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도 어려운 말과 글
김세명
나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이 말씀은 나직한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였기에 흘려들었다.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해 하루이틀 묵었다 떠나올 때도 어른들에게 “그동안 여러 가지로 폐가 많았습니다.”라는 말씀을 꼭 건넸다. 늘 입던 옷을 다시 걸친 느낌 정도의 것이어서, 혹은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공기와도 같이 편안한 것이어서 이 말씀에 대해 느끼는 각별함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이 말씀이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한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추기경께서 세상과 이별하면서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 하세요.”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이 짧은 고별사를 접하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슴속으로 갑자기 큰 강물 같은 것이 출렁출렁하며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화려함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이 수수한 말씀이, 매정한 사람에게도 저절로 정이 쏠리게 하는 그 말씀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마치 내가 친척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나와 더불어 살갑게 살아온 친척이 내 손을 꼭 잡고 마지막으로 한 당부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어른들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가장 감동적인 말씀은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말씀인 경우가 많다. 몸조심하거라. 끼니를 챙겨라. 가령 병석에 있는 친척을 병문안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흰 종이처럼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그러나 반색하며 병상의 어른들은 나에게 물으셨다. “뭐하러 와? 아직 바깥이 춥지?” 그리곤 잠시 염려하는 낯빛으로 “집안은 모두 편안하지?” 다시 별빛처럼 마음 모퉁이가 환해져 “애가 몇 살이더라? 어이쿠,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리고 쾌차를 빌면서 나서려 하면 “부모님 잘 모셔라.” 이런 순하고 무던한 말씀 앞에서는 머리를 깊숙이 조아리게 된다.
임종을 앞둔 붓다의 모습도 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이었으며 말씀 또한 그러했다. “아난다야, 이제 내 나이 여든이 되었구나. 이 몸도 늙을 대로 늙어 내 삶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마치 낡은 수레를 가죽 끈으로 얽어매어 지탱하고 있듯이 내 몸도 그와 같다.” 아난다가 깨달음을 얻지 못해 슬퍼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는 “아난다야, 슬퍼하지 말고 울음을 그만 멈추어라. 사랑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라고 전부터 말해오지 않았느냐? 너도 네가 할 일을 잘 해왔다. 너도 이제 열심히 정진해라.” 자상하게 위로하고 붓다는 임종하면서 “부디 게으르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 너희 자신을 구하도록 해라.”라는 말씀을 남겼다.
내가 요즘 예전에 어른들이 하던 것처럼 쉬운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쉬운 말과 글 속에 삶의 진리가 숨어 있나 보다. 수필을 쓸 때도 쉽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 블로그의 글을 시간 나면 보라고 하는 걸로 대신 한다. 이번 추석에도 아들딸 내외와 손자가 찾아와 인사를 하며 반기는데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안부 이외에는 별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에게 한 말들이 하나 같이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들딸 내외와 손자가 집을 나설 때면 차 조심 하고 건강 잘 챙기라는 인사를 건넨 걸 보면 내 부모의 전철을 밟고 있구나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첫댓글 서로 사랑 하라는 말씀도 예사로 흘려 듣지 않으시고 그렇게 가슴으로 받아 들였네요.....그 속에 담긴 많은 말씀도 들으신것 같아 존경스럽습니다....자식들에게는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소리가 아닐런지요....전 타인에게는 좀 더 좋은 생각을 해 가며 말을 할려고 노력 하지만 때때로 망언이....ㅎㅎㅎㅎ건강하세요
평범하고 쉬운 말인듯 하지만 사실 평생을 실천 하며 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지요 진리인데도 간과하면서 살아온 후회감 이지요 그 말들의 진심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들인데도 지나놓고 생각하니 내맘대로 살아온게 후회 스럽고요 좋은 밤되세요
인생의 수행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하라셨지요,,,,,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때 하신 말씀입니다,,,,게으러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게지요....
水落石徹 인생은 자신을 위해 정진하면 나의 격이 한없이 올라가지만 남을 탓하고 상관하면 한없이 강등하지요 자신을 위해 정진 해야지요
진리는 세월을 살며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태어나 자식의 길, 부모의 길 걸으며 세월흘러 깨달음이 깊어 갈즈음 삶이 끝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자기 위치에서 할일이 많지요 자식노릇,형노릇,부모노릇,남편노릇,직장일등 자신을 위해 정진하면 풀리지 않을가요
좋은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