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은 스피드, 미드필드는 안정, 수비는 변화를 선택했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허정무 감독이 북한전(4월1일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대비해 발표한 22명 엔트리의 특징을 포지션별로 살피면 공격은 스피드, 미드필드는 안정, 수비라인은 변화를 강조한 흐름이 읽힌다. 유럽에서 뛰는 6명을 포함한 7명의 해외파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명과 암이 교차한다. 소속팀을 찾지 못한 채 ‘유목민’ 처지에 놓인 이근호와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 늦춰지고 있는 조원희의 북한전 투입 여부는 3월28일 이라크 평가전(7시 수원월드컵경기장)을 통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 주 수요일 열리는 북한전은 본선 직행 희비를 나눌 중요 일전이다. 2010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경기 중 4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남북한은 1,2위를 달리고 있다. 터닝 포인트를 지난 순위테이블을 살피면 남북한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공동 진출이 유력해 보이지만 선두 한국과 4위 사우디아라비아의 승점차가 4점에 불과해 최종 결과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한국이 이라크와 평가전을 치르는 3월28일 북한과 UAE(평양)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테헤란)가 최종예선 5차전을 갖는다. 이날 결과에 따라 판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4월1일 남북전이 B조 판도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예측은 이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판세라면 최종예선 막바지에 승자승을 따져야 하는 가슴 조이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참고로 최종예선 순위 결정 규정은 승점>골득실>다득점>승자승 순이다.
북한전 대비한 전략적 선택
허정무호의 북한전 예비 엔트리 공격진 특징은 속도의 강화다. 위 보다는 아래, 높이 보다는 주력에 힘을 실은 선수 구성이다. 서동현의 부상 여파가 있었지만 정성훈, 박주영, 이근호의 기존 라인에 스피드가 뛰어난 이상호와 배기종을 추가로 발탁했다. 북한 수비진에 대비한 전략적 선택이다. 정조국의 엔트리 제외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전 예비 엔트리 22명 예상 포지션 경합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수비시 자기진영 페널티 지역에 7명을 포진시키는 북한은 이란의 바히드 하세미안,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세르 알 카타니 등 상대의 높이를 앞세운 공격에 쉽게 빈틈을 내주지 않았다. 공중볼 캐치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골키퍼 리명국도 경기를 거듭하며 실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허정무 감독이 리광천-리준일-박철진으로 이어지는 북한 최종 수비진이 대인방어에 강점을 보이지만 뒤로 돌아 뛰는 공간 커버에 약점을 드러낸다는 점을 고려해 뒷공간을 노리는 스타일의 발 빠른 공격자원을 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려는 이상호와 이근호의 흐름이다. 울산에서 수원으로 이적해 에두와 함께 빅버드의 최전방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호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미드필드 이상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할 만큼 재능의 이상호이지만 에두와의 호흡(조합) 최적의 포지셔닝 실험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고민을 대표팀으로 확대한다면 정성훈과 에두가 빅맨 스타일의 포워드라는 점에서 정성훈과 짝을 이룰 이상호의 활용 방안에 대한 해법 찾기가 필요하다. 이상호를 미드필드 지역으로 내리고 대신 빅맨 스타일과의 조합이 어울리는 배기종의 처진 스트라이커 기용이 고려 방안 중 하나다.
소속팀을 찾지 못한 이근호의 북한전 출전은 지켜볼 일이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소속팀을 찾지 못해 실점 감각이 무뎌진 이근호의 몸 상태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허정무체제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이근호이지만 실전에서 멀어져 근육의 이완 정도와 심적 불안이 플레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는 26일(목) 시작하는 소집훈련과 28일 이라크전이 이근호의 북한전 출전 여부를 가름할 무대다.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 늦춰진
조원희가 다르지 않은 흐름이다.
