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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PART(Ⅰ). 불신자 시절
1◎“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찬양 가사처럼 저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큰 누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1☞또한 눈이 펑펑 내리는 한 겨울에도 벌거벗은 채 눈싸움하며 놀 정도로 용감했다고 한다.
2☞또한 오른쪽 눈 바로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7~8Cm 가량 베였는데 어머니가 귤 사준다는 말에 울던 울음을 그치고 마취도 없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3☞또한 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직 종이 딱지를 따야만 했는데 만약 딱지를 따지 못하면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곤 해서 형들이 딱지를 돌려주곤 했다고 한다.
4☞또한 큰 아들 산하처럼 잘 생겨서 남양분유 광고에 나가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2◎저는 무거운 짊을 들고 가시는 어르신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그리고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인사를 하였다. 그래서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뉘 집 자녀들은 착하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다.
2☞또한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와 나눠 먹을 줄 알았다. 그래서 친구 부모님으로부터 식사 초청을 받기도 했다.
3☞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그래서 불량 친구들을 선도하기 위해 고2 실장을 하였다.
4☞또한 이타심이 많아 친한 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 친구들이 좋은 대학에 가도록 돕기 위해 고3 실장을 하였다.
5☞또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의 시와 함께 후루지아 꽃을 선물한 여자 후배의 안목처럼 순진하였다. 고3때 학교 대표로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여러명이서 봤는데 여관 방에서 TV를 보지 않고 잤던 저만 합격하였다.
6☞또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
3◎저의 부모님께서는 저녁에 자주 싸우셨다.
1☞그래서 그 시간에 어떤 때는 아버지와 친한 동네 어른을 집으로 얼른 모셔와야 했다.
2☞그것도 안되면 옆 동네에 사시는 고모를 얼른 모셔와야 했다.
3☞그것도 안되면 아버지의 술이 깨는 아침까지 울 다 지쳐서 자는 수 밖에 없었다.
4☞낮에 그렇게 인자하시던 아버지가 저녁에 악마로 변하는 현실이 저의 영혼을 압박하였다.
4◎저는 어려서부터 도박을 하였다.
1☞하토로 하는 것(고스톱, 민하토, 삼봉, 짓고땡, 쎄타 등) 중에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고 동네 구석구석, 이 산 저 산 어른들을 피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으며 날밤은 기본이었다.
2☞도박을 하면 도박이 주는 쾌감 외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3☞싸우는 가정도,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도, 가난도, 삶의 허무도, 도박 신 앞에선 잊혀진 과거였다.
4☞그러나 그 도박 속에 속임수, 다툼, 음모, 오기, 욕심, 거짓말, 육체적 고통, 정신적 파탄, 팽팽한 긴장과 경쟁이 난무하였다.
5◎저는 어려서 중이염이 생겼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만성 중이염이 되었다.
1☞심하게 썩은 냄새와 귀 밖으로 흘러내리는 농 때문에 대인관계도 쉽지 않았다.
2☞더욱이 고통이 너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수없이 많았다.
3☞중이염은 20대 초반 군생활까지 계속 되었다.
6◎저는 모세의 고백과 같이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였다.
1☞선생님과 친구들은 “더불어”, “지도자 동지”를 해보라며 자주 장난을 치곤 했다.
2☞저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하기 위하여 장난을 좋게 받아들였지만 말할 때마다 발음에 늘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팠다.
3☞특히 친구들은 음치인 제가 노래를 부르도록 자주 추천을 하였고 저는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용감하게 노래를 불렀다.
4☞그러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혹시 또 시킬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5☞더욱이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7◎저는 아버지, 어르신, 선생님, 선배들의 좋은 교훈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새기며 그대로 행하였다.
1☞그리고 좋은 교훈을 외워두었다가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2☞그러나 이런 세상적인 교훈들은 저를 깊은 갈등과 혼돈에 빠트렸다.
8◎저는 어린 시절 여름 성경학교 선생님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1☞“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요한복음 3장 16절”.
2☞그리고 중학교 때 누나와 함께 교회에 처음으로 출석을 하였다. 출석 이유는 몇 개의 산을 넘어 교회를 가야 하는 누나를 경호하기 위해서였다.
3☞또한 어느 날 힘든 고3 생활을 극복하고자 새벽 기도를 개인적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그 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세계 선교 비전을 덧입혀 주셨다.
4☞또한 대학 1, 2학년 때에는 선교단체인 CCC 활동을 통해 신앙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5☞그 덕분에 군생활 동안 신우회도 조직하고, 내무반원들 교회도 출석시키며 고참들로부터 목사라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PART(Ⅱ). 출애굽 전후의 과정
1◎복학 후, 부모님께 먼저 효도하고 하나님을 죽을 때까지 섬기고자 결심하였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만 하려고 했다.
