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4,3-21
그 무렵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독서들 중 한 단어의 말씀이 제게 강하게 다가오셨습니다.
"어쨌든!"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 쫓아다니는 사울 임금을 해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1사무 24,7)
"어쨌든!"
조건이나 자질, 성품이나 의도가 어떻게 되어 있든지 간에 개의치 않겠다는 뜻입니다. 독서의 문맥으로 보면 개인적으로 느끼는 억울함과 분노로 정당화한 복수보다 하느님과 그의 관계를 우선하겠다는 다윗의 마음가짐이 표현된 말이지요.
얼핏 보면 사울 임금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존중 같지만, 그 깊이에는 사울을 선택하셔서 기름부으신 하느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사울이 어떤 인간이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그를 만드시고 택하신 하느님의 그 기대 때문에 하느님을 슬프게 해 드리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성왕 다윗의 겸손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열두 사도의 부르심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마르 3,13).
예수님께서 하느님 현존 장소인 산에서 "원하시는" 이들을 택하셨으니, 예수님의 의지가 곧 하느님의 의지입니다. 이들 열두 사도는 첫째, 주님과 함께 지내며, 둘째, 복음을 선포하고, 셋째, 구마의 권한을 부여받게 됩니다.
이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열두 사도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네 복음서들의 지면 사정상 우리가 그들 모두의 됨됨이와 인성을 세세히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사가들이 사도들을 굳이 우상화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부족함과 실패마저도 솔직히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둘의 이름 뒤에 감히 나의 이름을 붙여서 나지막히 읽어봅니다. 그렇게 열세 개의 이름을 반복해 읽다 보니 마음에서 선명히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쨌든!"
사도들이 완벽했습니까? 그들이 뛰어나고 재능 넘치는 엘리트들이었습니까? 그들이 부유하고 근심 걱정 없는 금수저들이었습니까? 그들이 분별력 넘치고 지혜로운 현자들이었습니까? 그들이 겸손하면서도 용맹한 의리의 사나이들이었습니까? 그들이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기나 했습니까?
"어쨌든" 예수님은 당신의 선택과 부르심을 뒤집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본 모습이 "어쨌든" 하느님의 계획을 믿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열두 사도와 함께 우리 모두는 "어쨌든" 주님께서 부르시고 보증하시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벗님! 자신의 부족함이 못마땅할 때, 자신의 찌질함에 위축될 때, 번번이 죄로 기우는 약해빠진 의지가 부끄러울 때, 이 "어쨌든"이라는 말씀을 떠올리면 즣겠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관대함과 자비와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또 "어쨌든" 우리를 결코 포기하시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도 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지금의 몰골이 "어쨌든" 우리는 주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고 신부이며 모상입니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첫댓글 "어쨌든!".... 오늘의 묵상을 주시네요.
비록 지금의 몰골이 "어쨌든" 우리는 주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고 신부이며 모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