것을 소홀히 하고 미뤄둔 것이 있다면 서둘러 그 일에 집중해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께로부터 책망 대신에 착하고 충성되었다는 칭찬을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부끄러운 죄가 없는지를 돌아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속히 버리기를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본론 3. 하나님의 유예 기간을 선용하라
그런데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 말씀을 그 듣는 회중에게 덧붙여 주셨습니다. 그 비유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입니다. 한 포도원에 주인이 심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삼년 동안이나 주인을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이 과원지기에게 그 무화과나무를 베라고 하였을 때에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누가복음 13:8,9)
이 비유 속에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상징하고, 과원지기는 우리 구주 예수님과 성령님을 예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불신앙과 나태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에 심판을 내리고자 하실 때에 과원지기이신 우리 구주와 우리 성령님이 중간에 중보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기회를 더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성령께서 늘 중보 기도해주심으로써 우리는 천금같은 유예 기간을 얻습니다. 주님께서 하늘 우편에서 기도해주시고 성령님께서도 우리 안에서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심으로써 우리가 이 복된 기회의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은혜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기에 벌써 멸망당해도 싼 우리가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고 나태와 연약함 때문에 갈팡질팡했다가도 다시 일어나 이 구원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극히 복된 영적 유예의 은혜를 결코 남용하거나 악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은혜를 방탕과 나태의 기회로 삼으면 안될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도 범죄와 우상 숭배와 도덕적 부패에 빠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많은 선지자들의 경고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오래 참음과 기다림이 있었지만 끝끝내 돌이키지 않으니까 결국은 앗수리와 바벨론 제국의 손에 의하여 끝내 망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권고하시고 책망하시는 성령의 권고하심을 무시하지 말고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속히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고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신앙 생활을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뜨겁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모든 우상과 잡신을 버리라는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늘 기도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용서하며 친절과 온유함으로 섬기며 늘 성결하고 정결한 삶의 열매를 맺어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날 점점 혼탁해져가고 사랑이 식어가고 불법이 성하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경건의 모양만 갖춘 것으로 만족하는 말세의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점점 선과 악의 구별 기준들이 흐릿해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의 언행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교만하고 폭력적이고 선과 진리와 사랑보다 세상적인 힘을 더 구사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는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사도들이 경고한 바대로 시대의 징조들을 분간하는 더욱 민감한 영적 분별력을 갖춰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누가복음 12:57 말씀에서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라고 촉구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성령 안에서 늘 깨어 기도하면서 건전한 양심과 보편적 상식을 기준을 가지고 차분하게 세상의 현상들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옳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깨우침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나는 과연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어 있는가, 내가 저 일 한복판에 있게 되어,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까를 늘 먼저 생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돌아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회개의 기회가 한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남은 기회를 선용하여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과 요구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하여 더욱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분명 우리는 복된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무리 시대가 악해도 믿음으로 살고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힘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주어지곤 함을 봅니다. 구약 시대에 소돔 성이 멸망할 때에도 의로운 롯은 구원을 받았지 않습니까? 포악하고 교만했던 이방 나라의 수도 니느웨 성읍 사람들도 요나 선지자의 심판 예언을 듣고 금식하며 회개함으로써 용서받고 멸망의 화를 면하였습니다.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 군대에 다 멸망하는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 구스 내시 에벳멜렉은 살려주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충실한 동료 바룩도 살려주셨습니다. 또한 조상들의 경건한 신앙의 전통을 따라 포도주를 일체 입에 대지 않고 부패의 온상인 도시 생활을 피하고 목자 생활을 고집하며 믿음을 순수하게 끝까지 지켜온 모세의 처갓집 족속 레갑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나라의 멸망 중에도 그 족속들을 보존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이 부패한다 해도, 아무리 경건의 능력이 다 소실되어가는 말세를 산다 해도, 우리 모두 거센 세속의 탁류의 물결에도 굴복하지 말고 믿음으로 끝까지 저항하여 이겨냅시다. 늘 깨어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인도함을 받았던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처럼 우리도 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이 시대를 분별하며 신앙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깊어가는 말세의 세상에서 모두가 믿음으로 승리하여 이긴 자로서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의 귀한 상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