1☞그러나 저는 정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하이텔, 나우누리를 통한 채팅과 인터넷 음란 사이트는 저를 마른 나무 위에 다다른 까마귀처럼 절대 고독에 빠지게 하였다.
2☞그러나 UBF의
3☞저는 너무 더럽혀졌는데 어떻게 당장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냐며 그 손길을 거부했다.
4☞그러나
5☞기쁨 마음으로 참석한 예배는 아니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역사하였다.
2◎97년 여름 수양회 가기 하루 전, 성령님께서는 “나를 좇으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으로 역사하셨다.
1☞수양회 기간 내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죄인을 의롭다 하여 주시고 새롭게 하셨다.
2☞97년 여름 수양회 이후,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술과 담배를 한꺼번에 끊도록 하셨다.
3☞저는 학과 연구실 책상 위에서 자며 세례 요한처럼 광야생활을 하였다.
4☞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이었지만 이것을 딱하게 보셨던 그 해 간사이셨던
5☞그때 평신도 선배님들이 돌아가면서 창세기 말씀 공부를 해주셨는데 얼마나 말씀의 맛이 꿀맛이던지 그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PART(Ⅲ). 바로 군대의 추격이 시작될 때부터 신광야를 통과하기까지
1◎그 후 UBF 리더들과 목자 훈련을 받게 되었고 천사도 흠모하는 목자 직분을 받게 되었다.
1☞저는 그 은혜를 감당코자 불타는 학생회를 조직하여 목포대학교 캠퍼스 부흥을 꿈꾸며 지성인들을 섬겼다.
2☞저는 캠퍼스 이단들을 다 쫓아내었다.
3☞그리고 기독교선교연합을 도와 무너졌던 그 틀을 다시 마련했다. 동시에 옛 부흥을 재창조한 아름답고 은혜로운 기독교선교연합 축제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4☞또한 캠퍼스 땅 끝이었던 생활과학대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5☞또한 지경을 넓혀 다른 대학교인 초당대학교, 목포과학대 등에도 복음을 전하였다.
6☞또한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님까지도 복음을 전하였다.
7☞후배 목자님과 함께 캠퍼스를 구보하며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400장)’, ‘행군 나팔 소리로(402)’ 등을 불렀고 뒷산을 바라보며 ‘성서한국, 세계 선교 장막터를 넓혀라’ 외치곤 했는데 얼마나 가슴이 넓어지고 시원했는지 모른다.
8☞저는 캠퍼스에 유리 방황하는 양 무리들과 취업 문제로 도서관에 갇혀 있는 선배들을 보면서 가슴에 불이 탔다. 이 때가 IMF였다.
9☞그래서 대학 4학년 가장 귀한 시간이 가장 멋진 대학 생활이 되도록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헌신하였다.
10☞예배는 가면 갈수록 성령의 불이 붙었고 제 마음은 양들로 인해 날마다 눈물 바다가 되었다.
11☞그런 마음을 성령님께서 아시고 친히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만나 주셨다. 혼자 교회 예배실 에서 기도할 때, 홀로 연구실에 하나님을 묵상할 때 하나님은 죄인을 친히 만나주셨다.
2◎어느 날 저는 목포 UBF 김누가 목사님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듣게 되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저는 이 비전을 저에게 주신 비전으로 영접하였다.
1☞대학 졸업 후 막노동을 하며 신앙의 자립적인 기초가 생겼다. 새벽부터 하나님을 예배하고 현장 가는 동안 찬양 듣고 일하면서 찬양하며 기도하고 점심 때에 무릎 끊고 기도하고 퇴근 후 식사하고 저녁 내내 교회에서 찬양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했다.
2☞그 은혜를 힘입어 대학원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캠퍼스 영혼들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있는 저에게 식사 후 이빨 쑤시고 지나가는 교수님들을 보도록 하시며 누가 양들의 진정한 목자인지 말씀해 주셨다. “양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네가 아니냐!” 말씀해 주셨다.
3☞이런 풍성한 은혜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과의 교제가 어려웠는데 저는 제 속마음을 나눌 아내를 원하게 되었다.
4☞많은 선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아내를 통하여 저는 5년이 넘는 UBF의 제자 생활을 마치고 모든 것을 정리한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 만을 의지한 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3◎대학 4학년 때 ‘썩으면 영광을 보리라’ 약속 그대로 하나님은 아내와 가족들을 통하여 6개월간 IT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그것이 밀알이 되어 저는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2☞또한 짧은 기간 현재 정보 기술과 삼성 SDS 출신 선배들의 귀한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었다.
3☞저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불광동에서 멀리 떨어진 고려대 녹지 CMI까지 왕래하며 모임을 이루고 하나님을 섬겼다.
4☞그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러 형제들을 돕게 되었다.
