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의 과거와 병조의 관제
교육과 외교, 의례, 학교와 과거 등을 맡아본 조선의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관청이 예조다. 지금의 교육부, 외교통상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의 업무를 담당하는 곳인 셈이다. 예조는 계제사, 전향사, 전객사의 3사로 나뉘고 계제사는 각종 의식과 제도, 조회, 경연, 역사를 기록하고 과거 인장 책봉문 천문 제삿날 등 나라의 상사와 장사를 맡아 보았다. 전향사는 궁궐의 각종 연회와 제사, 제물 음식물 의약 등을 맡고, 전객사는 우리나라의 사진과 중국, 왜, 여진족 같은 나라의 사신을 영접하고 조공하러 오는 이들의 연회나 선물 등을 처리했다.
조선의 과거는 소과, 대과, 무과, 잡과의 네 과목으로 치르는데 문과와 잡과의 과거는 예조에서 치루고 무과는 병조와 훈련원에서 담당했다. 과거는 정기적으로 3년에 한번 열리는 식년시와 수시로 열리는 증광시, 별시,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같은 부정기시가 있다. 이 중에서 식년시와 증광시는 소과, 문과, 무과, 잡과를 다 개설했으나 그 외의 시험은 문과와 무과를 위한 과거였다. 식년시는 12지지의 분대장 격인 자년, 묘년, 오년, 유년에 열리는 시험이다. 이 식년시는 3년에 한 번 열린다. 소과에는 생원시와 진사시가 있고 이 둘을 합쳐 사마시라 한다. 생원시는 유학의 경전을 주로 시험과목으로 쳐서 경전에 관한 것이라 후세 만화에 꽁생원이란 풍자가 있다. 진사시는 시험과목에 시부가 추가되어 있어, 열린 마음으로 한층 풍류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사마시는 1차 시험인 초시와 2차 시험인 복시에 각각 100명을 뽑은 뒤 생원과 진사의 칭호를 내리고 성균관에 입학자격을 준 뒤 성균관에서 나라 밥을 먹고 공부하다가 문과에 합격해 관리가 되는 것이 조선선비의 목표였다. 문과는 소과보다 어렵고 힘들다하여 대과라 부른다. 문과는 소과에 합격한 사람이나 일반인이나 현직관리나 모두 응시할 기회가 있었다.
식년시는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가 있는데 한양과 각 지방의 초시 합격자 240명을 식년 봄에 한양에 모아 다시 시험을 쳐 33명을 선발하는 것을 복시라 했다. 복시에는 요즘의 면접과 같은 학생과 시험관의 문답시험도 있었다. 마지막 단계인 전시는 임금 앞에서 보는 시험으로 왕이 직접 문제를 출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33명의 답안지는 모두 왕이 보도록 되어 있어 , 부정한 일이 없을 경우 모두 벼슬에 나갔다. 최종 성적은 갑과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으로 구분하는데 갑과는 최상위 그룹이고 다음이 을과 나머지가 병과로 장원급제란 갑과의 1등을 말한다. 갑과 1등은 종6품 2,3등은 정7품을, 을과는 정8품, 병과는 정9품의 품계를 받는다.
증광시는 나라의 큰 경사가 있을 때, 별시는 작은 경사가 있을 때 치른다. 문과의 알성시란 성현을 배알한다는 뜻으로 왕이 직접 공자의 사당이나 명륜당에 거동해 치른 과거로 한 번의 시험으로 급제를 결정하고 신속하게 당일 성적을 발표하여 응시생이 구름처럼 모였다. 춘당대시도 국가의 경사에 왕이 창경궁 춘당대에서 실시한 무과의 과거다. 과거급제자는 합격증서인 홍패가 주어지고 어사화와 일산, 술 ,과자를 하사하여 일산을 바쳐들고 시가행진을 허용하여 급제자는 시골에 내려가 그곳 수령과 백성의 환영을 받으며 행진하기도 했다. 여기서 금의환향이란 말이 유래된다.
기술고시인 잡과는 외국어를 통역하는 역과, 의술을 담당하는 의과, 천문지리를 담당하는 음양과, 법률을 담당하는 율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역과는 사역원에서 역관으로, 의과는 내의원, 활인서, 전의감, 혜민서 등에서 의원으로, 음양과는 관상감에서 율과는 형조나 지방의 감영에서 율관으로 근무를 했다.
