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와 공정·대등한 경쟁관계 정립
·명칭못쓰는 세무사자동자격의 입법모순 제거
·세무사 업무확대에 회계사의 무임승차 방지
·외국회계사의 국내 세무시장 개방 제한
·로스쿨 배출 변호사의 세무대리 시장 진입 저지
·타법령상의 세무사업무 회계사가 수행 불가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폐지’를 골자로 하는 세무사법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국회에서 정부로 법안이 이송되어 공포되어지면 세무사법 제3조 제2호로 규정되어 있던 ‘공인회계사의 자격이 있는 자’는 삭제되어진다. 이와 같이 간결한 개정내용이지만 그 개정의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금번 세무사법개정의 의미와 효과를 살펴 본다.
전문자격사제도를 법제도적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국가의 특정 전문업무를 행하는 자의 독점적 업무범위와 권리·의무 등을 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국가가 공인하는 전문자격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일정한 자격을 취득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자격사는 본래 자격시험을 통해 취득하는 것이 원칙이고 다른 자격사에게 세무사자격을 덤으로 주는 소위 ‘자동자격’ 제도는 지극히 임시적이거나 예외적인 제도일 수밖에 없다.
세무사법이 제정되던 1961년 12월은 5?16 군사정변이 발생된 후에 경제개발의 조기 달성을 위하여 조세를 통한 국가재정의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던 시절이었다.
그 만큼 당시에는 세무사자격시험을 통해 전문인력을 확보할 만한 충분한 인적·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로 종사하고 있더라도 세무분야에 대한 접근성만 있으면 제도도입의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세무사 자동자격을 부여할 정책적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검증과정도 없이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곧 해당 자격사의 전문성과 자격제도의 정체성 및 독자성이 아직 미완의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정당하게 세무사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는 전문자격사로서의 자존심에 멍에가 되어왔다.
이후 세무시험합격자가 배출되어 세무사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면서 제도도입 당시에는 임시적인 제도로 인식되었던 자동자격제도는 고착화되었고 긴세월이 흐른 뒤에야 단계적으로 점차 폐지되어 왔다.
1972년에는 박사·석사 학위자, 교수, 고등고시합격자 등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이 폐지되었고, 1999년에는 국세경력자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이 폐지되었던 것이다.
다만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에 대한 폐지는 강력한 이익단체로 자리 잡은 회계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의 반대로 입법개선이 번번이 무산되어 지난 50년 동안 세무사업계 숙원사업이 되어왔다.
이렇게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 제도의 철옹성을 깨뜨린 것은 지난 2003년 정구정 회장에 의해서 추진되었던 세무사법 개정시 마련됐다.
당시 국회심의과정에서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는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을 폐지하는 세무사법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다수의 변호사로 구성된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세무사자동자격은 계속 부여하되 세무사명칭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안이 수정·의결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2003년의 세무사법 개정으로 변호사·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자격의 등록을 차단하여 ‘세무사’ 명칭사용을 금지시키고, 세무사자격이 직무수행의 근거가 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자동자격제도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변호사는 변호사의 직무인 법률사무(변호사법 제3조)와 중복되는 세무관련 업무만을 제한적으로 수행하게 되었고, 공인회계사는 세무사자동자격과 상관없이 세무사법에서 정한 세무대리업무등록부에 특별히 등록해야만 세무대리를 수행할 있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금번 세무사법개정을 통해 이루어낸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의 폐지’ 성과는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규정을 사실상 사문화(死文化)시킨 2003년의 세무사법 개정을 기반으로 일궈낸 과실(果實)로 평가될 수 있다.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의 폐지에 따라 앞으로 세무대리업무를 수행하는 공인회계사는 다음과 같이 3가지 형태로 구분되어진다.
먼저 ①2003년까지 공인회계사자격을 취득한 자로, 세무사시험합격자와 동일하게 세무사등록부에 등록하여 세무사명칭으로 세무대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공인회계사
②2004년 이후에 공인회계사자격을 취득한 자로, 무용지물이 된 세무사자격은 부여되나 세무사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고 세무사로 등록하지 못하여 오로지 공인회계사의 명칭으로 세무대리업무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공인회계사
③2012년 이후에 공인회계사자격을 취득한 자로, 형식적으로 부여되었던 세무사자격마저 없이 세무사법에 정해진 세무대리업무등록을 통해 세무대리업무를 수행하는 공인회계사로 나뉘어지게 된다.
