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후 폴란드가 독립에 성공한 진짜 이유
독립에 대한 열망과 기회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국제 질서 재편에 나선 승전국들은 폴란드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한때 동유럽의 강자로 군림하였으나 18세기말에 이르러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완전 분할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폴란드는 어언 150여년이 지난 후에 다시 독립국이 되었다. 이처럼 폴란드가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폴란드인들의 줄기찬 저항 의지와 독립에 대한 끝없는 열망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의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약소국이 단지 열망만 있다고 압제를 물리치고 독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후 질서 재편의 목표가 패전국을 철저히 응징하여 전쟁의 재발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승전국이 패전국을 응징하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으로 삼았던 것 중 하나가 '민족자결주의'였다.
그래서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에 속해있던 피지배민족들에게만 해당되었다. 전쟁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터키는 많은 피지배 민족을 거느린 제국들이었는데, 힘을 약화시키고자 이들이 지배하고 있던 여타 민족들을 민족자결주의라는 명분으로 독립시켜 패전국들을 갈기갈기 나누었다. 사실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이 지배하고 있던 피지배민족들이 훨씬 많았다. 그렇지만 승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독립국은 없었다.
▲ 3.1운동은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벌어진 거사였다.
하지만 국제정세에 눈이 어두워 민족자결주의가 승전국들이 전후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이었음을 알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폴란드는 패전국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한 때 연합국이었지만 승전국은 아니었던 소련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러시아를 타도하고 건국된 소련은 단독으로 동맹국 측과 강화하여 전선에서 이탈하였고 더구나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이념을 주창하였기 때문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지경이었다. 때문에 전후 동맹국 측과 러시아 지배 지역에 속하여 있었던 수많은 중소국가들이 독립하였다.
이들 국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이었는데 이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국토와 인구를 포용하며 탄생한 나라가 바로 폴란드였다. 하지만 감격적인 독립과는 별개로 신생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내부 문제가 건국 초기부터 불거져 나왔다. 당연히 이런 모습은 극심한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
▲ 제 1차대전 종전 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사이에 있던 많은 약소민족들이 민족자결주의를 명분으로 독립하였다.
동유럽 평원의 새로운 주인이 된 폴란드
새로운 지배자가 되려하다
강대국들을 설득하여 폴란드 독립을 주도하였던 드모프스키(Roman Dmowski)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서 구성된 '폴란드 민족 위원회(KNP)'는 중앙 집권적인 정부가 지배하는 강력한 폴란드 민족 국가를 구상하고 있었던데 반하여, 군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피우스츠키(Jozef Klemens Pilsudski)는 폴란드의 주도하에 수많은 피지배 소수민족들을 포함하는 연방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결국 무력을 손에 쥐고 있던 피우스츠키가 정부를 양도받아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그의 뜻대로 폴란드는 신생국답지 않은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아우르는 대국을 향한 첫 걸음을 시작하였다. 폴란드인들은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하는 물산이 풍부한 동유럽의 평원 지대에 대대로 자리 잡고 살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지역이 지리적으로 명확한 단절점이 없어서 딱히 국경을 정하기 힘든 곳이라는 점이었다.
▲ 폴란드 의장대의 호위를 받는 피우수트스키의 동상.
폴란드인의 존경을 받지만 상당히 민족주의 경향이 강하여 주변 이민족까지 지배하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보인 인물이었다
그렇다보니 주변의 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었고 쌍방의 합의 없이 명확한 국경을 획정하기도 곤란하였다. 하지만 피우스츠키는 폴란드인들이 있는 곳이면 무조건 폴란드의 영토로 간주하고 다른 민족은 피지배 대상으로 보았다. 극우파들은 오랜 식민지 기간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인들이 교육, 과학기술은 물론 문화, 예술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풍부하므로 당연히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고 자부하였을 만큼 우월의식이 컸다.
더불어 폴란드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고집이 가장 쎄다고 할 만큼 선민의식이 강하였다. 그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냐면 무조건 탄압만으로 폴란드를 통치하기가 힘들 것으로 판단한 제정 러시아가 러시아령 폴란드를 처음에는 자치왕국으로 변경시켜 주는 등, 정작 러시아의 신민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던 정치적 대접을 펼쳐 폴란드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을 정도였다.
▲ 제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었던 페탱이 1919년 폴란드군 창설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하여 사열을 받고 있다.
폴란드군은 건군 직후부터 주변국과의 충돌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살아왔던 폴란드인들은 자치권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1830년, 1863년 등 수차례의 무력 봉기를 감행하였고 그 때문에 폴란드라는 이름이 아예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처럼 원래부터 자부심이 충만하였던 폴란드인들이 제1차대전 후 갑자기 닥친 힘의 공백기에 새롭게 나라를 만들고 거대한 동유럽 평원의 새로운 주인이 되자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