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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누가 내 배의 주인입니까?
누가복음 5:1-11
차 두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통 받는 사람을 도와주려고 달리는 앰블런스였고, 또 한 대는 차선을 마구 달리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는 최신식 모델의 세단이었습니다.
한 대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달렸고 한 대는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며 달렸습니다.
이들 두 대의 차가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만든 회사의 차이가 아니고, 값의 차이도 아니고, 모양의 차이도 아니었습니다.
유일한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차에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앉아있었고, 한 차에는 술 취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차가 될 수도 있고 많은 생명을 빼앗는 사고를 내는 차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운전석에 앉아 차를 운전하느냐 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똑같은 차라고 할지라도 유괴범이 않아서 운전을 하고 있으면 그 차는 유괴에 사용될 수 있고, 강도가 앉아 있으면 범죄에 이용될 수 있고, 도둑이 앉아 있으면 도둑질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똑같은 차에 사랑스러운 아빠가 앉아 있으면 그 차는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차가 될 수 있고, 경찰이 앉아 있으면 범죄를 예방하는 차가 될 수 있고, 장애인을 섬기는 봉사자가 앉아 있으면 장애인을 실어 나르는 사랑의 차가 될 수 있습니다.
누가 차를 운전하고 누가 배를 운전하고 누가 비행기를 운전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배 한척이 있었습니다.
그 배는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베드로는 여느 때와 같이 고기를 잡기 위하여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장모까지 모시고 있었으니 이를 생각하면 한 순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책임감을 느낀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열심히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낙심이 되었지만 매사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하는 것을 깨달은 베드로는 결국 다음날을 기약하며 그물을 씻고 돌아갈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기 배에 올라 왔습니다.
그 분은 잠시 그 배를 빌리자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분이 지금 한창 잘 나가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유명한 선생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배를 강대상 삼아 바닷가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 분이 가르치기를 마쳤을 때 그 분은 베드로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저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 보십시오.’
이 말에 난처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베드로였습니다.
자기가 알기로 이 사람은 나사렛에서 목수의 일을 하다가 무리들을 가르치는 예수라는 선생으로 알고 있는데 목수가 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평생 고기만 잡고 있는 자신에게 그물을 내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고기를 못 잡은 마당에 지금이라고 무슨 고기가 잡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배에서 그가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 그의 말에 어떤 힘과 능력이 느껴졌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베드로는 예수라는 선생의 말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한 번 그물질에 두 배에 잠기게 되는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똑같은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똑같이 베드로가 사용하던 그물이었습니다.
똑같은 게네사렛 호수였습니다.
그물을 던지는 기술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지난밤에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빈 배였는데 이아침에 엄청난 고기를 잡아 두 배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이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습니까?
차이가 있다면 이아침에 예수님이 그 배에 탔다는 것이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을 했다는 그 차이입니다.
지난밤에는 내가 그 배의 주인이 되어 내 생각, 내 경험, 내 지식을 갖고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아침에는 예수님이 그 배의 주인이 되었고 베드로는 그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바로 ‘누가 그 배의 주인이었느냐’ 하는 그 차이였습니다.
똑같은 베드로의 배였지만 그 배의 주인이 바뀌었을 때 이런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전 세계에 1000만부 이상 팔린 아주 유명한 책으로 ‘로버트 멍어’가 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아주 작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우리 마음은 그리스도의 집이 된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전이 된 너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분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을 모시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그 배에 오르시기 전에 그 배는 빈 배였습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절망과 한숨과 낙심만이 가득한 빈 배였습니다.
그런 배에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신 주님이 오르셨을 때 그 배는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이시기에 그 주님을 모시면 그 배는 풍성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주님을 모시면 우리의 가정이 더 행복해집니다.
우리의 사업장에 주님을 모시면 사업장이 더 풍성해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모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집니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책에서 저자는 자기의 간증적 삶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그 분을 내 마음에 모셔 들인 후 저는 그분과 친해지기 위해서 내 마음의 집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지저분한 서재를 깨끗하게 치워주셨습니다.
나의 욕구를 채우던 주방을 하나님의 양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거실은 그리스도 그 분과 대화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제 작업실에는 그 분의 손길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락실에는 주님이 주시는 자상한 기쁨과 참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저는 집문서를 그 분께 맡겼습니다.
