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전혀 상반된 메시지를 전하는 거짓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기브온앗술의 아들인 하나냐(Hananiah)입니다(1절). 하나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예레미야를 향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이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다고 하셨고, 바벨론에 빼앗긴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들을 2년 안에 다시 되돌려 놓겠다고 하셨다고 전하였습니다(2절, 3절).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붙잡혀 간 여고니야(יְכָנְיָה, Jeconiah)를 비롯한 모든 유다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전합니다(4절). 여고니야는 여호야김(יְהוֹיָקִים, Jehoiakim) 왕의 아들, 여호야긴(יוֹיָכִין, Jehoiachin)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하나냐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4절, 5절). 예레미야가 목에 줄을 매고, 멍에를 메는 퍼포먼스(Performance)를 통해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말고, 바벨론이 남왕국 유다에게 지우는 멍에를 메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메시지였습니다. 남왕국 유다 백성이 들을 땐 훨씬 더 희망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냐의 메시지를 들은 예레미야는 “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라고 응답합니다(6절). 하나냐가 말한 것처럼 되면 정말로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마음도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기에 그렇게 반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이야기하기를 예레미야 자신이나, 그 이전의 선지자들이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했다는 것을 상기(想起)시킵니다(7절, 8절). 그러면서 진정한 예언자는 그 예언이 성취된 후에야 정말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지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9절). 그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것이 진정한 예언이 아니라, 그 예언대로 성취될 것을 전하는 자가 참된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냐는 예레미야 어깨에 멘 멍에를 꺾어 버렸습니다(12절).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하는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다시 임하여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냐가 나무 멍에를 꺾었지만,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다고 하나냐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13절). 즉 하나님께서 남왕국 유다 백성에게 메게 한 멍에를 유다 백성이 거부한다면, 더 이상 사람이 꺾어 버리기 힘든 쇠 멍에를 메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남왕국 유다를 바벨론 왕에게 맡겨 그 멍에를 메게 하고, 바벨론을 섬기게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여 전하게 하십니다(14절).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사람이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여 바꾸려고 해도 그것은 쇠 멍에처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냐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시지도 않았는데, 거짓 예언을 하여 백성을 현혹시켰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냐를 제하여서 금년에 죽을 것이라”라고 책망합니다(15절, 16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냐는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습니다(17절).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전한 지 약 두 달 만에 죽은 것입니다(1절, 17절). 하나님께서 말씀한 것에 대항하여 엉뚱한 말을 전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전하거나, 청중(聽衆)이 원하는 식으로 바꾸거나, 듣기 좋게 포장하여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 말씀을 전하는 자의 온전한 태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귀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소홀히 여긴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말씀 묵상과 연구의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