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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여행3 - 로마대극장을 보고 벨쿠르광장에서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생각하다!
리옹 푸르비에르 성당 을 나와 7분을 내려가니 언덕 경사면에 조성된 고대 "로마 대극장"
Grand Theatre 이 보이는데 리옹 극장 은 프랑스의 로마 극장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BC 43년에 건축되었는데 지름 108미터로 오랑주나 아를 극장과 닮았다는데 로마제국
시대에는 이 언덕이 리옹의 중심으로 대극장 에는 갈로, 로만 문명박물관 이 있다고 합니다.
2천년 기나긴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놀랍도록 완벽하게 보존된 모습 에 이런일이 가능한지
혀를 내두르는데, 경사가 급한 완벽하게 보존된 좌석에 앉아 내려다 보니 무대 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보니..... 오늘 밤에 무슨 콘서트 라도 있는 것일러나?
푸르비에르 사원 에서 푸니쿨라 Funicular 를 타고 비외리옹역 으로 내려와 광장을 지나
비외리옹 구시가지 로 들어가니 카페와 레스토랑에 기념품숍이 줄지어 늘어섰는데
구시가지는 손강에서 푸르비에르 언덕에 이르는 지역으로 예전에는 견직물 이
성행했으니 15~17세기 고딕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고택 들이 볼만합니다.
그러고는 이쁜 가게들을 지나 손 강 la Saone 에 이르러 알폰소 다리 Pont Alphonse 를
건너노라니 문득 2천여년 전에 있었던 "스위스 헬베티인" 들의 비극이 떠오르는데...
스위스에 거주하던 갈리아(켈트)인 헬베티족 은 게르만족 아리오비스투스의 압력 에
견디지 못하고는 정든 고향을 떠나 멀리 프랑스 서부 브레타뉴로 민족이동 을 결의합니다.
BC 58년 37만에 달하는 헬베티족 은 미련을 끊기위해 12개 도시와 400개 촌락을 불태우고는
제네바에 집결후 2개월치 식량만 휴대한채 서남진해 론강 을 따라 내려오니 전 해에
로마 집정관을 지내고 이해에 일리리아, 갈리아 키살피나(북이탈리아 밀라노) 와
프로빈키아 (마르세이유~니스) 3개주의 총독인 카이사르 는 그들의 민족이동을 금지 합니다.
하지만 헬베티족이 세콰니족 영토로 들어서자 카이사르는 10군단(6천명)만 이끌고 황급히
알프스를 넘어 아비뇽 북쪽에서 BC 58년 5월에 갈리아 영토로 들어간후 북진해
이 도시 루그드눔(리옹) 에서 헬베티족을 따라 잡으니 그들은 여기 손강 을
건너서 갈리아의 최대 부족으로 로마 동맹군인 하이두이족 영내로 도강 했던 것입니다.
여기 리옹에서 헬베티족의 4분지 3 이 뗏목으로 강을 건넜을때 카이사르는 3개 군단 을
지휘하여 손강 이쪽편에 미처 건너지 못한 헬베티족을 학살 하니 헬베티족 은
북쪽으로 도망쳤으나 로마군은 불과 하룻만에 나무 다리 를 가설하여
추격하니 하이두이족의 도읍인 비브라크테(오툉)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자게 됩니다.
로마군은 6개군단 4만명 이었다는데 언덕위에 진을 치니 아래쪽에서 공격해오는 헬베티전사
9만명을 맞아 투창을 던지니 방패에 박히는지라 승리를 거두고는 카이사르 는 연이어
브장송에서 게르만족 10만명을 격파 함으로써 갈리아를 로마 땅 으로 만들었는데 살아서
스위스로 돌아간 헬베티 족은 37만명중에 11만명 이라니 그 처참한 비극을 어찌 말로 다하랴!
플러타너스가 우거진 거리를 걸어 시내지도를 보며 12월초에는 화려한 빛 축제와 어린왕자
퍼포먼스 도 선보인다는 벨쿠르 광장 Pl. Bellecour 을 찾아가서는 한쪽
귀퉁이에서 1900년에 이 도시 리옹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앙투안
셍텍쥐페리 의 "어린왕자" 동상 la statue du petit prince 을 찾아 옛일을 회상 합니다.
생텍쥐페리 는 리옹 출신 으로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 훈련을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1926년 프랑스 항공사에 취직 하게 되니 생애와 문학에 결정적인 전기로 작용하는데
“야간 비행(1931)”과 “인간의 대지(1939)” 등을 썼으니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박진감 넘치는 실존적 작품들로 특히 1935년에는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 합니다.
기적적으로 낙타 대상에 의해 구출된 적도 있었다는데.... “어린 왕자" (1943) 는
2차 세계대전 중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와 함께 미국에서 발표 했으며
이듬해 생텍쥐페리는 40이 넘은 나이에 1944년 7월 31일 지중해 연안
독일군 점령지역으로 8번째 정찰 비행 을 나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러번 비행사고로 장애를 입었고 마흔 넘었지만 영혼이 자유로운지라 튀는 행동 으로
군에서 쫃겨나면 온갖 연줄을 동원해 복귀 하곤 했다는데 그가 몰았던 라이트닝기는
속도는 빨랐지만 무장은 없었으니 그의 책을 읽은 독일 청년 들이 그 때문에 조종사 에
지원하기도 했다는데 그를 격추한 독일 조종사는 그인줄 알았더라면 쏘지 않았을 거라나요?
