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내가 원하는 것은 윤회고(輪廻苦)에서 벗어난다던가 또는 크게 깨우쳐 해탈을 한다던가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고 단지 잘먹고 잘살아 보자는 것인데 그 잘먹고 잘사는 방법이 세월 따라 많은 변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2. 불교와의 만남
저는 어려서부터 청수(淸水)를 모시고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으로 시작되는 三*七 字 주문을 외우며 양치기와 양으로 구분되는 서양사상과 비교해 나무와 나무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의 관계로 표현 될 수 있는 동양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초(初) 요추(腰椎) 3번부터 천추(遷推) 1번 사이에 있는 추간판 3개가 터져서 신경을 압박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고슴도치가 되도록 침을 맞으며 지옥이 멀리 있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육체의 옷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고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기를 간절히 원(願)했으나 기존 관념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이들 입시문제로 아내가 절에 다니길 원했고 나도 자연스럽게 불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법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내키지 않는 상황 이였으나 설악산 봉정암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줄 모르고 밤새워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달밤에 체조하듯 한 밤중에 불뇌 사리탑에 108배를 하고 난 후, 마음이 급격히 변하여 불교대학과 새벽기도를 다니며 부처님께 빌고 구하고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경을 수지독송 하면 좋다더라 해서 한 것이 출퇴근하는 전철에서 눈을 감고 반야심경과 천수경 외우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외우는 순서를 건너뛰기도 하고 외운걸 또 외우기도 하고 외우다 까먹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외우는 중간에 잡념 따라 헤매기를 번복하다가 시간이 가면서는 제법 끝까지 잘 외우게 되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방법도 수련의 한 방법으로 호흡에 맞춰 셈을 하는 수식관(數息觀)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던 중 우곡선원과의 만남으로 어렵사리 만난 부모와 헤어져야 하는 심정으로 또 한번의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양재동의 우곡선원에는 불상도 없고 어떤 특별한 의식도 없이 법회를 시작하면 약 15분간 호흡을 고른 뒤에 묻고 답하고 자기의 의견을 발표하는 토론형식으로 불교 공부를 하였지만, 불상에 경배하고 경을 외우고 절하는 행위를 부정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행위나 경전에 대한 마음가짐에는 이제껏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불교에 대한 지식과 차이가 있어서 부처님께 의지하며 겨우 편했던 마음 자세를 바꿔야 했습니다.
힘있고 돈 많은 사람이 도와주어도 좋은데 부처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부처님은 2,500년 전 이 땅에 와서 "인간들아 네가 바로 부처니라"하시고는 해탈해 버려서 아무리 빌고 구해도 "니 일은 니가 알아서 해라"하신다 하니 그런 부처님께 빌고 구하기 보다 자식 잘 길러주고 어머니 봉양 잘하는 내 아내를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아내 마음 편하게 해주어 따뜻한 밥 잘 얻어먹는 것이 훨씬 이익 가는 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3. 선원에서의 수련
가. 삼지법은 일념으로 향하고
삼지법이란, 편안한 자세에서 엄지 검지 장지 손가락의 끝을 자연스럽게 맞대어 그 맞닿은 점에서 맥박이 뛰는 것을 느끼며, 그 느낌에 집중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함으로서 잡념에 끄달리지 않고 나에게 몰입하여 순수해짐과 동시에 대인관계에 있어서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고, 상대방에게 사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수련 방법입니다. 삼지법으로 시작된 맥박의 느낌은 시간이 가면서 몸 전체에서 느끼기도 하고 몸의 어느 한 부분에서 느끼기도 했는데 심한 운동 후에 가슴에서 느껴지는 호흡을 아랫배까지 이동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아침저녁으로 세수 대야에 얼굴을 쳐 박아 호흡이 쉬는 상태에서 눈을 씻어 마음의 창을 맑게 하는데 눈을 씻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나. 날숨으로 호흡을 떨구고
호흡에는 날숨(내쉬는 숨)과 들숨(들이쉬는 숨)이 있습니다. 호흡시에 들숨은 의식하지 않고 날숨만을 의식하는데 숨은 코로 나가지만 의식은 내 몸 안의 습이 호흡과 함께 내 몸 제일 아래로 빠져나가도록 합니다. 습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바름을 채워 내가 잘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있고 동중정(動中靜)의 상태가 되어 분노하거나 기뻐하더라도 호흡은 항상 한가로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 관법으로 생체에너지를 정화함
색(色)도 기(氣)요, 공(空)도 기(氣)입니다. 그 중에 존재하는 나의 몸 나의 마음도 기(氣)이며 기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수기(水氣)와 화기(火氣)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법이란, 정신을 집중하고, 순수에너지를 내것화 하는 방법이며 나의 기를 평정시켜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관법을 익혀온 방법은 붉은 꽃을 머리에서 단전으로 이동시키기도 하고 부처님의 상호를 머리에 두었다, 배에 두었다, 발아래 두기도 했고 맑은 샘물이나 소용돌이치는 성난 물을 단전에 두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내 성격의 문제점을 평정시키기 위한 가르침에 의해 오대산 계곡의 얼음 끝에 달린 맑고 차디찬 물방울에 반사되는 햇빛을 단전에 그려 나의 생체에너지를 정화하였습니다.
