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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貞薰(박정훈) 心溫(심온) 베드로
代父(대부)님께 드리는 追慕辭(추모사)!
오늘 새벽 잠에서 大父님께서 미소 지으시면서 저 앞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지금껏 무심한 저를 깨우쳐 주신 代父(대부)님을 追慕(추모)하면서, 잠을 깨어 일어나 代父(대부)님에 대한 追慕辭(추모사)를 올림니다.
現在 오늘 2020년 4월 5일 8:20AM분입니다.
몇 년전 전만해도 거동이 불편하시다며 일어나지 못하시고, 누워 겨우 電話(전화)를 받으시고 힘들어 하셨는데, 이제 영영 소식이 없어 대신 追慕辭(추모사)를 올림니다.
살아 계시면 올해 아흔 여섯 살이 되십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代父(대부)님께서는 1977년 10월 12일. 서울 東大門區(동대문구) 上鳳洞(상봉동) 天主敎會(천주교회)에서 저가 堅振聖事(견진성사)를 받을 때에 代父(대부)님께서 저에게 堅振(견진) 代父(대부)로 서 주시고, 격려 해주셨습니다. 당시 代父(대부)님께서는 慶熙(경희) 大學校(대학교)에서 敎授(교수)를 歷任(역임)하시면서 경희(慶熙) 女子(여자) 中高等學校(중고등학교) 校長(교장)으로 在職(재직) 하실때입니다.
그 바쁜 와중에 저를 위하여 堅振代父(견진대부)를 서 주셨습니다.
代父(대부)님께서는 慶熙大學校(경희대학교: KYUNG HEE UNIVERSITY) 敎務處長(교무처장)과 慶熙(경희) 大學校(대학교) 敎育(교육) 大學院長(대학원장)을 歷任(역임)하시면서 平壤(평양) 師範學校(사범학교) 同窓會(동창회) 會長(회장)을 歷任(역임) 하시면서 魯城(노성) 朴氏(박씨) 宗親會(종친회) 會長(회장)을 하시면서 褒賞(포상)으로 國民勳章(국민훈장) 冬栢章(동백장)을 受賞(수상)과 慶熙(경희) 大學校(대학교)에서 대학장 금장을 受賞(수상)하시면서, 2001년 辛巳年(신사년) 3월 26일에 저에게 激勵辭(격려사)와 親筆(친필)을 써 보내 주실 때 慶熙(경희) 大學校(대학교)에서 그 年歲(연세)에도 名譽敎授(명예교수)로 學校法人(학교법인) 고황재단 監事(감사)로 活動(활동)하신다며 삶의 意慾(의욕)을 되 찾으셔서 저 또한 얼마나 기뻐 했는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때 저가 溯源錄(소원록)을 만들려고 할 때 激勵辭(격려사)를 보내 달라고 要請(요청)했을때의 代父(대부)님께서 親筆(친필)을 보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격려사(激勵辭)가 남아 있어 아래 올림니다.
박정훈(朴貞薰) 대부(代父)님께서 보내신 激勵辭(격려사:encouragement)소원록(遡原錄)을 만드는데 激勵(격려)의 글을 써 달라는 書信(서신)을 받고도 선 듯 응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만한 자격이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堅振大夫(견진대부)라는 사람이 代子(대자)의 한 平生(평생) 처음하는 懇請(간청)을 外面(외면) 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自責(자책)이 있어 이글을 쓴다.
梁芳秀(양방수:Paul바오로)는 韓國(한국) 天主敎會(천주교회) 平信徒(평신도)로서 그리스도의 豫言(예언)직, 司祭(사제)직, 그리고 王(왕)직에 헌신적(獻身的)으로 수행( 遂行)한 韓國(한국) 天主敎(천주교) 現代史(현대사)에 記錄(기록)될 만한 記念碑的(기념비적)인 人物(인물)이라고 해도 조금도 不足(부족)함이 없다.
