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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여행2 - 기차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웅장한 국회의사당을 구경하다!
2022년 5월 6일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라냐 Ljubljana 역에서 9시 35분에 출발하는
부다페스트 행 IC 기차는 한 차량에 6인실 컴파트먼트 가 8개쯤 들어 있습니다.
이 6인실 컴파트먼트 차량은 장거리열차에만 있는데 밤이 되어 의자를 누르면 앞으로 밀려나가 간이 침대 가
되니 3명 정도면 누워서 갈수도 있지만 문을 잠그지 못하게 된지라 좀도둑에 노출되니, 우리 대학생들이
청테이프를 문에 발라 자는 중에 누가 열면 소리가 나도록 하는데 이걸 내릴때 떼고 가는 사람은 없으니
흉하고 찍찍한게 붙어있어 깔끔하게 제거도 힘든지라 차장이 한국대학생을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류블라냐 를 출발한 기차는 평원이 이어지는 동쪽으로 달려서 국경을 지나 무려 8시간
만인 17시 30분에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델리역 Budapest-Déli 에 도착합니다.
헝가리에서 공항은 페리헤지 Ferihegy Airport 라 하고 셔틀버스는 Volan Busz 로 에르쩨베트 광장
또는 부루슈바르티광장 Vorosmartyter 까지 운행하며.... 기차는 동부역 Keleti pu 켈레티
팔라부두바르는 오스트리아등 국제선이 운영되며, 북쪽 슬로바키아 방향은 서부역 뉴가티
Nyugati 이고 서쪽 슬로베니아 방향으로 우리가 내린 곳은 남역으로 델리 Deli pu 역 이라고 합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급한게 헝가리 돈 포린트로 환전 하는 일인데.... 부다페스트 델리푸
Budapest-Déli pu 역은 매우 큰 역이기는 하지만 환전소가 없고 해서 둘러
보니 ATM 조차도 없는지라 지하철을 타자니 잔돈이 있어야 하는데 참 난감합니다?
해서 어느 가게에 들러 유로를 내미니 받지 않는다기에 다음 가게로 가서 다시 시도해서 10유로
를 3,000 헝가리 포린트로 교환해 주는지라 고마운 마음에 500포린트를 내고 콜라 한병을
사는데.... 공식 환율은 1유로 EURO € = 378 HUF ft 이며 헝가리 1 포린트 = 3.54원 정도 입니다.
이 돈으로 300포린트 하는 지하철 Metro 표 2장을 구입하는데 지하철 티켓을 보니 B 섹션
Section 티켓은 한 노선 3정거장 용이고..... C 싱글 Single 티켓은 한 노선 전체
그러니까 4정거장 이상이며 D 는 Section Transper 로 환승 티켓이지만 5정거장
까지이고, E 는 Single Transper 로 다른 노선도 가능하며 그 외에 원데이패스가 있습니다.
기계에 표를 넣어 찍은후 (그냥 타면 벌금) 들어가 지하철을 타는데 에스컬레이트는 지하로 엄청 깊게 내려
가는데 경사도 급하니 예전에 스페인의 스톡홀름 정도로 깊은데, 더 깊게 내려간 것은 러시아 전국 일주
배낭여행 때 모스크바 지하철 로 그때는 넘어지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하철에 승차해서는 4정거장을 가서 Deak -Ter 역 에 내리면 1호선 및 3호선과
만나니 3호선으로 횐승해 2정거장 뉴가티역(서역) 에 내리면 우리 호텔이며
또 저 데악광장역 Deakter Suto utz 에서 관광안내소인 Tourinform 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텔에 가서 체크인 까지 하고 다시 시내로 나오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한정거장 전인 Kossuth-Ter(국회의사당) 역 에서 내리는데.....
더 늦기 전에 다뉴브강변 으로 나가 세계에서도 유명하다는 야경 을 구경하기로 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올라오는데 여기 에스컬레이트 도 역시나 경사가 급하니 혹시라도
넘어지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아 옆에 고무판을 꼭 잡고 올라와서는 밖으로
나와 보니 강변에는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라는 국회의사당 Orszagh 건물이 보입니다.