경인교대 교수로 지리학자인 김이재씨는 동아일보 ‘지도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사하라에
두 번 추락해 죽음과 사투 극한 사막서 캐낸 순수의 ‘어린왕자’ 라는 글을 썼으니
부제는 ‘조종사 생텍쥐페리의 아프리카’인데 그는 지위와 명성이 높아지면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부류의 인물이니 명성이 그에게 마지막 비행을 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유로화를 쓰기 전 프랑스 50프랑 지폐의 모델이었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00∼1944)
는 리옹의 귀족 가문 에서 태어났다.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부유한 외가 덕분에 프로방스의 고성 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 12세 때 처음 탄 비행기에 매료된 소년은 20대 초반 조종사 면허증을 취득한다.
이후 스페인 국경과 가까운 툴루즈에서 국제우편 항공기
조종사로 일하며 카사블랑카(모로코) ∼ 다카르(세네갈) 노선을 개척한다. ”
“대표작 ‘어린 왕자’ 에는 지명과 수치에 집착하는 고지식한 할아버지
지리학자가 등장한다. 학창시절 따분한 지리학에 질린 생텍쥐페리
였지만 동료 조종사 앙리 기요메 덕분에 지도 읽는 재미에 푹 빠진다. ”
“내비게이션 없이 낯선 곳을 비행해야 했던 조종사들에게 지도와 나침판 은
필수품이었다. 작은 개울, 꽃과 나비, 양치기 소녀,
올리브 나무, 농가의 불빛이 표시된 그의 스페인 지도는 동화책 이 되어 갔다. ”
“비행기 엔진 고장 이 잦고 자동항법장치도 부실했던 시절, 조종사는 매우 위험한
직업이었다. 기요메는 안데스 산지에서 죽을 뻔했고 생텍쥐페리는
사하라 사막에 두 번이나 추락 했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사막에서
죽음 직전 까지 가는 극한 체험을 하며 그의 영혼은 순금 처 럼 정화 되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는 삶의 비밀을 깨닫게 해준 사막 은 지혜의
샘물이 숨겨진 오아시스였다. 모로코 남서부 주디(Judy) 곶에서 근무할 때
틈틈이 집필한 ‘남방 우편기’ 를 비롯해 ‘야간 비행’, ‘전시 조종사’,
‘바람과 모래와 별들’, ‘어린 왕자’까지 그가 쓴 책의 주요 배경은 모두 사막 이다 ”
“사고 후유증과 고통 으로 지쳐가던중 미국으로 건너가 치료받는다. 안데르센 동화책을
읽으며 동심의 세계에 접속하고 미국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로 ‘어린 왕자’
를 구상한다. ‘어린 왕자’ 는 그의 순수한 고독과 전설적 사랑이 압축된 자서전 같다.”
“‘어린 왕자’ 의 장미는 아내 콩쉬엘로 였다. 남미 커피 재벌가 딸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능통한 재원이었다.‘화산의 나라’ 엘살바도르 출신답게 열정적인
그녀는 작가와 예술가의 마음을 훔친 뮤즈 이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생텍쥐페리의 열렬한 구애로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 한다. ”
“뉴욕의 대저택 에서 모처럼 아내와 오붓한 행복을 누린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
집필을 마치고 홀로 귀국해 공군에 자원 입대 한다. 1944년 한여름,
나치가 점령한 고향 일대를 정찰하기 위해 출격한 후 그의 행적은 미스터리다.”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은 어린 왕자가 지구별과 작별하는 황홀한 의식 이 아니었을까.
달콤한 신혼을 즐긴 향수 마을 그라스,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의 놀이터, 사랑하는
어머니가 살아계신 마을의 풍경이 표시된 마음의 지도 를.... 완성할 수 있었을 테니까?”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인 나는 소년을 만나 양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소년은
애인인 장미꽃을 자신이 사는 별에 남겨두고 여행길에 오른 왕자로 별을 순례한 후에
지구에 온 것이다. 외로운 왕자에게 한 마리 여우가 나타나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다른 존재를 길들여 인연을 맺어 두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왕자는 이 세계 속에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만 하는 장미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닫는데 시적이며 고귀한 분위기 속에 지혜를 짜낸 휴머니스틱한 작품이라!
또 생텍쥐페리는 “훌륭한 어른이란 다른 어른들이 아는 것을 전부 알면서도
아이의 눈 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 텍쥐베리는 아프리카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또 아프리카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되었으니, 가장 많은 식민지를 확보한 나라가 프랑스 인데 영국 및 독일등과
싸우면서 식민지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니 2차대전후 아프리카인들은 독립전쟁 을 벌입니다.
