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평윤씨시조 윤신달(尹莘達, 893~973)은 아래와 같은 탄생설화가 있다. 신라말 윤씨 할머니가 파평산(현재 파주시 파평면) 용연 못에서 금괴가 떠오르는 것을 건져서 속을 보니 옥동자가 있어서 자기 성씨인 윤씨로 키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고려 삼한벽상공신이고 포항에 묘가 있다. 5세손 윤관은 여진족을 평정한 공으로 유명한데 아들7형제를 낳아 번성하면서 여러 대소 문파가 나누어졌다.
* 21세손 윤돈(尹暾, 1551~1612)은 임란때 선조를 호종하였고 대사간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윤돈은 원래 부모 형제와 함께 파주에 살았는데 논산 노성에 사는 유씨와 혼인하여 처가살이를 하다가 처가에 남자 자식이 없는 바람에 그대로 눌러 앉아 파평윤씨 논산 입향조가 되었다. 윤돈의 아들 윤창세(尹昌世, 1543~1593)는 효자로 신망이 이었는데 임란이 발생하자 수천명의 의병을 모집하고 팔자기(八子旗)를 내걸고 싸우던 중 유행병으로 진중에서 순사하였다.(향토문화전자대전 참고) 윤창세에게는 다섯 아들(노종오방파라 한다)이 있었고 그 밑에 손자21명 증손자 51명이 탄생하여 손세가 폭발함에 따라 지파들이 복잡하게 생겨났다.
* 윤창세의 5자중 둘째가 23세손 윤황(1571~1639)인데 문정공파 파조가 된다.그런데 고려말 상장군 윤인첨(1110~1176)을 파조로 하는 문정공파가 있어서 이름이 같은 2개파가 있는 셈이다.(구별하기 위하여 후세의 문정공파를 소정공파라고 하는 것 같다). 윤황은 8자를 낳았는데 그 중 24세손 윤문거의 11세 후손(파조 윤황의 12세손이다)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태어났다.(윤문거의 동생 윤순거의 아들이 유명한 명재 윤증이다) 이런 연유로 윤대통령을 파평윤씨 문정공(윤황)파 35세손이라 한다.
2. 윤돈 묘역
* 윤돈을 파시조로 하는 문중으로 파평윤씨 노종파 대종중이 있는데 문정공파 또는 소정공파는 지파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윤황에 관하여 별로 언급이 없다. 이 묘역에는 입향조 윤돈과 아들 윤창세 묘를 비롯하여 10여기가 있으나 공교롭게도 윤황의 묘는 논산 장구리 산2-1 재실부근에 있다. 현장 답사를 하지 못했으나 지도상으로 볼 때 윤황의 묘도 대혈일 가능성이 있다.
* 이 묘역 중앙에 윤돈부자(父子) 묘가 있는데 윤창세가 그의 부친보다 10여년 먼저 졸(卒)하여 아래에 묻혔다. 어떤이는 윤창세묘가 와우형의 명당이라고 하나 멀리서 보아도 윤돈 묘의 전순에 점하였다. 묘역에 올라가 보니 윤돈의 묘는 국의 중앙을 차지하고 위엄있게 앉았고 안산도 저수지를 건너 멋있게 배치되어 있다. 어떤 유투버는 이 묘역에는 진혈이 없고 장구리에 있는 윤황의 묘가 대혈이라고 주장하더라. 그렇다면 윤창세(22세손)와 아들 오형제(23세손, 윤황포함), 손자(24세손)가 폭발적으로 손세를 불린 것은 어디에서 오는 발복인가? 모두 윤돈 묘의 발복이다. 상등초급대혈이다.
* 윤대통령의 고조 증조 조부의 묘는 대전공원 묘원에 납골묘로 조성되어 있다. 그 곳도 생기가 있는 좋은 곳이다. 윤돈의 묘는 4백년이 지나서 유골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지금은 후손의 발복에 영향력이 없을 것이다. 대권은 국운(國運)과 직결된 것으로 어느 개인의 음택 한두개로 결정될 일이 아니다. 타고난 팔자가 중요하다는 글을 쓴 바 있다.
* 안내판에 의하면, 입향조 윤돈을 비롯한 11기의 묘표 묘갈 신도비가 있다. 중앙 위로부터 입향조 승지공 윤돈, 임란때 의병장으로 전사한 참판공 윤창세, 윤수, 윤순거, 윤전의 묘가 있고 좌측중앙에 윤진, 묘역 우측상단에 윤돈의 장인 유언의 묘가 있다. 둘러보니 윤돈 묘이외에는 전부 평범하다. 다만 좋은 국세속에 있으므로 편안하다.(2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