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부산의 아이파크(前 부산 대우 로얄스) 축구단 숙소에서 만난 안정환(32)의 얼굴은 훈련 탓인지 까맸다. “몸은 80% 정도 회복한 것 같아요. 동계훈련이 조금 부족한 탓에 체력적인 문제는 있습니다만, 마음이 굉장히 편하고 좋습니다.”
안정환은 지난 1월, 8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아니다. 수원 삼성과 재계약이 무산되고, 외국 진출도 물 건너 가면서 마지막 남은 선택이었다. 지난해 정규리그 노 골(no goal). 2002년 한일월드컵의 ‘반지 키스’ 세리머니는 이제는 TV 재방송 화면에서만 볼 수 있게 됐다. “한 물 갔다”, “은퇴나 해라” 등 비난 속에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을 듯 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표정이 밝았다. 조심스레 자신감도 엿보였다.
면도도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했고, 귀걸이도 반지도 없었다. 그래도 ‘꽃미남’ 자태는 여전했다. 데뷔 초기 ‘테리우스’란 별명이 붙었고, 2002년 때는 이탈리아전 결승골만큼이나 ‘안정환 파마’가 화제가 됐다. 화장품 광고도 찍고, 앙드레 김 패션쇼 등에서 모델도 했다. 부산 구단에서 축구 실력보다 흥행을 위해 다시 안정환을 데려온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처음 인기를 끌 때 ‘공도 못 차는 게 얼굴만 반지르르하다’ 이런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스트레스 받았죠. 지금은 안 나오잖아요? 요새는 또 나이 먹었다고 뭐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것(축구)을 할 뿐이죠.”
◆"빵과 우유, 유니폼 준다고 축구 시작"
귀티가 흐르는 안정환이지만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2살도 되기 전 아버지를 여의고, 6살 되던 해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해주던 외가(外家)가 부도를 맞았다. 축구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빵도 주고, 우유도 주고, 유니폼도 준다고 해서”라고 답했다.
청소년대표 시절 오렌지를 처음 먹어 봐서, 그때 함께 살던 할머니한테 주려고 싸 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등학교 방학 때면 학비와 생활비를 벌려고 막노동과 주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초등학교 때 수퍼 주인이 꿈이었어요. 먹고 싶은 거 만날 먹을 수 있으니까.”
2002년 6월18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이탈리아전 연장전에서 역전 골든골을 터뜨리고 환호하는 안정환. /조선일보DB
아주대를 졸업하고 1998년 K리그 부산 대우 로얄스에 입단하면서 그의 ‘헝그리 축구’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데뷔 첫 해 13골4도움. 다음해에는 21골7도움으로 리그 MVP를 차지했다. ‘우승팀에서 MVP가 나온다’는 K리그 25년 공식을 깨뜨린 유일한 선수가 안정환이다. 수비수 2~3명을 제치는 개인기와 ‘터닝슛’은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안정환은 은퇴한 뒤 유소년 감독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가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줘야죠." /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2000년 이탈리아 진출… '우물 안 개구리'에서 월드컵 '반지의 제왕'으로
안정환은 2000년7월 이탈리아 프로리그 ‘세리아A’ 페루자 이적을 전격 선언했다. “참 어렸었죠. 텔레비전에 나오는 선수들하고 운동장에서 같이 뛰어 보고 싶다는 꿈 하나 만으로 갔으니까요.”
안정환은 그때 자신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표현했다. “실력 차가 상당했다”라면서.
축구만 신경 써도 빠듯한데 외적인 요인까지 그를 괴롭혔다. “첫 진출했을 때 팀 동료들이 마늘 냄새 난다고 ‘알리오(마늘)’라고 놀려댔죠. 처음에는 언성 높이며 싸웠습니다. 주로 캐주얼을 입었는데 ‘못 사는 나라에서 왔냐’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2002년 월드컵을 하는 줄도 모르고 북한하고 착각하는 선수들도 많았어요. 제 딴에는 친해지려고 노력을 했어요. 식사도 같이 하러 다니고, 일부러 좋은 옷을 많이 사서 입고 다녔죠. 월드컵 모자나 뺏지를 나눠주기도 했죠. 그래도 통역도 자주 바뀌고, 거의 모든 걸 혼자 했으니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안정환은 그 때가 “축구에 대해 많이 배웠던 소중한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한국에 있을 때 헤딩을 거의 못했죠. 골도 없었고. 헤딩 잘 하는 선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그대로 할 때까지 계속 연습, 또 연습했어요.”