4◎고려대 녹지 CMI를 출교한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1☞그는 일대일 성경 공부를 통하여 영혼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
2☞그는 인력 회사인 대신인력을 통해 알게 된 이춘용 형제님을 소개 하였다.
3☞저는 그가 좋아할 맛있는 것과 필요한 것들을 사서 그가 사는 곳으로 향하였다.
4☞그가 사는 곳 방 문을 열자 ‘세상에!!!’, ‘이런!!!’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5☞‘세상에!!! 오늘날 이렇게 사는 분이 있다니!!!’ 저의 마음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6☞제가 본 그는 문둥병자와 같았고 그의 방은 쓰레기장보다 더한 악취와 곰팡이 그리고 그가 떨어뜨린 각질로 가득하였다.
7☞저는 간신히 아들과
8☞저는 그와 대화하였고 그의 친구가 되길 원하고 계속적인 만남 갖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큰 거부감이 없었고 성경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자 약속 하였다.
5◎곽학두 형제님과의 만남은 이춘용 형제님과의 사귐 과정과 동시에 일어났다.
1☞저는
2☞그는 성경공부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간헐적으로 참여 하였다.
6◎저는 냄새 나고 더러운 이들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떠돌며 성경공부를 하였다.
1☞주로 목민교회 식당을 이용하였다.
2☞이춘용 형제님이 모임에 소흘하자 그 집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알코올중독과 습한 지하 환경 때문에 그는 거의 죽은 상태였다.
3☞제 마음은 너무 아팠고 무조건 그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왔다.
4☞
5☞하나님의 은혜로 샤워 시설은 되어 있지 않지만 문둥병자와 같은 춘용 형제님을 받아주는 주인을 만나 월셋방을 얻을 수 있었다.
7◎송승열 형제님을 만나기 위해 조선족인
1☞저를 포함한 5명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주님의 교회)를 꿈꾸며 주님으로 이들도 또한 주님의 선교사로 변화될 것을 꿈꾸며 주님을 힘있게 의지하였다.
2☞직장 생활의 어려움과 여러 환경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8◎그러나 이들은 각각 스스로 떠나갔다.
1☞어느 날
2☞곽학두 형제님은 추운 겨울 은혜로 월셋방에서 지낸 후 날씨가 풀리자 떠나갔다.
3☞
4☞이춘용 형제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동생들에 의해 알코올 치료 센터에 입원하게 되었다.
9◎나중에 알코올, 마약 등 중독자들을 돌보셨던 일을 오랫동안 하셨던
1☞1년 정도의 시간을 이런 분들과 보내면서 제 안에 살아있는 자아와 분노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이후 이런 분들을 어떻게 도울지 배우게 되었다.
10◎이후 저는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개척 교회인 주님의 교회에서 한 1년간 동역을 하였다.
1☞그리고 그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개척 교회인 예수제자교회에서 수요 예배 말씀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그 예배 가운데 기름 부으시도록 기도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PART(Ⅳ). 르비딤에서 생수를 마실 때부터 아말렉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까지
1◎그 해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에 한 자매님이 오셨는데 불쌍한 마음에 자비를 베풀었다.
1☞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통해 경기영성신학을 알게 하셨다.
2☞5~6명이서 차를 타고 주말 신학을 하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2◎저는 그 해 가을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가지고 노방에서 샤우팅 할 성물을 구입했다.
1☞저에게는 성경의 핵심진리가 양날의 검이라는 감동이 있었다.
2☞그리고 공용복 선생님께서 샤우팅하고 싶어도 병 때문에 하지 못했는데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3◎그럼에도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다시 직장을 구해야 했다.
1☞지금까지 개발과 기술지원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영업과 사업을 했다.
2☞직장 생활을 통해 사원에서 사장까지 부장만 못하고 다 경험했다.
3☞또한 짐승의 표 베리칩과 관련이 있는 PC 관리 솔루션, 원격제어 솔루션, RFID, 공장 자동화 솔루션, 건강검진솔루션, 전자차트시스템(EMR) 등을 경험했다.
4☞마지막 때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노방의 샤우팅에 필요한 성물이 무엇이고 천막을 어떻게 칠 줄도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돕는 분들을 보내 주셨다.
1☞샤우팅 장소 근처에 사무실을 얻어 사역을 하였는데 3층이라 한 번 샤우팅 할 때마다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었다.
2☞무엇보다 어떻게 외쳐야 할지 막막했다.
3☞그래서 맨 처음엔 프랜시스나 썬다 싱처럼 신을 벗었다. 신을 벗으면 어떻게든 하게 되었다.
4☞처음에는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 제목들을 외워서 외쳤다. ‘성경에 계시된 종말의 징조들’, ‘재림의 목적’, ‘교회시대의 이긴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 등을 외쳤다.
5☞어떤 때는 한 달 넘도록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다 타이핑하여 프린트해서 읽었다.