1658년 7월 29일에 불란서(佛蘭西:France) 파리(Paris) 外邦宣敎會(외방선교회)가 創設(창설)되고. 1660년 中國(중국) 南京(남경)에 敎區(교구)가 設定(설정) 되면서 朝鮮(조선) 지역은 南京敎區(남경교구)에 포함 되어, 불란서 파리 외방 선교회의 管轄(관할)에 있다가. 한국 가톨릭교회는 1831년 9월 9일에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그 管轄(관할)에서 벗어나 독립 신교구인 “조선교구”로 나래를 펼치고 “받는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나타낸 한국 가톨릭 외방 선교회가 1975년 2월 26일에 韓國(한국) 主敎會議(주교회의)의 總會(총회)의 결의에 따라 發足(발족)되어 1979년 7월 18일에 이 會(회)를 돕기 위한 한국 외방선교회 後援會(후원회:회장에는 崔馬利(최마리,마리아: 33인,독립 운동가 이 갑성씨 부인)가 탄생 될 때 梁芳秀(Paul바오로)는 初代(초대) 弘報部長(홍보부)에 被選(피선)되어 많은 活動(활동)을 했었다.
또한 後援會(후원회) 顧問團(고문단:회장에는 순천향 병원 유석진(베드로) 정신 의학박사)이 結成(결성)될때에, 양방수(바오로)는, 고문단 總務部長(총무부장)으로 選任(선임)되어, 그 직책 수행에 東奔西走(동분서주)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앞줄-좌로부터 - 이경호(시몬) 부회장님. 수녀님. 崔馬利(최마리-마리아) 회장님. 길홍균(吉鴻均-이냐시오) 한국외방선교회 원장겸 지도 신부님. 유덕천(아벨)간사님. 김용훈(알렉산드로) 총무부장님. 梁芳秀(양방수:바오로) 홍보부장. 뒷줄은 회원들.
양방수(바오로)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이 하여, 특히 선교사 파견 3주년을 계기로, 特使(특사)로 派遣(파견)되어 1984년에는 “파푸아뉴기니”의 해외사목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한국인 선교 사제의 활동과 애로(隘路) 사항, 그리고, 현지인(現地人)들과 그곳 大主敎(대주교)와 司祭(사제)들과의 관계를 직접 取材(취재)하고, “文明(문명)의 異邦地帶(이방지대) 赤道(적도) 파푸아 뉴기니를 가다”라는 紀行文(기행문)을 週刊(주간) 宗敎誌(종교지:1984년 11월 12월호와 1985년 1월호)에 記載(기재) 하였으며, 1984년 10월에는 “문명의 ”이방지대 적도 파푸아 뉴기니를 가다“ 라는 주제로 기록 영화와 사진 전시회를 개최한 것은 特記(특기) 할만 하다.
좌로부터 - 대치동 본당 김수길(루도비꼬) 신부님 - 고문단 단장 유석진(베드로)박사님, 파푸아 뉴기니 파견 김진형(세자요한) 신부님. 프란치스코 몬테리시(Most Rev Francesco Monterisi) 대주교님으로 주한(駐韓) 제5대 교황청 대사님. 최재선(崔再善-요한) 주교님. 인향성(가롤로-성 골롬반(Columban Fathers) 외방전교회 소속 지도 신부님. 梁芳秀(양방수 Paul 바오로).
당시 교황대사님과 주교님들을 비롯하여, 만오천여명이 관람하였으니 “주는교회”로서의 한국 교회와 신도들이 그 구실을 어떻게 감당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양방수(바오로) 그는 1976년 12월 2 1일에 한국 소형영화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제5회 소형영화 콘테스트(contest)에서 “영원한 침묵”이라는 주제로 入賞(입상)한 才彦(제언)이였지만, 賞(상)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고, “東映(동영)프로덕션”이라는 사업체를 만들어 주로 國防部(국방부)등 軍部隊(군부대)를 무대로 활동하였는데 그 기술이 인정되어 國防部(국방부)에서는 개인 出入證(출입증)과 自動車(자동차)출입증 까지 내어 줄 정도로 軍部隊(군부대)에서 定評(정평)이 나 있었다.
좌측이 육본 사진 반장, 우측이 양방수(바오로).
1982년 3월 25일 부터 26일, 27일, 28일, 29일, 30일까지 제 5공화국의 1등공신이신 우경윤 장군의 승진 및 전역식은 이어졌다. 당시 육본 통신대에서 사진 담당을 맡았던 친구가 실수로 현상(現像)에 실패해서 난처 했었다.