그 날 그 분은 나의 삶을 받으시고 저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영원토록 나는 그 분의 것이요 그 분은 나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이런 축복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찾은 갈릴리 호수가에는 이 배에 외에도 또 한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배에 오르지 않고 베드로의 배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아니며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하고 베드로를 구원하기 위한 의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먼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먼저, 우리 배에 오셨고, 우리 마음에 오셨고, 우리 가정에 오셨고, 우리 사업장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풍성케 하기 위하여 먼저 찾아오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찾아오시는 주님은 우리 가운데 주인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주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요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베드로를 축복하시기 위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되어지는 일을 보아서도 알 수 있지만 이 말씀에 순종할 때 두 배에 잠기게 되는 엄청난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이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생각같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경험, 자기의 생각, 자기의 노하우, 자신의 자존심을 다 버려야만 순종할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또 그물을 던진다는 것이 헛수고같이 생각될 수 있었습니다.
그물을 던지면 또 그물을 씻어야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나는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인데,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던, 고기 잡는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심각한 고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단순히 그물을 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 들인다는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일 때 우리는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주인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주장하고 싶어 하십니다.
손님으로 와 계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내 말을 들으라. 내 말을 따르라. 그러면 너희가 복을 받을 것이다. 많은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도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기를 원하시고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시고 계십니까?
그 분의 지시와 지도를 받으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이 사실을 얼마나 깨닫고 믿고 순종하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지식과 경험대로 고기를 잡았던 베드로는 아무런 고기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빈 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베드로는 두 배에 잠기는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주님을 나의 삶에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그 분의 지시와 말씀과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이 진정한 축복의 삶이요, 그 삶이 진정한 행복의 삶이요, 그 삶이 진정한 풍요의 삶임을 믿고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삼고 그 이후로 항상 주님의 지시와 인도하심을 받아 살았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전쟁을 하러 갈 때는 가야 되는지, 간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어디를 가든 승리하였고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후배 친구가 저희 동네에 와서 술을 먹고 소란을 피우다가 저희 큰 형님 친구 분에게 잡혔습니다.
야단을 맞고 잘못했다고 비는 그런 순간에 제가 그 곳을 지나가다가 그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후배로부터 상황을 듣고 그때 제가 참 있을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 동네 형님 앞에서 ‘이제 됐으니 가라’고 그 후배와 친구를 보낸 것입니다.
동네 형님한테 사정을 한 것도 아니고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무조건 큰 형님 벌 되는 선배님 앞에서 그냥 보낸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 가자,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듯 그 형님이 저한테 ‘그럼 나는 뭐냐?’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미안하고 얼마나 죄송하고 얼마나 송구스러웠는지 제가 백배 용서를 빌었습니다.
20살 정도 아래인 동생이 자기를 무시하고 자기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바보로 만들었을 때 그 기분이 얼마나 나뻤을까요? 얼마나 괘씸했겠습니까?
‘그럼 나는 뭐냐?’ 우리가 주님을 마음에 모셔놓고 주님 앞에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살면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나는 뭐냐?’
얼마나 죄송한 이야기입니까?
얼마나 미안한 이야기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을 모셔놓고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고, 그 앞에서 내 마음대로 살고 행동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혹시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 엄청난 고기를 잡고 기적을 체험한 후에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백했습니다.
그 엄청난 주님을 자기 배에 모셔놓고 ‘이 분이 나사렛 목수가 아닌가? 목수인 주제에 제가 알면 얼마나 알까? 제가 무엇인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지금까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내가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 너무 죄송했습니다. 너무 교만했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행여 주님 앞에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철저하게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할 줄 압니다.
주님을 무시했던 죄,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죄, 주님을 알지 못했던 죄, 그런 나의 모습 때문에 주님은 얼마나 괴로워하고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얼마나 탄식하셨을까? 를 생각하고 나의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가 수 년, 수십 년을 신앙생활해도 새롭게 변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셨다고 해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실제 우리 삶에서는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지도 않을 뿐 아니라 주님이 우리 심령 속에 계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을 때 이미 우리 주님이 성령으로 와 계시고 그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부터 깨닫고 그 주님을 나의 마음의 주인으로 마음의 왕좌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제부터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그는 고기를 잡는 어부에 불과했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고 능력주심으로 기독교회사에 정말 큰 족적을 남기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배는 지금 안전하십니까?
많은 고기를 잡고 있습니까?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빈 배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인생의 배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셨는지, 아니면 내가 아직도 주인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제는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이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주장을 버리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는 말씀처럼 나를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에 따라 많이 달라집니다.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그 주님의 지도를 받아서 평생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기쁨과 평강과 행복이 여러분의 인생에 배에 충만하게 채워질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