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방에서 모여온 보살들은 어느 때에 이러한 문답을 하였다. 문수보살이 각수보살에게 물었다.
"마음은 하나인데 어째서 여러 가지 과보가 있어 좋은 곳에 나기도 하고 나쁜 곳에 나기도 하고, 이목구비가 구족한 이도 있고 불구자도 있고, 잘난 이도 있고 못난이도 있고, 복락을 누리는 이, 고통을 받는 이가 있습니까? 업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마음은 업을 알지 못하며, 받는 것은 과보를 알지 못하고 과보는 받는 것을 알지 못하며, 마음은 받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받는 것은 마음을 알지 못하며, 인은 연을 알지 못하고 연은 인을 알지 못하며, 또 어째서 지혜는 법을 알지 못하고 법은 지혜를 알지 못합니까?"
각수보살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든 것은 자재한 것이 아니어서 참된 성품이 없으므로, 온갖 법은 서로 알지 못합니다. 마치 빨리 흐르는 물결이 항상 흘러서 끊임 없지만, 앞 물결과 뒤 물결이 서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등잔에 타는 불꽃이 타오르고 타올라서 쉬지 않지만, 먼저 불꽃과 나중 불꽃이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며, 거세게 부는 바람이 불고 불어서 흔들리는 세력이 생기지만, 제각기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며, 넓은 땅덩이가 질펀하게 이어져 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ㆍㆍㆍ. 우리의 눈 ㆍ귀ㆍ코ㆍ혀와 몸과 마음이 제각기 온갖 고통을 느끼지만, 사실은 느껴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법의 성품은 본래 옮아가는 것이 아니지만, 표현되는 것으로 변천함이 있는 듯합니다."
3 이번에는 보수보살에게 물었다.
"모든 중생들은 사대로 된 것이어서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데, 어째서 중생들은 괴로움도 받고 즐거움도 받으며, 나쁜 짓도 하고 착한 짓도 하며, 여러 가지 다른 과보를 받습니까? 그러나 법의 성품은 본래 착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데ᆢ ㆍ."
보수보살은 대답했다.
"지은 업에 따라서 받는 과보가 있기는 하지만, 짓는 이는 없는 것입니다. 마치, 밝은 거울에는 대하는 얼굴을 따라 그림자가 나타나지만, 안에도 밖에도 아무 것도 없듯이, 업의 성품도 그런 것입니다. 또 밭과 씨앗이 서로 알지 못하지만, 저절로 인이 되듯이 업의 성품도 그런 것이며, 지옥에 있는 중생이 고통을 받지만, 그 고통은 오는 데가 없듯이 업의 성품도 또한 그런 것입니다."
4 문수보살은 또 덕수보살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한 가지 법을 깨달으셨는데, 어째서 여러 가지 법을 말씀하여, 온갖 세계에 두루 들리며,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법의 성품은 분별이 없는 것인데."
덕수보살은 말했다.
"땅의 성품은 하나이지만 가지가지 물건을 받아 가지며, 불의 성품은 하나이지만 갖가지 물건을 태우는 것이며, 바다의 물은 여러 강에서 들어오지만 맛은 다르지 않으며, 바람의 성품은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물건에 부는 것이며, 땅은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싹을 내는 것이며, 허공에 뜬 해가 구름이 없으면 여러 곳에 비치더라도 광명에는 차별이 없듯이, 부처님의 법도 그러합니다."
5 이번에는 법수보살에게 물었다.
"부처님 말씀에 바른 법을 들으면 번뇌가 끊어진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중생들이 법을 듣고도 번뇌를 끊지 못합니까?"
법수보살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물으신 참뜻은, 많이 듣기만 한 것으로는 부처님의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이, 빠질까 겁이 나서 물을 먹지 않다가 목이 말라 죽듯이,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도 그러합니다.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을 받아 가지고도 먹지 않고 굶어죽듯이, 여러 가지 약방문을 잘 아는 의사가 자기 병을 고치지 못하듯이, 가난한 사람이 밤낮으로 남의 돈을 세어도 자기는 한 푼도 쓰지 못하듯이, 귀먹은 사람이 풍류를 잡히어 다른 이를 기쁘게 하면서도 자기는 듣지 못하듯이, 어떤 사람이 많은 군중 가운데서 좋은 법문을 연설하면서도 자기의 가슴에는 참된 공덕이 없듯이, 듣기만 하고 실행이 없는 사람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6 문수는 또 지수보살에게 물었다.
"불법 중에는 지혜가 제일이온데, 부처님은 어찌하여 중생들에게 보시도 말씀하시고,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과 자ㆍ비ㆍ희ㆍ사 들을 말씀하셨습니까? 이런 법들은 모두 위없는 보리를 얻는 것이 아닐 텐데."
지수보살은 이렇게 대답했다.
"셋 세상 부처님은 한 가지 법만으로 보리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들은 중생의 성품이 같지 아니함을 아시고 그 성품을 따라서 알맞은 법문을 말씀하십니다. 인색한 이에게는 보시를 찬탄하고, 계행을 지키지 않는 이에게는 지계를, 성을 잘 내는 이에게는 인욕을, 게으름뱅이에게는 정진을, 마음이 어지러운 이에게는 선정을, 어리석은 이에게는 지혜를, 잔인한 이에게는 대자를, 해칠 생각을 하는 이에게는 대비를, 근심하는 이에게는 기쁨을, 미워하고 사랑하는 생각이 강한 이에게는 버리는 것을 찬탄하십니다. 이렇게 닦아 익히면 점차로 온갖 법을 알게 됩니다.
마치 집을 지으려면 터를 잘 닦아야 하듯이, 보시와 지계는 보살의 수행하는 근본입니다. 견고한 성곽이라야 대적을 막을 수 있듯이, 인욕과 정진은 보살을 수호합니다. 임금의 위덕으로 천하를 평정하듯이 선정과 지혜는 보살을 평안하게 합니다. '전륜성왕'이 온갖 복락을 모두 받듯이, 자ㆍ비ㆍ회ㆍ사는 보살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7 이번에는 현수보살에게 물었다.
"여러 부처님은 다만 일승법으로써 생사를 벗어나는 것인데, 어찌하여 법문을 말씀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이 세계마다 같지 않습니까? 모든 불법을 넉넉하게 갖추지 않고는 보리를 성취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현수보살이 대답했다.
"법이 으레 그렇듯이, 부처님은 오직 한 가지 법이며, 온갖 것에 거리끼지 않는 사람들은 한길로 생사에서 벗어납니다. 부처님네의 몸은 한 법신 ㆍ한 마음ㆍ한 지혜뿐이며, 힘이나 두려움이 없음도 그러하지만, 중생들이 제각기 업이 다름을 따라 보리를 구하는 마음이 같지 아니하므로, 부처님의 세계와 모이는 사람과 법문 말씀하시는 것이 모두 같지 아니합니다.
부처님의 세계는 평등하게 장엄하였건만, 중생의 업에 따라 소견이 다르므로, 부처님과 부처님 법을 보지 못하거니와 마음이 깨끗하고 모든 소원이 구족한 이라야, 참된 이치를 보게 되니, 이 사람은 지혜가 열린 사람입니다. 중생들이 구하는 마음과 업과 과보에 따라서 제각기 참된 이치를 보게 하심은 부처님의 힘이 자재한 탓입니다.
세계는 다르지 아니하고, 부처님은 사랑하고 미워함이 없으시건만, 중생이 행과 업을 따라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