4. 부처님에 대한 인식 변환
내 지식으로는 경을 수지독송하고 절하고 기도하면 내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부처님이 해결해 주시거나 안 좋은 일이 내게는 오지 않도록 부처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는데 그 기존의 내 생각이 아래 표와 같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대 상
기존의 생각
변화된 생각
부 처 님
내 소원을 들어주고 복을 내려주실 힘있는 분
불법을 깨우쳐 그 불법에 따라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스승님
절하는 행위
부처님께 내 소원을 들어 달라고 비는 행위
스승님에 대한 예의이자
나를 낮추는 행위
기 도
나의 소원을 부처님께
알리는 행위
내가 가야할 길을
나 스스로 다짐하는 행위
경 전
수지독송 하면 복을 받는 문자
삶을 바름의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
5. 몸의 변화와 수행 중 제 경계
이런 과정에서 몸으로도 전에 못 느끼던 것이 느껴지면서 몸이 바뀌었습니다. 좌선 중에는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에서 무언가가 툭툭거리고 머리에서 물방울이 서서히 흘러내리는 것 같으며 정수리 부분이 간질간질 하고 머리 뒤쪽의 숨골부분에서 척추 쪽으로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체험한 것은 손바닥의 허물이 벗겨지고 저기압이 밀려오면 몸이 쳐지고 힘들어 지며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던 옛날과 달리 머리가 아프고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한 여름에 술을 먹고 오한을 느껴 솜이불을 덮고 자야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좋아하던 술도 잘 안 먹게 되었습니다.
또한 몸에 기혈이 돌아 항상 차갑던 배와 손과 발이 따듯해 졌으며 몸에 습한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특히 추간판탈출증(일명 디스크)에 의한 고통이 1999년 봄부터 옛날과는 다른 느낌으로 두세 달 계속 되더니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내 몸의 상태는 99년 초 치료를 받기 위해 도반의 소개로 모처에 가서 MRI 사진을 보여줬을 때 그 치료사가 "이거 선생님 사진 맞습니까? 이런 상태로는 여기까지 올 수가 없을 텐데 이상하네요. 빨리 수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 몸으로 나는 오늘도 잘먹고 잘살고 있고 요즈음에는 병원이나 한의원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위의 변화는 내가 그것을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불교와 만난 이후 수행과정에서 느끼고 변화된 일로서 나를 이끌어 주신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6. 기타
가. '∼구나' 하는 객관적인 마음
내 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나쁘다 좋다라는 감정에서 '∼하는구나' 라는 객관적인 마음으로 바뀌어 지고, "인생은 빚 갚음이다"라는 생각으로 내게 닥치는 모든 일은 나의 전생 업에 의해 내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이미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 불평하거나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움직임 없이 수용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나. 인과(因果)에 대한 확신
내가 불교를 만나서, 이세상을 정말 잘 살아야 겠구나 하고 느낀것은 바로 인과법 때문 입니다.
아무렇게나 살면서도 빌고 구해서 잘먹고 잘 살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바램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입니다.
7. 글을 마치며
내가 육체적인 고통과 불교와 만남에 의해 경험한 바에 의하면 침(針)이나 약으로 육체적 고통을 치료하시는 분들을 만나는 것도 복이지만, 더 큰복은 바른 스승과 바른 인연들을 만나 마음을 올바르게 고치는 것이 대복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 몸으로 느껴지거나 몸이 바뀌어지는 현상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바뀌어 지는 것이었습니다.(출처-海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