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어(freesia)가 피었어요 며칠 전 내가 73년이나 살고 또 살아온 낡은 이 집 식탁에 앉았을 때 노란 빛깔의 프리지어가 식탁 한 쪽 끝에서 미소 지으며 나를 맞이하였다. 우리나라의 진달래가 그렇듯이 서양에서는 프리지어가 다른 꽃들보다도 먼저 선을 보인다. 신선한 향기도 좋지만 그 선명한 노란빛이 봄이 가까움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프리지아>라는 제목의 대중가요도 있다고 들었는데 일부 가사가 이렇다. 꽤나 낭만적이다. 프리지아 꽃은 아직 피지 않아도 그대의 향기는 아직 내게 남아요 햇살 밝은 날 그대와 다시 만나면 그땐 내게 그 꽃을 선물해주세요...
일찍이 가르치기 시작한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교무처장까지 지낸 나이 많은 사람이 사십이 다 되어 미국 보스턴에 유학을 갔다. 험난한 앞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우선 타이프라이터를 구입해야하기에 미국의 자선단체인 ‘Morgan Memorial’에 가서 1930년대에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육중한 타이프라이터를 한 대 구입하였다. 그 대금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5달러. 로얄 타이프라이터(Royal Typewriter)는 스미스 코로나(Smith Corona)보다도 더 든든하다고 알려진 터였다. 그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기면서 박사 학위 논문을 세 번이나 썼다. 나이도 지긋한 학생이 할 짓이 아니다. 내가 타이핑한 학위 논문이 통과가 되고 나서는 최종 완성본으로 찍어 낼 전문가를 찾아 보스턴의 비컨 힐(Beacon Hill)에 사는 교양 있는 한 여성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노자>를 즐겨 읽는 박식한 남자였는데 그를 만나기 위해 그 집을 처음 찾아가면서 시내 꽃가게에서 프리지어 한 묶음을 사서 들고 갔다. 그것은 한국인인 나의 교양을 과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프리지어를 보면 그 날, 그 아침이 생각난다. 가까스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이가 많은 나로서는 힘든 작업이었다. 우연히도 나의 비서가 꽃가게에서 꼭 같은 프리지어 한 묶음을 사다가 식탁에 꽂아 놓았던 것이다. 그 꽃을 보니 내 가슴 속에는 만감이 교차된다. 50년도 더 된 옛날의 일이지만 꽃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지난날을 돌아다보게도 한다. 50여 년 전 그 옛날에는 나에게 아직도 남성으로서의 패기도 있었고 약간의 매력도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던 걸 지금은 모두 다 꿈”이 되어 인생 백세를 향하여 싸우며 나가고 있다. 나는 나의 노년을 저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십 인생을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만, 프리지아를 다시 바라보는 기쁨 때문에 나의 구십 대는 여전히 보람 있는 세월이다.
김동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