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4-08-07 21:39 조회 : 1854 |
| | | 『누비처네』의 고향 윗버들미 -목성균 수필가의 생가 괴산군 연풍면 유상리에서-
물을 가득 잡아 놓아서 거울 같이 맑은 다랑논에 녹음이 우거진 쇠재가 거꾸로 잠겨 있었다. 뻐꾸기, 꾀꼬리, 산비둘기의 노랫소리가 다랑논에 비친 산 그림자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송홧가루가 날아 와서 논둑 가장자리를 따라 노랗게 퍼져 있었다. 조용히 모내기를 기다리는 다랑논이 마치 날 받은 색시처럼 다 받아드릴 듯 안존한 자세여서 내 마음이 조용히 잠기는 것이었다.
- 목성균의 「다랑논」에서-
목성균 선생의 「다랑논」을 읽고도 그의 고향을 그려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어이 찾아간 괴산군 연풍면 유상리 윗버들미는 비에 촉촉이 젖어 생기에 넘쳐 있었다. 지름티고개 아래 윗버들미의 마지막 마을인 요골은 선생의 작품 「새우젓」에 '윗버들미 놈의 입에 새우저-엇', ‘요골 놈의 입에 새우저-엇’하는 우스개인지 비아냥거림처럼 고향 떠난 옛 개구쟁이를 맞이하듯 나를 맞아 주었다. 멀리 수안보로 넘어가는 지름티고개는 하얀 구름이 녹음을 감싸 안으면서 낭만적인 마을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목성균 수필가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작품집 『명태에 관한 추억』이 출간된 이듬해이다. 『명태에 관한 추억』은 구경도 못하고 홈페이지에서 작품 몇 편을 읽은 뒤라 만나 뵙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수필가의 출판기념회장에서 처음 만났다. 누군가 '목성균 선생님 오셨네.'하고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듣고 어느 분인가 물어서 찾아갔다. 청주 사람이면 다 아는 분인데 나는 그렇게 어둡게 살았다. 인사를 드리자 '한번 만나고 싶었다.'면서 나의 졸작 '새우젓'에서 맛있는 새우젓에 대한 표현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분에게도 '새우젓'이란 작품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누비처네』를 보고 알았다. 서로 이웃에 사는 것을 알고는 '자주 만나 소주라도 마시자.'고 했다. 그것은 말뿐이었고 내가 직장일로 바빠서 단 한번 만나지 못한 채 부음을 들었다.
참 훌륭한 문인을 잃었다는 생각으로 닫히지 않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작품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홈페이지까지 빗장을 걸게 되어 아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첫 작품집 『명태에 관한 추억』과 유고집『생명』에 실린 작품을 모아 목성균 수필전집『누비처네』가 나오자 수필문단에 바람이 일었다. 나도 바람에 휩쓸려 『누비처네』를 읽었다. 한 번 읽고 또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하루에 한두 편씩 읽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열편 이상씩 읽고, 세 번째는 다시 천천히 읽었다. 나는 『누비처네』를 읽으면서 이규보, 박지원, 이양하, 윤오영의 수필을 따르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아니 마음속으로 내가 따르는 수필문학 계보의 끝에 '목성균'을 더 적어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꼭 한번은 작가의 고향을 들러보고 싶었다.
윗버들미 마을은 꼭 수필처럼 안온하게 생겼다. 백두대간에서 흘리고 떠난 한 줄기 지맥이 이 마을을 싸고돌았다. 말이 지맥이지 그 기상은 바로 가까이 꿈틀거리는 백두대간을 닮아 있다. 북으로 지름티고개를 진산으로 하고 , 유지봉을 좌청룡으로, 포대봉을 우백호로 삼아 마을을 감싸 안았다. 백두대간 악휘봉이 골짜기 끄트머리에서 살그머니 얼굴을 보여준다. 포대봉 쪽으로 쇠재가 있어 바깥세상으로 통한다. 유지봉은 발아래 갈매실 냇가를 만들어 놓고 개구쟁이들의 영혼을 기르는 텃밭으로 삼았다. 산줄기 밖에서 보면 마을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데, 갈매실 냇가를 따라 지금은 포장도로가 된 2차선 도로를 타고 윗버들미까지 들어오면 세상은 무릉도원처럼 넓고 평평하다. 도연명이 무릉도원에 가서 본 것만큼이나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 있고 모든 푸나무들이 생기에 넘쳐 있다. 비 맞은 사과알에서 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지막한 지붕은 비를 맞아 윤기가 흘러 평화롭고, 동글동글 부푼 젖가슴처럼 포근한 봉우리마다 하얀 구름이 느릿느릿 게걸음을 걸어 녹음을 밟고 지나간다. 유지봉을 바라보고 동향으로 지은 작가의 생가를 두드리자 마음씨 넉넉해 보이는 칠십대 노인이 맞아주었다. 앞서 참깨밭에서 만난 작가의 어린 시절 친구나, 생가를 넘겨받아 살고 있는 분이나, 모두가 이승을 등진 작가가 정이라는 끈으로 이어 놓고 있는 듯이 따뜻한 정감을 지니고 있었다. 문자로 기록하지 않아 문학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을 뿐이지 이 마을 산야를 바라보면서 짠지 찢어 밥에 얹어 먹은 사람들 모두가 수필가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목성균 선생은 아주 짧게 작품 활동을 하고 아주 굵게 문학 인생을 마쳤다. 짧지만 굵게 문학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반은 고향의 자연이 만들어 주었고, 반은 고향의 사람들이 만들어 주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문인의 고향은 이렇게 소중하다. 내가 짧게 근무했던 연풍중학교 아이들이 습작으로 선생을 놀라게 했고, 자모들이 학교 도서관을 학생만큼 드나들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자연에서 따뜻한 가족을 품에 안고 정겨운 친구와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문학의 튼실한 씨앗을 심는 것이다.