밀집 수비 깨는 4가지 형태
미드필드 지역은 큰 변화 없이 뼈대를 유지했다. 경고누적으로 북한전에 결장하는 김정우와 부상으로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염기훈 대신 위건에 입단한 조원희와 기대주 박현범이 발탁됐다. 박지성 기성용 이청용 등은 입지를 지켰다. ‘캡틴’ 박지성의 위치와 역할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왼쪽 터치라인에 무게 중심을 두고 측면과 중앙, 공격과 수비를 오가는 폭넓은 움직임의 형태다.
미드필드라인의 관전 포인트는 ‘선수’가 아닌 ‘배치’에 있다. 북한이 서울 원정 경기임을 감안해 보다 수비를 두텁게 세우는 형태로 나설 공산이 짙다. 전술적으로 밀집 수비를 깨는 4가지 형태(측면 공략, 공격자원 확대, 세트피스 강화, 상대 역습을 끊은 뒤 빠른 재역습 시도) 중 공격 자원의 확대를 꾀할 경우 전방에 복수의 스트라이커를 배치하고 박지성과 이상호 혹은 기성용을 전진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조원희, 박현범, 한태유 등 수비형 미드필더의 후방 지원과 커버가 공수 밸런스 유지의 관건이다.
수비진 특히 눈길이 집중됐던 센터백 라인에 황재원이 발탁됐다. 사생활 문제로 대표팀을 떠난 뒤 13개월만의 A팀 복귀다. 곽태휘와 조용형이 연이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 중앙 수비수의 공백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리딩과 힘이 강점인 황재원의 합류는 경험 부족을 걱정한 중앙 수비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허정무 감독으로선 조합에 대한 고민이 숙제로 남았다. 강민수-황재원, 황재원-이정수, 이정수-강민수 조합 중 택일해야 한다. 강민수는 수비범위, 황재원은 리딩과 파워, 이정수는 스피드가 상대적 강점이다. 김동진의 중앙 수비 전환이 가능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선호하는 변화가 아니다. 북한이 정대세-홍영조-문인국으로 이어지는 빠른 역습과 공간 침투에 능한 만큼 효과적인 대처와 전술적 판단이 요구된다.
4월1일 남북전은 조예선 판도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유럽 진출 제도적으로 막히나
앞서 해외파의 명과 암을 언급한 것은 최근 세계 축구계의 움직임 때문이다. 이번 명단의 특징 중 하나는 해외파의 A팀 입지 강화다. 잉글랜드의 김두현, 터키의 신영록, 독일의 차두리, 일본의 조재진 등이 제외됐지만 전체 엔트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해외파로 채워졌다. 예상 선발 라인업으로 따지면 절반에 이르는 숫자다. 해외파의 존재는 국제대회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지표 중 하나다. 특히 축구의 본고장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의 무게감은 더하다.
하지만 최근 FIFA의 행보를 보면 비유럽 선수들의 유럽리그 진출 문이 제도적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총회에서 가맹 208개 협회 중 155개 협회의 찬성으로 외국인 선수의 출전 제한 제도 6+5 규정(선발 선수 중 최소 6명은 자국 선수이어야 한다)을 통과시킨 FIFA는 지난달 26일 법률적 검토를 마치고 본격적인 규정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FIFA가 법률 검토를 의뢰한 독일 연구 기관인 INEA(Institute for European Affairs)는 FIFA가 추진 중인 6+5 규정이 노동자의 이동 자유를 보장한 EU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유럽축구연맹과 G-14가 확대 개편한 ECA(유럽 클럽 협회)가 반발하고 있지만 FIFA는 최근 5년간 유럽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클럽 선수 중 외국인 선수 비율이 47%에 이른다며 유럽 클럽들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가장 많이 진출했고 선호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외국인 선수 비율이 65.1%로 최고 수치를 보였다. FIFA가 추진 중인 6+5 규정이 선발 선수에 한정한 룰이기는 하지만 규정이 본격 시행된다면 선수들의 해외진출 위축은 불가피하다. A팀의 전력 강화라는 단기적 측면을 뛰어 넘는 종합적이면서도 장기적인 한국축구의 방향 설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208&article_id=0000000257&date=20090323&pag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