한편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의 폐지가 가지는 의미와 효과는 다음과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세무사는 조세전문가로서 공인회계사와 차별되는 세무사제도의 독자성을 확보하게 되어, 지난 50년 동안 ‘덤으로 부여되는 자격’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시험에 의하여 자격을 부여한다”는 자격사제도의 기본원칙을 재확인하고 세무사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에 대한 공정성과 공평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무사는 세무서비스시장에 있어서 공인회계사와 공정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종전 세무사법은 세무사자격을 부여하면서 세무사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입법체계상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실제로 헌법소원(헌재 2008. 5. 29 선고, 2007헌마248 결정)까지 제기된 바 있으나 이를 입법적으로 해소하게 되었다.
셋째, 그동안 조세전문자격사로서의 위상을 제고해 가면서 우리회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확대한 세무사법상의 직무영역을 공인회계사가 자동으로 무임승차하는 문제를 해소하였다. 예를 들어 1989년에 도입된 개발부담금 및 초과소유부담금에 대한 행정심판청구의 대리, 1999년에 도입된 개별공시지가에 대한 이의신청의 대리, 2009년에 도입된 단독주택가격·공동주택가격의 공시에 관한 이의신청의 대리 등이 그러하다. 이 또한 ‘세무사자격 자동부여제도’라는 원천적 모순 때문이었다.
따라서 금번 세무사법 개정은 공인회계사의 세무대리와 차별화되는 세무사 고유의 직무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데에 큰 의미를 가지게 한다.
예를 들어 추후 독일 등 다른 국가의 입법례와 같이 세무사에게 조세소송대리 및 세무감사 등의 업무가 부여되면 입법개선을 통해 세무사의 독자적인 업무에 귀속시킬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된다. 세무사만의 독자적 직무를 확보하게 되면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 차별되는 조세전문자격사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넷째, 한국에서는 공인회계사에게 세무사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입법적 선언을 통해 FTA 등을 통해 외국의 회계사에게 세무서비스 시장이 자동으로 개방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게 된다.
각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한국의 세무사와 같은 조세전문성이 인정되는 세무사제도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는 한국과 유사한 세무사제도가 있지만, 세무사제도가 없는 국가에서는 공인회계사가 세무서비스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FTA협상과정에서 공인회계사에 의해 세무서비스가 주도되어지는 상대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공인회계사도 한국에서 세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개방요구를 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공인회계사에게 세무사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는 이러한 개방요구에 반대하기 어려운 맹점이 될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공인회계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의 폐지는 조세에 관한 전문성에 담보되는 외국의 세무사에 한하여 국내 세무서비스시장을 개방할 수 있다는 제도적 명분을 가지게 한다. 또한 법률 및 회계서비스시장의 개방에 따라 반사적으로 세무서비스시장이 추가적으로 개방될 우려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 지난 2003년의 세무사법개정과 금번 2011년의 세무사법 개정은 세무사의 독자적 위상을 확립하여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에 대한 시장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이들에 의한 세무서비스시장의 진입을 사실상 제한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먼저 변호사의 경우에는 세무사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세무사등록부에 등록할 수 없는 변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세무대리업무는 사실대리를 제외한 법률대리로 제한된다. 따라서 변호사는 조세관련 심사청구 및 심판청구 등과 같은 법률대리 이외에 세무대리업무의 전제(핵심)가 되는 기장대행 및 세무조정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세무사법의 해석은 이미 법원의 판례를 통하여도 확인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11. 12. 24, 2011누15673).
더불어 공인회계사의 경우에는 금번 세무사법개정으로 자동자격이 완전히 폐지되어 더 이상 ‘세무사’라는 전문자격사의 브랜드(메리트)를 활용할 여지가 없어졌으며, 타법령상에서 세무사가 수행하도록 정해진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가령 주민등록법령에서 타인의 주민등록표를 열람·교부할 수 있도록 세무사가 작성하는 이해관계사실확인서를 공인회계사가 작성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섯째, 많은 세무사들이 업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매년 세무대리 시장에 쏟아지는 세무사시험 합격자, 회계사시험 합격자, 변호사자격 취득자 등의 신규 세무대리 인력에 의한 공급과잉을 꼽는다.
그러나 2012년부터 로스쿨에 의해 매년 배출되는 2000명의 로스쿨변호사와 사법시험에 의해 매년 배출되는 1000명의 변호사가 세무대리 시장의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는 효과를 가지게 한 세무사법개정은, 앞으로 세무사업계의 위기극복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무사신문 제572호(201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