안정환은 그 머리로 2002년 미국 전과 이탈리아 전에서 모두 두 골을 뽑았다. 하지만,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구단과 갈등으로 2002년 이탈리아를 떠난 뒤 한 수 아래로 평가 받는 일본 J리그로 옮겼다. 다시 2006년 프랑스 FC메츠, 독일 MSV뒤스부르크에서 뛰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 전 결승골을 기록했지만, 이후 다시 이적협상에 실패해 6개월 동안 갈 곳이 없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 우리나라 수원 삼성이었다. 초반 컵 대회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후 부상을 당하면서 출전 기회를 점점 잃었다. 2군 경기에 뛰다가 상대팀 팬이 자기와 가족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로 관중석까지 올라가 충돌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 “당신들 때문에 축구가 안 되는 거야”라는 그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정환은 K리그 사상 최고액인 1000만원 벌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구단 홈페이지에 반성문까지 올렸다.
“제가 2군 경기를 뛴 것부터가 잘못된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훈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저는 몸이 좋았거든요. 납득이 안 됐죠.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욕을 들으니까 제가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또, 축구를 못해서 욕을 먹는다면 선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런 거 말고 다른 걸 얘기한다면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잘못한 게 있고, 팬도 잘못한 게 있는데, 이번 기회로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모두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는 괜찮은데, 나중에 그 팬한테도 화살이 돌아가서 안타까웠죠.”
안정환이 구단 숙소를 찾아온 팬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그는 "부산팬들과 함께 부산축구를 정상에 올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수원 계약이 끝나고 외국 진출이 무산되면서 안정환은 다시 무적(無籍) 위기에 놓였다. “제가 게임을 많이 못 뛰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제가 부상을 당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일일이 구단하고 접촉을 해서 테스트를 받을 수도 없고요. 결국 다른 후보에게 밀릴 수밖에 없죠.”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 때 함께 공격수로 뛰었던 황선홍 감독이 새로 부임한 부산행을 택했다. 2001년 결혼한 미스코리아 출신 부인 이혜원(29)씨 조언도 컸다. “부산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고, 황 감독님도 있으니까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을 많이 했어요. 와이프도 부산을 좋아해요.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거든요.”
가족으로 화두를 돌리자, 지난해 얘기로 조금 굳어졌던 안정환 얼굴이 밝아졌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벽하고 대화할 정도로 외로웠죠.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와이프를 만나 서둘러 결혼을 했어요. 너무 빨리 결혼하게 해서 지금도 미안하죠. 하지만 그 덕분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쪽은 신경 안 쓰고 운동만 하도록 도와줘요. 딸은(갑자기 활짝 웃었다), 5살인데 요새 한창 말썽 부리고 고집 피우는데, 정말 귀엽죠.”
안정환은 2일 부산으로 이사를 해 서울에 있던 식구를 모두 데려왔다. 주말 외출을 제외하고는 숙소에서 훈련만 한다고 구단 관계자가 전했다. “팀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라고 했지만, 안정환은 그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부산과) 1년 계약을 했습니다. 올해 어떻게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길이 생기겠죠. 부산에서 몇 년이든 좋은 활약을 보이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외국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절대 그거는 포기 안 하죠. 축구 선수는 나이의 한계도 있으니까 뛰어보고 싶은 리그가 있으면 계속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한 오래하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을 때까지만 그라운드에 있고 싶습니다.”
안정환은 나중에 “유소년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성인팀 지도자를 할 생각은 없는데 유소년 축구는 키우고 싶어요. 외국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잘 할 수밖에 없구나’ 그런 걸 느꼈죠. 처음 공을 차게 해 준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죠.”
◆"유소년 감독이 돼서 제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9일 부산의 홈 개막전. 대회 출장도 불투명하던 등번호 8번 안정환이 선발로 나섰다. 그라운드에서 그는 더 이상 꽃미남이 아니었다. 거친 몸싸움, 볼을 향해 태클만 10여 차례. 돌쇠처럼 뛰어 다녔다. 전반 45분 골문 30m 프리킥 기회. 안정환이 찬 공이 상대 골키퍼 손에 맞고 나오자 팀 동료이자 축구 후배인 한정화가 때려 넣었다. 주먹을 불끈 쥔 안정환은 자신이 골을 넣은 양 기뻐했다. 부산의 2대1 승리. 90분 경기를 소화한 안정환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내 인생 프로생활 중 최고의 경기였다”고 말했다. 11일 그는 2년 만에 축구대표팀 후보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안정환 축구 인생 2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첫댓글 옛날 대우시절부터 정말 좋아했었는데ㅠ 안정환 화이팅 ㅋㅋㅋㅋ
수퍼주인이 꿈이었다.. 이거 왜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ㅠㅠ
멋지다! 안느~ 화이팅!