그러나 陸本(육본) 사진반에서 실패한 사진에 대한 모든 해명과 뒷 문제도 양방수(바오로)가 전녹화 기록으로 촬영한 양방수(바오로)가 해결 해 주었다. 그 당시 6일 동안 축하 행사장에는 우리나라 유명가수는 총 출동하여 노래로 축하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각계각층(各界各層) 인사들이 축하 행사에 나왔다. 물론 행사 전 기록녹화를 감행(敢行)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물론 촌지(寸志)도 받았다.
남태평양 남서부에 있는 나라.파푸아뉴기니 [Papua New Guinea]-타우야마을 추장에게 금일봉을 전달하는 양방수(바오로)-
http://www.geoj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2
http://www.geoj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96
양방수 파푸아 뉴기니 기행문 관련 이미지
blog.daum.net/jc21th/17782373#
그런 그가 한편으로는 한국 천주교의 기원에 관한 많은 기록 영화와 사진도 남겼다.
그 중에는 우리 信仰(신앙)의 始祖(시조)이신 李 檗(이 벽). 權 哲身(권 철신), 權 日身(권 일신), 李 承薰(이 승훈), 丁 若鍾(정 약종)성조(聖祖)들을 天眞庵(천진암)으로 이장(移葬) 할 때에 그 현장을 기록영화와 사진으로 제작하여 天眞庵(천진암)에 세워지는 “한국 천주교 천진암 기념 박물관”에 寄贈(기증) 하기도 했고. 황 석두(루까) 聖人(성인)의 遷墓式(천묘식:1982년 8월 25일)기록영화도 제작하여 淸州敎區(청주교구) 수안보 성당 鄭 安貧(정 안빈:로벨토: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신부님에게 寄贈(기증) 하기도 하였다.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터에 세워지는 5,000자 비문 준공식날 사회자 변기영 신부와 촬영하는 양방수(바오로).
그런가 하면 그는 문장력도 뛰어나 寡婦(과부)의 몸으로 평생을 오직 傳敎(전교)에 獻身(헌신)하고, 많은 養子(양자)와 養女(양녀)를 길러서 聖職者(성직자)와 修道者(수도자)를 배출한, 車 南淑(차 남숙:엘리사벳) 女史(여사)의 功績(공적)을 기리는 墓碑(묘비: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금승리 66번지 천주교 평화의 묘원)의 碑文(비문:千字(천자)를 쓰기도 했다.
차남숙 여사 墓碑文(묘비문) 내용!
車 南淑(차 남숙) 엘리사벳 女史(여사)는 1913년 계축년 (陰曆음력) 12월 1일 平南(평남) 鎭南浦(진남포) 삿갓머리에서 父(아버님) 永錫(영석) 母(어머님) 達成徐氏(달성서씨) 正伊(정이) 女史(여사)와의 2남 [孝淑효숙 成淑성숙] 1녀중 長女(장녀)로 태어나 9세에 평양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딸이 되셨다. 本來(본래) 祖父任(조부님)께서는 忠南(충남) 아산에서 무관직으로 어명으로 외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시어 한일합방이 되기전 가족과 함께 鎭南浦(진남포) 삿갓머리로 피신하셨다가 獄死(옥사)하신 憂國之士(우국지사)의 孫女(손녀)로 태어나셨다. 15세에 平壤(평양) 남산공립 보통학교를 졸업, 17세에 평양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시면서 昌原黃氏(창원황씨) 福三(복삼)公(공)과 婚姻(혼인)하시고, 20세에 외아들 圭誠[규성:陸士(육사) 八期生(팔기생)]씨를 낳으시고, 22세에 夫君(부군)을 따라 滿洲(만주) 奉天(봉천) 龍井(용정) 南京(남경) 씽가폴 프놈펜 등지에서 생활하시다가 中國(중국) 뗀충에서 戰爭(전쟁)중에 夫君(부군)과 생이별 하시고 32세에 중경 임시 정부에서 金 九(김 구) 先生(선생)을 모시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시다가, 34세에 귀국하셔서, 서울 警察(경찰) 女子(여자) 전문학교 간부 특기생으로 졸업후, 경사로 임관, 35세에 경위로 진급, 중부 경찰서 조사계 주임, 36세에 경무주임으로 재직중, 서울 충무공민학교를 설립하시고, 초대 교장에 취임하신 후, 공직을 사퇴하시고, 육영사업에 헌신중에, 38세에 6,25사변으로 부산 피난중, 경남 도청 사회과에 근무하시다가, 41세에 서울 수복과 함께 귀경, 44세에 후암동 성당에서 “엘리사벳”으로 “영세” 개종하시고, N,C,W,C.