예조업무 중 국가의 제사와 시호를 논하는 일은 하는 곳이 봉상시이다. 국가의 의례를 담당하고 기록 그림을 그려 둔 곳이 통례원이다. 통례원의 업무는 가례, 길례, 흉례, 군례, 빈례의 5례가 있다. 이 례에 쓰이는 음식을 장만하는 곳이 예빈시이다. 소격서는 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도교에서 말하는 하늘의 여러 별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고려시대 소격전이었는데 유교 이념으로 축소하여 소격서라 하고 나라의 재난이나 왕자의 탄생을 기원할 때 왕도 소격서에서 노자에 절을 하면서 마음이 하늘에 다다르도록 정성을 다한 곳이다.
병조는 무관선발, 군사적인 사무, 왕의 호위, 역참관리, 무기와 갑옷 관리, 4대문과 궁궐 문, 경비 등 주요한 임무를 맡았다. 역참은 전국 8도의 주요 길목에 있고 역참의 책임자는 찰방이다. 병조는 무선사, 승여사, 무비사의 3사로 이워지고, 무선사는 군관의 임명 및 녹봉관리, 무관의 근무기록과 무과 시험에 관한 일을 맡았다. 승여사는 임금의 행차에 쓰이는 기구와 수레 교통편, 마구간, 각 지방 목장, 군사 보충대, 사령 등에 관한 일을 맡았다. 무비사는 군사, 말, 무기, 전함, 등을 챙기고 군사훈련, 순찰, 성곽방어, 외적 토벌의 일을 수행했다. 병조는 판서, 참판, 참의 외에 참지가 있었다, 정랑과 좌랑도 1명씩 추가 배치해 4명 씩 이었다.
조선의 중앙군 조직은 5사로 배치했는데 의흥사, 충좌위. 충무사, 용양사, 호분사로 오위진법에 맞추었다. 5사는 세조대에 5위로 바뀌었고 5위의 군사는 갑사 2,690명, 별시위 300명, 친군위 20명, 파적위 500명, 장용위 120명, 팽배 1,000명, 대졸 600명으로 모두 5,500명이 주력 부대 병력이다. 오위병력은 대략 1만 5천명 수준이고 각위는 5부로 나눠서 총 25부로 구성되었다. 지방군은 각 오위에 분속시켰다. 한성의 중부군인 경중부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황해도 각 진관의 병사는 위홍부에 속했다. 경동부와 경상도의 진관군사는 용양위에, 경서부와 평안도 진관군사는 호분위, 경남부와 전라도의 진관의 군사는 충좌위에, 경북부와 함경도 각 진관의 군사는 충무위에 속했다. 5위 무관 직급은 종2품의 장 12명과, 종6품의 부장 25명이었고, 오늘날의 사단장 과 연대장에 해당한다. 이들은 직책과 별도로 군 계급이 정해져 있는데 정3품 상호군 9명, 종3품 대호군 14명, 정4품 호군 12명이다. 이 계급은 종전의 상장군, 대장군, 장군의 호칭이 바뀐 것이다. 그 아래로 종4품 부호군 54명, 정5품 사직 14명, 종5품 부사직 123명, 정6품 사과 15명, 종6품 부사과 176명, 정7품 사정 5명, 종7품 부사정 309명, 정8품 사맹 16명, 종8품 부사맹 483명, 정9품사용 42명, 종9품 부사용 1,939명으로 모두 3211명의 벼슬자리가 있었다.
사관학교인 훈련원과 경호실인 용호영이 있는데 훈련원은 무과 시험을 주관하고 병법과 무예를 연마시키고 내금위, 별시위 같은 특수부대를 훈련하고 시험하는 일을 훈련원이 맡았다. 용호원은 왕의 경호를 맡는데 조선초기에는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 라 칭했는데 이세 곳을 내삼청이라 불렀다. 현종 시는 금군청이라 부르고 약 700명의 인원으로 운영했다. 무반의 승정원이라 불리던 선전관청이 있다. 선전관은 무예가 뛰어나고 용맹한 인재만이 뽑혔으며 50명의 인원이 근무했다.