헝가리인들은 민족성 때문인지 아님 역사적인 유래 때문인지..... 강 건너편 언덕에 엄청 큰
왕궁 을 지었으며, 여기 페스트에 자리한 국회의사당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규모가
엄청난데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의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고 합니다.
국회의사당은 엄청난 크기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건축 양식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니..... ‘아름다운 도나우강’ 가에 자리한 의사당은 1896년에 건국 1000
년을 기념해 완공, 개방될 예정이었으나 8년 후인 1904년에서야 계획이 실현됐습니다.
96m 의 높이 는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인 1896년을 상징할 정도로 국가의 자존심을
오롯이 담아낸 건축물인데..... 전쟁과 식민지 지배 등으로 황폐화되고 무너진
국가의 자존심을 새롭게 재건 해서 당당하게 서겠다는 신념을 담은 것으로 읽힙니다.
헝가리인의 조상은 천년전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마자르족(Magyar) 인데 마자르는 초창기 일곱 부족중
가장 세력이 강했던 '메제르(Megyer)' 부족 에서 유래했으니 기원후 우랄산맥을 넘어 남러시아의 스텝
지역으로 이동했고 5세기에 서쪽으로 이동해 896년 오늘날의 헝가리 영토인 카르파티아 분지로 침입합니다.
영어 국명에 'Hun' 이란 표현이 들어있어서 훈족의 후예 가 아니냐는 속설이 퍼지기도 했지만....
'Hungary' 란 표현부터 훈족과 관련이 없으니 'Hungary' 의 어원은 마자르족이 접촉한
오노구르족 이니 동로마인들이 그리스어 '웅그리' (Οὔγγροι) 로 적었고, 다시 서유럽에서
라틴어 철자 'Ungari' 가 되었다가, 중세 말엽에 철자 'H' 가 첨가되면서 'Hungary' 가 되었답니다.
헝가리 역사학자들은 머저르족과 훈족의 연관성을 부정 하지만 학교에선 훈족과 아바르족
까지 자신들의 역사 로 가르치는데... 옛날에 훈족과 아바르족이 보헤미아와 헝가리애
정착했다가 멸망했으며, 민족대침입기 마자르족이 투르크화 되어 헝가리 왕가의
정통성을 훈족과 연결시켰으며.... 민족주의적으로 훈족과 친연성을 강조했기 때문 입니다.
예전에 이 도시 부다페스트에 한번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국제신문에 박선정
씨가 쓴 쓴 “헝가리 고달픈 1000년史, 그래서 더 웅장하고 싶었던 도시”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팬데믹으로 굳게 닫혔던 빗장이 걷혔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빠져나와 내가 아는 세계 너머
를 경험함으로써, 다름과 공감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이 유럽 10개 도시로 ‘달리 인문여행’ 을 떠났다.
21일의 여정 동안 부다페스트, 빈, 프라하, 베를린, 잘츠부르크,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폼베이를 차례로 머물다가 느낀 점을 글에 담는데... 그는
“감히 오디세우스를 떠올리면서 한겨울 유럽 세상으로 항해 에 올랐다” 고 말했다.
시작 부터 길이 막혔다. 경유지인 뮌헨의 폭설로 부다페스트로의 연결편이 결항 됐다.
우여곡절 끝에 항공편을 포기하고 열차 를 탔다. ‘인생 항해가 어디 계획대로 되더냐’
고 누군가가 가르치는 듯하다. 열차에서 만난 한 청년도 같은 이유로 열차를 선택했단다.
루마니아인인 그 청년과 얘기를 나누면서 국경을 접한 이웃 으로서 루마니아인들과
헝가리 역시 불편한 감정 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가까울수록 다툼이 많은 것은
사람이나 국가나 마찬가진가 보다. 헝가리 여행은 역사와 함께 해야 더 잘 이해가 된다.