6☞어떤 때는 43차 심령부흥대사경회 CD를 틀어 놓았다.
7☞여하튼 이 방법 저 방법 다양하게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셨다.
8☞최종적인 영감은 표어를 만드는 것이었다.
5◎맨 처음 만든 표어는 다섯개였다.
1☞첫째, 성도여 깨어라!!! 말세의 징조를 보라!!!
2☞둘째, 불신자여 구원받자!!! 성도여 성화되자!!!
3☞셋째, 성도여 최후의 충성!!! 최후의 사랑!!! 최후의 재림 대망을 보이라!!!
4☞넷째, 썩어질 세상과 육체를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영혼과 천국을 위해 살라!!!
5☞다섯째, 주님이 속히 흰구름 타고 강림하시고 흰말 타고 재림하시리라!!!
6◎천막에도 프랑카드를 만들어 달게 되었다.
1☞그리고 도표도 달았다.
2☞책들도 점점 전시하게 되었다.
3☞그리스도 복음신보와 전도지들도 하나 하나 추가되었다.
7◎맨 처음 감동을 받은 분이 통일교 할아버지였다. 이분께서는 영등포에서 하시다가 제가 샤우팅 하던 신정네거리역 근처 분수대로 아예 오셨다.
1☞그 이후 목민교회에서 꾸준하게 지금까지 하고 계신다. 가끔 예수중심교회에서도 전도하러 오셨고 박옥수 구원파 등 이단들도 자주 오셨다.
2☞이제는 신천지까지 가세해서 그곳이 치열한 영적 전투지가 되었다.
8◎하나님께서는 저를 제3수도회 2기로 훈련을 하시면서 저의 포악하고 음란한 죄성을 회개하도록 하셨다.
1☞서울 올라오면서부터 자꾸 노숙자와 같은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제게 붙여 주시자 아내의 구박이 심했다.
2☞특별히 몇 명을 데리고 공동체 생활을 할 때부터 아내의 핍박은 더욱 심해졌다.
3☞급기야 신학을 하고 직장 생활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노방에서 샤우팅을 하자 아내의 핍박은 점점 심해졌다.
4☞그런데 신학원 다니다며 직장생활 아예 그만두고 밝은빛목요전도집회 날인 목요일을 하나님께 봉헌했을 때 아내의 핍박은 극에 달했다.
5☞아내의 핍박이 심할수록 저의 포학성이 드러났는데 항상 음란성이 수반되었다.
6☞다행히 웨슬리 선생님을 본받으며 포학한 성질이 온유해졌으며 아내와의 잠자리를 안 하면서 음란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9◎노방의 샤우팅이 공동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신정네거리 분수대, 종로, 명동, 서울역, 부천역, 송내역, 금천구청역, 관악역, 삼미시장, 광주, 부산 등 이곳 저곳에서 외쳐졌다.
1☞그런데 저는 2012년에 경기영성신학원을 졸업하고 그 해울산 성복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교회 주변과 울산시외버스터미널 등에서 샤우팅 하며 최선을 다했다.
3☞그러던 중 그 해 전주 한일장신대 지방사경회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체험을 주시며 청년들을 일으켜 세우고 북한 선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셨다.
4☞그러면서 노방의 샤우터들 카페를 개설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조금씩 사명자로서 사역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10◎한 번은 부산, 장유, 대구, 대전 등 근처의 노방 전도자들을 초청하여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샤우팅을 하였다.
1☞그때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을 샤우터로 훈련하도록 감동을 주셨다.
2☞그리고 근처에 울산대학교가 있음을 알려 주셨다.
3☞C.C.C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사영리 전도를 하던 중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4☞이 사건을 계기로 울산대학교 정문에서 샤우팅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11◎마침내 2013년 6월 13일 목요일에 목사로 안수 받고 이름을 양권능으로 바꾼 후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혼자서 울산에서만 노방에서 샤우팅 할 것이 아니라 전국에서 샤우터들과 같이 샤우팅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1☞이를 위해 제1호 서울 노방 선교회 설립을 위해 일을 진행하게 하셨고 모든 것이 순적하게 진행이 되어 모인 헌금으로 앰프를 구입하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다.
2☞노방의 샤우터들이 주 1회 이상 정해진 장소에서 외치다가 월 1회 이상 연합해서 외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웠다.
3☞하나님께서는 노방 샤우팅 선교회가 수천, 수만 개 이상 세워질 비전을 주셨다. 그리고 가장 큰 네트워크 모임이 될 비전을 주셨다.
4☞아무것도 아닌 자를 노방에서 순수하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도록 권능 베풀어 주시고 마지막 때 사역자, 노방의 사역자, 대환난 때 사역자, 천년왕국의 사역자, 순수한 사역자, 권능의 사역자 삼아주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