무과과거도 식년시와 수시과거가 있었는데 식년시는 28명을 선발했다. 갑과 3명, 을과 5명, 병과 20명으로 등급을 정했다. 초시에는 원시와 향시가 있었는데 원시는 훈련원 주관으로 70명을 선발하고 향시는 각도의 병마절도사가 주관해 120명을 선발하여 190명이 실력을 겨뤄 28명을 뽑은 것이 복시다. 임란과 호란을 겪은 후는 양민 천민도 무과에 응시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합격한 예는 많지 않다. 무과를 보려면 실기에 개인적인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다 기본적인 한자를 익혀야 하고, 병법과 경전 시험도 보았던 터라 양반이 아니고는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무과의 시험과목은 무예와 무강인데 무예는 목전, 철전, 편전, 기사, 기창, 격구, 유엽전, 관혁, 조총, 편추, 기추 등인데 목적, 철전, 편전, 유협전, 관혁은 활쏘기 시험 종목이고 기사, 격구, 편추, 기추는 기마 무예의 종목이다. 활쏘기야 평민이건 천민이건 감당하지만 기마 무예를 익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기마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말 한 마리 가격은 노비 4명의 가격과 맞먹었으니 말을 소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사는 말을 타고 쏘는 화살이고, 격구는 단체로 말을 타고 하는 운동이라 혼자서 익히기가 어렵다. 기추나 편추처럼 말을 타고 달려와 칼로 허수아비를 베는 기술은 무예도 겸비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무강 시험도 난제이다. 육도, 삼약, 손자, 오자, 울료자, 사마법, 이위공문대로 시험을 치러 장수로서 지녀야 할 군사전략 및 전술을 평가하기 때문에 무과는 문과에 비해 경쟁률이 낮았다.
각도의 병력 책임자는 병마절도사로 군사지휘권을 가진 종2품의 직책으로 약칭 병사라 한다. 병사와 수사는 원래 무관직이나 뿌리 깊은 문관 관리 체제로 문관인 관찰사가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병마절도사를 2명 배치한 도에서는 관찰사가 1곳을 겸하고 1명 만 무관으로 배치했다. 병마절도사를 겸한 관찰사는 겸병사라 칭했다. 지휘 체제는 겸병사가 병사보다 위에 있었다. 조선은 무관이 있는데도 문신이 사단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임란이 나자 한양에서 군사를 파견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조선은 처참한 패전을 맛본다. 병사는 도내를 순시하며 군사훈련, 무기제작, 군사시설을 살펴 방어태세를 갖추고 외적이 침입하거나, 내란이 나면 군사를 동원해 진압할 임무가 있다. 병마절도사 밑에는 정3품의 병마절재사와, 종3품의 병마첨절제사, 병마우후, 종4품의 병마동첨절제사, 정6품 병마평사, 종6품 병마절제도위가 각각 진을 맡아 관장했다. 병사가 관할하는 군영은 주진, 그 밑은 거진, 또 밑의 작은 단위는 제진이라 칭했다. 경주와 전주 의주 개성 경기도 광주는 부윤이 병마절제사를 겸했다. 이들은 문관이라 유사시는 무장을 보내야 하니 조선의 국방 체제는 허술했다.
조선수군의 체제는 수군통제사가 종2품의 관직으로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수군의 총사령관이며, 삼도수군통제사라 부르고 통영에 주재했다. 임난 전의 수군은 충청수사 전라좌수사 전라우수사 경상좌수사 경상우수사로 각 정3품의 무관직이었다. 수사 아래는 종3품의 부지휘관인 첨절제사, 정4품의 우후, 종4품의 동첨절제사, 만호, 등이 절도사의 지휘를 받았다. 병사는 종2품인데 수사는 한 등급이 낮은 정3품이고 우후도 병사 밑의 우수는 종3품이나 수사 밑의 우후는 정4품으로 배치했다. 우후는 절도사를 도와 군사지휘, 군령전달, 군사훈련, 순찰, 물자관리, 등을 하는 막중한 보직이다. 만호는 외적을 막는 요새의 책임자로 주요 지역의 책임자다.
2019.02,21
조선관청기행-2
박영규 지음
김영사 발행
첫댓글 예조의 과거와 병조의 관제를
공부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