의 무료급식소 책임자로 자원 봉사하시면서 전교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전쟁난민을 수없이 구제 하시여 만인의 어머니로 알려졌었다. 53세에 천주교 교리신학원을 졸업하시고, 전교사 자격을 취득하시어 후암동 성당 사목위원으로 계속 연임하시면서 교회 발전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므로, 서울 대교구장 노 기남 대주교님으로 부터 공로패 수상, 64세에 김 수환 추기경님으로부터 감사패 수상, 군종 사제단 김 남수 총재 주교님으로 부터 공로패 수상, 78세에에 레지오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패 수상, 정 명조 군종 주교님으로 부터 공로패 수상, 79세에 레지오 30년 근속패를 수상하시는 등, 평생을 오직 전교 생활에 헌신하시어, 대녀 280여명을 두시면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을 도우면서, 養子(양자) 養女(양녀)로 삼고 성직자 수도자들을 양성하셨으며, 특히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과 “수녀원”을 창설하신 吳 壽永(오수영:히지노)신부님이 대표적이시다. 한국 천주교회의 激動期(격동기)를 맞아 歷史(역사)의 證人(증인)으로 살아오신 삶이 信(신) 望(망) 愛(애) 三德(삼덕)을 몸소 실천하신 많은 사건들을 다 기록 못함은 서기 1997년 2월 26일 오전 9시 30분에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善終(선종) [2월 2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용산구 후암동 성당에서 장례미사 봉헌)하시니 참으로 哀惜(애석)하여 萬人(만인)의 龜鑑(귀감)이 되므로 몇 자 남긴다.
서기 1992년 2월 26일 吳 壽永(오 수영 히지노)신부 세우고~ 梁 芳秀(양 방수 바오로) 쓰다.
또 한편으로는 夫婦(부부)가 동시에 서울대 교구 김 수환 추기경으로부터 교리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소속 이태원 본당에서 中高等部(중고등부) 主日學校(주일학교) 교사로서 활동 하기도 하였으며, 1983년부터는 버려진 핏덩이 고아 12명을 의탁 받아 건강한 모습으로 길러 國外(국외)로 입양시키기도 하는등 평소에 보이지 않는 선행은 다 열거 할 수가 없을 정도다.
http://blog.daum.net/bangyang/2497
그때 국민학교 6학년에 다니던 아들 양 성욱이의 교회 白日場(백일장)에 나가 최우수 상을 탄 내용에 잘 나타나고 있다.
제목 : 사랑 - 최우수상 : 이태원 성당 주일학교. 6학년 梁盛旭(양성욱:사도요한)
1985년 월 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초등부 백일장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여러 번 깨달았다. 인간은 사랑을 주고받아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신부님 강론 말씀 중에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동물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격은 일이다. 어느 봄날 엄마가 베들레헴집(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방문하시고 오셔서 그곳에 봄 이불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가 덮는 봄 이불을 빨아서 보내 주자고 하셨다. 누나하고 나는 겨울 이불이 너무 두껍다고 투덜댔다. 엄마는 우리가 사랑으로 남에게 주면 우리가 사랑으로 받는다고 하셨다.