( 이웃한 나라는 99% 철천지 원수 지간이니 북방 기마민족과 중국, 중국과 고구려, 중국과 베트남, 베트남
과 캄보디아, 태국과 버마, 인도와 파키스탄,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와 게르만족, 스페인과 영국,
영국과 프랑스, 프랑스와 독일이 그러하니 100년 평화 가 드문데.... 조선과 일본 은 1603년 부터
1874년까지 270여년간 12차례 400명 규모 통신사 를 보내고 선린우호했으니 특이한 예외인가 합니다? )
헝가리에는 다양한 민족 이 살았다. 9세기 말 중앙아시아 지역을 누비던 마자르족이 넘어와 이곳
에 정착했다. 그리고 100여년 세월이 지나 세력을 잡은 이슈트반 1세가 가톨릭 을 국교
로 받아들이고 신성로마제국으로 부터 헝가리의 왕 으로 추대받으면서 헝가리 왕국 을 건국했다.
그러나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황폐화 되고 16세기 초에는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 에 의해 분할 지배
를 받다가 17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에 복속 된다.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자치왕국
으로 승격하면서 도약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운명을 같이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후 패전국이 된다.
1918년 오스트리아로 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헝가리민주공화국 을 설립하지만 1919년 공산혁명으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패전국 으로서 연합국과 체결한 트리아농 조약 으로 헝가리는 영토의 상당수를 양도 한다.
이로써 헝가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의 편에 서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그러니까 1차대전 패배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등에 잃어버린 영토 를 독일이 되찾아 주겠다는 약속에?)
2차 대전때 헝가리는 독일 나치와 손을 잡으면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그러나 1944년 전세가
불리해지자 추축국에서 탈퇴하려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오히려 나치의 지원을 받은
‘화살십자당’ 이 정권을 잡으면서 헝가리는 종전까지 추축국으로 전쟁을 치르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1946년 초 왕제가 폐지되면서 소련에 의한 헝가리 인민 공화국 이 선포된다.
1949~1989년 헝가리 인 공화국이 지속되고 그 사이 반소비에트 혁명도 일어나지만 실패한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헝가리는 1990년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회주의 색채를 벗어버린다. 이후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를 도입하면서 외국 자본이 유치되고 비교적 빠른 성장을 이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헝가리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편을 드는 것은 석유와 가스등의 안정적인 공급 때문일까요?)
헝가리 역사를 이해할 때쯤 맞춰 도착한 이른 아침의 부다페스트 켈레티 중앙역 은 낯선 이방인을 환대
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할 일이 많아 손님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어 보이는 여관집 주인장
같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영향도 있겠지만, 낮의 부다페스트는 회색빛의 퇴색하고 지친 느낌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부다페스트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다뉴브강(도나우강) 야경으로 화려하게 부활 한다.
박선정씨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느낀 소감을 쓴 글을 떠올리다가.... 이제 환전 하기 위해 주변
거리를 살펴보는데, 몇 블록을 가도 환전소가 보이지 않기로 지나가는 신사에게 물으니
자기를 따라 오라기에 한 블록을 더 가서 보니? 이런, 오후 6시가 넘은지라 그만 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어쩔수 없는지라 포기하고는 걸어서 도나우강변 으로 나가는데, 원래는 도보 10분 거리인 성 이스트반
대성당 Szent Istvan Bazilika 을 볼 생각이었는데, 환전소를 찾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으니....
성 이스트반 대성당 은 96m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헝가리 왕국의 시조
이자 전국에 가톨릭 성당을 짓게 한 공으로 이슈트반 왕은 이 성당의 이름 이 됐으니 성당의
제대 가운데 성상 조차 이슈트반 왕 이라는 사실에서 헝가리에서 그의 입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성전 오른편에는 그의 부패하지 않는 손 이 신성함과 기적의 상징으로 유리 전시장
안에 전시돼 있으니... 이러한 모습은 거부감 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부패·소멸되지 않겠다는 헝가리 민족의 염원 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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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거운 시간되세요
드디어 헝가리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