동아일보 손효림 기자는 유진 로건이 지은 "아랍, 오스만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란
책을 소개했으니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모로코 기병들" 이라는 삽화를
실으면서 “아랍의 봄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라는 글을 올렸는데....
알제리 는 "8년 전쟁 끝에 150만이 죽고서야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독립" 을 이룹니다?
“테러, 석유, 난민, 여성 억압, ‘아랍’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기 쉬운 말 들이다.
아랍은 파편화된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아랍의 현재가 어떻게 탄생했고 왜
복잡다단한 정치지형을 갖게 됐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길 원하는 이에 딱 맞는 책이 나왔다 ”
“레바논 베이루트와 이집트 카이로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하버드대에서 중동역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아랍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1516년 부터 2011년
아랍 혁명 까지를 다룬다. 서구 중심이 아니라 아랍인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하려 애썼다.”
“오스만 제국에 이어 영국, 프랑스등 서구의 지배를 받게 된 아랍인들은 강력 저항하지만
신식 무기와 강력한 군대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힘없던 아랍인에게 새 무기로
떠오른 건 석유 였다. 아랍이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의 힘을 믿는 정치 세력이 강해지면서 이슬람주의 테러 세력이 형성 됐다.”
“영국과 프랑스가 물러났지만 독재에 신음하던 아랍인은 2011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억압에 맞서 일어났다. 오랜 기간 무력감에 젖어 있던 아랍인들이 인권과 안전,
경제 성장을 누리려면 스스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
“‘아랍의 봄’ 은 그렇게 왔다. 대규모 전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매춘부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던 18세기의 풍경 등이 풍성하게 펼쳐져
당시 시대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에 맞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여성, 최초의 이집트 페미니스트 등 가려져 있던 여성들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이슬람이 출현한후 7세기부터 다섯세기 동안 아랍인은 세계의 주역 이었다. 이는 이슬람
신앙을 가장 잘 실천했을 때 아랍인이 최고 였다고 주장하는 이슬람주의자 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고 분석한다. 아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대목이다. ”
비행기 처럼 무거운 기계가 어떻게 하늘을 날수있는지 신기해 하고 구름의 모양에 감탄하며
바닷가에서 모래성 을 쌓는 어른들로 삶에대해 경이로움을 느낄수 있다고 말했다나요?
이런 류의 어른으로 프랑스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필리프 라메트 가 있는데
그의 사진 작품 속에는 "중력을 거스르거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슈퍼맨" 이 등장합니다.
초능력의 남자 는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차림으로 야자수 나무기둥에 발을 딛고
90도로 서 있거나 바다 위를 걸어가고 깊은 바닷속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사진속 모델은 예술가 자신 이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초능력의 사나이 로
변신하는 비결인데 그는 초능력을 구현할 수 있는 기구들을 개발해 직접 사용한다나요?
즉, 작품의 콘셉트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비합리적인 장면을 연출한 과정을 촬영하는 것이니
"예술가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경이로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러나?
광장에 있는 벨쿠르역 에서 지하철 D선을 타고는 2정거장 Saxe gambetta
역에서 B선으로 환승해 2정거장 리옹 파르 디외역 Lyon Part Dieu 역으로 돌아옵니다.
여기 역전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데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님 그냥 시간을 떼우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커프를도 더러 많이 보이니 문득 D일보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 칼럼에 나오는.... “난 그 여자 싫어”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여성들이 동년배의 다른 여성을 평하는 말 중에 빈도가 높은 것 하나.
“걔, 재수 없어.” 동창 모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에
친구가 새 소식 을 올리면 기분이 상해 말한다. ‘또 자랑질 이네.’”
“만나면 반가워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얘기가 헤어진 후에는 험담으로 바뀌기도
한다 . ‘재수 없음’ 은 시공을 초월한다. 외국인 남편 만나 유럽서 사는 동창의
블로그까지 찾아내 미워 죽는다.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도 기분에는 상관이 있는 것이다.”
“미움의 뿌리는 남자 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억압해둔 것을 누군가
에게서 발견할 때 반감 을 느낀다. 인정하기 싫은 부정적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한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이를 끌어내림 으로써 자존감의 균형을 잡으려 할 때도 있다. ”
“남자 들은 반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태도나 행동 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왜 싫은지 이유가 명확한 편이다.
상대로 인해 방해를 받거나..... 손해를 보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 이다.”
“반면에 여성의 반감은 대부분 이유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가 동료의
부인과 잘 지내기를 바라지만 아내는 싫다며 발끈한다. 싫은 이유를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몰라. 그 여자, 그냥 싫어.”
상대가 뚜렷하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싫은 느낌을 참을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는 리옹역사 내에서 피아노를 치는 남자 를 구경하고는 이제 화이트와인의 고장
부르고뉴의 본 으로 가기위해 디종 Dijon Ville 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지라...
15시 16분 기차에 오르니 북쪽으로 밀밭과 포도밭을 지나 본 Beaune 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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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철인가 합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왕자는 모두의 꿈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