성서에도 나와 있듯이 사랑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생각해 보았고,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우리 식구는 모두 찬성을 했다. 여름이 가까울 때까지는 우리는 겨울 이불을 덮고 잤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 더 좋고 얇은 이불 세 개가 선물로 들어왔다. 우리 식구는 사랑으로 가난한 사람과 불쌍한 사람을 도우면 언제든지 하느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다. 또, 우리 집에는 일년 전부터 고아 아기를 하나씩 데려다 사랑으로 돌보아 준다. 한 아기가 오면 삼개월 정도 있다가 수속을 마치면 여러 나라로 입양을 간다. 어떤 때는 두명도 데려오며, 그 동안 일곱 명이 다녀갔다.
그런데 아기들이 오면 하나 같이 아프거나 심하게 운다.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는 너무 울어서 시끄러워 살수가 없고 짜증이 난다. 아빠도 밤잠을 설쳤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도 데려다 주라고 말씀 드리면 엄마는 “성서에 불쌍한 고아와 가난한 과부를 돌보아 주라고 말씀 하셨다”고 앞으로 10년은 이런 일을 하시겠다고 밤에는 두 번 세 번씩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타 먹이신다. 우리 엄마는 아기를 정말 사랑하시고, 늘 기도를 해 주시며 정성을 다해 돌보신다. 그런데 한달 정도 지나면 꼭 기적같이 아기들에게 변화가 온다.
아픈 것도 낮고 울지도 않으며 잠도 잘 잔다. 또 점점 예뻐지고, 재주도 한가지씩 늘어난다. 우리 식구 모두 아기를 예뻐하고 정이 든다.아기가 떠날 때는 너무 정이 들어서 눈물이 난다. 아빠가 아기를 처음 데려 왔을 때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할까 ? 했지만, 우리 가족 모두 어려움을 무릅쓰고 난후, 떠날 때는 우리가 입양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아기들이 사랑을 받고 완전히 다른 아기가 되어서 가는 것을 보면 아주 기쁘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으로 만드시고 예수 님께서도, 사랑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이제부터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남을 돕고 사랑으로 기도해주면 이 세상은 아주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용산구 이태원 성당 전경
양방수(바오로)는 1986년에는 그의 소속 본당 이태원 성당의 창설 25주년 기념 영화도 제작 하였으며, 신자 8,000명의 오랜 宿願(숙원) 사업이였던 성당 입구 도로변 성당 안내판 표시(이태원과 보광동 도로 입구)를 당시의 사목 회장 엄익채 박사팀이 이끄는 사목회에서도 못했던 일을 용산구청(가로정비계 소관)의 인가를 받아 간판을 달게 해 주었고, 또한 사회적으로는 1978년 한남 2동으로 이주(移住)하여 한 현경씨가 지은 한남2동 한경연립 주택 부실공사를 재보수하여 48세대 권익을 보장받아 주었고, 마을 도로를 포장하는등 새마을 사업
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당시 민주공화당 마포. 용산 지구당 위원장 박경원(朴璟遠)으로 부터 한남 2동 민주공화당 자문위원으로 위촉 받았으며, 선거대책 위원회 조직분과위원으로 임명을 받았으나, 민주공화당 정책에 반대하여 투쟁하였으며, 특이 할만한 일은 조국발전의 밑거름이 되고자 말단 동회(洞會) 반장을 수행함에 주민의 복리증진과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하여 시민화합과 구정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당시 용산 구청장 이문재로 부터 표창장을 받았으며, 오산중학교 학교장 전제현씨로부터 육성회 이사로도 추대 되었다.
그리고 제 62차 세계(世界) 국제법협회 서울총회 개최시에 기록영화를 제작하는등 남들이 할수 없다는 일도 곧잘 해 냈다.
그는 신자의 본연의 의무인 信(신) 望(망) 愛(애) 三德(삼덕)의 정신으로 살아 가려는 자세로 가난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그의 본성이 교회안밖에서 드러났다. 그러면서 그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敎會(교회)행사에 참석하여, 많은 기록 영화와 사진을 제작하여 그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리고 釜山(부산) 敎區(교구)의 오륜대 박물관 개관 당시 圖錄(도록)을 칼라(color)로 남기기도 하였으며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이 세워 질때까지 오 수영 (히지노)신부님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그는 1982년 2월 9일에 로마 교황청 교황성하께 降福狀(강복장)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교회일을 하는등, 이렇듯 그는 “행동하는 천주교인”이다.