돌아 나오는 길은 몇 번이나 마을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목선생과 닮은 이 마을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었다. 아 겨울에 오면 되겠구나. 겨울에 소박하고 따뜻한 선물을 가지고 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쉽게 골짜기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2014. 8.6.) |
| 임병식 | 14-08-08 06:11 | | 저는 선생의 작품만 읽고 직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편지교환은 두서나차레 있었지요. 나의 작품 '굴뚝연기'을 읽고 감상을 써 보냈기에 답장을 했었습니다. 좀더 오래 사셨으면 더 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을 텐데 아쉽습니다.한국의 수필가로서는 그만큼 정서를 잘 살리고 꿰고 있는 작가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너무 소설적이고 작위성이 드러난 대목이 많아 ㅐㅂ우거나 따라 쓰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기회가 있으면 작품속의 그 고장을 한번 가보고 싶군요. 여기서 나로서는 이선생님의 문장이 여간 돋보이지 않습니다. | |
| | 이방주 | 14-08-08 10:16 | | 임병식 선생님, 역시 선생님의 혜안이 날카롭고 수필문학의 정체성에 대해 명쾌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저도 공감입니다. 제가 목성균 선생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사실과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깊이있게 부여한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한 솔직한 토로는 본받고자합니다. 그러나 제재들이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고 현실 문제에 대한 고뇌가 부족한 것은 그 분의 작품 활동이 너무 짧아서 그렇다는 생각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선생님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 | 김권섭 | 14-08-08 06:35 | | 목성균수필의 누비처네가 무슨 말일까 싶었는데 ‘누빈 아기 포대기’. 누비처네를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후에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아내를 보며 무심한 남편을 나무라는 편지와 함께 돈을 부쳐온 아버지의 당부로 얻게 된 누비처네의 출처를 떠올립니다. 누비처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만큼 구수한 단어들이 참 많이 등장. 다랑논, 부엌 궁둥이, 사기등잔, 살포 등등. 그리고 그에 얽힌 그의 이야기는 어딘지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향년 66세에 가셨으니 애절합니다. 목선생 못지않게 이선생님의 좋은 글 감동입니다.~^^. | |
| | 이방주 | 14-08-08 10:21 | | 김권섭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세대도 잘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그 분의 고향 마을이 그 분의 성장기에도 역시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활문화가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 | 일만성철용 | 14-08-09 06:03 | | 이방주님의 소개를 보고야 목 수필가를 알았으니 부끄럽습니다. 고인을 이리 널리 알리는 이작가의 글이 오늘 아침 퍽 좋아 보입니다. | |
| | 이방주 | 14-08-10 22:09 | | 일만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 목성균 수필가를 모르시는 것이 부끄러우실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그냥 충북의 수필가니까 그리고 인품이 좋았던 분이었고, 최근의 그 분의 글을 읽고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고향의 자연을 둘러 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정진철 | 14-08-09 06:54 | | 괴산은 물도말고 공기도 좋고 산천이 수려한 곳입니다. 이런곳에서 훌륭한 문인이 탄생할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방주 선생님이 계신것 같습니다. 일만선생님처럼 이선생님도 고루고루 알려지지 않은 곳이나 인물들을 소개해주시면 많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 |
| | 이방주 | 14-08-10 22:11 | | 정진철 선생님 안녕하세요? 괴산은 정말 산수가 수려합니다. 저는 2006년 2007년 청주를 떠나 괴산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때 바로 목성균 선생이 졸업한 연풍중학교라는 작은 학교였는데 여러가지 보람이 있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 | 박영보 | 14-08-11 20:12 | | 또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번의 방문을 통해 새로 느끼는 점, 배우는 점 많습니다만 우리 한구수필작가회를 통한 얻음은 시간이 갈수록,많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출국일자를 늦워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욕심을 더 채위기 위해서이지요. | |
| | 이방주 | 14-08-12 21:59 | | 박영보 선생님, 귀국을 환영합니다. 여주모임에 가고 싶었는데 사소한 일로 못갔습니다. 뵙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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