로마 교황님 降福狀(강복장)
참으로 장한 代子(대자)라고 아니 할수 없다. 그러한 그가 이번에는 그의 屬性(속성)을 발동하여 家門(가문)에 눈을 돌려 소원록을 편찬 한다고 하니 “ 崇祖愛宗 繼承發展(숭조애종 계승발전)의 心性(심성) 또한 남 다른데가 있다고 하겠다. ”溯源錄(소원록)“ 遡及(소급)해서 根源(근원)을 찿아 記錄(기록)한다는 것이다.
우리 魯城(노성) 朴氏(박씨) 世譜(세보)를 나도 두 번에 걸쳐 편찬 했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였는데, 더구나 소원록에 이르러서는 더욱 힘든 작업이 따라야 할 것이다. 빛나는 선조들의 行狀(행장)을 많이 모울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양 방수(바오로)는 능히 그것을 훌륭하게 해 내리라고 믿는다. 오랬동안 추진해 왔으며, 자료수집에 몇 년이 걸렸으며 문장력이나 넓은 見聞(견문)과 識見(식견)이 있기 때문이다.
따님 : 梁貞允(양정윤:Jenna)
1996년 丙子年(병자년). Universiy, of North Caronalina at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노우스 캐롤라이나 샤롯 州立大學(주립대학) 卒業(졸업).
아드님 : 梁盛旭(양성욱:Sean)
西紀(서기) 1999년기묘년(己卯年) 4월 16일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노우스 캐롤라이나 채펄힐 주립대학교 신문 방송학과 卒業(졸업).또한 1992년 7월 4일. 맨주먹으로 가족을 이끌고고 미국으로 건너가 두 자녀를 명문대학에 입학 시켜 졸업 시켰으며, 아울러 그가 사는 미국(美國) 지역사회에서도 잘 적응 하고 있다고 수시(隋時)로 소식(消息)을 전하는 열의(熱意)는 대부(代父)로서 자랑스럽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그가 살고 있는 25 Atchison Way Buena Park CA 90621곳에서 한달 지내다가 왔다
이에 본인은 양 바오로가 가톨릭 신자로서 보통 신자와 달리 “행동 하는 신앙인” 으로 그 업적이 뛰어나며, 또한 崇祖愛宗(숭조애종:조상을 숭상하고 종친을 사랑함) 정신이 탁월 하기에 틀림없이 훌륭하고 손색이 없는 “溯源錄(소원록)”을 내 놓을것임을 확신하여 대부(代父)로서 畏敬(외경)스러운 마음으로 감히 격려(激勵)의 글을 쓴다.
천주강생(天主降生) 2001년 신사년(辛巳年) 3월 26일. 堅振代父(견진대부), 朴 貞薰(박 정훈:시몬). 號(호) : 心溫(심온) 撰(찬:짓다).
1924甲子年(갑자년) 음력 8월 9일 (양력 9월 7일)생.
略歷(약력)
경희 대학교 교수 역임
경희 여자 중 고등학교 교장 역임.
경희 대학교 교무처장 역임
경희 대학교 교육 대학원장 역임
평양 사범 학교 동창회장 역임
魯城(노성) 朴氏(박씨), 宗親會(종친회),회장역임
褒賞(포상):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경희 대학교 대학장 금장 수상
現在(현재): 경희 대학교 명예 교수
: 학교 법인 고황재단 감사.
1977년10월12일, 서울 상봉동 성당에서 조인환 신부님 주선으로 경 갑룡 주교님으로 부터 견진성사를 받고 박정훈 대부님과 아내 요안나.
8.박정훈(朴貞薰)대부(代父)님께서보내주신친필(親筆)
숭조애종계승발전(崇祖愛宗繼承發展)
http://blog.daum.net/bangyang/644
맨 뒷줄 좌측에서 7번째가 양방수(바오로)
박정훈 대부님께서 美國訪問 천주강생(天主降生) 2001년 신사년(辛巳年) 3월 26일.
朴貞薰 代父님 內外分과 가운데 梁芳秀(바오로).
첫댓글 이승철 목 2020-11-12 오후 5:31 양 선생님은 배우보다 더 멋집니다.감동스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